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 김포! (수필)
정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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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포 곳곳을 틈날 때마다 걷습니다. 걷다 보면 코끝이 시큰해
지곤 합니다. 장릉에서는 인조반정으로 밀려난 광해군을 생각하며 울
컥하고 김포공원묘지에서는 한센병 시인 한하운의 묘비 앞에서 울컥
하고 고촌 당산미에 올라 사라진 옥녀봉을 상상하며 울컥합니다. 감
바위 앞에서는 중봉 선생의 우국충정에 울컥하고 한강 변을 보며 한
국전 당시 양민학살로 수장된 원혼들 앞에 울컥합니다. 염하를 보며
손돌의 아픔이 느껴져 울컥하고 한재당에선 이목 선생의 짧은 삶 앞
에 울컥하고 조강포 유허비 앞에 설 때면 마을이 송두리째 사라져버
린 분단의 아픔에 울컥합니다. 그리고 애기봉에 올라 북녘을 내다 볼
때는 분단과 실향민의 아픔에 울컥하고 문수산성에 오르면 성벽 곳곳
에 스며있는 민초들의 피땀을 생각하며 울컥합니다. ‘울컥’은 이처럼
아픔과 한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이 언젠가는 감동과 감격의 상징어로 우리에게 다
가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울컥 김포’가 한의 땅을 나타내는 것
이 아닌 7천만 겨레가 함께 감격에 겨워 눈물 흘리는 상징어로 자리
잡을 그날을 꿈꾸어봅니다. 아마도 그날은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정
착되어 조강에 배가 넘나드는 때일 것입니다. 그날을 염원하며 저는 오
늘도 울컥거리는 가슴으로 김포를 걷습니다.
(김포문학 39호 372~373 페이지, 2022년)
[작가 소개]
정왕룡 김포문인협회 회원, 김포시 의원(4, 6대). 차세대융합기술원 부원장(전),
중앙대민주동문회장(전).
[시향]
정왕룡작가의 수필 <울컥 김포!> 에는 시의원 시절 그가 직접 찾아가 보고 ‘울컥’했던 김포의 명소들이 마치 여행안내문처럼 소개되어 있다
장릉(章陵)에는 추존왕, 원종과 인헌왕후(인조의 친부, 친모)를 모신 쌍릉이 있다 그곳에서 그는 인조반정으로 밀려난 광해군 생각에 ‘울컥’하고, 김포공원묘지에선 한 많은 생을 살다 간 한센병 시인, 한하운의 유택에서 ‘울컥’한다 ‘한하운 길’을 명명하게 한 주역이 정왕룡작가였기에 그의 울컥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고촌 당산미 정상에서는 사라진 옥녀봉을 상상하며 ‘울컥’하고, 감바위 앞에서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나가 사십팔 세 젊은 나이에 순국한 중봉 조헌 선생의 우국충정에 ‘울컥’한다 한강 변에서는 한국전 때 수장된 양민들 생각에 ‘울컥’한다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입으로 왕이 강화로 피난할 때, 손돌이란 뱃사공이 왕과 그 일행을 배에 태워 안전한 초지(草芝)의 여울로 배를 몰자, 왕은 손돌이 자신을 해치려고 배를 다른 곳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오해하여 손돌을 처형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손돌이 선택한 그 뱃길을 따라 무사히 여울목을 건널 수 있었다는 전설을 생각하며 ‘울컥’한다 하성면 가금리 한재당에선 무오사화 때 정적에 의해 참형을 당한 이목 선생의 스물여덟 짧은 생에 ‘울컥’하고 조강포 유허비 앞에서는 분단의 아픔에 ‘울컥’한다 애기봉에 올라 북녘을 내다볼 때는 실향민의 아픔을 생각하며 ‘울컥’하고, 문수산성에 오르면 성벽 곳곳에 스며있는 민초들의 피땀을 생각하며 ‘울컥’한다
이 글을 읽는다면 누구라도 그가 열 번이나 ‘울컥’했던 김포의 곳곳을 두루 둘러보고 싶어지리라
글 : 박정인(시인)
첫댓글 맞습니다 김포와 강회를
생각하면 선사시대 고인돌
부터 현대는 북녁땅이
보이는곳에서 안보를 지키는 군인들끼지 역사와
중봉선생님. 우국충절
어려움속에서. 문학이란
끈을 큰틀로 세우신 한하운
시인등 역사와 문화의 고장입니다. 우리가 이어가야할 책임 간직하며
실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