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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서 본 장자권의 의미
1. 장자권의 인식의 부족의 심각함
장자권이란 단어에 대해서 창세기에 처럼 많이 다룬 곳이 없습니다.
장자권은 신, 구약에서 하나님의 역사의 대상인 사람의 역사가운데서 있는
가장 핵심적인 한부분입니다. 구약은 그림자요 신약은 실제입니다.
에서는 이 장자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함으로 결국은 장자권을 약삭빠른 간교한 야곱에게서 탈취당하고 뒤에 가서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아래 창세기 36장의 상황을 보면 이삭을 잡고 조르는 모습은 애처롭고 비참하기까지 합니다.
에서는 자기가 받을 복을 야곱에게 다 가로채이고 나서는 어째서 내게 줄 복이 그것 밖에 없냐고 항의성 짙은 애원을 하지만 눈먼 이삭은 에서가 에돔의 조상이 될것과 칼을 들고 남의 것을 도적질 하는 그런 민족의 조상이 될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사실상 장자권의 상실은 모든 것을 상실 한 것이나 다를바 없습니다.
여기서 보면 장자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게 됩니다.
만약 에서가 장자권을 분명하게 행사하였다면 야곱이 에돔의 조상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벨의 제사는 받았지만 카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았다는 문제와
같은 맥락의 의문을 가져볼 사항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야곱은 장자권의 인식이 있었고 에서는 희박했습니다.
우리에게서 헌신과 이김이 부족한 것은 이기는 자 라는 장자권에 대한 인식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야곱은 생명의 조상 즉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지만 장자권을 뺏긴 에서는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생명을 공격하는 육체의 조상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장자권을 합당하게 행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교회안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하고
생명을 살아내는 자를 핍박하는 에돔을 표현하는자가 될것입니다.
여기서 볼것은 이삭이 눈먼 축복을 했지만 장자권이 축복권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봅니다.
나중에 간교한 야곱이 벧엘의 이상을 보고 많은 고난 속에 변화를 거침으로 그가 열두 아들을,
눈먼 이삭같지 아니하고 정확하게 그들의 분깃대로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은 지난날의 에서와의 아픈 기억들을 통하여 장자권을 통한 축복권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였습니다. 오늘날 신약을 사는 우리가 제대로 된 장자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먼저는 장자권의 인식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노아는 자신이 술취해 있으므로 세아들을 합당하게 축복하지 못했고 함에게 분노를 표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이 장자인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교회는 오늘날의 수많은 자들의 축복을 위임받은 하나님의 왕같은 제사장 나라입니다.
에서는 이삭을 잡고 애원하였지만 결코 한번의 축복은 되돌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교회안에서 들어와서 장자가 되었지만 장자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뺏기는 것이 바로 이기는자의 삶의 대열에서 낙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세대에서도 그리고 다가올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가장 비참한 일입니다. 아래 말씀에서 에서의 통곡을 보면서 우리가 그날 의 심정을 미리 맛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창세기 27장 35절-40절)
이삭이 가로되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에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2. 장자권의 양면성
-장자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
창세기 38장에서 다말의 이야기와 그의 쌍둥이 아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다말이라는 여인은 부도덕한 방법으로 장자권을 가지려 했는데 사람의 관념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은 장자권을 가지려는 자를 의롭게 보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의 아들들이 출생때부터 장자권 다툼을 하는것을 봅니다.
아마도 다말의 뱃속에서 부터 그어머니의 심적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합니다.
세라가 먼저 나오려고 손을 먼저 내밀어서 산파가 붉은 실을 매어 놓았지만 결국은 베레스가
먼저 출산하였고 그는 장자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회안에서는 주어진 모든 것들이
사람의 노력이나 권모 술수로서가 아니라 모든것이 주님의 주권하에 있다는것을
보게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교회안에 들어와서 생활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의 긍휼과 은혜인것입니다.
(결정성경 79 베레스와 세라)
다말은 쌍둥이를 잉태했다. 출산하려는 순간 세라가 먼저 나오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 손을 내밀었고 산파는 큰 아들이라는 것을 표시하기위해 붉은 실로 표시해 두었다. 그러나 베레스가 그를 제치고 큰 아들이 되었다. 따라서 첫째가 둘째가 되고 둘째가 첫째가 되었다. 산파는 깜짝 놀랐다. 이 것은 장자권을 얻는 좋은 예이다. 베레스는 장자권을 상속했다. 사람은 그를 택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그를 택하셨다. 이것은 장자권이 사람의 노력에 따른것이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따른 것임을 입증한다. 그 어머니 다말의 이야기는우리에게 장자권을 갈망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며 아들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장자권을 얻으려고 애쓸지라도 그것은 사실상 하나님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가령 우리가 오늘의 다말이라면 장자권을 얻도록 애쓰고 수고 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그것을 얻고서 뒤를 돌아 본다면 우리는 창세전에 선택되었다는것을 알 것이다. 장자권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아니라 그분의 선택에 달려 있다.
- 장자권은 자신이 장자권을 지키려는 의지가 분명해야 함
우리가 이것을 보았다면 야곱에서 장자권을 탈취당한 에서 같이 되지 않으려면 장자권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함께 장자권을 지키려는 의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에서는 에돔의 조상이 되었고 축복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자손이었지만 그는 결국 야곱과 길을 달리했고 세일산에 거하면서 그 뒤 그의 후손들이 이방족속인 호리 족속과 피를 섞게 되었고
결국은 에돔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명분상에서 교회안에서 풍성한 요셉의 창고가 있는 회복안에 있고 이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의 갈망을 지고 있는 하나님의 왕국안이라고 하여도 그 왕국안에서 합당한 하나님 사람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장자권을 상실하고 슬피 울며 이를갊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회복의 간증을 무시하고 혼잡한 세상적이고 종교적인 영역안에서 눈에 보이는 상황만으로 안주하고 편하게 지내려고만 한다면
이는 이방족속과 피를 섞는 것이 될것이며 순수한 간증을 잃게 될것입니다.
(창세기36장 6절-8절)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갔으니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의 우거한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인하여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산에 거하니라
(창세기 36장 19절-20절)
세일산에 거한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대략이 이러하고 ....
그 땅의 원거인 호리 족속 세일의 자손은 로단과 소발과 시브온과 아나와.....
3. 신약과 회복안에서 장자권의 적용
오늘날 우리가 회복안에서 이 장자권을 어떻게 적용해야하는가는 각자의 영의 느낌에
맡길수 밖에 없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나자신뿐만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은 청년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창세기 38장에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장자권에 대한 인식이 있게 하셨고 이 장자권을 거부할 권리도 없었고 장자권을 멸시하는 자는 죽음에 처해 졌습니다. 그 예로 오난을 들수 있고..그 동생 셀라도 두려워서 떠는 모습을 볼수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무는 하나님의 백성의 씨를 번식시키는 것에는 아무도 열외가 없었습니다. 오난은 하나님의 씨를 땅에 버렸습니다. 외적으로 별로 중한 죄같지 않지만 그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간접적으로 끊어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도 교회안에서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의 씨를 퍼뜨려야 하는데 영적인 방면과 육신적인 방면이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누구든지 왕국복음을 전파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얻어야 하는 방면과 육신적인 면은 누구나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려서 실제적으로 회복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훈련센타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고 그리스도를 살아내는 자라고 하여도 가정을 가지지 않는다면 회복은 얼마가지 못하고 사탄이 방해 하지 않아도 저절로 소멸될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가장 엄중한 부분입니다. 다말은 이런일에 있어서 분명한 인식이 있는 여자였고 그래서 하나님으로 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목적과 경륜에 부합된다면 주님은 우리를 축복하실것입니다.
에서와 같이 오난과 같이 우리자신에게 주어진 장자권의 축복을 스스로 발로 차버리지 않으려면 우리는 장자권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를 볼뿐 아니라 영육간에 균형잡힌 인식이 필요합니다. 만약에 청년들이 이러한 인식가운데 산다면 학업이나 직장이나 건강이나 결혼의 배우자까지도 축복하실겁니다.
우리의 배우자를 얻을때 장자권에 대한 인식이 분명한 자를주시기를 구한다면 주님은 길을 열어 주실것입니다.
(창세기38장6절-8절)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첫댓글 장자권은 가장 귀하지요. 왕권, 제사장 직분, 땅의 두 배의 몫.
오 주 예수여!! 지금 장자권이 당신께 있음을 보게 하소서!! 당신은 하나님의 맏 아들이십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당신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더 깊이 연합되고 합병되게 하소서!! 오 만인의 으뜸이신 주 예수여!! 아멘.
사랑하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유일한 장자권을 우리에게 주심을 찬양 합니다.
아멘! 주님께 헌신된 청년들이 합당한 결혼을 통하여 가정을 이루어서 회복의 장래를 짊어질 2세들을 얻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