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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구 1,000만 명 시대. 겨울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막상 떠나려면 어디로 가야 할 지 막막하다. 남들은 도대체 어디로 여행을 갈까? 명사들이 추천하는 숨은 여행지 베스트 7을 꼽았다.
이계진 의원 송광사 불일암
“대나무숲에 둘러싸인 무소유의 풍광”
맑고 가볍고 투명한 소리, 쓸쓸한 空의 소리에 서린 기묘한 아름다움
송광사 탑전 아래의 편백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보면 다시 평지길이 나타나고, 갈림길에서 작은 개울을 건너 대숲길을 지나면 불일암(佛日庵)이 보인다. 이 암자는 고려시대 자정국사(慈靜國師)가 창건해 자정암(慈靜庵)이라고 불렸으나 1975년 법정스님이 중수한 다음 불일암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이계진(61) 의원은 송광사 불일암의 대나무숲이 좋다. 그 대나무숲에는 꼿꼿한 수도승 법정의 자취가 서려 있어 더욱 그윽하다. 법정 스님은 스테디셀러 <무소유>의 인세로 이 작은 암자를 지었다. 그는 이 향기로운 암자가 완공될 때까지 건축 과정을 직접 감독했다. 법정의 무소유 정신, 그의 삶에서 풍기는 청정함이 온전히 배어 있는 장소다.
송광사에서 불일암까지는 약 2km. 실개천이 흐르고 삼나무가 우거진 숲을 휘적휘적 부지런히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불일암에는 법정 스님이 수행하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법정 스님의 책 곳곳에는 불일암 시절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 치열한 선승에게 불일암은 마음의 고향, 정신의 안식처였음이 분명하다. 예전에는 법정 스님 책의 애독자들이 이곳에 몰려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고요하고 적막한 기운만이 사라진 선승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이 의원은 법정 스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 의원이 잡지 <샘터>에 쓴 글을 보고 “맑은 글이 좋다”는 덕담을 보내온 것이었다. 이 의원은 가족과 함께 그를 찾아 인사를 드렸고, 이를 계기로 법정 스님과의 소중한 인연이 시작됐다.
▶법정 스님의 향기가 서려 있는 송광사 불일암.
이 의원이 불일암을 찾게 된 것은 1989년, 이 의원 가족이 송광사 수련회에 참석하면서부터다. 이 의원은 1991년 이곳 불일암에서 법정 스님의 계를 받아 불가에 입문했다. 법정 스님이 이곳을 떠난 후에도 그는 이곳 불일암을 매년 한 번 정도는 찾는다.
이 의원은 이곳의 대나무숲과 숲이 지어내는 바람소리를 좋아한다. 대나무숲의 바람소리는 긴 여운을 남긴다. 맑고 가볍고 투명한 소리다. 이른바 ‘공(空)’의 소리다. 쓸쓸한 풍광에는 기묘한 아름다움이 있다. 수도승의 소박한 밥상처럼 꾸밈이 없는 아름다움이다. 이 담백하고 검소한 풍광이 불일암의 매력이다.
“그 자리에 가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집니다. 스님이 아끼던 암자 앞 후박나무가 여전하고, 손수 만든 참나무 의자가 지금도 삐걱거리지요. 스님이 휘파람을 불면 새가 날아와 스님 품에 안기고… 암자 옆 흐르는 시냇물로 장국을 만들어 국수를 말아 먹기도 했죠.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 주시던 세상사의 지혜들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불일암은 떠들썩한 관광지도 아니고, 찬란한 풍광을 뽐내는 명소도 아니다. 그러나 이 의원에게는 ‘인생의 이야기’가 있는 마음의 명소다. 초라한 두 채의 집과 대나무숲으로 이뤄진 이 검박한 장소가 주는 위안과 평화는 참으로 깊고 장엄하다.
최인호 소설가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니크
“살아 있는 중세의 고전, 아드리아해의 추억”
김우중 대우 회장과 첫 동행…살아 숨쉬는 역사를 만나다
작가 최인호(62) 씨가 처음 세계 일주에 나선 것은 1974년, 29세 때의 일이다. 당시 그는 한 언론매체가 기획한 <맨발의 세계 일주>라는 칼럼을 쓰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어려울 때여서 해외에 나갈 때면 온 가족이 공항에 나와 ‘장도에 오르는’ 사람을 배웅했다. 하물며 세계여행이라니….
노르웨이·덴마크·포르투갈을 거쳐 파리에 도착한 후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만삭의 아내를 두고 여행을 떠났다는 미안함 때문에 그는 사랑이 가득 담긴 마음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어 보냈다. 최파리. 최인호 특유의 장난기가 녹아든 이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파리를 아들에게 기억시키고 싶은 아버지의 부성애가 담긴 이름이었다.
최씨는 1980년대 김우중 전 대우 회장과 함께 세계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감동적인 명소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크로아티아의 드브로브니크를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드브로브니크는 우리나라 경주나 이스탄불·로마·상트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처럼 유네스코에서 도시 전체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도시 중 하나다.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니크 성 위에서 바라본 아드리아해.
드브로브니크의 매력은 13~16세기에 건설된 길이 2km, 높이 25m의 성벽과 석회석이 깔린 광장, 성벽 안에 돌로 만든 경사진 길, 수도원과 교회, 샘물 그리고 아드리아해의 투명한 바다에 반사되어 빛나는 성 등이다. 성 위에서 바라보는 아드리아해의 아름다움은 압권이다. 성 안에는 모두 석회석이 깔려 있는데, 세월의 흔적만큼 닳아 햇살에 반사되어 빛을 발하는 광장은 눈부시다.
500년 전의 시청 건물이 지금도 시청사로 쓰이고 옛 시장의 모습이 전혀 변형되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 무엇보다 오랜 역사의 현장이 현대의 시간 속에 살아남아 호흡하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요즘도 누구에게나 특별한 감동이 있는 도시로 드브로브니크를 추천합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집에 여전히 자손들이 살고 있는데 그 모습에는 정감이 넘칩니다. 서울도 그런 식으로 남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 서울은 너무 많은 부분이 잊히고 사라졌어요.”
최인호는 여행을 통해 작품을 구상하고, 다듬고, 공부하며, 표현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 배경은 항상 생동감 있게 살아 있다. <해신>을 읽으면 완도의 짙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제왕의 문>을 읽으면 광활한 만주의 들판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의 다음 소설의 테마는 예수다. 이를 위해 그는 이스라엘 순례를 계획, 실행하고 있다. 예수를 소설에 등장시키고 싶은 것은 최근 일련의 유학자를 소설로 그린 이후 그가 꿈꾸던 마지막 소망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순례와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허영만 만화가 에베레스트 트레킹
“극락계를 향한 치열한 은빛 여정”
산악인 박영석 씨 소개로 시작…가볍게 꾸린 짐 속의 책이 재미 더한다
만화가 허영만(60) 씨는 히말라야와 네팔을 유난히 사랑한다. 8,000m급 준봉에는 아직 도전하지 못했지만 3,000~4,000m급 산악지역을 트레킹하면서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거봉의 풍경을 맛보는 감동은 특별하다. 그는 세상에 그런 절경은 없다고 믿는다. 티베트인들이 자신들의 설산을 ‘극락계’라고 묘사했듯 히말라야는 아마도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극락의 풍경일지 모른다.
그의 여행 짐은 가볍고 단출하다. 원정을 떠날 때는 장비가 만만치 않지만 최대한 가볍게 짐을 꾸리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원정갈 때 책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 무료한 일상에서 책 말고는 별로 위로받을 대상이 없다. 맹렬한 독서광인 그도 그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돌아왔다.
“책 읽는 데도 체력이 필요한데, 숨쉬기도 고통스러운 판에 책이 안 읽힙디다. ‘고소를 먹으면’ 긴 못 같은 꼬챙이가 뇌를 관통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 어떻게 책을 읽습니까?”
책은 읽지 못해도 만화일기책은 빠뜨리지 않는다. 스케치북도 마찬가지다. 카메라도 필수 소지품이다.
“2001년인가? 산악인 박영석 씨를 소개받았어요. 마침 그 양반, 히말라야 14개 고봉 등정 가운데 딱 하나 K2만 남았을 때였어요. 박 대장이 산에 가본 경험이 있느냐고 물어서 비부악 하는 친구들 따라 한 5년 가봤다고 했더니 선뜻 동행하자더군요. 그렇게 히말라야를 시작한 거죠.”
▶인간의 한계를 확인하게 해 주는 에베레스트 트레킹.
그는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세상을 다 덜어낸다고 말한다. 인간의 한계를 느껴보는 것, 그의 인생에 뒤늦게 찾아온 치열한 승부 같은 것이다.
트레킹은 보통 해발 5,000~6,000m 이하의 산을 오르는 것으로, 고산을 오르는 클라이밍(climbing)과 구분된다. 특히 네팔에서는 고산 등반 때 수만 달러의 입산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큰 비용 부담 없이 고산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베이스캠프. 셰르파 마을을 돌아보는 하루 일정부터 20일 걸리는 동쪽 끝 칸첸중가(8,598m) 베이스캠프 코스 등 개발된 코스만 32개가 있다.
고산병은 보통 해발 2,800m 이상에서 나타나는데, 두통과 구토 증세부터 심하게는 폐부종과 뇌부종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연간 네팔에서 고산병으로 숨지는 경우는 평균 3명꼴. 소걸음 속도로 고도를 높였다 낮췄다를 반복하는 것은 고소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텔레비전 보면 폼나지요. 그런데 현실은 안 그래요. 인간의 한계를 확인해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산에 가서 그것을 확인하면 사람이 겸손해집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약한 존재입니까?”
윤정희 탤런트 일본 훗카이도
“초원과 단풍지대, 그리고 거대한 설국의 파노라마”
유난히 일찍 저무는 겨울 해…변화무쌍한 자연의 위력 느낀다
올 한 해 탤런트 윤정희(27)는 드라마 <하늘이시여>의 자경 역을 통해 최고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윤씨는 <소문난 칠공주> 후속으로 방송되는 KBS 2TV 주말극 <행복한 여자>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올해의 행복을 이어가게 됐다.
그는 지난해 11월 일본 훗카이도(北海道) 여행을 통해 그동안 누적된 피로를 씻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힘을 축적했다. 오타루(小樽)에서 조잔케이(定山溪)까지 가는 길목을 넘으면서는 엄청난 눈의 향연을 목격하기도 했다. 훗카이도에서 눈을 보고 싶다고 했던 그의 바람은 너무 훌륭하게 충족됐다.
오타루는 인구 30만 명의 소도시이지만, 과거 청어잡이의 중심지로 훗카이도 제1의 도시였던 영화를 간직한 곳이다. 오타루는 영화 <러브레터>로 유명해졌고,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주인공 세키쿠지 쇼타의 고향도 이곳 오타루다. 오타루는 눈 덮인 운하와 가스등, 아름다운 북국의 겨울로 훗카이도를 상징하는 지역이다.
훗카이도의 겨울은 유난히 일찍 해가 저문다. 오후 4시면 어두워지기 시작해 30분이 지나면 완전히 깜깜해진다. 작은 항구와 연결돼 평온하게 흐르는 오타쿠운하에는 이때부터 가스등에 불이 들어온다. 운하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석조 건물은 과거 청어잡이 시대에 창고로 사용됐는데, 지금은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로 바뀌었다.

▶홋카이도의 제1 도시인 오타루의 운하와 가로등.
오타루에서 도야호(洞爺湖)를 지나 노보리베쓰(登別)로 가는 길은 관광객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조금전까지 새파란 초원을 지났는데 고개 하나를 비켜가면 거대한 설국이 나타난다. 푸른 초원과 붉은색 단풍과 하얀 눈을 동시에 맛보는 경험은 변화무쌍한 자연의 역동성을 오감으로 느끼게 한다.
삿포로 맥주와 ‘라멘’의 맛은 삿포로의 매력과 즐거움을 배가한다. 삿포로 중심가 곳곳에 널려 있는 도시의 명소도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오도리 공원은 삿포로 중심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공원으로, 폭 65m, 길이 1km에 달하는 독특한 구조다.
매년 11월 중순에 시작해 이듬해 2월까지 계속되는 ‘화이트 일루미네이션’은 거대한 빛의 축제다. ‘크리스마스 광장’ ‘빛과 만남의 광장’ 등 각각 빛의 테마가 정해져 크리스마스 트리는 물론 전구로 만들어진 갖가지 조형물들이 오도리 공원을 빛나게 한다.
동쪽 끝에 우뚝 솟은 텔레비전 타워는 높이 147m로 이 도시의 랜드마크다. 이곳에 올라 삿포로 일대의 광대한 자연을 보노라면 고통스러운 삶의 국면과 매듭이 순식간에 해소되는 청량감을 느끼게 된다.
첫댓글 이글을 보니
벌써 고인이된분도 계시고
이미 명상의 반열에서 멀어진 사람들도 있지만
여행지는 고스란히 남아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