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였다.
건조한 키보드 소리만이 갑갑한 사무실 공기를 가르고 있는 평범하고 딱딱한 그런 오후..
문득,
도대체 왜때문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브레이브하트의 멜깁슨이 목놓아 부르짖었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났다.

"freedom~~~~~~~~~~~~"
갑자기 찾아온 미친생각은 뇌에서 몸으로 전이되어 미친행동으로 즉각 실행된다.
"과장님 오늘 자유...크험험험험..배가 좀 아파서 조퇴를 할까 합니다. 결재 좀 해주십쇼"
"응? 자유 머시기라고 들은 것 같은데 기분탓인가?
"아하하하하하.... 잘못들으셨겠지요..감히 관노비 주제에 자유라니요..당치도 않습니다.아하하하하"
그렇게 어색한 웃음만을 남기고 뻘쭘하게 뒤돌아서 나오는 등 뒤로 과장님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웃기고 있네. 놀러가는거면서..'
-_-;; 사람의 마음의 소리는 등으로 들리는구나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자유인의 몸으로 회사밖을 나섰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자유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숙제와 마주친다.
'나오긴 나왔는데 어디가지?'
집에가서 잠이나 잘까라는 또라이같은 생각을 하는 찰나 어젯밤 뉴스가 생각났다.
"바로 그거다! 29년만에 복원된 송도의 명물 케이블카를 체험해보는거다!"
거기에 생각이 미친 나는 무려 혼자서 케이블카에 도전해 보기로 하는 결정을 저.지.르.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비극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저주받은 송도로 유유히 걸어들어갔다.......
(그 당시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자신에게 쌍싸다구를 날리고 싶다)
케이블카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편도 12,000원짜리 바닥이 철판으로 막힌 캐빈이고, 또 하나는 편도 16,000원짜리 바닥이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캐빈이다.
'남자라면 편도에 투명이지'라는 근거없는 논리로 거침없이 티켓을 끊었다.
그렇게 탑승을 하고 드디어 케이블카가 확트인 바다위의 하늘을 향해 꿈처럼 뻗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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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이라고 표현했던가? 그렇다 그건 꿈이었어야 했다. 깨어나면 회사책상에 엎드려있었어야 할 그런 꿈...
드넓게 펼쳐진 바다와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은 음.....
표현을 하자면 2층 커피숍에서 3천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보는 경치,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그냥 그 경치다.
3천원짜리 경치를 조퇴를 동반한 16,000원으로 즐기면서 잠시 회한에 사로잡혔다..
그러고 보니 투명바닥으로 비치는 바다는 그냥 바다고 멀리 보이는 하늘은 그냥 걸어다닐 때 보던 하늘이다
옆에서는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을까말까한 풋내기 커플들이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밉살스럽게 조잘거리고 아줌마들은 10미터는 떨어져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우렁차게 신변잡기를 털어놓는다.
한숨을 쉬며 그것도 경치라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우렁찬 목소리의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말을 건다.
"총각~ 혼자왔어? 우리가 사진이라도 좀 찍어주까?"
딱 이 글씨크기만큼, 잘가던 케이블카도 놀라서 자기가 케이블칸지 지하철인지 헷갈려할 정도의 큰 목소리로 반갑잖은 제안을 한다.
'어머..저 아저씨 혼자왔나봐..소근소근'
안그래도 밉살스럽던 풋내기 커플들이 16,000원치만큼 더 밉살스러워졌다..ㅡ.ㅡ;;
거절하면 괜히 더 말시킬까봐 "그라까예?"라는 헛헛한 대사를 날리며 준비해간 종이와 펜을 주섬주섬 꺼냈다.
하얀종이에 '자유인'이라는 되도안한 세 글자를 적고 포즈를 잡았는데 몇초가 흘러도 찰칵 소리가 나지 않는다.
'뭐지? 카메라가 고장났나?'라는 생각을 하며 찍새 아주머니를 보니 배를 잡고 바닥에 구르고 있다.
그 순간 내가 자유인인 것이 쪼금 부끄러워졌다..(애써 밉살풋내기들쪽은 확인하지 않으려 애를 쓴 것은 비밀이다..)
그렇게 억겁같은 8분이 흐르고 암남공원에 내려 "재밌는 총각~ 우리랑 조개구이 같이 먹을래?"라고 헛소리를 하시는 우렁찬 아줌마들에게 "집에 아줌마뻘인 어머니가 있습니다!"라는 단말마를 남기고 남들은 걸어가는 산책길을 전속력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마치 내가 다 타기만을 기다렸다는듯 때마침 도착한 '근데 그거 인터넷으로 예매하면 만원이라던데....'라는 얄미운 카카오톡 메세지와 함께 송도의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갔다.......
송도.....
그곳은 과연 천국인가 지옥인가..아니면 160원치의 감동과 15,840원치의 후회만이 남는 애욕의 바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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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 재미를 위해 이렇게 쓰긴 했지만 사실은 정말 괜찮고 재밌었습니다. 꼭 한번쯤은 타볼 만 하다고 강추합니다.
p.s2 : 내만 당할 순 없지....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금요일 오후 큰 웃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의미로 저는 타지않겠습니다~ㅋㅋ
압! 왜요..한 번 타보시지..ㅠㅠ
부럽습니다 ㅎㅎㅎ
그런 의미에서 저도 안타보겟습니더 ㅋ
퇴근하고 이야기해라.
울지말고 차근히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작가 하셔도 되겠어요 엄청 웃었네요 ㅋㅋㅋㅋㅋ
저도 송도갔다가 탈까 하다가 너무 비싸서 참았는데......
참을 때 저도 좀 말해주시지ㅡ.ㅡ
그건 그렇고 일반 게시판에서 보니까 반갑네요. 자주 봅시다~~~~~
비장미로 시작해서 코미디로 끝났넹^^이 글이 주는 교훈은....앞으로 퇴근시간 엄수!!!!!
이상한쪽으로 교훈이 나오는거같은데.... 기분탓이겠지?
딴거랑 똑같겠지 했더니 바닥이 투명~! 가봐야겠네요~ 덕분에 도움되는 정보 추가했습니다~^^
어익후~ 꼭 타보십시요...천국을 체험하실겁니다..음트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