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에는 참, 불만이 많았다. 두세주 지나고 보니 매주 하는 이야기가 결국은 다 같은 이야기인 것 같고, 답답한 마음에 수업이 끝난 후에 교수님께 다 같이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그러고도 수업시간에는 입 다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난 그냥 인정하기 싫었던 거다. 사냥개에게 쫒기면서 살아온 것이 지금까지의 인생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은 뭔가 알고 있는데 계속 같은 내용의 강의를 듣는 것에 대한 알량한 반항심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참 많은 것을 배운 마지막 학기였다. ‘관찰자가 곧 관찰 대상이다’라는 말은 지금까지의 내 자신감이 흉내내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자신감이 있어보이는 사람들의 태도를 흉내내며 나 역시 같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 알맹이는 여전히 조바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쫒기고 있으면서도 껍데기를 보며 위안 받았을까. 참, 알량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 속으로 외우는 말은 ‘Fear is never actuality'이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막상 두려울 때는 그것이 ‘두려움’인지도 모르고 끌려가는 것이 두려움이라는 감정 아니던가. 멀리서 거창한 예를 찾을 것도 없다. 곧 기말고사 기간이니, 시험 볼 때의 심정만 생각해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답안지를 작성하는 순간에 괜히 떨리는 마음은 무엇이었던가. 긴장해서 마음 먹은대로 쓰고 나오지도 못했던 작년, 어느 회사의 필기시험은 또 무엇이었던가. 우리는 실체도 없고 현실도 아닌 두려움에 그렇게 쉽게 빠져들곤 하는데, ‘Fear is never actuality'라는 말은 두려움의 실체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학기가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수업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느끼게 해주는 말은 ‘홀로서기’이다. 서정윤 시인도 ‘홀로 선다는 건/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더 어려운 일이지만’이라고 노래했다. 가슴을 치며 울어본 적이 없으니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짐작만 할 뿐이다. ‘저기 있는 아름다운 산’을 향해 순간순간 자신에게 솔직한 채로 담담하게 걸어나갈 뿐이다.
세상 참, 살기 힘들다. 시쳇말로 ‘존나’ 힘들다. 이제 이십대 중턱인데, 친구들끼리 모이기만 해도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로 밤을 다 샌다. 원인은 어렵지만 간단하다. 열정의 대상,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혹은 있어도 쏠라당- 상태이거나. 남들 하는대로 하다보면 그게 그 사람 인생이지 내 인생이던가. 어차피 백년도 못사는거, 내가 좋아하는 일로 일상을 가득 채워야 할 것이 아닌가. 돈이나 명예는 가다보면 붙는거지, 내 인생에 그거 붙이려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런 건 중학교 도덕책에도 나올거다. 근데 아직도 모르고 있는거다. 머리로는 알아도 행동할 수는 없는 거다. 이제는 행동할 때다. 미룰 이유가 없다.
‘한국의 수필 문학’이라는 과목명에 사기당한 느낌이다만, 이런 사기라면 몇 번이고 당하겠다. 벌써부터 삶에 지쳐가는 내 친구들도 이 사기 한번 당해봤으면 한다. 든든한 친구가, 저기 있는 아름다운 산을 향해가는 산책길을 끝까지 같이 걸어주겠다는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학기가 끝나면 공개 채용 시즌이 시작된다. 내가 선택한 길, 열정으로 선택한 길이다. 지금, 망설임도 조바심도 두려움도 없다.
언제든 시간을 내서, 부산에 한번 가보고 싶다. 한국에 이십 수년을 살면서도 부산을 한번도 못가봤다. 부산 가는 길에 마산에도 들러야지. 마산 가서 전화하면 교수님, 국밥 한 그릇 사주세요. 소주도.
2년 전인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언제나 가능성이어야 한다”라는 일기를 썼다. 그리고 지난 수업에서 교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는 바로 여러분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런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여서. 아,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힘이 났다. 케이의 책을 읽었을 때 든든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 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온전히 “하나”여야 한다. 홀로서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수필에서 “절벽 위에 서기” 정도로 홀로서기의 느낌을 표현해왔다. 굳이 절벽이 아니더라도 좋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자연이었으면 좋겠다. 거대한 자연.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 작은 자연의 모습이라도 관계 없겠다. 작지만 강한 생명력으로 빛나는 자연. 그 앞에서야 나는 자아의 벽을 허물 수 있다.
등산이야 흔한 일이지만, 산의 존재감이 마음으로 다가온 것은 3년 전의 일이었다. 북악 스카이웨이를 올라가는 길이었던가. 거대한 산의 에너지가 내 마음에 느껴졌다. 나무와 풀, 동물들, 그리고 물. 귀중한 생명을 온 몸으로 지탱하는 산의 에너지 말이다. 아, 압도 당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비가 오면 알몸으로 동네를 달렸다는 어린 시절의 연암, 그처럼 알몸으로 비를 받아들이는 느낌을 상상해보면 비슷하겠다. 자연과 나 사이의 경계가 녹아내리는 느낌. 그런 것이 내 의식 속에서 일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움으로 다가오던 오후였다.
서울에서 살다보면 도시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사람들의 물리적인 흐름이 아니더라도, 취업이나 장래에 관한 우리 나이 또래의 거대한 흐름에도 휩쓸리기 십상인 것이다. 그럴 때는 자연을 보러 간다.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분으로. 변함 없는 모습으로 밤의 조명을 퉁기며 흘러가는 한강을 보거나, 삼청 공원에서 나무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듣는다. “자연스럽게 살아”라는 자연의 충고를.
홀로 서는 연습을 하기 위해 자연을 찾았다면, 자연스럽게 살라는 충고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알아채야 한다. 매 순간, 나는 나 자신의 관찰자가 되는 연습을 한다.
다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Beauty is nothing, nothing is beautiful"이라는 말을. 자연(自然)이라는 말을 굳이 풀이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스스로 그러한, 완전히 홀로 선. 나는 자연에서 홀로서기의 본(本)을 본다. 내가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 때, 홀로 섰을 때, 나의 자아가 “Not a thing"이라는 사실을 알아 챘을 때 아름다움은 실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대학의 학기는 참 짧다. 마지막 학기는 더욱 그렇다. 그 짧은 학기에 작은 이정표를 발견했다. 저기 아름다운 산 하나가 있음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그리고 나는 즐길 준비가 되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라는 깨달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소중한 관계들이 사실은 모두 ‘사랑’이었음을 깨달았던 아침을 분명하게 기억한다. 당연한 소리처럼 들릴테지만 그날 아침의 깨달음은 내 가슴을 아주 세게 때리고 지나갔다. 평생 잊지 못할 만큼.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본다. 나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바라지는 않았는가. 바라고 또 바라고, 관심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사랑받기를 원하고. 그러면서도 정작 내 속내를 드러내는 것에는 냉정할만큼 인색하지 않았는가. 힘들 때도 기댈 줄 모르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대놓고 도움을 청할 줄은 몰랐으면서, 그래서 더욱 난감하게 의지하기를 바라지 않았는가. 나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만질 수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진정한 관계가 온전히 홀로 선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이 끝난 후에, (사랑이 끝난다는 말도 참 웃긴다.)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들을 뒤적이고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찾아 보았던가. 그리고 그 아름답고 때로는 슬픈 수 많은 사랑 이야기들은 순간 감동적이었지만 사랑에 대한 나의 질문에는 전혀 대답해주지 않았다. 당연하지, 책과 영화들은 사랑은 결국 하나임을, 그리고 홀로서야만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랑의 이미지들을 나의 경험과 비교하는 일을 계속했다. 나를 비워서가 아니라 나를 잃고서, 그리고 단단한 자의식에 갇혀 쏠라당-을 계속하면서, 계속해서 사냥개에 물려가면서. 내가 찾고 있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마치 음료수 자판기처럼, 동전을 넣으면 갈증이 채워지는 것 같은 간편한 관계였다.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캔 뚜껑을 따는 것처럼 관계를 맺어간다는 것이. 나를 비우는 것이, 나의 자아가 깨지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소녀의 감수성으로 나는 외로움을 채우고자 했던 것이다.
연애를 둘러싼 담론들은 차고 넘친다. 오죽하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작업’이라는 말을 쓸까. ‘고수’니 ‘선수’니 하는 말들을 듣고 있자면 연애는 차라리 오락이 된다. 사랑은 어디갔을까?
내면에 위기가 닥쳐야 진정한 사랑이 보인다고 했다. 그 위기는 그 동안 나를 지탱해온 물질세계의 기호와 이미지들을 버리고, 세계와 사랑 앞에 알몸으로 서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맨발로 걷고, 알몸으로 절벽 위에 서 있을 때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홀로 서 있는 사람에게 사랑은 하나임을.
나는 오랫동안 사랑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았다. 누구를 만났을 때 어떤 감정이 생겨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를, 다른 친구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확신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책도 읽어보고,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알 수 있는 것은 방금 적은 세 문장에서만도 중요한 명제들이 모두 잘못 쓰이고 있다는 것. 나의 개념이 틀렸다는 것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감정’을 ‘확신’하고, 많은 ‘생각’을 하고. 게다가 나는 내가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비교’ 하면서까지 사랑이라는 것을 손에 쥐려고 했다.
그렇게까지 사랑을 규정하고 이해하려고 했던 것은 불안 때문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나를 둘러싼 인간 관계가 모두 불안하고 두려웠기 때문에 나의 감정을 나누고 또 나누고, 분열시킴으로써 정의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시의 일기는 그런 나의 생각들을 ‘촉수 괴물’로 쓰고 있다. 내 머리와 가슴에 기생하는, 그리고 제어가 불가능해서 제 멋대로 뻗어나가는 촉수말이다. 여러 개의 촉수 중 몇몇은 사랑을, 다른 것들은 미래를, 또 다른 것들은 과거를, 나머지는 일상을 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고인 물이 썩어가듯이 괴로울 수 밖에 없다고 했던가. 나의 괴로움은 두통으로 나타났다. 약에 의존하기 싫은 고집으로 두통약은 먹지 않았고, 날뛰는 나의 감성과 이성의 촉수들은 순간순간 음악으로 다스릴 수 있었다. 퇴근시간도 지난 밤 아홉시경, 광화문으로 향하는 한적한 버스 안에 혼자 앉아서 듣던 음악이 나에게 주었던 위안은 마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절박한 마음으로 나가는 산책. ‘나는 걸어야겠다’라는 일기를 몇 편이나 쓸만큼 산책 또한 나에게 큰 위안이었다. 거리와 나 사이에 아무 경계도 없는 듯한, 눈이 쌓이고 차가운 밤 공기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 지금에야 생각하지만 그것이 바로 현재를 산다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괴로움은 생각이라는 사냥개가 우리를 물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고, 그 생각이라는 놈은 현재도 아니면서 끊임없이 현재인 척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말. 그 말은 내가 심적으로 괴로움을 느낄 때마다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게끔 만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가. 실체도 없는 괴로움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은 아닌가. 결과는 명백했다. 즉각적으로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면 백이면 백, 나는 과거 혹은 미래로 인해 사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미래에 대한 시나리오. 지나간 일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현재에 받는 스트레스. 나는 참 우스운 일을 스스로 반복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왜 음악에 의존하고 여행을 꿈꿔왔을까. 음악을 즐기고, 여행지에서의 새로
운 경험으로 나 자신을 살찌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음악으로 감정을 조율하고, 여행으로 현실을 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새로움으로 가득한 여행지에서는 현재에 충실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제는 부질없이 일시적인 조율이나 도피를 계획하지 말고, 가만히 나 자신을 바라보는데 주의를 기울인다. 바라보면 알아챌 것이고, 생각이라는 사냥개가 나를 물기 전에 감응하고 행동하는 것이 일상으로 익숙해진다면 나와 세상은,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삶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를 깨닫는 것은 요원한 일로만 여겨졌다. 이대로 살다가는 다른 사람의 발자취만 죽어라고 따라가다가 인생 종 치겠구나 하는 조바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타인의 취향에 혹은 타인의 목소리와 행동에 나의 자아를 맞춰가려는 헛된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딱히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아니다.
고통은 심리적인 것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명확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정말이지 가슴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을 육체적으로 명징하게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자아라는 독사에게 물리는 고통은 끊임없는 두통으로 나타났다. 정신과 의사에게 편지를 보내고, “상담이 필요하다”는 무성의한 답장을 받고, 나는 열정을 쏟을 의지로 도피처를 찾아 숨기만을 반복했는지도 모른다.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틈새가 전혀 없었던 그 때의 환경에서 나는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것은 끊임없는 자아와의, 독한 사냥개와의 싸움이었다. 나는 먼저 내가 열정을 쏟았던 순간들을 남아있는 기억들을 뒤지고 뒤져 찾기 시작했다. 무신경하게 써 놓은 글들, 연습장 뒤에 써 놓은 낙서들, 더러는 공들여 쓴 글들. 과거의 조각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나는 언제나 열정의 순간에는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을 기억해냈다. 알았으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의 관찰자가 되어 나의 가슴이 떨리는 순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 때마다 행동에 옮겨야 했다. 절벽 끝에 혼자 서있다고 생각하고, 더러는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잔인한 신경증의 고통을 떠올리면 절박해질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사실은 갈등이 된다. 교수님이 받으셨다던 강렬한 충격, 그리고 몇 년 동안이나 케이의 글을 읽고 강의하셨다던 교수님의 열정에 비해 내가 믿고 있는 열정과 알아채기라는 것은 혹시 가짜가 아닐까 하는 의심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 역시 독사의 의무이므로, 무시하기로 한다. 두려움이 현실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심과 같은 감정도 현실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그림을 그린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한다. 오랫동안 참아만 오시다가 막내아들이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신 어머니의 인생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표현하지 않으면, 공감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병이 나고 아파지는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지금은 잘 알고 있다. 공감의 여지란 전혀 없었던 그 곳에서의 강박증과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순간은 항상 행복하다. 노력? 고통? 그런 부자연스러운 감정은 없다. 열정을 쏟을 때의 나의 일상은 물이 흐르고 눈이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 그러나 항상 명심해야 한다. “개 조심!” “독사 조심!” 끊임없이 나를 “쏠라당” 상태로 만들려는 나의 자아. 대학의 마지막 학기에 케이를 만난 것은 진정 든든한 힘이 되는 일이다. “Right Here, Right Now.” 세계의 공감을 꿈꾼다.
한번이라도 맨발로 거리를 걸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호주 캔버라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할 때 나는 자주 맨발로 걸어다녔다. 내가 유별났던 것이 아니라 호주에서는 더러 맨발로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학생들이 있었다. 그 자유로운 분위기와 해방감에 나도 맨발로 걸었고, 깨달았다. 신발이라는 문명이 우리의 발을 얼마나 약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발에 닿는 땅은 얼마나 폭신폭신하고 잔디는 또 어찌나 부드러운지 말이다. 자연은 사람을 해하지 않는다. 맨발로 걸어다녔을 때 내 발을 아프게 했던 것은 깨진 맥주병이나 플라스틱 조각같은, 인위적인 것들 뿐이었다.
신발을 벗고 걸었을 뿐인데도 나에게 자연이 한 걸음 더 다가온 느낌이었다. 내 몸에서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비워낼 수 있다면 어떨까? 온 몸의 감각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 그 새로운 감각에 의한 쾌감, 그에 따라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나의 이성과 감성. 상상만으로도 유쾌하다. 그 순간의 나는 가장 창의적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곧 나라는 말을 몇 주 동안이나 되뇌어 보았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순간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맨발로 걸었던 잔디밭에서 느껴지던 자연, 사람과 자연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듯 했던 호주의 사막. 그 곳에서 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의 자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날아가고, 나의 피부까지 녹아내려 땅 속으로, 대기 중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말이다. 나는 진정으로, 자연이 되고 싶었다. 자연이 될 수 없다면, 그에 최대한 가까워지고 싶었다. 내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내가 지고 있던 가방과 여행기간 내내 소중하게 들고 다녔던 카메라를 던져버리고, 입고 있는 옷들을 모두 벗어 던지고 싶었다.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을까. 나와 함께 여행하던 동생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재촉했다. 어느새 해는 떨어지고, 다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잔인한 타인들아. 나는 내가 바라는 만큼 홀로 될 수 없었다. 거대한 동시에 한 없이 자애로운 에너지를 나에게 선사하던 자연과 홀로 마주 섰을 때야 비로소 내 자아가 가벼워지고 있는 것을 느꼈는데, 그 순간은 오래일 수 없었다.
한 학기동안의 교환학생 생활과 한달 동안의 또 다른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내가 다시금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과 친구들은 여전히 사랑스러웠지만 나의 자아는 무서운 속도로 현실에 편입하려 했다. 그래서였다, 스스로를 절벽으로 몰아간 것은.
사냥개같은 타인들과 거리를 두고, 바람부는 절벽위에 혼자 서있지만 나의 연약한 자아는 끊임없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한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쇠붙이처럼, 그 힘은 지속적이고 또한 강력하다. 그러나 다시 한번 다짐한다. 경계에 서자고. 그리고 벌거숭이가 되자고 말이다. 온전히 혼자일 때 나는 다시금 알 수 있을 것이다. "I am the world, the world is me"라는 대 명제를.
사랑과 지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전에, 일상에서도 나는 홀로서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케이는 홀로서기라는 표현을 하고 있지만 나도 그와 같은 상태를 목표로 삼은지가 몇 년은 지난 것 같지만 그 길은 그야말로 요원하니, 게다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유혹과 생각들이 ‘쏠라당’ 나를 빠뜨리고자 입맛을 다시고 있으니, 웬만큼 결연한 의지로는 홀로서기 근처에도 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다.
가장 큰 유혹은 역시 사람이다. 지금까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수많은 사람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충분히 가지고 지적으로 나를 유혹하는 사람들. 책을 읽는 것은 그런 사람들과 가장 가까이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며, 동시에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주변에도 그런 식으로 뭔가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는 그들의 유혹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병적인 호기심 때문이다.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친근한 기회를 ‘유혹’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이유는, 그들과의 만남이 언제나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우습지만 술은 그들과의 만남을 더욱 즐겁게 하는 플러스 요인임과 동시에 가장 큰 마이너스 요인이다. 적당한 술은 관계에 윤활제가 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과 영양가 있는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시다 보면 기분이 좋아 취하고 술에 취하고, 한 병만 더 마시자고 몇 번이나 말하다보면 어느새 자제력을 잃고, 담배도 쌓여가고, 다음날 오전을 통째로 날려버리게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마이너스 요인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좋은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이렇게 다음날 아침까지 여파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의 웃는 얼굴에 마음이 끌려, 몇 번이나 이제는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으면서도 행동하지 못했을 때, 다음 날 아침에 나는 다시금 스스로를 잃은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유혹에 빠지는 것은 그렇게도 쉬운 일인지,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저 쏠라당- 나의 의지를 약하게 만드니 그저 멍하게 속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자리를 털고 일어 났을 때, 남아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두려워했을까. 혼자만 깔끔떤다는 그들의 시선이 싫었을까. 그러나 무슨 이유를 대든지, 나는 그저 홀로 서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바로 나이지, 그들의 시선이, 그들의 말들과 그들의 세계가 나의 세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든지, 홀로서기에 익숙해진다면 휩쓸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설프게 남들의 핑계를 대는 일도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성과 사랑은 내가 온전히 홀로 설 수 있게 된 후에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의연하게 홀로 서서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알아챌 수 있게 되었을 그 때에는 어느새 나에게는 지성과 사랑도 반가운 모습으로 나를 찾아와 있지 않을까. 내가 나의 세계를 지성으로 가득차게 만들었을 때, 그리고 원래부터 하나였던 사랑의 모습으로 가득차게 만들었을 때, 비로소 세상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한 길위에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 지난 몇 회의 강의는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그리고 그 불편함은 내용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시선이 너무나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다시 한 번 고백하자. 나의 불편한 마음은 내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자만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교수님께서 ‘너희들은 지금까지 다들 그렇게 살아 온 것이다’ 라고 말씀 하셨을 때 나는 속으로 ‘당신은 지금 나의 상태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울컥하는 심정이 되었다고.
하지만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다시 백지 상태가 되었다. 그의 책은 잔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컴퓨터라면 크리슈나무르티는 나를 포맷시켰다. 애써 저장해놓은 자료들을 사소한 실수로 모두 날려버린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모두 잃는 다는 것이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게다가 그가 날려버린 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사소한 기억이나 관념과 같은 자료들이 아니었다. 바로 내 자신이었다.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는 나를 자꾸만 벼랑 끝으로 내 몰았다. 동시에 내가 걸치고 있는 장신구나 옷 따위를 모두 벗겨 놓았다. 한 발자국만 더 가면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바다인지 땅 속 깊은 곳인지도 알 수 없는 그런 곳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보다 그 순간 느껴지는 수치심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그의 말을 따라 걸어오기 시작한 저 먼 곳에는 아직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어떤 친구는 웃고 있고, 또 다른 친구는 울고 있고, 또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으며 또 무엇인가를 걸치고 있었다. 그들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낭떠러지에 서서 조금 더 주의깊게 그 곳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나도 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려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벌거숭이가 되고 보니, 그것은 모두 설 익은 포장술임을 알았다. 순간 수치심은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그들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도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더 망설이고 있는가.
나의 또 다른 자아는 고민하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과 웃으면서 살고 있는 그 곳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까지 밀려 왔으니 절벽 아래로 뛰어 볼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항상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그 동안의 상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직도 생각은 벌거숭이가 된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뭐 허리가 아프면 눕기도 하고 걷기도 할 것이다. 나의 지성이 나를 어디로 몰고 갈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결심과 노력을 동반하는 것 같지만, 나는 다만 그 경계에 내 자신으로서 머무를 것이다.
아, 말이란 얼마나 부질 없는가. 글이란 얼마나 부질 없는가.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다.
마지막 학기에 “한국의 수필 문학”을 선택한 것은 다분히 전략적이었다. 영어를 전공하면서 주로 영미 희곡이나 시, 산문 등을 공부하다보니 정작 알아야 할 한국의 문학에 대해서는 전혀 체계가 잡혀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일반 기업체 입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당연히 경영이나 경제 과목들을 수강 해야겠지만, 교양 피디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까지 마음 내키는 대로 읽어온 글들과 내 마음과 머리 속을 떠다니는 언어들을 차분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강의 계획서에 강조되어 있는 “교감”과 매주 한 편씩 수필을 써
야 한다는 사실도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나 첫 강의는 생각과는 달랐다. 크리슈나무르티라는 이름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 했지만 생소했다. 지금 행복하냐는 질문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본 옛날 영화처럼 진부했지만 여전히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필기를 할 필요가 없으니 연습장은 모두 집어넣고 내가 하는 말이나 들으라는 교수님 말씀은 나를 홀가분하게 만들었지만 강의 내용은 절대 홀가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방에 집어넣은 연습장을 다시 꺼내서 뭐라도 적어놓고 싶은 마음을 추스르느라 힘이 들었다.
생각을 조금이라도 정리하고 첫 번째 감상문을 써야했기에 거의 일주일이 지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강의의 세세한 부분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업을 듣던 중에 내가 받았던 느낌은 똑똑하게 기억한다. 글쎄, 느낌이라는 말은 왠지 감성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육체적이었다.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화학작용(Chemical Action)이 이런 걸까? 아니, 교수님 말씀으로는 머리를 땅! 하고 맞은 듯한 충격이라는데. 내가 받은 느낌은 그런 것보다는 은근했고, 지속적이었다. 강의가 끝난 다음에도 며칠동안 이어졌으니까.
"The Observer is the Observed" 라는 문장을 본 그 순간이었다. 내 머리 속에 있는 어떤 손이 나의 뇌를 꾸욱- 눌러 쥐는 느낌으로 저릿한 느낌을 받았다. 목 뒷부분에서도 반응이 왔다. 마치 편안하게 누워서 공포영화를 보다가 무서운 장면에 너무 놀라 갑자기 몸을 일으켰을 때 처럼. 소름이 돋았달까. 근육이 저렸달까. 어쨌든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아, 그리고 또 한가지. 하루에 서너대 정도 그저 재미로 피우던 담배를 피울 때마다 힘이 들었다. 나는 자신에 의해서 관찰 당하고 있는 동시에 관찰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담배를 피우는 것은 심리적인 필요에 의해서 인가, 일시적으로 뇌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단지 의지가 약하기 때문인가. 심리적으로나 뇌 근육을 위한 것이라면 굳이 담배가 아니라도 좋지 않은가. 계속해서 맴도는 질문들. "The Observer is the Observed"라는, 주체와 객체가 묘하게 섞인 문장은 계속해서 나 자신을 똑바로 인식하도록 강요하는 것 같았다.
담배 뿐일까.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나는 모든 외부적인 자극에 의한 감정의 변화나 의지를 걷어내고, 가장 솔직한 나 자신의 중심에서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런 과정을 거친 다음에 마시는 커피는 그 어느 때보다 향긋했고, 내가 읽고 있는 책 속에 들어있는 활자들은 내 머리 속에서 다른 어떤 창조적인 모양으로 자유롭게 살아 움직였다. 내가 딛고 살아가는 시간은, 나의 일상은, 이렇게 온전히 나 자신이 주체가 되었을 때 그 사랑스러운 존재감을 명징하게 드러내왔다.
첫댓글 "맨발로 걷고, 알몸으로 절벽 위에 서 있을 때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홀로 서 있는 사람에게 사랑은 하나임을." -- 이게 말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면.. 참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 텐데요..
말로만 끝나지 않을 겁니다.
대학의 학기는 참 짧다. 마지막 학기는 더욱 그렇다. 그 짧은 학기에 작은 이정표를 발견했다. 저기 아름다운 산 하나가 있음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마지막 학기, 이제 2주밖에 안남았습니다. 하하.
내가 사는 곳은 부산이 아니라 마산입니다.
수정했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