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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는 마음이 매이는 순간 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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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허집(鏡虛集) (43) ]
20241111
마흔세 번째 이야기
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
저 같은 농땡이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또는 현재 이 순간 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자주자주 보세요.]
(※) 부처님 방법
[그리고 내 마음에서 뭔가 일어나면 반드시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반응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조견(照見) 하세요.]
[그리고 내 마음의 것들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 수행이란 내 마음을 보는 거랍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
(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
《경허집 본문 내용》
(경허선사가 남기신 한문 원본)
書錦峯堂 八帖屏
萬事無夢中忽然覺悟拈柱杖携瓶鉢深入雲林邃處白鳥有聲泉石琮琤 千尋老松百榮藤蘿等数間茅屋同知己友有時咏煙霞趣有時焚香靜坐更 無塵事相侵一心虛靈萬理照彰便是世間第一等人酌中山仙人酒滿醉了 乾坤森羅一印印之
然後灰頭土面遊戲芳草岸頭一聲笛囉囉哩
青龍三月下幹
湖西歸衲鏡虚書
ㅡ♡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번역하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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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서 금봉당 팔첩병
세상만사가 꿈가운데 아님이 없는 줄을 홀연히 깨닫고 주장자를 잡고 병과 발우를 지참하여 구름과 숲이 깊은 곳에 들어가니 새들은 지저귀고 시냇물소리 시원하다.
천길 노송에 등나무 칡덩굴 어우러졌네.
몇 칸 맛집을 짓고 뜻이 맞는 지기와 때로는 안개 피어오르는 정취를 읊조리고 향 사르고 고요히 좌선도 하니 진세의 번거로움 다시 있을손가.
한 마음 텅 빈 신령스러움에 온갖 이치 비추어 드러나네.
이것이 세간의 제 일등인이라 잔속에는 산중 신선의 술이라 만취하니 건곤삼라가 한 도장에 찍힌 바라.
그런뒤 머리엔 재 뒤집어 쓰고 얼굴엔 흙 묻은대로……………… 녹음방초 언덕위에 유희하니 젓대 한 소리 나나리로다.
청룡 3월 하순
호서로 돌아가는 경허 쓰다.
~~♡~~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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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은 경허 스님께서 금봉당(錦峯堂)이라는 분에게 글(書)을 남기신 내용인데요.
지금 이 글은 경허스님이 사후에 금봉당에게 전해졌을 그런 글이랍니다.
오늘은 (錦峯堂)이라는 분의 자료가 없어서 한참 헷갈렸는데요.
알고 보니까 숭산 스님의 스승이더라고요.^^~
여기서 말하는 ( 무슨 무슨 ~ 堂 ) 이란 뜻은 당호(堂號)를 이르는 말인데요.
당호(堂號)란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랍니다.
그래서 당시에 금봉(錦峯)이라는 당호를 쓰셨던 분이 누군가 싶어서 자료를 찾아보았는데요?
찾아보니까 금봉 최범술 이라는 분이 계셨답니다?
그런데 이분이 보통분이 아니셨는데요?^^
본명은 최범술(崔凡述 1904~1979)이라고 되어 있었고 독립운동가에 국회의원에 승려로 출가하여 법명은 효당이라고 자료에는 나와 있었는데요.
특이한 점은 1912년 8살 때 지금으로 하면 초등학교 1학년짜리 꼬맹이가?
일본인 교사 기타무라의 난폭함에 분개를 하여 아이들을 선동해서 동맹휴학 즉 학교를 가지 말자고 선동해서 아이들이 몽땅 학교에 안 나오니까 퇴학까지 당했다는 점인데요?
어릴 때부터 보통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거기다가 퇴학까지 당하고 어른들을 따라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감옥에 갔는데 15세 이하라고 훈방 처리까지 된 적도 있었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쭉~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후에는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하기도 했었고 출가를 해서 승려로도 생활을 했다는 점인데요.
이 정도면 남다른 근기를 가지고 계셨던 분 아닌가요?^^
이런 분에게 경허스님이 글을 주셨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문제는 경허스님과 금봉과의 나이 차이가 너무 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좀 헷갈렸는데요?
왜냐하면 금봉이 1904년에 태어났고 경허가 1912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장소도 지금 경허 스님은 함경도에 계시는 상태이고 금봉은 경남 사천에서 일본인 교사 기타무라 때문에 아이들을 선동하고 있는 상태이고요?^^
그래서 금봉(錦峯)이라는 당호를 쓰시는 분이 또 있나 싶어서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까 금봉(錦峯) 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더라고요?
불자분들이 잘 알고 있는 숭산 스님의 스승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분의 출생연도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는데요?
그러나 대략 만공 스님 연배와 비슷하지 않을까 추정해 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금봉(錦峯)은 당호가 아니라 법호라는 점인데요?
당호와 법호는 전혀 다른 의미 이거는요.
왜 경허스님은 [書錦峯堂]라고 하면서 법호가 아니라 당호(堂號)를 쓰셨지? 했다는 것인데요?
이 두 분 중에 어느 분이 오늘 글을 받으신 분일까 하고 사유를 해 보니까 다시 금봉(錦峯) 스님이 맞다는 마음이 들었는데요.
왜냐하면 글 내용도 그렇고 아무려면 지금 경허스님이 8살짜리 어린아이를 놓고 술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어려운 선문을 쓰시진 않았을 것 아니겠어요?
그럼 금봉(錦峯)이라는 당호는 뭐지..?..?
그러다가 문득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아.. 그래? 경허스님이 1849년 생이고 만공이 1871년 생이니까 22세 차이면 당시에는 한참 아들 벌이고 [절]도 집이니까 절 안에서도 당시에는 친 아들을 대하듯 당호를 지어 부를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절도 출가자들에게는 집이니까요.
어른인 경허스님을 아버지로 따르는 입장이라면 절 안에서도 충분히 친근감 있게 당호를 지어 부를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오늘 이 글은 금봉(錦峯) 스님을 위해 남겨두신 글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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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늘 내용은 어릴 적부터 절집에서 부르던 당호까지 넣어서 다정하게 [書錦峯堂 八帖屏]라는 글로 첫 운을 떼셨는데요.
그만큼 아끼고 사랑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지요.
지금 [書錦峯堂 八帖屏]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아주 다정하게 아들을 집에서 부르듯..
"금봉아.. 너는 앞으로 팔첩병풍처럼 너의 뜻을 펼치면서 살아가거라.."
라는 뜻이랍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팔첩병(八帖屏)이란 그 당시에는 최고급 팔첩병풍이나 서첩(書帖)을 뜻하는 것으로
"병풍 안에 있는 뜻을 활짝 펼쳐 보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팔병(八屏)이라 해서 여넓쪽자리 크고 작은 병풍(屛風)들이 유행할 때라 뒷글에 팔첩병(八帖屏)이라는 글자를 넣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팔첩병(八帖屏)의 뜻 안에는
"병풍처럼 펼쳐 보이다"
"병풍처럼 글과 그림으로 이야기를 너에게 전 하노라"
또는
"병풍처럼 너의 뜻을 펼쳐 보아라"
하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잘 아시겠지만 예전에는 팔첩병풍이나 서첩이 아주 귀하고 비쌌잖아요.
그리고 어렸을 때 어른들이 병풍 안에 있는 그림이나 글씨들 등을 해석해 주시면서 너희들도 앞으로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면서 귀한 내용이라고 설명해 주셨듯이..
지금 경허스님도 금봉에게 팔첩병풍처럼 귀하게 너의 법을 펼치면서 살아가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지금 경허는 아들 같은 금봉에게 지금 이 글은 너에게 귀한 내용이니 잘 보고 이렇게 수행 정진을 하고 이렇게 살아가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참고 자료 : 팔병(八屏)이란?>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m.cafe.daum.net/nightpearl/o8rA/964?q=%E5%85%AB%E5%B1%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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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서두는 이 정도로 하고 전체 내용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전체 내용을 보니까 나무도 울창하고 날벌레를 쫓는 향도 피우고 새들도 지저귀고 시냇물 소리가 시원하다는 것으로 보아 한여름인 것 같은데요?^^
아무튼 오늘 내용은 이런 뜻이 담겨 있답니다.
하루는 경허 스님이..
[세상만사가 꿈가운데 아님이 없는 줄을 홀연히 깨닫고 주장자를 잡고 병(瓶)과 발우를 지참하여 구름과 숲이 깊은 곳에 들어가니 새들은 지저귀고 시냇물소리 시원하다.]
여기서 말하는 병(瓶)은 주막에서는 쓰는 술이든 [호리병]을 뜻하는 것이고요.
발우는 밥이나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이지만 여기서는 발우 안에 술안주가 들어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쉽게 말해 지금 이 내용은?
경허선사가 홀연히 깨달은 자유로운 마음으로 술과 안주를 가지고 구름과 숲이 가득한 깊은 산골에 들어가서
새소리 시냇물 소리 잘 들리는 시원한 자리에 맛집을 짓고 즉 맛있는 술안주 상을 차려 놓고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게 때로는 안개 피어오르듯 시나 선문을 읊으면서
모기나 날벌레들 때문에 향을 피워 놓고 고요히 좌선을 하니 세상의 모든 번거로움이 다시 어디 있겠는가..
라는 뜻이고요.^^
한마음 텅 빈 신령스러운 마음에 온갖 세상 이치 비추어 드러나니..
(본성을 깨닫게 되면 마음이 정말로 텅 빈답니다.
그리고 그 텅 빈 마음으로 세상을 비추어 볼 수 있지요. (진실)
이것이 세상의 제일이니라.
술잔 속에는 산중 신선의 술이라 만취하니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에 삼라(森羅) 즉 온 세상이 한 도장에 찍힌 그림과 같은 바라.
(마음자리 하나로 세상을 사진 찍듯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뒷머리엔 재 뒤집어쓰고 얼굴엔 흙 묻은 채로 녹음방초 즉 푸르게 우거진 나무와 향기로운 풀 냄새 언덕 위에 한가롭게 유희하니 젓대(피리) 소리 나느니로다..
(여기서 말하는 젓대(피리) 소리는 깨닫게 되면 피리 불듯이 마음이 즐겁다는 뜻이고
신선처럼 한가로의 피리를 불듯이 즐겁게 한 세상을 살다가 간다는 뜻이랍니다.
실제로 깨닫게 되면 매 순간이 즐겁답니다.
그렇다고 막 즐겁다는 것이 아니고 뭐라 그럴까 아주 은은하게 아지랑이처럼 즐거운 마음이 일어난답니다.👍🏻(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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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설명)
오늘 내용의 핵심은 금봉에게..
"그 어디에도 마음이 매이지 말고 정진하면서 살아가라.."
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그리고 이 내용 안에는 경허스님이 금봉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도 되고요.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스승이 제자에게 당부하는 말들은 열심히 수행 정진을 해서 깨달음을 얻어 자유를 얻으라 하는 식의 내용들이 많은데요.
그런데 지금 이 내용은 그런 내용이 아니라 후 공부에 해당하는 당부의 내용이라 그렇습니다.
금봉 너도 나처럼 이렇게 마음이 매이지 말고 살아가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깨닫게 되면 그야말로 본성의 마음자리는 그 어떠한 것도 매여있지 않은 말 그대로 청정하고 자유로운 마음 상태로 바뀌게 되는데요.
지금 경허스님은 제자 금봉에게 그 어디에도 마음이 매이지 말고 이러한 자유롭고 청정한 마음 상태를 잘 유지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깨달았다고 해서 아직은 완전한 열반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자칫 잘못 세상과 휩쓸리게 되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지금 경허 스님도 제자인 금봉에게 이런 글을 남기시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깨달은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 마음이 한곳에 매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번, 두 번 다른 곳에 마음이 매여 버릇 하면 여지없이 도로 마음이 중생의 마음으로 무너져 내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 엄청 주의를 하고 있는 것이고요.
특히 잘못된 인연들이나 일들을 경계 또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업들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지금 제 경우도 공부를 하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철저히 사람들을 멀리하고 가려서 만나고 있는 것이고요.
그런다고 가족을 버린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깨달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다른 방법이 없답니다.
안 그러고 세상일에 다시 휩쓸려 들어가면 말짱 꽝이니까요.
그렇다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산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아가되 예전처럼 그 속으로 마음이 휩쓸려 들어가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깨달은 출가자들은 천도재 같은 곳에 마음이 매이거나, 돈이나 재물에 마음이 매이거나, 보살들에게 마음이 매이거나 아무튼 그 어떠한 곳에도 마음이 매이는 순간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끝장 날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 같은 재가자들도 아무리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랍니다.
세상살이에 마음이 매이거나, 처자식에게 마음이 매이고, 이성에게 마음이 매이거나, 아무튼 그 어떠한 곳에도 마음이 매이는 순간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그 순간 끝장 날수 있다는 것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지위가 아무리 높더라도 아무리 큰 스님 대접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어차피 중생의 마음을 못 벗어난 상태이기 때문에
천도재다 뭐다 해서 재가자들에게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니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깨달은 사람들은 절대로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끌려다녀서는 안 된답니다.
본인의 마음이 이리 끌려다니는지? 저리 끌려다니는지? 도 모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고요.
왜냐하면 부처님 종교는 알아차림의 종교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내용은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던 내용이기도 하고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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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제가 최근에 본 동영상 내용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동영상을 보면서 현재 한국불교의 출가자들이 얼마나 멍청하고 불쌍하고 가련하고 무지하고 참으로 안타깝고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는데요.
왜냐하면 일반 가정으로 비유하면?
어느 큰 귀족 집(사찰)을 한 무리의 도적들이 집안으로 쳐들어와서..
노략질하고 자기 어머니와 누이들을 강간하고 식구들을 성 밖으로 내쫓아 천민들로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집(사찰)까지 불살라 없애버리고 아버지(부처님)까지 살해한..
그야말로 한 집안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박살을 낸 이런 대 철천지원수들이 뿌려놓은 그 씨앗들(제사나 천도재)을 그의 자식들(현재 출가자들)이..
아직도 그 원수들이 뿌려놓은 씨앗들이 좋다고 섬기고 있고..?
그 더러운 씨앗으로 좋다고 입에 풀칠들을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떻게 아주 멍청하고 불쌍하고 가련하고 무지하고 참으로 안타깝고 안됐다는 마음이 안 들 수가 있겠느냐?
이것인데요.
실제로 그런지 안 그런지 여러분들도 한번 보시고 이 동영상을 모든 출가자들에게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큰 스님들에겐 어떤 김태현이라고 하는 사람이 현재 한국 불교의 현실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이런 내용을 보내왔는데 큰 스님은 이 동영상 내용을 어떻게 보시느냐고 하면서 꼭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진심)
제목 : [13회] 조선 사람들은 언제부터 제사를 지냈나 /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43c0h_sBaQI?si=AXkfK1H8vPFR2Wfb
ㅡ♡
(2)
그리고 경허 스님이 아주 현명하고 지혜롭게 파계를 하고 절을 떠난 것은 경허 선사 자신을 위해서는 신의 한 수였다고 저는 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무당 승려들이 들끓었기 때문에 그런 절에서 깨달은 승려가 절 안에서 그런 무당들과 같이 있는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지금도 깨달은 스님들이 발붙일 자리가 없는데 그 당시에는 훨씬 더 했지 않았겠어요?
경허는 입이 하나이고 상대의 입들은 천 개인데 어떻게 그런 곳에서 후 공부를 할 수가 있었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지금도 절 안에서 깨달은 스님 입장에서는 갈 곳이 없는데요.
깨달았다고 누가 챙겨줘야지요?
괜히 옳은 소리 했다가 밉보이면 밥도 못 얻어먹을 판인데요.
저야 뭐 출가자가 아니다 보니 이런 소리를 해도 욕 한번 먹으면 그만이지만 출가자들은 어디 그런가요?
평생 절에서만 생활하던 사람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 여간 용기가 아니면 어려운 것이고요.
그런 상태에서 그것도 가장 힘이 들다는 조선 말기에 절을 박차고 세상 밖으로 나온 경허 선사를 저는 개인적으로 👍🏻을 하고 있는데요.
참으로 한국 불교의 장례가 어둡기만 한 현실에서 젊은 출가자들이 앞으로 잘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인데..???
절 안에서 아무리 깨달으면 뭐 하겠습니까?
절을 떠나서 후 공부를 하든 아니면 어른들과 적당히 타협을 해서 적당히 천도재도 동참하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면서 후 공부를 하든 해야 하는데요?
에휴..😮💨
아무튼 예전에 보내 드렸던 내용인데요.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다시 부록으로 올려드려 봅니다.
제목 : 경허가 파계를 하고 절을 떠난 이유 ②
https://m.cafe.daum.net/119sh/XASd/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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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들 새벽 공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꼭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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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꼭 성불을 기원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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