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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뤼칸 드륌스 2-7 미국에 온 후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을 통해 한 번의 면식도 없고 다만 이력서만 보고 서류상으로 계약이 된 고용주에게 연락하니 당장에 일을 나오라고 했다. 그러나 차가 마련되지 않아 실로 난감했으며 취직 후 차를 구하는 동안 내가 약 열흘을 야간 근무를 하게 되는데 오밤중이라 버스는 끊어지니(45년 동안 시내버스를 한번도 타 본적이 없다) 발티모어-워싱턴 파크웨이 고속도로 옆에는 페이브먼트가 없으니 자전거로 고속도의 로견으로 달릴 수 밖에 없었다. “도보자들이나 자전거들 진입 금지간판 을 옆으로 보면서도 인도가 아예 없으니 공짜로 얻은 미국산 자전거로 출퇴근할 수밖에 없었는데 일이 밤 2시에 끝이나니 차들이 조금 뜸하기는 했는데 이것이 바로 ‘무연고 이민자’ 즉 ‘막 배에서 내린 사람들(Fresh off the boat; 갖 이민 온 사람들을 뜻함)’이 넘어야 하는 고생이고 시련이었는데 시한부이기에 절망하기엔 너무 일렀다. 그래도 이곳은‘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가 원할 때, 자기가 원하는 만큼, 할 수가 있는 곳’이 아닌가?. 이곳 워싱턴 근교로 이민을 온 후 열흘 만에 취직 출근하게 된 곳은 50번 도로와 295번 도로의 코너에 있는 조셒 스미스 & 아들 회사이었다. 폐차들을 1차로 기계가 찢은 후, 2차로 빻아서 주먹 크기 사이즈의 금속을 만드는 고철회사이다. 지금은 아들이 주인인 정비공장에서 나오는 브레에크 로토[rotor]는 한개에 75센트를 주지만 보통의 쇠는 무료로 고물징수가 가져간다. 이곳 자동차장의사에서 자동차는 100파운드[1kg=2.2파운드]당 2달러를 주지만 냉장고는 무료로 버리는데 나는 사용가품 냉장고를 여러개 발견을 하고는 그냥 분쇄기에 넣기는 한국인 생각으로는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친구들에게 주었는데 냉장고의 수명이 다하면 또다시 이곳으로 오게될것이다. 이곳 와싱튼 디씨(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 워싱턴주가 있기 때문에 구별을 위해서 DC라고 붙인다)부근에서 하루에 나오는 약 150대의 폐차는 모조리 이곳으로 집결 되는 자동차의 방앗(mill이라 부름)간인 셈이고 차 한대를 빻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분 46초가 소요된다. 처음의 임금은 시간당 비록 2.5달러 이였지만 주 40시간외의 오버타임은 1.5배가 되어 시간당 $4.25이며 그동안 봉급인상이 있어서 하루에 10시간씩 주에 7일간(지금의 주급 세금포함 약 1,200불에 해당)일을 하게 됐다. 지금의 나는 오버타임이 없는 그 당시 초봉의 수십배에 달하는 금전이 건물 메니저먼로 부터 불로소득으로 매월 우리 부부의 은행에 쌓이는데 나가는 되니 괜스레 조용한 마음에 물결을 일으켜서 마음이 편하지를 않게된다. 가족회의를 거쳐서 나에게 필요한 생활비는 정부의 사회보장국에서 보내오니 필요한 용돈만 자동으로 나의 은행에다가 넣어주고 그 외에 모이는 돈은 회사은행의 어카운트를 자녀3명이 스스로 나누어서 가지라고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돈에 매료 되어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필요이상의 금전소유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더 이상의 목표가 없어져버리니 허탈감에 빠지게 되는데 너무 많은 돈 소유는 건강을 해치는 기본 요소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집의 대지는 3672평이니 2%안에 해당이 된다. 언뜻 생각에 내가 늙어서 돈걱정을 안 하는것은 이름도 한몫을 하는것 같다 좋은 글자만 선택을 하여 빛[光], 으뜸[元]은 중국화폐의 이름이며, 아내의 이름이 재물이 많고 넉넉하다는 부[富], 구슬옥[玉]이니 부자가 되는 설과 일맥이 상통한다. 보이는 아랫사진은 내가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면서 마주대하는 뒷마당이 된다. 지난 45년 동안 봉급과 휘발유는 약 4배가 올랐고 주택과 건물은 몇 년 전 증권시세(證市; stock market)가 무너지는 바람에 투자가들이 몰려 약 8배에 해당 된다. 돈이란 인정 없는 주인이기도 하지만, 반면 유익한 심부름꾼일수도 있으며 지금은 1975년의 화폐가치를 가름할 수 없지만 45년 전 아파트세는 월 160불이며 하루 일을 하면 세금을 제하고도 쌀 한가마니와 연탄 두장을살 수 있는 돈이었고 한국의 장관 봉급에 해당되는 돈이었으니 주 7일 오버타임을 많이 하여 주급이 400불이 되어 이민초기지만 혼자서 첫해에 총액 2만 천불을 벌었는데 그 당시 집 한 채에 4만5천불을 호가(呼價)하고 있었다. 그때 한국 농가의 평균치 일년 농사가 겨우 쌀 20가마니이었으니 옛말에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더라도 부잣집이면 쇠고기 국 한 그릇을 더 얻어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실감나게 했고 1인당 국민소득의 지표가 높은 나라일수록 같은 노력을 하여도 노임이 더 많은 것을 체감(體感)ㅎ게 했다.(古語) 지금은 교포의수가 늘어나니 처우가 월등히 좋아져서 한국라디오 지방방송에 위성으로 한국의 7개(KBS, MBC, SBS, YTN…….)등 TV방송을 모두 시청하게 된다. 처음에는 사람이 똑똑하다 해도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없듯이 내가 접시라고 사온 것이 두 사람이 서로 던져가면서 놀이를 하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프리스비(Frisbee)라는 원반이었고 아이들 장난감으로 사온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인형이 양초였으니 번잡함이 절정에 달했는데 지금 보면 모든 것이 어처구니[(맷돌, 마주돌, 맛돌,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의 나무 손잡이, 헐겁게 쥐어야 맷돌을 돌릴 수가 있다]없는 실수이었다. 그래도 어떤 사람은 개가 그려진 캔의 개밥을 개고기인줄알고 사먹은 것에 비하면 조금은 위안을 받긴 한다. 한번은 로이 롸저스(Roy Rogers; 서부극에 나오는 영화배우 이름)라는 치킨집에 갔는데 여자점원이 화이트밋이오? 닥 밋이오? 하고 꼭 물어 보는데 가격이 같으니 내 생각에 아마도 화이트는 흰색이니 덜 익은 것일 거고 닼(dark)은 까만색이니 완전히 익힌 것이라 생각하고 갈 적마다 ‘닼’ 을 샀는데 몇 년 후에 알고 보니 닭고기를 반으로 가른 후 다시 반으로 분리(¼이 됨)를 하여 흰 가슴살과 날개는 화이트 밑(white meat)이고 허벅지(thigh)와 드럼스틱(drum stick; 종아리, 북채)은 하얀 가슴살에 비해 검은 고기(dark meat)이었다. 닭고기에 관계되는 채명신 장군 이야기 인데 한국에서 교육을 받으러 미국에 온 장교들이 교육을 받는 동안 미국장교 구내식당을 이용하게 되는데 하루는 취사반장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물었단다. **작은딸 시아버지는 채명신장군과 가장 친한 친구이셨는데 이 회고록을 사돈으로 부터 선물로 받아서 지금도 내가 보관을 하고 있다.** “어째 한국군 장교들이 한번 다녀가기만 하면 식탁위의 설탕이 하나도 남질 않고 없어지죠?” “아, 그렇습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아마 우리나라가 전쟁중이라 물자가 워낙 부족해서 그럴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 장교들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닭고기는 다리 몸통 날개로 나눠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국장교들, 어떤 날은 날개만 먹고 또 어떤 날은 몸통만 먹고 ....., 도대체 식사준비를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한국장교들은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맨 앞사람이 윙 해버리면 다음 사람부터 계속 쎄임 띵(same thing)해버린 모양인데 미군 취사병들은 알 리가 없었나 보다. 브로드웨이 극장 구경을 가서 화장실을 사용한 후 손 말리는 기계의 버튼을 누런 후 끌려고 계속 누르니 끄지 지 않아 죄책감에서 여러 번 눌러도 꺼지지 않더라는 이야기도 곁들여 있었다. 작은딸의 시아버지는 채명신 장군과 가장 가까운 사이이셨는데 월남대통령이 채 장군에게 준 크디큰 상아 2개를 V자로 만든 크디큰 기념품과(상아의 속이 비어있는 것은 처음 알았다)회고록을 곁들여 진열장에 보관하고 계신다.(‘채명신’ 이라고 홈 페이에 찾으면 그의 육성과 월남전 기록촬영의 동영상이 나온다) 뜻이 좀 다르긴 하지만 큰사위는 화이트 밑(생선종류)은 먹지만 뢰드 밑(red meat; 금수의 고기)은 먹지 않는다. 오래전 나와 같은 동의 아파트에 살던 어떤 사람은 대구에서 중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했는데 미국에는 맥주가 흔하다하여 식품점에서 ‘beer’ 라는 글자만 보고 Root Beer를 사와서 먹어 보았더니 맥주맛이 아니더라는 말을 한 적도 있는데 알코올이 전연 없는 소다수 ‘루터비어’ 이었다. 내가 한국에 있을 적에 미국에는 시보래 차가 많다고 했는데 와보니 포드와 케브로레트(Chevrolet, 사람이름, Ford, Dodge, Cadilac, Chrysler등도 모두사람이름)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원주민 영어로“쉐벌-‘레!” 라 발음을 하는데 내가 처음살던곳 이름도 비슷한 쉐벌리[Cheverly]메륄랜드이다. 나의 첫 번의 실수는 자동차 분쇄회사 직장을 잡은지 며칠 안되었을 때인데 미국인이 높은 기계위에서 “크뢰스센트 뢴치”를 집어서 던져 달라고 했는데 내가 아는 것은 고작 한국서 말하는 ‘몽키 스파나(Monkey spanner)’이니 엉거주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하!(영어도 Aha! 이다)” 하고 감탄사를 발하며 순간적으로 미군부대서 흘러나온 몽키 스파나 손잡이에 쓰여 있던“Crescent wrench”생각이 떠올라 창피는 면했는데 지금이야 여러 사이즈의 뤤치가 있지만 한국전쟁이 있었던 1950대에는 툴이 귀하여 이것 하나만 있으면 아무거나 고칠 수가 있었는데 매일 큰나사나 작은 나사나 이 한 가지연장을 사용하니 이름만은 달달 외우고 있었던 것인데 크뤠스센트는 뉴욕에 있는 공구회사 이름이다. 예로 미국인에게 “Soju"라면 알지만 ”진로“라고하면 못 알아듣는 이치이다. 나도 가끔 실수를 하는데 오래전에 한 실수는 보기 좋은 침엽수(Norway spruce)를 사와 집 앞 정원에 심었더니(딱따구리가 구멍을 여러 개 뚫었음)병 없이 무럭무럭 잘도 자라는데 연방정부 공무원인 나무전문가 사위가 보더니 불행하게도 최고 150피트(46m 등걸 1.5m)를 자라는 전나무라고 했는데 웹 사이트에 찾아보니 맞는 말이어 배어야 하나 그냥 두어야 하나? 망설여진다. 우연히 YTN뉴스에 나온 것으로 은행의 금리가 1%로 하락을 하니 돈을 인출하여 투자를 하는데 강북 도심지역의 아파트가격이 너무도 가파르게 상승을 해서 상한가로 동결을 한다고 하니 돈들이 외곽지대 아파트로 투자를 하게 되어서 결국 그곳의 가격이 오른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외국인으로 부터 50만불, 100만불 투자이민을 받아드려서 영주권을 주는데 한국인들도 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지만 매입을 하여 체인 스토어에다가 세를 놓는분이 계시는데 투자용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맥도널드, 큰 주유소등이 되는데 한국 보다는 그래도 미국이 땅이 넓으니 생활비를 벌수있는 운신공간이 더 많다고 보아야 한다. 나의자녀들은 그래도 잘 자라주어서 큰딸은 환경청소속의 연방공무원이며 미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국제포럼에 참석을 하며 작은 딸은 건축설계사인데 워싱튼포스트 신문에 신혼부부의 새가옥모델의 외부와 내부의 사진이 실렸고 외아들은 정직하고 기술이 뛰어나니 천평의 대지는 너무넓으니 우체국의 편지배달을 하는 차량수리샾에 섭리스[sub lease:한국어?]를 주고 반을 사용하는데 백평이상의 정비공장주인이 되었다. 내가 그랬듯이 자동차 정비소는 수리비용을 부르는게 가격이니 돈에대한 욕심이 없으면 자연적으로 일감이 많아지게 되어 있다. 버지니아주에서 정비소를 하는 아들은 중학교 시절부터 내가 하드 추레이닝을 해서 기술이 뛰어나며 품질은 좋고 가격은 저렴한데 정직성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서 일감이 남아 도는데 인터넷 여론조사 옐프[yelp]란에 미국인 36명이 2020년 6월 현재까지 파이브 스타로 추천을 해 놓은것을 스마트폰으로도 볼수가 있다. ` 공감 3 댓글 2 수정 삭제 설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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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디테일하게 아메리칸드륌을 잘봤습니다
남의 나라땅에서 겪으신 시행착오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지요‥ 창공님 이런글
잼납니다 우리 삶방에 자주 올려주세요
세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강건하세오ㅡ
감솨요
detail을 아시네여
영레아디신가봐요
감솨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미국 머나먼 나라에서
우리 한국사람이 큰성공을 하셨으니 내가 다
가슴이 뿌듯하군요. 비록 몸은 멀리 있어도
언제나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구요.
학창시절에 영어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다라면
더 좋았을 것을....... .
감솨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우리 한국사람의 위상을 세워주신 분들의 공로는 이루 말로 다 못할 것입니다.
\또한 고생인들 얼마나 많이 하셨을까요. 진겅으로 고맙고 감사를 드립니다
외국에 나간 사람들은 한국에 손해를 끼치진 않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