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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있어서, 그 장소는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었다.
좌절과 망집, 선망과 질투.
어두운 감정이 스며든 그곳은, 저주의 일실이라고 말해도 좋다.
본래 자신의 것일 터인데,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서 쓰이지 않았던 방.
「치————역겹단말야, 여기」
혀를 차는 것은, 그야말로 그의 망상이다.
어떻게 돼도 상관없는 타인 다른 집의 아이가 여기서 몇 년을 보내고, 오랜 마토의 핏줄을 위협했다.
그가 알 수 있는 과거는 그것뿐이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조부는 여기서 일어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쳐 줬다.
아버지는 자신을 선택하지 않고 마토 가를 끊으려고 생각했지만, 조부는 마토 가의 재흥을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부친이었던 인간에게 아무런 감정도 품고 있지 않다.
아버지는 존재와 낙제를.
조부는 우월과 권리를 가르쳐줬다.
자, 그렇게 되면 어머니는 무엇을 주었는가, 하고 생각하고, 신지는 웃었다.
애초에 마토 가에 여자 따위 필요 없다.
모친은 어딘가의 보균자였다고 하지만, 출산한 뒤엔 쓸모가 없어진 거겠지.
내기해도 좋지만, 이 방을 찾으면 어머니였던 것 정도는 있다.
그걸 찾을 생각 따위 그에게는 없다.
애초에, 뒤떨어진 자신을 낳은 태반 따위 보고 싶지도 않다.
지하실은 부패로 가득 차 있다.
어둠 속, 더욱 어두운 부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들이 지면을 덮고 있다.
이미 빨 양분 따위 없을 텐데, 벌레는 질리지도 않고 이 지하수련장에 소굴을 이루고 있다.
……아니.
여기는 원래부터 사람을 기르는 곳이 아니라 벌레를 기르는 곳.
기어서 다가오는 어둠에 보이는 것은, 검은 날개를 가진 벌레무리다.
벽에 달라붙은 그림자조차, 번들번들 빛나는 검은 끈적한 벌레가 틀림없다.
————그 속에.
이 최하층에는 어울리지 않는, 황금의 빛을 내뿜는 남자가 있었다.
「뭐야, 아쳐, 여기에 있었냐」
「————」
황금의 남자———아쳐는 내려온 주인인물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저 깊은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들어봐, 낭보라구. 코토미네 녀석, 우리들의 행동에는 눈을 감겠대. ———크, 장래성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쓸만하잖아 그 녀석! 요컨대 말야, 우리들이 뭘 해도 책망이 없다는 거잖아, 그거!」
즐거운 듯이 이야기하면서, 그는 아쳐에게로 걸어간다.
「——————————」
그 때서야, 간신히 아쳐는 주인을 알아챘다.
붉은 눈동자가 대수롭지 않게 향해진다.
「윽————아, 아니, 별로 불평을 하러 온 게 아냐. 네가 어디서 뭘 하고 있던지 상관없지. 서번트의 자유의사 정도는 존중해. 나는 다른 녀석들이랑 달라서 마음이 넓으니까 말야」
붉은 눈동자에 기죽으면서, 그래도 신지는 아쳐에게로 다가간다.
아쳐가 기분 나쁜 존재라고 해도,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서번트 패밀리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아쳐에 대해 항상 거만한 태도를 유지한다.
말로는 관대하지만, 어디까지나 강한 것은 자신이라고 과시하듯이.
「———그런가. 코토미네는, 꽤나 너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같군」
「아아. 확실히는 모르지만 할아버지한테는 빚이 있대. 정체를 알 수 없는 3류 마술사가 남는 것보다, 나 같은 역사 있는 핏줄이 승리해야 한다던가 했었지.
————하, 그런 건 당연하잖아. 뭘 새삼스럽게 그러나 하는 생각은 들지만, 뭐 사람을 보는 눈만은 있지. 일단 신세지기도 했고, 성배를 손에 넣으면 한 번 답례라도 해 줄까 하고 생각 중」
유쾌한 듯 웃음을 참는 소리가 울린다.
「————그럼 시작할까, 아쳐. 이제 인목을 신경 쓸 필요도 없어, 잽싸게 막 죽여대서 말야, 팍팍 혼을 먹고 강해지라구.
……그러고 나면 다음은 그 녀석들이다. 눈에 거슬리는 세이버를 부수고, 에미야한테 답례를 하러 가야지」
자아, 하고 아쳐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그 손을, 무언가 불쾌한 것이 닿았다, 하는 눈으로 아쳐는 관찰한다.
「뭐야? 자, 가자고 하잖아, 아쳐.
어디의 영웅이든, 서번트라는 건 마스터의 명령에는 절대복종이잖아?」
세이버를 이기고, 친구를 웅크리고 기게 만드는 광경을 그리는 것인지.
그는 여전히 기분 좋은 상태로 아쳐에게 명한다.
하지만 황금의 청년은 꿈쩍도 하지 않고,
「———신지. 너는 성배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
처음으로, 주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뭐————에?」
「성배가 탐난다면 다른 마스터 따위 내버려 둬라. 녀석들은 어차피 제물에 지나지 않아. 진정으로 성배를 손에 넣으려고 한다면, 먼저 확보해 둬야 할 것이 있다」
「먼저 확보해 둬야 할 것……?」
그———마토 신지는 머뭇머뭇 자신의 서번트를 바라본다.
그 발은 엉겁결에 뒤로 빠지고, 어깨에 댔던 손은, 어느 새 떨어져 있었다.
「우선은 그걸 손에 넣을까. 이 몸은 성배를 손에 넣기 위해서 너에게 힘을 빌려주고 있지. 우리들에게 있어서 공통의 목적은 성배뿐이니까 말야.
뭐, 네 마음은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복수는 기분이 좋지. 쾌락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증거다. 해야 할 일을 끝내면, 네 놀이에도 동참해 주지」
뭐가 즐거운 건지, 아쳐의 입가가 밀려 올라간다.
……거기에 흉악한 것을 느끼고, 신지는 새삼스럽게, 이 서번트의 정체에 불안을 느꼈다.
제8의 서번트.
있을 리가 없는 영령.
———저번 성배전쟁부터 계속 남아있다고 하는, 최강의 영웅왕————
「……그러고 보면, 묻지 않았었지」
그래도 우위를 지키려고, 신지는 말을 건다.
「뭐지. 물으면 대답하지, 마스터」
「네 소망. 성배를 손에 넣으면 말야,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 아쳐」
그건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한 질문이었다.
반쯤 불로불사가 되어, 이 세상의 모든 재보를 가진 영령.
그 남자가 이제 와서 무엇을 원한다고 하는 건가.
「————뭐야. 그런 것도 몰랐나」
의외인 듯이 아쳐는 말한다.
그 얼굴은, 사소한 행복을 만난 것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이 몸은 호화로는 것을 용납하지.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 같은 건 가장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쓸데없는 것에게 줄 의의 따위 없지」
「……쓸데없는, 것……?」
「옛날 이야기지만 말이지. 10명의 노예를 골라서, 그 중에서 “없어도 좋은” 것을 죽이려고 한 적이 있지. 어떻게 됐을 거라고 생각하나, 신지?」
「하아? 전부 노예잖아. 그럼 전원 죽인 거 아니냐」
「아니아니. 그게 말이지,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 아무리 천한 것이라고 해도 쓸모 없는 것 따위 없었던 거야, 과거의 세계에는」
빈정거리듯이 어깨를 움츠리고, 아쳐는 한 발 앞으로 나왔다.
……한층 깊은 어둠.
어두운 그림자에 덮인 바닥을 향해 발을 든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여유가 넘치고 있다. 10명은커녕 수천이나 되는 인간을 골라봐야, 죽이지 못하는 인간 따위 나오지 않겠지.
———정말, 무섭게도 인간에게 상냥한 세계가 됐다는 거지」
「? 의미를 모르겠는데. 결국 뭘 바라는 거야, 아쳐. 너도 바라는 게 있으니까 성배를 손에 넣으려고 하잖아. 그렇다면————」
아쳐는 대답하지 않는다.
황금의 청년은 주인을 돌아보지도 않고,
「간단한 거다. 많다고 하는 건, 그것만으로 기분이 나빠」
든 발을, 깊은 어둠에 내리 밟았다.
……철퍽, 하는 소리.
짓밟힌 어두운 바닥에는 엄청난 벌레의 시체와, 더욱 엄청나게 모여드는, 유상무상의 무리가 있었다.
「—————아침, 이다」
천천히 눈꺼풀을 연다.
영원히 계속되는가 생각됐던 밤도, 정신을 차리니 끝나 있었다.
「…………다행이다. 몸의 통증, 없어져 있네」
아픔에 끝까지 버텨낼 수 없었던 건가, 그렇지 않으면 모르는 사이에 아프지 않게 돼 있었던 건가.
어쨌든 몸에 아픔은 없고, 졸리고 나른하다, 라는 것도 아니다.
3시간 정도 잤는지, 머리는 비교적 명확해져 있다.
「좋아. 그럼 아침밥 만들어 볼까」
땀으로 습해진 이불에서 일어선다.
……그러자.
막 일어서려고 하는 참에, 왼발이 주륵 하고 미끄러졌다.
「어라?」
이상하네, 하고 왼쪽 발을 만져 본다.
이상은 없다.
아픔도 없거니와 출혈도 없고, 무엇보다————지금 왼발을 만지고 있다, 라는 실감도 없다.
「…………음」
감각이 없는 건 왼발만이 아니라 왼손도 그랬다.
어쩌면, 하고 왼쪽 가슴을 꼬집어보니, 이게 또 아픔도 감촉도 없다.
「…………」
아픔은 가시긴 했지만, 아직 몸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라는 걸까.
좌반신이 통째로 감각이 없고, 자신의 몸이라고 하는 실감도 없다. 에에, 이것과 비슷한 경험은 빈번히 있는데—————
「광에서 잘못 잤을 때지. 팔을 아래로 깔아버려서, 일어나니까 피가 안 통했었지」
그래그래, 그거그거.
일시적으로 피가 통하지 않게 돼서 감각이 마비돼 버리는 그것과 비슷하다.
뭐, 일단 제대로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반응이 둔하다고 할까, 손발을 레버로 움직이는 것 같은 답답함이 있지만, 조심하면 실생활에 지장은 없을 것이다.
일단, 오늘 아침은 식칼을 드는 건 자중하고, 간단하게 빵으로 했다.
쓰는 팔인 오른손은 무사했기에, 프라이팬은 그럭저럭 OK.
베이컨과 달걀을 굽고, 인스턴트 클램 차우더를 3인분 준비해서, 그럭저럭 식탁을 채색해 본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둘이서 인사를 하고, 옅은 갈색 토스트를 씹는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세이버는 끄덕끄덕 끄덕이면서 토스트나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응.
밥그릇과 젓가락을 든 세이버도 운치가 있지만, 역시 그녀에게는 양식이 어울린다.
「—————————」
기본적으로, 세이버는 조용하다.
말수가 적다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듯한 구석이 있다.
특히 식사 시에는 이런 태도.
나도 식사 시에는 조용한 편이 편하기에, 이런 아침 식사는 이상적이기는 하다.
「……어라?」
거기서, 어째서 오늘 아침이 조용한 건지 간신히 알아챘다.
요컨대, 오늘 아침은
「야, 안녕—! ……어, 어라? 뭐야, 오늘 아침은 프랑스?」
후지 누나가 우리 집에서 자지 않았었다.
「그래. 오늘 아침은 프랑스는 카페 — 마를리 풍으로 해 봤습니다. 해 봤기에, 입 다물고 먹어」
자, 하고 후지 누나의 머그컵을 넘겨준다.
「음? 그런 거 치고는 어딘지 모르게 인스턴트의 냄새가 나, 시로?」
「기분 탓이야. 막 일어나서 냄새가 안 맡아지는 거겠지」
「그런가. 듣고 보면 그럴지도. 아, 세이버쨩도 안녕. 어제는 못 돌아와서 미안」
꿀꺽, 하고 뜨거운 클램 차우더를 스포츠 음료와도 같이 원샷하는 후지 누나.
이 사람의 식도에는, 분명 특수한 코팅이 돼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안녕하세요, 타이가. 어젯밤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응? 응, 조금 일……이 아닌가. 단지 문병하러 돌아다녔을 뿐인데 말야. 그것도 어제로 끝났으니까, 오늘부터는 또 느긋하게 있을 수 있소이다」
말하면서, 토스트를 손에 들고 마가린을 듬뿍 바른다.
어떻든 상관없는 일이지만, 왜인지 후지 누나는 버터를 쓰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겠지만, 속수무책인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아서 꺼리고 있는 것이다.
「……. 있잖아, 후지 누나, 입원한 녀석 중에 중상인 건 몇 명 정도 있어?」
「중상인 애는 없어. 지금은 병원에서 상황을 보고 있을 뿐이고, 다음 주가 되면 다들 건강하게 등교할 수 있대.
그러니까 괜찮아, 시로. 이번 사고는 신경 쓰지 말고, 마음 편히 있어도 괜찮다니까」
아삭, 하고 소리를 내며 토스트를 씹는 후지 누나.
그 동작은 너무나도 불안이 없어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 든든한 기분이 됐다.
「—————그래. 그건 다행이네」
「그래그래, 세상은 평화 그 자체라니까. 나도 오늘 저녁을 기대하고 있다구」
평온한 그 웃는 얼굴.
……응. 이럴 때, 이러니저러니 해도 후지 누나는 후지 누나라고 깨닫게 돼 버린다.
「그럼 갔다 올게. 지금까지랑 마찬가지로 집 보는 거 부탁해, 세이버」
「네, 그건 좋지만……시로, 부엌에 식사를 만들어놓은 게 없는 것 같았는데, 오늘은 점심 굶는 건가요……?」
「? 아, 아니,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빨리 돌아올 수 있어. 조금 늦어지겠지만 점심 때에는 돌아올 테니까, 점심은 내가 만들게」
「—————그런가요. 시로, 그런 건 똑똑히 말해주지 않으면 곤란해요. 아무래도 오늘 아침 시로는 긴장이 풀려있는 것 같습니다. 반응도 둔하고,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에? 아니, 딱히 없는데. 어제오늘 일이니 몸이 아직 무겁지만, 이런 건 금방 원래대로 돌아와」
좌반신에는 아직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통증은 없고 제대로 움직이니까 문제는 없다.
이런 건, 일일이 세이버에게 보고해서 걱정시킬 일도 아니다.
「뭐, 확실히 잘못했어. 식사는 세이버의 유일한 취미지. 사죄의 의미도 담아서 점심은 호화롭게 할 테니까, 그걸로 쌤쌤으로 해 줘」
그럼, 하고 손을 들고 현관에 손을 댄다.
「윽. 어쩐지 지금 그 말은 납득할 수 없어요. 저는 그저, 식사를 거르면 유사시에 힘을 낼 수 없다고—————」
「됐어 됐어. 그럼 집 보는 거 부탁해, 세이버!」
세이버의항의하는 목소리에 등을 돌리고 현관을 뒤로 했다.
「아————뭐야, 생각보다 지치는데」
감각이 없는 왼발을 만진다.
집에 있을 때는 그렇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걷기 시작하자 기분이 나빠졌다.
아무리 행동에 지장이 없다고는 해도, 감각이 없는 몸을 끌면서 걷는다, 라는 건 정신적으로 힘든 것 같다.
「……아니, 이 정도는 참아야지. 이 정도, 둘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니까」
회복했다고는 해도, 세이버는 목을 찢기고 벽에 내동댕이쳐졌다.
토오사카는 그 해머 같은 쿠즈키의 일격을 가슴에 맞고 콜록대고 있었다.
그 둘에 비하면, 실제로 상처를 입지 않는 나 같은 건 귀여울 정도다.
「———————자」
저린 왼쪽 발을 내디디며, 비탈길을 내려간다.
……가벼운 구토감.
유령이 된 듯한 분명치 않은 발걸음인 채, 여느 때의 통학로에 올랐다.
……아.
정신을 차리니 방과 후가 돼 있었다.
몸이 아직 이상하기 때문인지, 시간 감각이 없어져 있다.
오전 중의 수업 내용 따위 전혀 머리에 안 들어 있고,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도 애매하다.
「————안 좋은 걸까, 역시」
좌반신의 상태는 변함없다.
아무리 감각이 없다고는 해도, 이렇게 오랜 시간 마비된 채이면 우울해진다.
「어쩐지, 느낌도 없는 주제에 무거워진 것 같기도 하고」
……구역질도 가라앉지 않는데다, 쿠즈키도 당연히 학교에는 오지 않았으니.
「————돌아가자. 세이버도 배 고파하고 있을 테고」
좋아, 하고 가방을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언가 잊고 있는 듯 하지만, 집에 돌아가서 쉬면 생각해내겠지.
「—————아」
감각이 없는 왼발로 비탈길을 다 올라온 참에, 잊은 걸 생각해 냈다.
「그러고 보니, 토오사카와 이야기를 하는 걸 잊고 있었네」
몸의 이상 때문에 힘에 겨웠다고 하지만, 머리가 머엉해져 있어서 깜박하고 있었다.
뭐, 저쪽에서 안 왔으니까 큰 움직임은 없었겠지.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도 있으니, 이쪽 컨디션이 돌아오고 나서 연락을 하면 될까.
「다녀왔어—」
다다미 방에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부엌으로 직행한다.
사 온 음식 재료를 냉장고에 넣고, 손을 씻소, 에이프런을 장착한다.
저녁은 대구 전골로 할 거니까, 점심은 고기로 하자.
닭고기 데리야키를 메인으로 한 반찬을 궁리하면서, 덜그럭덜그럭 준비를 한다.
「시로, 돌아온 건가요」
소리를 들었는지, 세이버는 툇마루 쪽에서 왔다.
「응, 늦어져서 미안. 금방 밥 먹을 테니까 쉬고 있어 줘. 세이버도 배 고파—————」
……이런.
세이버에게 정신이 팔려서, 손에 든 그릇을 떨어뜨려버렸다.
「시로. 식기가 깨졌는데요」
「응. 그릇 깨다니 처음이야」
자기 자신도 놀라고 있었기에, 그런 얼빠진 맞장구를 쳐 버렸다.
「미안. 금방 치울 테니까, 세이버는 신경 쓰지 말고 앉아 있어도 돼」
읏차, 하고 깨진 그릇을 주워 든다.
「—————어라」
주워 든 파편을 다시 떨어뜨린다.
「하아. 지쳐 있는 것 같군요, 시로는.
됐어요, 치우는 건 제가 할 테니까. 시로는 조리에 전념해 주세요」
왼손으로 줏으려고 한 게 실수였나.
……뭐, 좋은 교훈이 됐다.
왼손은 아직 감각이 어긋나 있으니, 식칼을 쓸 때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자.
「시로.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단순한 요리를 부탁해요. 마음을 쏟아주는 건 기쁘지만, 요리에 당신의 피가 섞여 있다, 라는 건 곤란합니다」
아니, 그건 나도 곤란해.
그런 건 부엌을 맡고 있는 몸으로 실격이다.
「라져. 힘을 쏟는 건 저녁밥으로 하고, 점심은 간단한 걸로 끝낼게. 일단 메인은 그대로, 예정하고 있었던 호박이랑 무는 자중할 건데, 괜찮을까」
닭고기 200g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주의 깊게 포크를 겨눈다.
아침에 그렇게 말한 체면이 있으니, 하다못해 메인디쉬만은 적당히 만들 수는 없다.
「네. 기대하고 있어요, 시로」
이쪽의 패기가 전해졌는지, 세이버는 그런 말로 대답해 온다.
「—————————」
갑자기 의욕이 솟아났다.
우선은 포크로 구멍을 뚫고 밑준비를—————
「……딩동?」
「시로, 손님이 온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군. 잠깐 나갔다 올게」
「네, 지금 나가요—————!」
살짝 뛰면서 현관으로 향한다.
이 시간, 누군가가 찾아오다니 드문 일이다.
후지 누나는 초인종 따위 울리지 않고, 무엇보다 스페어 키를 가지고 있다.
우리 집은 원래부터 손님은 적고, 주위에 집이 없으니까 이웃과의 교류도 적다.
「……누굴까, 대체」
뭐어, 키리츠구의 결계가 경고음을 내지 않는다, 라는 시점에서 적의를 가진 인간이 아니고, 아마 후지 누나네 젊은 조직원이겠지.
「네, 누구시죠」
현관을 연다.
그 순간,
딱 사고가 정지했다.
「—————————————」
「—————————————」
서로 아무 말 없이 바라본다.
……아니, 이쪽은 그저 멍해져 있을 뿐이고, 토오사카 쪽이 신경이 곤두서 있을 뿐이지만.
「토, 토오사카—————어째서?」
정지한 머리로, 당연한 의문을 말한다.
「정시연락, 에미야 군이 빼먹었으니까」
그걸 간결하게 대답해오는 토오사카.
「저, 정신연락을 빼먹었다니————그거야 분명히 토오사카와 만나는 걸 잊고 있었지만. ……그, 애초에 그런 규칙, 있었던가?」
「—————————————」
토오사카는 아무 말 없이 노려본다.
……안 좋다.
혼날 일을 한 기억은 없지만, 굉장히 나쁜 짓을 한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미안. 잊고 있었던 건 사과할게. 협력자로서, 정시연락은 당연한 의무였어」
기세에 눌려 그만 사과한다.
그걸로 마음이 풀렸는지,
「————그래.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니까, 서로의 확인은 당연하잖아」
토오사카는 불만이 가셔서, 그런 말을 했다.
「—————————」
후, 하고 한숨 돌린다.
토오사카가 우리 집 현관에 있는 것만으로 놀라는데, 현관 앞에서 혼나서야 이미 이차원상태다.
이런 심장에 나쁜 상황은, 빨리 타파하는 것이 제일이다.
「————이야기는 알았어. 연락은 금방 할 테니까, 토오사카도 돌아가 줘도 돼. 여기까지 일부러 오게 해서 미안했어」
……어이.
어째서 거기서 그런 얼굴 하는 거냐, 토오사카.
「……토오사카? 용건은 알아들었으니까, 일단 돌아가서 다리 아래 공원에서 만나는 거 아냐?」
싫은 예감이 들기도 했고, 주저주저하며 물어본다.
……그게 결정타였는지.
이쪽 약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간파하는 게 자신 있는 듯한 토오사카는,
「아니. 좋은 기회니까 오늘은 여기서 회의할게.
설마, 일부러 여기까지 온 친구를 쫓아서 돌려보내거나 하지 않겠지, 에미야 군은」
악마 같이 미소 지으며, 악마 같은 말을 했다.
「뭐————여기서 회의를 한다니, 우리 집에 들어온다는 거냐, 너……!?」
「뭐야, 너도 우리 집에 들어왔잖아. 거기에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는 거 아냐?」
「아」
그랬다.
처음 세이버와 만났던 그날 밤, 쓰러진 내 치료를 해 준 건 토오사카였다.
하지만 그 때는 막 마스터가 된 참이라서 혼란돼 있었고, 토오사카가 우리 집에 있다, 라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 못했을 뿐이다.
아무리 협력관계라고 해도, 토오사카는 토오사카다. 학교의 아이돌이고 같은 학년인 여자애다. 그런 애가 우리 집에 들어온다고 하는 건 어쩐지 터무니 없는 상황이 아닌가 아니 그런데 어째서 복도에 들어가 있는 거냐 거기————잇!
「그럼, 실례합니다—. 이야기를 할 거니까 거실이면 되지, 에미야 군?」
「기, 기기기기기기다리라니까, 바보! 괜찮냐 너, 토오사칸데 우리 집에 들어오거나 하면 큰일이야!」
「괜찮아, 괜찮아. 아, 그리고 점심 안 먹었으니까 잘 부탁해—」
척척 들어오는 침략자 곧 토오사카 린.
「우와, 기다리라니까……! 이, 생각 없는 것도 정도껏 해라—!」
큰 목소리로 항의하지만 적의 모습에 전혀 이상 없음.
곤혹해 하는 나를 남기고, 침략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실로 이동해 갔다.
……그래서.
애매한 상황인 채 토오사카랑 세이버랑 나랑 점심을 먹은 뒤, 이후의 방침을 이야기했다.
의제는 물론 캐스터에 대해서.
류도사에 진을 친 그 녀석을 어떻게 쓰러뜨릴까, 4시간 가까이 토론해 봤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하아. 결국 정면에서의 실력행사 밖에 없다는 거네. 세이버의 이야기가 정말이라면, 서번트는 정문으로밖에 못 들어간다고 하고」
「그렇군요. 그 산에는 영체에 대해서 강력한 결계가 쳐져 있으니까, 저는 정문에서 돌입하는 것 외에 방법은 없어요. ……클래스역할적으로 단독행동이 가능한 아쳐라면, 다소의 무리는 통하겠지만」
「그래서, 무리해서 완전히 피폐해진 몸으로 경내에 들어가면 캐스터가 매복하고 있다는 거지. 그런 건 좋은 과녁이잖아」
「……뭐 그렇지. 과녁을 쏘는 그 녀석이 과녁이 돼 버려서야 별 수 없지. 뭐, 어새신 만이라면 세이버와 아쳐의 콤비로 쓰러뜨릴 수 있겠지만, 경내에 들어간 뒤, 캐스터를 어떻게 몰아넣는가도 문젠가.
에미야 군의 이야기로는 터무니 없는 마력 저장량이라고 하고, 어설프게 몰아 붙였다간 류도사째로 길동무가 될지도 몰라」
「확실히. 캐스터는 깨끗하게 죽음을 맞이할 성질이 아닌 것 같았고. 자신이 멸해진다면, 우리들과 함께 폭산(爆散)할 지도 모르죠. 물론, 그렇게 되면 류도사도 사라지겠지만」
「세이버, 태연하게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캐스터 녀석, 궁지에 몰리면 자폭한다는 거야?」
「하겠지, 그거야」
「하겠죠, 아마도」
「……………………」
둘의 호흡은 딱 맞는다.
돌이켜 보면, 세이버와 토오사카는 처음부터 의견이 맞고 있었다고 할까, 전투에 있어서 서로 인정하고 있는 구석이 있다.
그 둘이 다 안 된다고 하니까, 류도사 공략은 상당히 곤란하겠지.
「아. 뭐야, 벌써 이런 시간이구나」
거실에 울리는 시계 소리.
문득 정신을 차리자 저녁 6시 좀 전, 밖은 완전히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아. 일단, 이야기는 여기까지군. 슬슬 저녁밥 준비를 해야지」
읏샤, 하고 일어선다.
오늘밤은 발라낸 대구 살 전골이니, 조리에 그렇게 시간은 걸리지 않는다.
지금부터 할 일이라고 하면 밥을 짓고, 전골에 맞는 일품요리를 만드는 것뿐인데—————
「뭐야, 에미야 군. 사람 얼굴 뚫어지게 쳐다보고」
「—————————」
……아니, 그러니까.
어째서 그렇게, 이제부터 우리 집은 저녁이라는데 편안하게 붙어있는 걸까, 이 녀석은.
「거기에 아까부터 계속 떨어져 있고. 거기가 에미야 군 자리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대화를 하는 거니까 더 가까이에 있지 않으면 불편하잖아? 어째서 그런 데에 있는 거야, 너는」
토오사카는 테이블에 당당하게 진을 친 채로, 구석에 방석을 놓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토오사카와 거리를 두고 있는 이유 따위, 그런 거 하나 밖에 없는데도.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내 자리는 네가 진 친 데야! 거길 토오사카가 새치기하니까 이렇게 됐잖아」
으랴—, 하고 있는 힘껏 항의를 한다.
「하하앙. 그래, 밖에선 마스터끼리라서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자기 집 안이 되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거구나」
「자, 잘못이냐, 바보! 남자니까, 이런 건 평범한 반응이야……!」
같은 학년 여학생, 거기다가 상대가 토오사카니까 긴장하지 않는 쪽이 이상하다.
그래도 서로 마스터니까, 하고 필사적으로 타일러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작전회의를 하고 있었던 거다.
한심한 일이지만 시종 긴장하고 있었고, 차를 몇 잔 마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아? 세이버도 여자애고, 들은 이야기론 후지무라 선생님도 사쿠라도 여기에 오잖아? 그럼 나도 비슷하잖아」
「………………」
비슷하지 않앗.
세이버와 토오사카는 다르고, 후지 누나와 토오사카는 다르고, 사쿠라와 토오사카는 다르다.
애초에, 세이버와 그럭저럭 지낼 수 있게 된 건 같이 싸우는 동료이기 때문이다.
「……흥, 됐으니까 이제 돌아가라. 우리 집은 이제부터 저녁밥이야, 토오사카도 집에서 아쳐가 기다리고 있잖아」
「어머. 결론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저녁밥을 대접 받은 뒤에, 이후의 방침을 정하는 거 아냐?」
「—————————」
이야, 정말로 현기증이 났다.
「큭……그건, 이미 결정된 사항인 거냐, 토오사카」
「아냐? 싫으면 별로 상관없지만. 그럼 에미야 군으은, 캐스터에 관해서는 당분간 방치해도 괜찮구나」
「아—————」
목까지 다 올라온 불만을 삼킨다.
「시로. 린의 말은 올바른 게 아닌가요? 딱히 그녀가 체재해도 문제는 없고」
덤으로, 세이버까지 토오사카의 편이었다.
「—————알았어. 하지만, 밥이 입에 안 맞아도 몰라. 그리고 후지 누나————후지무라 선생님도 올 테니까, 그 때는 네가 설복시켜 줘」
「알았어, 알았어. 에미야 군의 요리 실력은 점심으로 확인 끝났고, 후지무라 선생님이 온다는 것도 알고 있어. 양쪽 다 잘 알고 난 뒤에 한 결정이니까 신경 쓰지 마」
「—————흥. 후회해도 몰라」
홱, 하고 얼굴을 돌리고 부엌으로 향한다.
—————그리고.
손을 씻고, 평소 하는 에이프런을 장착하려고 하다가, 평소에 두는 장소에 에이프런이 없는 것을 알아챘다.
……아니.
애초에, 토오사카의 눈을 신경 쓰면서 점심 식사 준비를 한 뒤부터, 에이프런을 벗은 기억조차 없는 건 어떻게 된 일이지.
「어라?」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본다.
그런 나를 보고 즐겁게 웃더니,
「그리고, 깜박하고 말 안 했는데. 남자애로서, 에이프런을 한 채로 돌아다니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 에미야 군」
이라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지껄였다.
탕탕 하고 호쾌하게 대구를 자른다.
배추도 잘랐고, 무도 대량으로 썰었다.
「……좋아. 다음은 간을 낸 냄비에 조개를 넣고, 불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전골은 미리 팔팔 끓여뒀다.
본래 간단히 할 수 있는 요리고, 오리지널이라고 하면 얼마나 간을 잘 내느냐다.
그것도 잘 됐고, 남은 건 사람 수만큼 식기를 준비하는 것뿐—————
「다녀왔어—! 으—, 추워추워, 눈 내려—」
안뇽하슈—, 할 듯이 후지 누나가 돌아왔다.
「어서 와—. 눈 내리고 있구나, 밖에」
「응. 조금씩 내리고 있지만 꽤 쌓을 것 같아. 와, 오늘밤은 전골이네. 과연 시로, 날카롭잖아. 응—, 기분도 좋고 술이나 마셔 버릴까나—」
무언가 위험한 소리를 하면서, 후지 누나는 거실에 들어온다.
「실례하고 있어요, 후지무라 선생님」
「아, 토오사카다—. 어떻게 된 거야, 시로 네서 만나다니 드문 일이잖아」
……?
후지 누나는 토오사카의 인사를 극히 자연스럽게 받는다.
흐흥 하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거실을 그냥 지나쳐서 부엌으로.
「헤에, 좋은 대구잖아. 몸이 눈처럼 흰 대구는 극상품이라고 하고, 더더욱 술이 어울릴 것 같아」
철컥, 하고 냉장고를 여는 후지 누나.
그리고.
안에서 좋아하는 바움쿠헨을 꺼내서, 우물우물 집어먹은 뒤.
「근데, 어째서 토오사카가 시로 네에 있는 거야— — — — — —! ! ! !」
「잠깐, 토오사카! 실례하고 있어요 라고 할 때가 아니잖아, 이런 시간에 뭐 하고 있는 거야 너!」
바움쿠헨을 꿀꺽하고 삼키고, 후지 누나는 척척 거실로 진군해 간다.
「뭐라뇨, 에미야 군 집에서 저녁을 대접 받고 있는데요. 그러는 후지무라 선생님이야말로,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들어오다니 비상식적이지 않나요?」
대조되게, 산뜻한 얼굴로 후지 누나를 영격하는 토오사카제국군.
「윽……나, 나는 이 집의 감독이에요!
시로————에미야 군의 아버지가 맡기셨으니까, 여기에서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그런가요. 그럼 다시 인사를 할 게요.
실례하고 있어요, 후지무라 선생님. 오늘은 여기서 하루 지내고 있었어요. 저녁을 먹은 뒤도 에미야 군과는 시험공부를 할 테니, 신경 쓰실 거 없어요」
「뭣————시……로, 가 아니라 에미야 군! 이건 어떻게 된 일인가요! 토오사카와 공부를 한다니, 어느 새 그렇게 돼 있었던 거야아!」
「선생님? 부르기 힘드시면 무리하지 마세요.
별로 선생님이 에미야 군을 어떻게 부르던지 저한테는 관계 없으니까요. 이름을 그냥 부르시던지 쨩을 붙이시던지,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할 거고요」
「윽————토오사카, 혹시 사쿠라쨩한테 들었어……?」
「글쎄요. 유감이지만, 마토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니까,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어요. 하지만, 선생님의 상상대로라면 좋겠네요」
토오사카의 웃는 얼굴을 앞에 두고, 으, 하고 기가 죽는 후지 누나.
……후지 누나의 마음은 저엉말 이해된다.
저 녀석이 저 웃음을 지으면 압도된다고 할까, 굉장히 궁지에 몰린 듯한 마음이 되지이…….
「————승부가 났군. 저건 놔 둬도 괜찮아」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나.
후지 누나가 토오사카에게 말싸움에서 지는 건 시간 문제다.
그 쪽은 토오사카에게 맡기고, 이쪽은 저녁 준비에 전념하자—————
냄비가 텅 비었을 무렵, 밖의 눈도 그쳐 있었다.
결국 2시간 정도밖에 내리지 않아서, 뜰에는 얼마 안 되는 눈 밖에 안 남아 있겠지.
「시로, 식기 싱크대에 모아놨어」
「아, thank you. 그럼 잽싸게 끝낼까」
테이블에서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한다.
「설거지? 그럼 내가 할까? 대접 받기만 해서야 균형이 안 잡히고」
어디어디, 하고 후지 누나와 교대로 일어서는 토오사카.
그 의견은 기쁘지만, 그래도 손님에게 설거지를 시키는 짓은 할 수 없다.
「됐어, 빚으로 해 두지. 막 먹은 참이니까 얌전히 있어. 그리고 후지 누나는 나중에 목욕물 데워」
「네네—, 알고 있어요—」
배가 가득 찼기 때문인지, 후지 누나는 순순하다.
항상 이렇다면 편해서 좋지만, 그건 그거대로 재미없는 듯도 하다.
「아」
또 그릇을 떨어뜨려 버렸다.
설거지를 시작하고 20분. 바닥에 떨어뜨린 그릇은 이걸로 2장째다.
「………………음」
왼손이 마비돼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라는 건 아니다. 이 정도 감각이 어긋난 걸로 그릇을 떨어뜨리다니 긴장이 풀려있는 증거다.
「—————————」
한 순간, 왼팔이 나을 때까지 그만둬야 한다, 하고 냉정하게 생각하고, 즉시 뿌리쳤다.
팔을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계속한다.
외적 요인으로 실수한다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만, 내적 요인으로 실수하다니 인정할 수 없다.
자기자신이 상대라면 이기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패배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까.
「음————」
결과, 이렇게 지나치게 피해를 확대해 버린다.
떨어진 그릇은 3장째.
1장째가 떨어졌을 때, 바닥에 배스타올을 깔았기에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별로 문제는 없는데—————
「—————————」
그, 그릇이 떨어질 때마다 토오사카의 시선을 느끼는 건, 정말로 거북하다.
「……후지무라 선생님. 에미야 군은 항상 저런 건가요?」
거실에서 토오사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시로는 그릇을 깬 적 따위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니까. 분명히 토오사카를 의식해서 긴장하고 있는 거야」
물론 외적(外敵)으로서.
라고, 화살 같이 찔러대는 후지 누나.
「—————————」
그걸 무시하고, 지그시 시선을 향해 온다.
「………………」
……설거지하기 거북하다.
그렇지 않아도 몸 절반의 감각이 없는데, 그렇게 진지하게 바라보면 마음이 흐트러져서————아, 위험
「치, 이런」
혀를 차면서 깨진 그릇을 내려다본다.
이걸로 4장짼가. 지금 그건 떨어뜨린다고 알고 있었는데, 왼손이 순간적으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
흠칫흠칫 등뒤의 상황을 살핀다.
「—————————」
……보고 있다.
토오사카는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당돌하게 일어섰는가 하고 생각하니, 척척 이쪽으로 다가왔다.
「에미야 군. 내가 할 테니까 쉬고 있어」
「아니, 그건」
「깨진 그릇은 밟지 마. 어디에 처리하면 되는지는 짐작이 가니까, 너는 차라도 마시고 있어」
꾹, 하고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싱크대에 서는 토오사카.
「—————————」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되면 토오사카를 말리는 건 어렵고, 거기에, 솔직히 말하자면.
……분하지만,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하는 토오사카는 넋을 잃을 정도로 그림이 됐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거실에는 후지 누나밖에 없었다.
현관에는 아직 토오사카의 신발이 있었고, 세이버는 도장이겠지.
시간은 슬슬 9시가 되려고 하고 있다.
역시 문제는 토오사카다.
이미 밤도 늦었고, 빨리 돌려보내지 않으면 위태해서 못 견디겠다.
「후지 누나, 토오사카 어디 있는지 몰라?」
「토오사카라면 뜰로 나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뜰 구석에 뭔가 있는 건가요 하고 물어봤었는데」
「뜰 구석……?」
광 말일까.
하지만, 어째서 그런 곳에 볼일이 있는 거지, 그 녀석은.
「—————추워」
목욕하고 나온 피부를, 겨울 밤공기가 식혀 간다.
구름이 남아 있어서 별은 보이지 않지만, 잔디에는 온통 눈이 쌓여 있었다.
「……정말. 이렇게 추운데, 밖에서 뭐하고 있는 거야, 토오사카는」
어깨를 떨면서 뜰을 횡단한다.
엄청난 추위에 다음엔 한텐을 사 오자, 등을 생각하면서 광으로 향한다.
「에, 에미야 군?!」
「에미야 군, 이라고 할 상황이냐. 이런 데서 뭐하고 있는 거야, 토오사카. 벌써 시간도 시간이고, 느긋하게 있을 여유 없는 거 아니냐」
「아, 그래, 확실히 춥지, 여기」
「………………」
수상하다.
이렇게까지 거동이 수상하면, 이쪽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 흥미가 생겨난다.
「토오사카. 광 문, 열려 있네」
「내, 내가 연 거 아냐! 처음부터 열려 있었다니까, 그거!」
「이상한데. 밖에서 잠궜을 텐데」
「그, 그거야말로 면죄야. 애초에 그 낡은 문, 안쪽에서밖에 잠글 수 없잖아」
「응, 그래그래. 광은 항상 열려 있는 상태고, 안에서가 아니면 잠글 수 없어. 그런데, 어째서 그런 거 알고 있는 거야, 토오사카」
「윽—————」
이런, 하고 혀를 찬다.
슬슬 이해됐는데. 토오사카는, 계산 외의 불의의 습격에 굉장히 약하다.
「뭐어 상관없지만 말이지. 광 안, 아무것도 없었잖아.
일단 거기가 내 수련장이지만, 하는 일이라고 하면 강화의 연습뿐이고. 토오사카가 보기엔 어린애 속임수 같은 거 아냐?」
그것보다 저택으로 돌아가자, 하고 토오사카를 재촉한다.
……그러자.
「————그래. 역시 자각은 없구나, 너」
덤빌 듯한 태도로, 토오사카는 노려봤다.
「토오사카……?」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그만 경계해서 자세를 잡아버렸다.
그런 나를 보고, 토오사카는 더더욱 눈을 좁혀 간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만들어내고 있는 본인이 그래서야, 실패하는 것도 당연하지」
「————잠깐 기다려. 그거, 투영마술 이야기인 거냐」
「그래. 광에 굴러다니고 있었던『내용물이 없는 복제품』이야기.
……그거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 에미야 군은 모르겠지. 수순이나 약식도 없고. 강화의 연장에서 투영을 하려고 하는 너는, 모든 것에 있어 엉터리야」
「————미안하군.
상관없잖아, 어차피 투영은 강화의 연습이니까, 성공해야지 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어. 어디까지나 기초의 확인에 지나지 않아」
「그게 엉터리라고 하는 거야. 기초의 확인으로 투영을 합니다 라고? ……알겠어? 나 이외의 마술사한테 그런 말 해봐. 너, 뇌수째로 포르말린 절임이 돼」
「—————————」
꿀꺽, 하고 침을 삼킨다.
농담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토오사카의 말은, 기실 어디에도 농담 따위 담겨있지 않았다.
「……미안, 토오사카.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잘 모르겠지만, 요컨대 더 수행해라, 라고 하고 싶은 거야?」
「그런 건 당연하잖아. 에미야 군에게는 수행만이 있을 뿐이야.
하지만, 그래————지금 당장 전력 업을 꾀한다면, 조금 수순을 바꿔주는 것만으로, 간단히 써먹을 수 있게 될지도 몰라」
아까까지의 적의는 어디에 갔는지, 토오사카는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다.
「음……? 수순을 바꾼다니, 강화를 말야?」
「정말, 뭘 듣고 있었던 거야, 둔감한 녀석아! 강화가 아니라 투영 쪽이 뻔하잖아!?
반쪽 짜리가 하는 강화 따위 기대할 수 없지만, 투영만은 달라. 일시적이긴 했어도 아쳐의 검을 투영했으니까, 재현할 수 있으면 곧바로 전력이 되잖아!」
「……토오사카. 그거야 물론 일일이 지당하지만, 어제 그건 우연이야. 다시 한 번 하라고 해도, 아마도 못 할걸」
「그게 반쪽 짜리라고 하는 거야! 해낸 이상 우연이든 필연이든 반드시 네 걸로 만들어!
……애초에, 네 그건 우연 따위가 아니야. 나 같이 외계에 작용하는 마술사는 “재현할 수 없는 마술” 따위 산더미처럼 있어. 하지만 너는 재료를 전부 내계에서 꺼내오고 있으니까, 네가 살아있는 한 재현할 수 없는 마술 따위 없는 거야」
「음? 내계에서 꺼내고 있어……?」
……그런 건 당연하잖아.
마력은 마술회로에 의해서 체내에서 생성되니까, 순수한 재료는 스스로 생겨나는 거다.
「…………하아. 독학으로 해 왔으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상당히 중증이네. 투영은 어쨌든, 다른 건 처음부터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되나」
하아, 하고 과장되게 한숨을 쉬는 토오사카.
「—————————」
자신이 제 몫을 못 하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역시, 토오사카에게 그렇게 들으면 신경에 거슬려서 기분 나빠진다.
「흥, 쓸데없는 참견이야. 지금까지 혼자서 해 왔으니까, 이후로도 어떻게든 되겠지. 그것보다 이야기는 어떻게 할 거야. 벌써 이런 시간이야, 언제까지고 딴짓하고 있을 수 없다구」
「에? 시간이라니, 지금 몇 신데?」
「9시가 막 된 참. 여자애가 밤에 나다닐 시간이 아냐」
「뭐야, 아직 정말 이르잖아. ————뭐, 에미야 군이 그리 말하니 잽싸게 끝낼까」
시원스럽게 끄덕이고, 토오사카는 저택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직 이르다니, 어째서 말야」
여자애에게 있어서, 9시가 지난 밖은 충분히 심야다.
그런데도 정말 이르다니, 토오사카 녀석, 자기가 여자애라는 자각이 없는 걸까.
「————아니. 무서운 걸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도리도리 머리를 흔들어, 불길한 상상을 깨끗이 지웠다.
「이봐, 빨리 와—」
토오사카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
거기에 대답하듯이, 툇마루로 내달렸다.
거실에 있는 후지 누나에게서 떨어져서, 툇마루에서 저녁에 하던 걸 계속한다.
거실에서 실컷 복잡해진 작전회의니까, 그렇게 간단히 결판은 나지 않겠지, 하고 정신을 집중해서 회합에 나섰지만,
「류도사에 공격하는 건 현 단계에서는 무리야.
이쪽이 함정을 쳐서, 캐스터를 끌어낼 수 밖에 없겠지」
하고, 토오사카는 정말 깨끗이 결론을 냈다.
「—————아니. 그건, 그 말대론데」
「문제는 함정을 어떻게 하느냐 뿐인데.
……뭐, 두세 군데 짚이는 곳이 있으니까 에미야 군은 대기하고 있어. 최악의 경우엔, 너와 세이버가 미끼가 돼 줘야 할 테니까」
위험한 소리를 하고, 토오사카는 문을 열었다.
싸늘한 공기가 내부로 침입해 온다.
그래도 이 툇마루는 특별한 건지, 쌀쌀한 정도로 그치고 있다.
……5년 전 밤이랑 마찬가지.
이 툇마루만은, 겨울이라도 달맞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하다.
「————좋은 결계구나. 우리 집이랑은 다르게, 인간의 정을 느껴」
툇마루에 앉아서, 멍하니 뜰을 바라보면서, 토오사카는 그런 소리를 중얼거렸다.
「잠깐 들어주지 않을래? 별 것 아닌 이야기가 있는데」
「—————————」
아무 말 없이 옆에 앉는다.
할 이야기가 있다, 라고 말하고는, 토오사카는 전혀 입을 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으니, 멍하니 뜰을 바라봤다.
「—————————」
달은 보이지 않는다.
토하는 숨이 하얀 것은, 역시 눈이 내렸기 때문이겠지.
문득 옆을 보자, 토오사카도 하얀 숨을 흘리면서 뜰을 바라보고 있었다.
「—————————」
조금 몸을 기울이면, 분명 어깨가 닿는 거리.
거기에 동요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익숙해진 건지, 겨울 밤 덕분인 건지.
이렇게 가까이에 토오사카가 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진정되어 있다.
「—————그래서. 이야기라는 건 뭐야, 토오사카」
왠지 모르게 물어봐 줬으면 하고 있구나, 하고 느껴서 말을 걸었다.
「……응. 조금 말야, 이 집은 특수하니까. 타산지석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 에미야 군은 그 상태 그대로 있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고 문득 생각했어」
「우와. 그대로 있어도 좋다니, 반쪽 짜리로 있어도 좋다는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럴지도 모르지.
에미야 키리츠구라는 사람이 어떤 마술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저택은 굉장히 자연스러워. 마술사의 공방 주제에 열려 있어.
사방의 문은 활짝 열려 있어서,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마음대로라는 인상이지. 분명히 지켜야 할 것지식이 없으니까,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는 거야」
「네 아버지가 마술사가 아니라 매직 유저가 되라고 말한 건 그런 거라고 생각해. 아무것도 없는 대신에, 어디에라도 갈 수 있으니까」
「뭐야. 토오사카는 그렇지 않은 거야」
「응, 우리 집은 달라. 근처에선 유령저택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실제로 그 말대로잖아. 오는 자는 막는다, 그런 주제에 들어온 것은 놓치지 않는다」
「……때때로 말야, 뭔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게 바꿀 수가 없는 거야.
저주 받고 있다던가 그런 게 아니라, 나 자신이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어버린 거지. 이런 성격을 하고 있으니까 후계자로 선택 받은 거겠지만, 알아챘을 때에는 상당히 쇼크였어」
「————흠. 그건 즉, 자기가 짓궂은 애라고 알아챘을 때냐?」
「…………생각하는 건데. 에미야 군은, 상대를 신경 쓰지 않고 생각한 대로 말해버리는 성격이야」
「그래? 토오사카를 본받아서 빙 둘러서 말한 건데」
「……정말. 그런 데가 직구라고 하는 거야」
하아, 하고 크게 숨을 토하고 고개를 숙인다.
숨결의 잔재는 하얗게, 차가운 밤에 천천히 녹아 갔다.
……그 옆얼굴을 엿보고, 다시 떠올렸다.
붉은 교사.
라이더에 의해 쓰러진 학생들을 보고, 토오사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굳세게 행동하면서, 입술을 깨물고, 무릎을 작게 떨고 있었다.
……그 때에 알아챈 것이다.
마술사로서 완벽해지면 질수록, 이 녀석은, 토오사카 린이라는 자신을 죽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토오사카는, 힘들었냐」
불안해져서 물었다.
「마술 수행이? 공교롭게도, 괴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대개의 일은 순조롭게 해 냈고, 할 수 없어서 좌절했던 일 따위 없었고 말이지.
거기에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재미있었어. 아까도 말했잖아? 나, 선천적으로 그런 성격이라고. 그래서 에미야 군의 걱정은 기우라는 거야」
선뜻 말한다.
거기에는 허세도 거짓도 없고, 토오사카는 정말로 기분 좋은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그래. 그럼 학교는 어때? 마술사로서 살아갈 거면, 학교에 가도 무의미한 거 아냐?」
「무의미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곳에 들르고 있는 셈이겠지.
하지만 헛수고는 아냐? 학생이라는 건 재미있는걸. 나 말야, 기본적으로 쾌락주의자야. 아버지의 뒤를 이은 건 의미지만, 그것도 자기가 즐겁지 않으면 하지 않아.
마스터가 된 것도 자신의 힘을 시험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에미야 군과 협력하고 있는 것도, 네가 재미있으니까 그런 거고」
「—————————」
내가 재미있다, 라는 의견은 그렇다 치고, 그걸로 가슴에 있던 답답함은 없어져줬다.
마술사의 가계.
무거운 역사와 혈맥에 묶인 토오사카는, 어두운 그림자를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이쪽이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 녀석에게 있어서는 “토오사카 가”는 무거운 그림자도 뭣도 아니고, 토오사카 린은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거니까.
「—————그래. 토오사카가 즐거운 것 같아서, 다행이야」
「고마워. 그래서, 물론 그러는 에미야 군도 즐거웠지? 그렇지도 않으면 마술 수행 따위 계속하지 않는걸」
당연한 듯이 토오사카는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음—————」
그, 간단하게 끄덕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잠깐, 어째서 입 다무는 거야. 에미야 군의 아버지는 강제하지 않았잖아? 그래도 계속했다는 거는, 마술이 재미있어서가 아닌 거야?」
「에, 아니—————」
재미있다, 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을까.
에미야 시로에게 있어서, 마술은 항상 자신을 위협하는 시련이었다.
자신에게 적성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키리츠구처럼 되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물고 늘어졌을 뿐이다.
처음 1년은 식사와 수면 이외는 전부 단련에 썼다.
매일 밤, 죽음을 등뒤에 바싹 대면서 신경을 예민하게 했다.
그걸 5년간 반복했을 뿐.
괴롭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재미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잠깐. 제대로 대답해, 에미야 군.
나, 터무니 없는 착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토오사카는 진지하게 나를 노려본다.
「…………」
……곤란하다.
그런 얼굴을 하면,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군. 마술 수행을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마술 수행도, 마술 그 자체도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하지만, 나는 주위 사람들이 행복하면 그걸로 기뻤었어. 그래서 그, 마술을 배워두면, 언젠가 누군가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고」
「—————————」
「나는 키리츠구 같은 정의의 사자가 되고 싶었어. 그러기 위해서 마술을 배워왔어. ……뭐어, 내 이유 같은 건 그런 건데」
「————그럼 뭐야. 너, 자신을 위해서 마술을 배운 거 아냐?」
「에……아니, 자신을 위해서인 거 아냐, 이거? 누군가의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나도 기쁘니까」
「이봐. 그건 기쁜 거지 재미있는 게 아냐!
알겠어? 내가 말하고 있는 건 에미야 군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거야. 주위가 이러니저러니가 아니라,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일은 없냐고 묻고 있는 거야!」
캬오—, 하고 울부짖는 토오사카.
「—————————」
하지만, 그런 소리를 해도 대답할 수 없는 건 대답할 수 없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 이라고 해도 생각이 떠오르질 않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그런 쓸데없는 소원을 가질 자격이 없다.
「아 열 받아! 요컨대 너, 다른 사람에 대한 것뿐이고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질 않는 거야!」
당돌하게 일어서자마자, 척, 하고 코끝에 손가락을 향하는 토오사카.
「에, 잠, 토오사카, 손가락……!」
손가락, 이 아니라 손톱이 저, 코끝에 닿아 있는데요!
「시끄러, 말대답하지 마. 아 진짜, 닮았다 닮았다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똑같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이쪽 항의를 각하하고, 토오사카는 더욱 더 나에게 다가든다.
「잠깐. 진정해, 토오사카. 너, 어째서 그렇게 화내고 있는 거야?」
「그걸 모르는 녀석이니까 열 받은 거야! 아 진짜, 어째서 아무도 한 마디 해 주지 않는 거야!」
부들부들 주먹이 떨고 있다.
「—————————」
이렇게 되면 묵비를 고집할 뿐이다.
토오사카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가만히 있자, 하고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한바탕 분노를 발산시킨 뒤,
「————흥. 좋아, 결정했어.
내일, 네가 졌다고 말하게 해 줄 테니까」
당장에라도 장갑을 집어 던질 것 같은 말투로, 그런 말을 들어버렸다.
「……위험하군. 설마, 언젠가 했던 그걸 이어서 할 생각이냐?」
언젠가, 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이 교사에서의 술래잡기 이야기다.
항복해라 하고 궁지에 몰렸지만, 라이더의 방해가 있어서 결판은 흐지부지한 채였다.
「그래. 됐으니까 죽을 각오하고 기다리고 있어.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간직해둔 스페셜한 걸 맛보게 해 줄 테니까」
음, 하고 기합을 넣고는, 척척 토오사카는 거실로 걸어가 버렸다.
「—————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유서만은 써 두는 게 좋을까……?
여하튼, 토오사카를 보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은 곧 10시가 된다.
이렇게 늦게까지 여자애를 붙잡아두고 있으면 후지 누나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에? 지금 뭐라고 했어, 시로?」
「그러니까 토오사카를 바래다 준다고 했어. ……그런데, 그 녀석 어딜 어슬렁대고 있는 거지. 이제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안 좋잖아」
후지 누나는 멍하니 이쪽을 보고 있다.
……이상한데.
맨 먼저 찬동할 터인 후지 누나는, 딱히 당황하는 모습도 없다.
「응—. 토오사카라면 지금쯤 별채에 있지 않을까.
손님이고, 잘 거면 제대로 된 객실이 아니면 안 되잖아?」
「좋아, 별채인가————아니, 농담하지 마, 후지 누나. 지금, 뭔가 이상한 소리 하지 않았어?」
「정말, 이상한 소리 하는 건 시로잖아.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까 토오사카를 재우는 거지? 토오사카, 아까 그렇게 말했는데」
「뭐—————잔다니, 토오사카가……!?」
「그런데? 아, 하지만 이상한 짓 하면 안 돼. 나도 다다미 방에서 자고 있고, 객실에서 비명 같은 게 나면 한 방에 저승행이야」
아작아작 센베를 먹는 후지 누나.
그 모습은 지극히 보통이라서, 토오사카가 잔다, 라고 하는 비상사태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 녀석———————!」
이미 후지 누나는, 토오사카에게 함락되었다고 봐야겠지.
「아, 마침 잘 됐어. 나 오른쪽 객실을 빌릴게」
—————하고.
별채로 향하는 도중, 복도에서 딱 만난 정체불명의 존재는, 선선히 그런 말을 해 왔다.
「에—————아」
그 모습에, 머리가 어질어질 한다.
교복이 아닌, 사복인 토오사카.
그게 집 복도에 있고, 무언가,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 이거? 자기로 했으니까, 아쳐한테 말해서 숙박용 도구 한 세트를 가지고 오게 했어. 그러니까 잠옷은 필요 없어」
「이—————으?」
「이봐, 괜찮아? 지쳐 있다면 일찍 자. 내일 아침, 늦잠 따위 자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 하고 손을 흔들고 별채로 이어지는 복도로 사라져 간다.
그걸 멍하니 배웅하고, 복도에 있는 거울에 눈을 줬다.
「—————————」
얼굴은 사과 같이 새빨개져 있다.
……제길.
아무리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같은 집에서 자다니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야, 저 녀석.
「……목욕, 다시 할까」
하고, 머리부터 물을 끼얹어 얼굴의 열을 식힌다.
……그,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토오사카의 사복 모습이 머리에 새겨진 채라서, 밤 단련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불이 꺼진다.
날짜가 바뀌려고 하는 오전 0시, 얼어붙은 달을 올려다보면서 단련에 매몰한다.
「—————————trace동조, on 개시」
등뼈에 새로운 신경을 파묻어 간다.
체내에 마술회로를 만들어, 호흡처럼 마력을 생성하고, 손에 든 목도의 구조를 파악한다.
「———————기본골자, 해명」
마력을 통과시켜서, 목도를 “강화”한다.
구조를 해명하고, 내용을 변경하고, 전체를 보강한다.
「———————구성재질, 보강」
여느 때의 공정은, 싱거울 정도로 스무스하게 진행되어 간다.
……마스터가 됐기 때문인지, 성공률이 1자리였던 강화는 어려움 없이 할 수 있고, 마술회로를 만드는 공정도 단숨에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
……아니, 그건 마스터가 됐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자신은 흉내 내고 있을 뿐이다.
그 녀석의 검.
류도사 경내에서 봤던, 그 붉은 기사의 모습을 모방하고 있을 뿐.
그 녀석의 쌍검을 흉내 내고, 그 검기를 흉내 내고, 지금, 호흡까지도 흉내 내고 있다.
「……가짜다. 이런 건, 내 게 아냐」
자기혐오를 품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
그 녀석의 흉내를 내면, 그것만으로 에미야 시로의 실력은 올라간다.
그것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고 알고 있어도, 지금은 그것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교사에서 뼈 인형 상대로 싸워낸 것도 그 녀석의 검기 덕분이고,
쿠즈키의 맹공을 막아낸 것도 그 녀석의 쌍검을 투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력으로, 진지하게 공정을 거듭하다 보면, 또 한 번 그 검을 복제할 수 있다, 라고 하는 확신이 있다.
「……강화와 비슷하며 다른 것. 시작과 끝을 넣고, 딱 8절로 나누면 되겠지……」
trace — on 동조개시가 아니라 trace — on 투영개시.
……말로 하는 소리 자체는 변함없다.
자기자신에게 작용하는 의미만 같다면 주문을 변경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나는, 자신을 다시 만드는 주문 따위 한 종류밖에 모르고, 한 종류 외에는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
“강화”가 끝난 목도를 놓는다.
……좌반신은 마비된 채다.
오늘 하루 쉬고 있으면 회복할 거라고 낙관했지만, 그렇게 형편 좋게 되지는 않았다.
이것이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마술의 대가—————아쳐의 쌍검을 모방한 대가라면, 또 한 번 “투영”을 했을 때야말로, 꼴사납게 자멸할지도 모른다.
「—————————후우」
등뼈에 에어 들어간 감각을 푼다.
몸은 마술회로라고 하는 독소에서 해방되어, 단단한 긴장에서 풀려간다.
거기에,
「시로?
잠이 오지 않는 건가요?」
조용히, 세이버가 다가왔다.
「아니, 그런 건 아냐. 이건 일과니까 신경 쓰지 마」
그 일과도 무사히 끝나서 마음을 놓고 있었던 거겠지.
대답한 목소리는, 자신도 놀랄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오늘은 소란스러웠죠」
「그렇지. 타입은 달라도, 후지 누나가 둘 있는 거랑 비슷하고」
미소에 미소로 답한다.
세이버는 정말 그래요, 라고 드물게 농담을 하고, 앉아있는 내 옆에 허리를 내렸다.
「하지만, 오늘밤도 마술 단련인가요. 무슨 일이 있어도 예정은 바꾸지 않는군요, 시로는」
「에……? 아아, 빼먹지 않고 하라는 게 아버지 키리츠구의 가르침이었으니까. 하지만 뭐, 가르쳐준 건 그것뿐이었지만」
「그것뿐……? 그럼, 마술사로서의 지식도 본연의 모습도 교수 받지는 못한 건가요?」
「응. 애초에 말야, 가르쳐야 할 본인이 마술사답지 않았었어.
곤란한 어른이었지. 보통 때는 머—엉해 있어서, 어딘가 흐릿했어. 즐길 때는 마음껏 즐긴다, 라고 하면서 어린애 같이 까불기도 했고.
그래서야 나는 마법사다, 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는다니까, 보통」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얼굴 근육이 풀려있는 것을 깨닫는다.
옛날 일.
10년 전의 그 화재에서, 키리츠구가 죽을 때까지의 5년간.
생각해 보면 그 때가, 자신에게 있어서 순수하게 즐거운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런 스승이 좋았던 거군요, 시로는」
「……응. 토오사카가 들으면 화낼 것 같지만, 동경하고 있었어. 자유롭고 전혀 마술사 같지 않아도, 나에게 있어선 키리츠구야말로 진짜 마법사였어.
뭐, 거기에다 말야. 자기 이상으로 어린애 같아서, 아무래도 내버려둘 수 없었다는 것도 있고」
「네, 시로의 마음은 알겠어요. 저에게도 마술사는 있었지만, 그 녀석도 어린애 같은 인물이었어요」
「그 녀석……? 신기한데, 세이버가 사람을 그렇게 말하다니」
「아뇨, 그는 예외예요. 그 녀석은 터무니 없는 노인이었어요. 존경하고 있었고 친애도 느끼고 있었지만, 동시에 온갖 성가신 일의 원천이었습니다. 그가 장난을 좋아하지만 않았어도, 좀 더 멀쩡한 시대가 됐었겠죠」
「……우와. 어쩐지 대단한데, 그 말. 마치 희대의 악인 같잖아」
「악인이었어요. 덤으로 그, 색에 약하다고 할까, 사랑이 많은 인물이라고 할까. 결국 마지막에는 그게 해악이 되어 유폐되어 버렸지만, 그 노인 성격이 그러니까. 분명히, 지금도 느긋하게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겠죠」
어이없어 하는 건지, 웃고 있는 건지.
세이버는 그런 옛날 이야기를 하고, 아주 조금 말을 삼켰다.
그리고, 약간의 침묵 뒤.
「시로. 당신의 반신(半身)은 어떻게 돼 있는 건가요」
똑바로 쳐다보는 눈으로, 알려지고 싶지 않은 것을 추궁해 왔다.
「……뭐야. 세이버, 눈치채고 있었냐」
「그렇게 그릇을 깨고 있으면 누구라도 눈치채요.
그래서, 어떻게 된 건가요. 보기에 이상이 있는 건 반쪽뿐인 것 같은데」
「아니, 이상이라고 할 정도는 아냐. 그저 마비돼 있을 뿐이니까」
그 연후에, 아침부터 몸이 이상했던 것, 운동능력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 것, 원인은 어젯밤의 투영마술에 의한 feedback반동일 거라는 걸 설명한다.
「……………………」
세이버는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본다.
거기에 괜찮다고 웃어주려고 했을 때.
「————몸의 대부분이 마비된 채인 건가.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하군」
열린 문 앞에, 붉은 외투의 기사가 서 있었다.
「아쳐……!」
나를 지키듯이 몸을 돌리는 세이버.
……그녀가 보기에는, 저 녀석은 나를 벤 적인 것이다.
「—————————」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도 이 녀석은 적이다.
“————이상을 안고서 익사해라”
나를 베기 직전에 고한 그 말이, 지금도 머리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냐, 아쳐. 우리들은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고 있을 터. 자신의 주인의 목숨을 지킨다면, 빨리 떠나도록 해라」
「—————————」
아쳐는 대답하지 않고, 더욱 발을 내딛는다.
「—————멈춰라! 그 이상 다가온다면, 그에 응한 각오를 해 줘야겠다」
세이버의 적의는 살기로 변해가고 있다.
「……아니, 기다려, 세이버. 그 녀석에게 그럴 생각은 없어. 거기다, 여기서 싸울 수는 없잖아」
「음……그건 그렇지만, 시로」
「괜찮아. ————그래서, 용건은 뭐냐, 아쳐.
네 성격에, 인사하러 온 것도 아니겠지」
세이버를 밀어젖히고 아쳐와 대치한다.
……윽.
역시 이 녀석은 마음에 안 든다.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얼굴을 본 순간 등골에 오한이 달리니까, 생리적으로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다.
분명 천적이라든가 원수라든가, 그런 category류에 속하는 녀석이다.
「어이. 용건이 없다면 나가라」
「……흥. 투영을 했다고 린에게 듣기는 했지만, 역시 그런가. 몸 절반의 감각이 없고, 동작이 가운데에서 7cm 정도 어긋나 있는 거지?」
「—————————」
숨을 삼킨다.
아쳐의 지적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했다.
「몸을 보여 봐라. 힘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쳐가 팔을 뻗는다.
「윽………!」
「됐어, 그만둬, 세이버. ……몸을 보이면 되는 거지, 아쳐」
웃옷을 벗고, 아쳐에게 등을 향한다.
「—————————」
아쳐는 아무 말 없는 채로 등뒤에 손을 대 왔다.
「윽—————」
약간의 아픔.
감각————통각조차 없었던 좌반신에, 침이 꽂힌 것 같은 열을 느낀다.
「……운 좋은 녀석이군. 괴사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닫혀 있었던 걸 열었을 뿐인가. 이렇다면 몇 일 지나면 회복하겠지」
「……닫혀 있었던 게, 열렸어?」
「그래. 너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지, 마술회로라는 것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거다. 한 번 만들어버리면, 그 뒤는 표면에 꺼내든지 꺼내지 않든지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그런 착각을 하고 있으니까, 본래 쓰일 터인 회로가 포기 당해서, 잠들어 있었던 거다.
네 스승이나 린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맹점이었겠지. 멀쩡한 마술사라면, 통상 신경 그 자체가 회로가 돼 있는 이단 따위 알 턱이 없다」
「네 마비는 일시적인 거다. 지금까지 있었는데도 쓰이지 않았던 회로를 전부 열어 젖히고 마력을 지나게 한 결과, 회로 그 자체가 “놀라고 있는” 상태겠지.
하지만, 어쨌든 포기되어 있던 구획에 바람이 지나간 거다. 얼마 안 있어 신경은 통상 기능을 다시 생각해 낼 거고, 포기되어 있던 회로는 이걸로 현역으로 돌아왔다는 거지」
「윽————」
다시 한 번, 등에 침이 꽂힌다.
오늘 하루, 감각이 없었던 반신에서, 두근두근 맥박 치는 확실한 고동을 주의해서 듣는다.
「……대충 이 정도면 될까. 몸이 움직이게 될 때는, 이전보다 나은 마술사가 돼 있겠지. 어쨌든, 내 검을 만들다니 처음치고 너무 욕심을 부렸어」
아쳐의 손이 떨어진다.
「……그럼, 시로의 몸에 이상은 없다는 건가요?」
「지금까지가 이상이었던 거다. ……아니, 이상을 잠들게 한 채로 끝나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의 삶이다. 그런 점에서 말하자면, 에미야 시로는 이미 정상이 아니지만—————뭐 됐다.
하여튼, 내일 하루는 마술을 쓰려고 생각하지 마라. 낫고 있는 신경이 다 타버리면 마비 정도로는 안 끝나니」
「자세히 알고 있군요, 아쳐」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말이지. 나도 처음엔 한쪽 팔을 먹혔지. 새로운 마술을 익힌다는 건 그런 거다」
등을 향하고, 아쳐는 떠나려고 한다.
「기다려」
그걸 불러 세웠다.
나를 죽이려고 하고, 지금 여기서 조력하는 이 녀석의 진의를, 꼭 알고 싶어서.
「뭐냐. 세이버에게 부탁해서, 언젠가 하던 그걸 계속하기라도 할 생각이냐」
「그런 짓 할 것 같냐. 그저 묻고 싶을 뿐이야. 네가 내뱉었던 말이 어떤 의미인가 하고 말이지」
————이상을 안고서 익사해라.
그 의미를.
다름 아닌 이 녀석 입에서 듣지 않으면, 뇌리에 자리잡은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의 의미다. 덧붙일 것 따위 없는데」
단언에 망설임은 없다.
아쳐는 진심으로, 한 조각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
그것이.
눈앞이 새하얗게 될 정도로, 참을 수 없었다.
「그럼 너는 뭐냐, 아쳐……!
이상을 품지 말라고 하는 너는 뭘 위해 싸우고 있는 거냐.
서번트는 전부 자신의 목적이 있잖아. 그렇다면, 네 싸우는 의의는 뭐냐. 이상이 없는 너는, 뭘 위해 싸우는 거지」
「————뻔한 것을. 내가 싸우는 의의는, 그저 자신만을 위해서다.
하찮은 세상의 인정, 대의, 이상.
그런 분명하지 않은 의의 따위 가짜다. 검을 잡는 것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그 이외에 이유 따위 없다」
「자신을—————자신만을 위해서, 라고」
「그렇다. 네 욕망이 “누구도 상처 입히지 않는다”라는 이상이라면 좋을 대로 해라. 그렇게 타인을 구하고 싶으면 구하면 되잖나.
다만————그것이, 정말로 너 자신의 욕망이라면 말이지」
「—————뭐」
사고가 멈춘다.
이 녀석은 지금, 무슨 말을, 한 건가.
「자신의 의지로 싸운다면, 그 죄도 벌도 전부 자신이 낳은 것. 등에 지는 것조차 이상 안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것이 빌려온 의사라면, 네가 주창하는 이상은 공상에 떨어지겠지」
즉. 그것은 가짜라고.
「싸움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건 이상이어서는 안 되지. 이상을 위해 싸운다면, 구할 수 있는 것은 이상뿐이다. 거기에, 사람을 구하는 길은 없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반론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쳐의 말은, 그야말로 화살처럼 가슴을 찌른다.
그것은 나만이 아니라, 옆에 있는 세이버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싸우는 의사라는 것은, 무언가를 구하고 싶다고 하는 소망이다.
적어도 너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에미야 시로」
「—————————」
「하지만 타인에 의한 구원은 구원이 아니다. 사람을 이루는 것은 본인의 의사와 결과뿐이지.
타인에 의한 구원 따위, 그런 건 금화나 마찬가지야. 쓰면, 타인의 손에 넘어가버린다」
「—————————」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무엇인가.
그건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어째서.
「그러니 무의미한 거다, 네 이상은.
확실히 “누군가를 구한다” 라고 하는 네 바람은 달성할 수 있겠지. 하지만 거기에는 너 자신을 구한다, 라고 하는 바람이 없다.
너는 너의 것이 아닌 빌린 이상을 안고서, 필시 죽을 때까지 반복하겠지」
아냐, 그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것뿐이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어. 결국, 타인도 자신도 구할 수 없는, 거짓 같은 인생이다」
붉은 등이 멀어져 간다.
「—————————」
「—————————」
……입 밖에 낼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다.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광에 남겨진 우리들은, 서로를 보지도 못하고, 있지도 않은 녀석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첫댓글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도 멋지네요...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시로님~
저야말로 봐주시니 ㄳㄳ 역시 읽는것도 재미지만,cg를넣어서보는게 좋은듯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