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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황 순 원
지금 덕구는 밧줄에 목이 매여 어느 산비탈을 끌려 내려가고 있었다. 험준하기 이를 데 없는 낯선 산비탈이었다.
엎어져 끌릴 때는 턱주가리와 가슴과 무릎이 돌부리며 나무 그루터기에 마구 찔리고 째이어 쓰라리고 아프다 못해 그저 얼얼하기만 했다. 번듯 뉘어져 끌릴 때는 또 등허리와 뒤통수가 갈리고 찢겨서 금방 산산조각이 나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끌려가다가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 소리를 질렀다. 밧줄을 놔라, 난 산 사람이다, 죽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덕구의 피투성이 된 큰 몸뚱어리는 그냥 험준한 산비탈을 끌려 내려가는 것이었다.
전쟁마당에서는 미처 시체 운반할 손이 모자랄라치면 노무자들이 시체의 목을 매어 끌어내리는 수가 있었다. 덕구가 이런 광경을 처음 본 것은 그가 일선으로 나간 지 석 달쯤 뒤였다. 밤낮없이 이틀 동안이나 고지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밀고 올라갔다 밀고 내려왔다 하기를 무려 아홉 번이나 거듭한 호된 싸움 끝이었다.
덕구는 거기 있는 너럭바위 한끝에 아무렇게나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있었다. 어떤 허탈감이 왔다. 언제나 치열한 전투 끝에, 아직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는 희열과 흥분이 뒤섞인 긴장이 풀리면서 오는 증세였다.
멀지 않은 산봉우리에서 아침 해가 솟아올랐다. 재넘이바람이 초연과 피비린내와 부상병의 신음 소리를 쓸어왔다. 이미 덕구의 신경은 이러한 냄새와 소리에는 무디어져 있었다. 그런 것에 익어버린 것이다.
너럭바위 한끝에 기대앉은 덕구의 눈꺼풀이 맑은 아침 햇살에 점점 무거워져갔다. 졸음이란 허기보다도 무서웠다. 적진을 향해 행군을 하면서도 졸아야만 했다. 순간순간 정신이 들었다가도 다시금 깜박 졸곤 하는 것이 마냥 졸면서 걷는 셈이었다.
덕구는 이때도 꺼떡 졸다가 무슨 소리에 눈을 떴다. 금방 잠이 들었다가도 번쩍 눈을 뜨곤 하는 것이 또 그가 일선으로 나오면서부터 몸에 붙인 버릇이었다. 이전에 시골서 농사지을 때는 눈만 붙이면 누가 떠메어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이 들곤 했는데.
무슨 소리에 눈을 뜬 덕구는 흠칫하고 놀랐다. 바로 발 앞에 시체 하나가 와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놀란 것은 아니었다. 시체의 목에 줄이 매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줄이 잡아당겨지자 몸뚱어리가 무엇에 걸린 듯 목이 움찔하고 늘어난 것이다. 그와 함께 위로 치켜뜬 시체의 두 눈알이 고운 아침 햇빛에 번뜩거리고, 이빨이 반쯤 드러나게 벌어진 턱주가리가 들썩거렸다.
덕구는 그만 몸을 움츠리며 외면해버렸다. 옆에 있던 김중사가 히힝하고 예의 독특한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 겁보야 죽은 사람을 처음 보나? 그리고 한다는 소리가, 사람의 모가지란 저렇게 편리한 거야, 산 사람이거나 죽은 사람이거나 모가지만 잡아매어 끌면 쉽게 끌리거든, 첫째 모가지는 잡아매기에 알맞게 생기구, 한번 잡아매면 좀처럼 벗겨질 염려가 없구, 게다가 늘었다 줄었다 해서 좋아, 무엇에 걸려두 끄는 편에서 뻑뻑하지가 않거든, 저것 좀 보지, 또 무엇에 걸렸군, 모가지가 늘쩍늘쩍하는 게. 그러나 덕구는 그리로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김중사의 말대로 덕구는 본디 겁이 좀 많은 편이었다. 처음 일선으로 나와 적과 대전을 하는 날, 그는 바짓가랑이를 온통 척척하게 적신 일이 있었다. 그리고 처음 전우의 시체를 보고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슬픔보다도 무서움이 앞섰던 것이다. 호 속이 무덤 속만 같았다.
사람이란 그러나 여하한 일에라도 익어버리게 마련인 것이다. 수많은 시체를 거듭 목격해오는 동안 덕구는 이제는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게 되었다. 시체의 사지가 따로따로 달아나버리고 내장의 어느 한 부분이 나뭇가지에 걸려 바람에 불리는 것을 보고도 자기의 배를 한번 쓸어내리면서, 아직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는 희열을 맛보게쯤 된 것이다. 그러는 동안 방아쇠 잡아당기는 손가락의 굳은살만이 두꺼워져갔다. 그렇던 덕구가 이날 목에 줄이 매여 끌려 내려가는 시체를 보고 그처럼 놀란 것은, 그 시체의 눈알과 턱주가리에서 살아 있는 자기와 별반 거리가 멀지 않은 모습을 발견한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그날 밤 그는 호 속에서 김중사에게 속삭였다. 이후에 자기가 부상을 당해 채 죽지 않았을 뗀 아예 죽여달라고. 그러면서 그는 슬쩍 자기 목을 한 번 어루만졌다. 김중사는 히힝하고 예의 웃음을 웃고 나서, 그때 내 총알이 남았으면 소원대루 해주지, 했다.
그런 지 얼마 뒤였다. 어느 또 격전 끝에 시체의 목을 매어 끄는 광경을 본 덕구는 총개머리로 노무자를 후려갈겼다. 갑작스레 분노가 치밀었던 것이다. 김중사가 히힝하고 덕구의 어깨를 특 치면서, 임마 흥분하지 말어, 전에 난 저런 놈의 정강이를 총으로 쏜 일까지 있어, 허지만 생각해보니 그럴 게 아니거든, 죽은 후에야 모가지를 매어 끌건 뒷다리를 매어 끌건 무슨 상관야, 그저 까마귀 밥 안 되는 것만두 다행이랄밖에.
사실 덕구는 차차 이런 것에도 익어지고 말았다. 시골서는 큰돌멩이나 나무토막을 밧줄에 매어 끌어내린다. 전쟁터에서의 시체란 그런 돌멩이나 나무토막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됐다.
그 뒤 어느 능선을 둘러싸고 적 대부대와 사투가 벌어졌을 때, 덕구 자신이 날아오는 유탄에 맞아 쓰러졌다. 그저 요행스럽게도 탄환이 코 위를 지나 왼편 눈알을 파가지고 그쪽 눈꼬리뼈를 뚫고 지나간 것이었다.
한참 만에 히힝하는 웃음소리가 귓결에 들렸다. 이때처럼 이 히힝하는 웃음소리가 반가운 적은 없었다. 김중사, 난 죽었다, 내 머리가 달아났다. 다시 히힝하는 김중사의 웃음소리와 함께, 대가리가 달아났음 입은 어디 붙었게 그런 소릴 하나? 덕구는, 정말이다, 머리가 달아났다, 아무것도 뵈지 않는다, 하고 소리쳤다. 왼쪽 눈에서 흐른 피가 성한 오른쪽 눈까지 덮어버린 것이었다.
김중사가 덕구 귀 가까이 입을 가져다 대고, 염려 마라, 달아난 건 한쪽 눈뿐야, 그런데 임마, 전에 나헌테 부탁한 일이 있지? 지금 꼭 내게 총알 한 알이 남았다, 이걸 사용해줄까? 그러고는 예의 히힝하는 웃음을 더 소리 높여 웃어대는 것이었다. 덕구는 저도 모르게 다급히, 으 아니다, 아니다, 소리를 연거푸 질렀다.
그 후 두 달 만에 덕구는 제대를 했다. 그러한 그가 지금 어느 낯도 모르는 험준하기 이를 데 없는 산비탈을 밧줄에 목이 매여 끌려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턱주가리와 무릎이 거의 다 닳아 없어지고, 뒤통수와 등허리도 갈릴 대로 갈려 아프다는 감각조차 모르겠다. 영락없이 죽은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떤 놈이 이렇게 산 사람의 목을 잡아매어 끈단 말인가.
가까스로 고개를 쳐들어 밧줄 끝을 더듬어보았다. 깜짝 놀랐다. 지금 허리를 구부정하고 밧줄을 끄는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덕구 자신인 것이다. 얘, 이 죽일 놈아, 밧줄을 놔라, 나다 나야, 덕구다 덕구, 그래 내가 안 보이느냐, 한쪽 눈마저 찌부러졌단 말이냐? 그러자 밧줄을 끌던 덕구 자신의 모양은 사라져 없어졌다.
이제야 살았다 하는데, 그냥 밧줄이 끌려 내려가는 것이다. 보니 이번에는 밧줄 끝에 사람의 주먹만 한 것이 붙어서 굴러 내려가는 것이다. 붉은 핏덩어리였다.
이 핏덩어리가 굴러 내려가면서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는 것이다. 거기 따라 끄는 속도도 차차 더 빨라졌다. 주먹만 하던 것이 메줏덩이 만큼, 그리고 큰 호박덩 어리만큼이나 커졌다.
거기에 문득 깎아지른 듯한 된비알¹이 눈앞에 가로질러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죽었다.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써 목청꼇 부르짖었다. 사람 살류우!
자기가 지른 소리에 자신이 놀라 잠이 깨었다.
마을 뒷산 기슭이었다. 저 멀리 서산마루에 저녁 해가 기울어 있었다. 하늘 중천에 솟아 있을 때보다 윤곽이 선연하니 크고, 빛이 사뭇 붉은 해였다.
덕구가 군대에서 돌아왔을 때 마을 사람들이 놀란 것은 그 한쪽 눈이 보기에 무섭도록 움푹 찌부러져 들어간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품이 달라진 것이다.
본래 덕구는 마을에서도 빠지지 않을 만큼 근실한 농군이었다. 밭갈이 논갈이 때만 두어 집 건너 이웃에 사는 삼돌이 아버지네 소를 빌려올 뿐이고, 그 외에 거름이나 추수 같은 것은 자기 등짐으로 져 날랐다. 무어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면 제 몸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덩치완 달리 소심하고 인색한 데가 있었다. 언젠가 돼지 한 마리를 기르다가였다. 어쩌다 동네 돼지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죽자, 이거 돼지병이 도는가 보다 하고, 시세의 반값도 못 받고 자기네 돼지를 팔아버렸다. 동네 돼지가 죽은 것은 먹이를 잘못 먹은 탓이란 게 알려졌다. 그렇건만 그 뒤로 덕구는 돼지를 안 기르는 것이다.
술 담배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것들이 몸에 맞지 않아 안 먹는 건 아니었다. 누구네 집에 대사 같은 것이 있어 가게 되면 곧잘 눈 가장자리가 빨개지도록 막걸리사발을 기울이곤 하는 것이다. 결국 공짜면 먹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좀 인색하기도 한 편이었다.
이 덕구가 한 번 된통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소집돼 나가기 전해 겨울이었다. 그날 덕구는 나락 얼마큼을 팔아가지고 장거리 한옆에 있는 주막에 들렀다. 물론 그가 거기 찾아 들어간 것은 무어 막걸리라도 한 사발 들이켜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집에서 싸갖고 온 꽁보리밥을 뜨끈한 술국에 말아 먹으려는 것이다. 이 토장국만은 거저 얻을 수 있었다.
덕구가 마악 김이 서리는 토장극 사발에다 굳은 꽁보리밥덩이를 넣으려고 하는데, 거 덕구 아닌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니 거기 붙어 있는 방 유리 쪽에 얼굴이 하나 비쳤다. 얼마 동안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용칠이었다. 덕구 편에서도 모르는 체할 수가 없어서 어설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뿐이었다. 덕구는 근실한 농군이라 이 난봉꾼이요 노름꾼인 용칠이에게 그 이상 더 친밀한 기색을 보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용칠이 편에서는 문까지 열어 잡더니 추운데 방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찌뿌듯이 흐린 날씨가 술청 안에서도 등골이 으스스하니 춥던 참이긴 했으나, 여기서 좋다고, 했다.
“아따, 사람이 왜 저리 당나귀 뒷발통처럼 딱딱할까 젠장. 추운데 어서 들어오라니까.”
너무 남의 호의를 거역 할 수가 없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용칠이 외에 웬 낯모를 청년이 하나 술상을 사이에 놓고 마주앉아 있었다. 덕구는 그저 뜨뜻한 방 안에 들어가 자기 국밥이나 먹을 생각이었다.
“그까짓 밥이야 하루 세 끼 먹는 거, 자아 이걸루 우선 몸을 좀 녹이게.”
술잔을 건네는 것 이다.
따지고 보면 덕구는 언제나 하루 세 끼 밥을 먹는 건 아니었다. 겨울철 해가 짧을 동안은 아침저녁 두 끼만으로 때우는 것이다. 그것이 이날은 장에 오느라고 특별히 점심을 싸갖고 온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날씨가 춥고 뱃속이 출출할 때는 밥도 밥이지만 노상 한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못 이기는 체 받아 마셨다.
약주였다. 시골 구석에서 먹던 그 텁텁한 막걸리에 비겨 얼마나 산뜻한 맛인지 몰랐다. 안주로 상에 놓인 낙지회를 집었다. 이 사이에서 매끄럽고 졸깃한 게 사뭇 달았다. 처음으로 낙지회를 먹어보는 것이다.
뒤이어 낯선 청년이 잔을 건네었다. 덕구는 한 잔으로 몸이 풀렸으니 그만두겠다고 했다.
청년이 잔을 내민 채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인다. 묘한 웃음이었다. 입술만 살짝 들었다 놓을 뿐, 눈이나 그 밖의 얼굴 부분은 통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청년이 그런 미소를 다시 한번 지어 보인다. 그러지 말고 어서 잔을 받으라는 표시다.
생각해보니 누구의 잔은 받고 누구의 잔은 안 드는 수도 없어서 청년이 건네는 잔도 받아 마셨다. 명치끝이 따끔거리더니 뱃속이 후끈해진다. 술이란 이때가 제일 입에 당기는 법이다. 거기에 용칠이가 후래삼배라고 하면서 또 잔을 건네는 것이다.
“뭐니뭐니 해두 추위에는 이게 제일이야. 겉에 솜옷 껴입는 건 소용없어. 그저 이걸루 창자 속에 솜을 넣어야지.”
그러나 덕구는 그 이상 더 술잔 받기를 망설일밖에 없었다. 흔히 시골서는 술좌석에서 누가 술 얼마큼을 사면 다음 사람이 또 얼마큼을 사게 마련인 것이다. 지금 덕구는 자기에게 건너오는 잔이라고 넙죽넙죽 받아 마시다가는 나중에 그냥 밍밍하게 물러 앉기가 난처한 것이다. 그래 슬그머니 숨을 들이쉬어 오늘 나락판 돈이 들어 있는 허리춤의 돈전대를 뱃가죽으로 한 번 밀어보고 나서,
“해 있어서 집에나 가봐야지.”
그러고는 자기 국밥그릇을 앞으로 잡아당기는데 용칠이가,
“아따 경치게두 집집 허네. 그렇게 에펜네 궁둥이가 그리운가.”
덕구는 장가든 지 일 년밖에 안 되지만 그동안 아내한테 혹해 빠져본 일은 없었다. 그저 아내 편에서도 살림이 헤프지 않고 존절하게 해주는 것이 대견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럼 왜 그러나? 자네더러 술값 치르랄까 봐 겁이 나나?”
이번에는 덕구의 아픈 데를 때리는 것이다.
“염려 말게. 이래봬두 용칠이 주머니에 술값 떨어져본 적은 없네. 자, 꾸물거리지 말구 어서 잔이나 내게.”
그러나 이런 경우에 대개 소심한 사람이란 한 번쯤 딴말을 하게 마련인 데 덕구도,
“그런 게 아니라…….”
엊그제 술을 좀 지나치게 마셨더니 뱃속이 좋지 않아 그런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사실 엊그제 이웃에 사는 삼돌이 아버지의 생일이라고 해서 막걸리 두 탕기를 얻어먹긴 했다. 그러나 생각 같아서는 곱빼기로 한 사발 더 마시고 싶었지만 원체 구두쇠인 삼돌이 아버지라 술을 더 내놓지 않아 못 먹었던 것이다.
용칠이가 덕구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그런 게 아니긴 뭐가 그런 게 아니야. 에펜네보담은 친구가 낫구, 친구 중에서는 술친구가 제일이야, 자아.”
이렇게 되어 마침내 술잔이 새로 오가게 됐다. 빈 주전자가 두 번이나 나갔다가 술이 채워져가지고 들어왔다.
덕구는 눈 가장자리뿐만 아니고 코끝과 귀 언저리까지 빨개졌다. 그리고 말이 많아졌다. 흔히 평소에 말수가 적던 사람이 술에 취하면 많아지는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심한 사람일수록 큰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 근동에서는 누구누구 해야 용칠이 자네만 한 활량이는 없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난 바에는 나두 자네만 한 활량이가 한번 돼보구 죽었으면 한이 없겠다, 아무리 뼈가 휘두룩 농사를 지어봤댔자 별수 없더라, 용칠이 이 사람아, 지금까지두 한동네 사는 친구였지만 앞으루는 좀더 가까이 지내자, 사실 말이지 에펜네보다야 친구가 낫지, 그래 옛말에두 있잖나, 에펜네 팔아서 친구 산다구.
낯선 청년은 덕구의 말끝마다 맞장구치듯이 그 입술만 살짝 들었다 내리는 웃음을 짓곤 했다.
세번째 주전자가 비자, 용칠이는 좀 쉬었다 먹자고 하면서 주머니에서 돈을 한 줌 쥐어내어 셈을 했다. 시퍼런 천원짜리뿐이었다. 필시 어느 노름판에서 한 손 쥔 게 틀림없었다.
용칠이와 낯선 청년이 골방으로 들어간다. 덕구도 뒤를 따라 들어갔다. 거기서 용칠이와 낯선 청년은 노름판을 펴놓는 것이다. 시퍼런 천원짜리가 마구 판에 나와 쌓였다.
얼마 동안 어깨너머로 두 사람의 노름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던 덕구가 슬쩍 돌아앉아 허리에 찬 전대를 풀어냈다. 그리고 십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판에 나와 있는 천원짜리 곁에다 놓았다. 소위 노름판에서 쓰는 말로 찌른다는 것을 해보려는 것이다.
청년이 그 입술만 살짝 들어 뵈는 웃음을 지으면서 덕구가 내다 붙인 십원짜리를 두 손가락으로 냉큼 집어 팽개치는 것이다. 이번만은 그 웃음이 사람을 얕보는 웃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용칠이도 덩달아,
“자넨 그만두게.”
하고 어린 사람 타이르듯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덕구는 술기운 탓도 있어서 은근히 약이 오를밖에 없었다. 사람을 넘봐도 푼수가 있지.
백원짜리 두 장을 댔다. 다음번에는 석 장, 다섯 장. 마음이 커진 것이다. 가다가 판에 댄 돈이 제곱을 물고 들어오는 수가 있었다.
그러나 밤이 이슥해서 술기운이 깨었을 즈음에는 돈전대가 거의 비어 있었다. 바작바작 가슴이 타고 진땀이 흐르건만 돈 잡은 손만은 추위를 못 견디는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내가 왜 이것에 손을 댔던가고 뉘우칠 때는 벌써 빈털터리가 돼 있었다.
죽고 싶었다.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죽어버리고 싶었다.
용칠이가 술상을 청해왔다. 덕구는 제 손으로 술을 따라 연거푸 마셨다. 죽고 싶었다. 술을 잔뜩 먹고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그대루 깨어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술이란 이상한 물건이다. 몇 잔 술에 뱃속이 후끈해지면서 마음도 누그러지는 것이다. 사내대장부가 노름을 해서 그까짓 돈 몇 푼 잃었다고 옹졸스레 이럴 게 뭐냐. 누구는 노름에 살림을 온통 망쳐 놓고도 살아가지 않더냐.
덕구는 고개를 들어 용칠이와 청년 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그 돈으루 엿만 사먹지들 말게.”
했다.
이것은 제법 노름꾼다운 말투인 것이다. 오늘 딴 돈을 없애지만 않으면 언제고 봉창²을 할 날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젓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이 밝거든 가라는 것을 굳이 우기고 밖으로 나섰다. 두 사람한테 자기의 호기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장거리에서 마을까지는 먼 이십 릿길이었다. 달도 없는 추운 밤길을 걸으며 덕구는, 오늘은 비싼 술을 먹었다, 그래 한번쯤 비싼 술을 먹었기로서니 어떠냐고, 혼자 중얼거렸다.
찬바람이 술기운을 쉬 날려버렸다. 문득 집에서 기다릴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락 판 돈을 어쨌느냐고 할 것이다. 친구와 얼려서 술 사먹었다? 안 될 말이다. 용칠이 그 녀석이 입으로는 에펜네보다는 친구가 낫고, 친구 중에서는 술친구가 제일이라 했겠다? 그래 그런 친구의 돈을 몽땅 따먹어야 옳단 말이냐. 이 천하의 날도둑놈 같으니라고. 그리고 고 낯짝 모르는 자식의 웃는 꼴이란 꼭 살쾡이 웃음이었겠다? 그러나 결국 그런 놈들한테 걸려든 자기가 어리석었다는 뉘우침이 가슴에 와 안겼다.
목구멍에서 컥컥 울음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런데도 눈에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게 더 가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마을 어귀에 이르러 점박이아주머니네 술막 문을 두들겼다. 부스스 눈을 비비며 나온 점박이아주머니는 덕구를 보고 깜짝 놀라며,
“조서방 이게 웬일이우, 오밤중에?”
“장에 갔다 도둑을 만났어요.”
“아유, 저런 변이 있나. 어서 들어오우.”
“글쎄 난데없이 두 녀석 이 달려들어 골통을 치지 않겠어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구 쓰러졌다가 나중에 깨어나 보니 나락 판 돈을 홀딱 훔쳐갔군요.”
“큰일날 뻔했네. 그래두 사람 상허지 않은 게 다행이지.”
“막걸리 한 사발만 주슈.”
한 사발이 아니고 두 사발을 마셨다.
“술값은 나중에 주리다.”
덕구라면 얼마든지 외상을 놓아도 좋은 것이다.
“그 걱정은 말구 어서 집으루나 가보우. 오죽이나 집에서 기두릴라구.”
막걸리 두 사발을 마셨건만 어쩐 일인지 머릿속이 말똥말똥해지기만 했다. 아내에게는 역시 길에서 도둑을 만났다고 하는 수밖에 .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틀린 생각만 같았다. 도둑이나 강도를 만나 설혹 자기가 죽음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돈만은 살아돌아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다시금 죽고 싶었다. 자기 집 사립문을 들어서면서 돈전대로 목을 맬까 했다.
거기 장독이 눈에 띄었다. 저놈을 퍼먹고 죽으리라. 달려가 간 장 한 바가지를 듬뿍 퍼냈다. 그러나 다섯 모금도 못 마시고 그 자리에 엎어져 토하기 시작했다. 장거리에서 먹은 것까지 게워버렸다. 공연히 간장 한 바가지마저 헤실³이 간 것이다.
사흘 동안이나 자리에 누워 있었다.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자기가 한 짓에 속이 상했던 것이다.
그 후부터 마을에는 덕구에 대한 놀림말 하나가 생겼다. 금년에 간장이 모자라지 않나? 하는 말이다. 그러면 덕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이 새빨개져야만 했다.
이렇던 덕구가 군대에서 돌아오자 아주 달라진 것이다.
돌아온 날로 마을에서는 추렴을 하여 환영회를 열어주었다. 그 자리에서 덕구는 술에 별반 취하지 않고 한마디 한 것이다. 전쟁터에서는 사람의 죽음 같은 것은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나 나무토막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체를 봐도 눈곱만큼도 끔찍하다든지 언짢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적이 놀라는 빛을 하자, 덕구는 한 번 히힝하는 웃음을 웃었다. 김중사의 웃음을 본딴 것이다.
덕구가 대구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때 김중사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부터 덕구는 이 웃음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때도 덕구는 히힝하는 웃음과 함께 한쪽만 남은 눈을 들어 동네 사람들을 둘러보고 나서, 그러니 살아생전에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짓 다 해야 한다고 했다.
실지로 이 말을 행동에 보이기라도 하려는 듯이 덕구는 날마다 점박이아주머니네 술막에서 살았다. 그리고 술에 취해가지고는 전에 없이 농말까지 거는 것이다.
“아주머니 올해 몇이시우?”
“별안간 남의 나이는 왜? 올해 서른일곱이라우.”
“참 딱하게 됐군. 다섯 살만 덜 먹었어두 내가 한번 데리구 살아보는걸.”
“저 사람이 환장을 했나.”
“아뇨. 정말 아주머니의 그 귀밑의 사마귀가 정이 들거든요.”
점박이아주머니는 눈을 한 번 흘길 뿐 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저렇게 사람이 못되게 변할 수 있을까 하면서도 군대에서 갓 돌아온 덕구의 비위를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용칠이도 덕구를 대하는 품이 전과는 판이했다. 덕구를 한 수 높이 보는 것이다. 소집영장이 나올 적마다 어떻게 묘하게 그것을 피해내는, 근동에 둘도 없는 난봉꾼이요 노름꾼인 용칠이가 제대하고 돌아온 덕구한테는 한풀 꺾이는 눈치였다. 되도록 덕구를 앞세우고 다니려 했다.
둘은 재 너머 술집에도 갔다. 재 너머 큰 마을에는 목포집이라는 제법 술집다운 술집이 하나 있었다. 목포에서 왔다는 늙수그레한 여인이 경영하는 술집으로 서울서 데려온 색주가가 하나 푼수로 늘 떠나지 않는 집이었다. 젊은 축들은 이 목포집 색주가가 손수 따라주는 술을 한번 받아 먹어봤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고 있다. 그것을 용칠이만이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이제는 덕구를 이끌고 가 밤을 세워가며 술을 마셔대는 것이다. 물론 술값은 용칠이가 맡았다.
그리고 둘은 장거리에도 나갔다. 거기서 덕구는,
“약준 싱거워서 안됐어. 정종으로 해야지.”
그러면 따끈히 데워진 정종이 들어오는 것이다. 안주는 낙지회 따위만이 아니었다. 불고기며 갈비 같은 것이 상에 오르기가 일쑤였다.
이전의 그 입술만 살짝 들었다 내리는 웃음을 웃는 친구도 만났다. 덕구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이 청년을 쏘아줄 수 있었다.
“그 살쾡이 같은 웃음 작작 웃어라.”
그러면 그 뒤부터 이 청년은 덕구 앞에서 그런 웃음을 삼가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덕구의 한쪽만 남은 눈은 술로 해서 붉게 충혈된 채 맑아질 날이 없이 언제나 눈꼬리에 비지가 끼게 되었다. 하루 세 끼의 밥보다도 술을 더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덕구의 행색이 정말 건달패의 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한번은 놀라운 소문이 하나 마을에까지 전해졌다. 장거리에서 덕구가 어떤 사람을 때려서 이빨을 모조리 부러뜨려놓고도 무사했다는 것이다.
그날 용칠이와 어떤 사람이 예의 주막집 골방에서 노름을 시작했다. 덕구는 술이 거나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용칠이가 판의 돈을 거의 다 거둬들였을 즈음이었다. 갑자기 상대편 사내가 용칠이의 손에서 투전장을 빼앗아다 펴 보더니 대뜸 일어나며 용칠이의 멱살을 잡는 것이었다. 여태껏 속임수를 썼다는 것이다.
주먹과 발길이 오가고 엎치락뒤치락 큰 싸움이 벌어졌다. 상대편 사내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그냥 내버려두면 용칠이 편이 녹아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덕구가 용칠이를 깔고 앉은 상대편 사내의 면상을 냅다 발길로 질러버렸다. 사내가 벌떡 뒤로 자빠지며 입을 푸푸거리더니 피거품과 함께 이빨 두어 개를 뱉았다.
지서로 끌려갔다. 그러나 덕구가 상이군인인 데다가 술에 취해 가지고 한 짓이라 하여 그리 시끄러운 일 없이 풀려나왔다.
다시 술자리를 만들자 덕구는,
“언젠가 나허구 할 때두 속였지?”
용칠이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면서,
“지난 일은 말허지 마세. 우리 피차 사내자식이 아닌가.”
그리고 손에 잡히는 대로 돈 얼마를 꺼내어 덕구 주머니에 찔러주며,
“참 오늘 자네 아니었드믄 큰코다칠 뻔했네.”
그러면 덕구도 짐짓 사내답게,
“그래서 친구가 좋다는 거지. 더구나 한동네 사는 술친구가.”
이런 덕구의 생활이 지난해 여름 제대해가지고 돌아와 이듬해 해토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그동안 대개 용칠이와 어울려 다니면서 거저 얻어먹고 지낸 셈이긴 했다. 그렇다고 전연 자기 비용이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제대하면서 여비로 받아갖고 나온 얼마큼의 돈은 한푼도 살림에는 보태 써보지도 못하고 죄다 날려버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내가 혼자 고양이 낯짝만 한 토지에서 애써 거둬들인 곡식톨마저 한 되 두 되 퍼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본시 아내는 살림에 강박한 여자였다. 이 아내가 그러나 남편의 하는 짓을 일일이 타박하고 악을 쓰려 하지는 않았다. 그 험악한 전쟁터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와준 것만도 과분할 만큼 감사한 것이다. 그것도 팔이나 다리가 아니고 한쪽 눈만 상해갖고 돌아와 준 것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한쪽 눈이 없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으나 말이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믿고 싶었다. 언제까지나 남편이 지금과 같은 대로만 있지 않으리라. 그래서 남편이 밖에 나가 떠돌아다니다가 지쳐서 돌아온 날 밤은 해어진 남편의 군복 바지저고리를 꿰매면서 이것이 이렇게 닳아 떨어져나가듯이 남편의 거친 마음씨도 차차 가시어주기만 바랐다.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모르던 덕구의 심정이 장거리에서 어떤 사내의 이빨을 부러뜨리고 나서는 약간 변해진 듯했다. 군대에 있을 때는 그까짓 사람의 이빨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얼마든지 힘 안 들이고 총알을 날려보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쪽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장거리에서 어떤 사내의 이빨을 부러뜨린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쪽의 생명이 위태로워서 한 짓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술에 취했을 동안은 자기가 한 짓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난 용칠이 네 녀석과는 다르다, 네 녀석은 언젠가 내 나락 팔아가지고 돌아가는 돈을 몽땅 속여먹었지만 난 그렇지 않다, 네 녀석처럼 딴 주머니는 안 차고 다니는 사람이다, 한동네 사는 친구를
친구로서 알아보는 사람이다, 하는 심정 이 되어.
그런데 술이 깨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자기가 한 짓이 마음에 개운치가 않은 것이다. 서로 처지를 바꿔놓고 본다면 그편에서 얼마나 분해할 노릇이겠는가. 어디서고 그 사내를 만날 것이 남몰래 겁이 났다. 자연히 장거리에 드나드는 도수가 뜸해졌다. 본래의 소심하고 겁이 좀 많던 상태로 얼마간 돌아간 듯했다.
마을에 있을 때에도 전처럼 점박이아주머니네 술막에 가 붙어있지를 못했다. 그동안의 외상 술값이 적잖이 밀려 더는 술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집에서 들고 나갈 물건이나 곡식도 없었다. 아침저녁 시래기투성인 보리죽으로 간신히 끼니를 때우는 형편인 것이다.
동네에서들은 벌써 금년 농사를 위한 거름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덕구는 선뜻 일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전쟁터에서 방아쇠 잡아당기던 손가락의 굳은살은 다 풀렸건만 제대하고 돌아와서부터 계속된 생활이 그로 하여금 자연 그렇게 만드는 것이었다. 어쩐지 자기가 일손을 잡는다는 것이 동네 사람들 보기에 겸연쩍은 것이다.
그러할 즈음에 얼마 동안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용칠이가 돌아왔다. 곧 또 점박이아주머니네 술막에서 얼렸다. 술이란 끊었다가 마시면 더 빨리 취하는 법이다. 어느새 덕구는 눈 가장자리가 빨개져가지고,
“뭐니뭐니 해두 이게 제일야. 이것만 들어가면 근심 걱정이 씻은 듯 없어지거든.”
점박이아주머니가 한마디 ,
“집의 마누라는 어떡허구?”
“난 술이나 먹구 에펜넨 그거나 멕이면 되죠 뭐.”
곁에서 용칠이가 그 말을 받아,
“그렇지. 애에겐 젖이나 멕이구, 개는 똥이나 멕이구.”
“아니 우린 애두 없구 개두 없으니깐 그 걱정은 안 해두 돼.”
점박이아주머니는 술 취한 놈들의 허튼수작이라 참견을 안 하려다가 그래도 한마디 더,
“조서 방두 인제 곧 아버지가 될 걸.”
“그깐 놈이야 뭐 내가 나오래서 나오는 놈인가. 저 먹을 것 달구 나오면 사는 거구 그러잖으면 죽는 거지.”
입으로는 이렇게 지껄이지만 속으로는 노상 켕기지 않은 바도 아니다. 언젠가 동네 사람한테 들은 말이 있었다. 자기네 집안은 자손이 바르다⁴는 것이다. 소집돼 나갈 때만 해도 덕구는 자기네에게 애라도 하나 있어줬으면 마음이 좀 든든할 것 같은 생각을 가져본 기억이 있었다. 그것이 이번에 아내가 임신하여 이미 여덟 달째 접어든 것이다. 요즈음 와서는 아내가 바느질감을 잡고 앉아서도 거북하게 어깨숨을 쉰다. 대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건만 덕구는 어지러운 생활 속에 이 문제를 잊어버리기가 일쑤였다.
이날 밤 덕구는 집으로 돌아오며 자기는 이제 여러 가지 것을 한꺼번에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 느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적어도 제대하고 돌아와서부터 밀려오던 생각들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한 가지라도 이렇다 하고 갈피를 잡아 결정지을 수는 없었다.
오줌이 마려웠다. 거기 아무 데서나 누려다가 문득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오줌만이라도 자기네 집 오줌독에다 누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것만은 다른 생각에 앞서 또렷했다.
그로부터 덕구는 조금씩 집안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짚신도 삼고, 산에 올라가 나무도 해오고, 이제 밭갈이할 때는 누구네 소를 빌려달라고 할까 하는 긍리도 하게끔 된 것이다.
그런데 한 스무 날 전이었다.
마을에 상스럽지 못한 일이 하나 생겼다. 뒷산 밑 대추나뭇집 할머니네 씨암탉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이다. 그날 아침에도 분명히 있었는데 저녁 녘에 홰에 오를 때 보니 온데간데없어진 것이다. 원래 족제비나 살쾡이가 나도는 동네가 아니었다. 필시 누구 사람의 짓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누구라는 것이 은연중에 누구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도 서로 알았다. 덕구인 것이다. 그로부터 집 집에서는 제각기 닭 간수에 조심을 했다.
마침 그즈음 마을에 돌아와 있던 용칠이가 덕구와 함께 점박이아주머니네 술막에서 술을 마시 다가 무슨 말 끝엔가,
“덕구 자네 그런 줄 몰랐드니 아주 내숭스런 사람이드군.”
하여 덕구가 뭐냐고 하니까.
“혼자 몰래 재 너머 목포집만 찾아댕기구.”
용칠이는 다 안다는 듯이 눈을 연신 꿈쩍거리면서,
“그래 어떻든가. 이번에 서울서 새로 색주가가 왔다믄서? 이쁘든가? 저번 것은 상판대기는 반반했지만 몸뚱이가 글러먹었어. 볼기짝에 어디 살거리가 있어야지. 그래 이번 것은 몸두 쓸 만하든가.”
여기서 용칠이는 약간 목소리를 낮추어가지고,
“통닭을 삶아놓구 단둘이 술잔을 건네면서 노는 맛이 괜찮지?”
그제서야 덕구는 용칠이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예의 히힝하는 웃음을 한 번 웃었다.
“맘대루 지껄여! 이 덕구가 변명 같은 걸 할 줄 알어? 난 네 녀석과 다르다!”
조금 이따 덕구는 그동안 술기를 끊어 맑아졌던 오른쪽 눈에 핏줄을 세우고 술청 밖으로 나서면서 동네 안쪽을 향해 외쳤다.
“이봐라아, 닭 조심만 해선 안 된다아! 소 조심두 해라아, 소 조심을!”
그리고 바로 어제였다.
어디 가 있던 용칠이가 또 마을로 돌아왔다. 덕구와 점박이아주머니네 술막에서 어울렸다. 닭 사건이 있은 후로 덕구는 다시금 일에 손이 붙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밤이 어지간히 깊어 술들이 취해가지고 술막을 나오면서 용칠이가,
“참 분해서 못 견디겠네.”
하는 것이다.
장거리에 웬 놈팽이 하나가 돈을 무지하게 많이 갖고 나타났는데 이것을 따먹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놈팽이의 말이 이쪽의 밑천도 보고야 노름을 하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글쎄 다 잡은 고기를 놓치는 것두 푼수가 있지, 제발루 굴러들어오는 돈뭉치를 눈앞에 두구 마다구 하는 격이 됐으니. 그래 내 오늘 여기 온 것두 다른 게 아니라, 삼돌이네한테서 돈 얼마를 빌려가려구 왔어. 그랬는데 그 영감쟁 이가 막 쓴외⁵ 보듯이 대꾸두 안 하지 않겠어?”
덕구는 취중에도 이 친구가 정신이 나가지 않았나 싶었다. 삼물이 아버지가 다른 사람도 아닌 용칠이 같은 노름꾼에게 단돈 한 푼인들 내놓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것을 용칠이 자신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러고 보면 이 친구가 장거리에 나타났다는 놈팽이한테 돈을 잃고 그것을 봉창하기 위해 눈이 뒤집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용칠이의 안색이 전과 달리 수심 빛이
껴 있는 것 같고, 무언가 조바심하는 듯한 기색이 엿보이더라니.
그러나 덕구는 그런 낌새를 눈치 챈 내색을 보일 필요가 없어서,
“그 영감쟁이가 누구라구. 구두쇠라두 이만저만 구두쇠라야지. 글쎄 일전에 나두 보리쌀을 좀 꾸러 갔다가 퇴짜를 맞았어.”
사흘 전에 덕구는 보리쌀 한 말을 꾸러 삼돌이네 집에 간 일이 있었다. 마을에서는 이 삼돌이네가 그중 오봇한 농사꾼인 것이다. 그랬더니 삼돌이 아버지가 대뜸, 전의 헤실간 간장 생각을 다시 하게 된 다음에 오게, 하는 것이다. 지난날 덕구가 나락 판돈을 노름에 잃고 집으로 돌아와 죽을 요량으로 간장을 퍼먹고는 나중에 그 간장만 더 손해를 봤다고 뉘우친 일이 있는데, 그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말 속에는 덕구가 다시 그때처럼 존절한 살림을 하는 농사꾼이 된다면 보리쌀을 꾸어줄 수 있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덕구는 속으로, 미친놈의 영감쟁이 같으니라고 어디 두고 보자, 앞으로 밭갈이를 못하면 못했지 네 영감쟁이네 소는 빌려달라고 않겠다고 자못 못마땅해 했던 것이다.
용칠이는 혹시나 덕구를 대신 시켜 삼돌이 아버지한테 청을 대보면 어떨까 했던 희망이 무너지자,
“제기랄, 벽창호 같은 영감쟁이라 당최 남의 죽는 사정두 몰라주거든.”
덕구도 덩달아,
“그놈의 영감쟁이 그렇게 제 욕심만 부리다간 옳게 못 뒈지지, 옳게 못 뒈져.”
이날 밤 삼돌이네 집에 불이 났다.
덕구가 마악 집으로 돌아와 아무렇게나 쓰러져 풀낏⁶ 잠이 들려고 하는데 밖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나고, 아내가 밖으로 뛰어 나갔다 황급히 뛰어 들어오면서 ,
“여보 큰일났수, 삼돌이네 집에 불이 났어요.”
덕구는 그러나 잠속의 소리로,
“응 불?”
“응이 뭐예요. 어서 좀 나가봐요.”
“흥, 그놈의 집에두 불이 붙겠지. 철갑이 아닌 바에야.”
그러고는 저쪽으로 돌아누워버리는 것 이다.
이런 일이 있은 오늘 아침 덕구의 아내는 남편의 거동만 살폈다. 다행히 어젯밤 삼돌이네 집은 외양간 하나만 탔다. 그리고 불난 것을 마침 집안사람이 뒷간에서 나오다 곧 발견했기 때문에 소도 무사히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덕구 아내에게 있어서는 그런 것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대체 불이 어떻게 났는가 하는 것이다. 삼돌이네 칩에서들은 저녁때 재를 잘못 내다버린 탓이라고 하지만 그건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반드시 누가 지른 불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그것이 아무래도 남편인 것만 같았다. 어젯밤 남편의 태도에 수상쩍은 데가 있었다. 온 동네 사람이 모두 나와 불을 끄느라고 야단법석을 했건만 남편은 종시 바로 이웃에 살면서 얼굴도 내밀지 않은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흥, 그놈의 집에두 불이 붙겠지, 철갑이 아닌 바에야, 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당찮은 소린가 말이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떨려 못 견디겠는 것이다. 술을 처먹고 떠돌아다닐 때가 오히려 나았다. 저번에 대추나뭇집 할머니네 씨암탉이 없어졌을 때만 해도 마을에서 쑥덕공론하는 것을 차마 견디기 어려웠는데.
“여보, 인제 우리는 이 동네 다 살았수.”
이 말에 희벌건 시래기죽을 떠먹고 있던 덕구가 아직 술기운이 덜 가셔 불그레한 한쪽 눈을 치켜뜨며,
“왜?”
“남 보기가 부끄립구 무서워 어떻게 살우?”
“걱정두 팔자지, 어서 먹을 거나 처먹어.”
덕구의 아내는 그때까지 자기 죽그릇에는 숟가락도 안 대고 있었던 것이다.
“글쎄 어쩌자구……”
“뭘 말이야? 삼돌이네 집에 불난 것 말야? 그깐 놈의 집 몽땅 타버렸음 어 때.”
“아니 것두 말이라구 하우?”
“외려 소 안 타죽은 게 천행이지.”
“참말 당신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저번에는 대추나뭇집 할머니네…….”
“이 망할 년이 끝내……”
덕구는 후딱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점박이아주머니네 술막으로 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일어서면서 잘못하여 앞에 놓인 죽사발을 넘어뜨려버렸다. 그러자 홧김에 아내의 죽사발마저 차 엎어버렸다.
“잘한다, 잘해. 목구녕에 시래기죽물 넘어가는 것두 원수지, 원수야.”
“이 우라질 년이!”
물론 덕구로서는 그렇게까지 할 의사는 아니었다. 그저 아내를 향해 한번 발길질을 한다는 것이 공교롭게도 아내의 아랫배를 걷어차버린 것이다.
아차 할 사이도 없이 아내가 아그그그 소리를 지르며 배를 안고 한옆으로 쓰러졌다. 대개 사람이란 이런 경우에 자기의 실수를 깨달으면서도 모른 체해버리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건 소심한 사람일수록 더한 법이다. 덕구도 지금 얼굴이 파랗게 질려 비명을 지르고 있는 아내를 남겨둔 채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리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모두 다 뒈져라, 모두 다 뒈져.
술막에는 벌써 용칠이가 와 앉아 해장을 하고 있었다. 이 용칠이만은 어젯밤 불 끄는 데도 한몫 끼었던 듯, 얼굴에 그을음이 묻고 이마와 목덜미에 무엇에 쓸린 자국도 나 있었다.
덕구와 용칠이는 서로 눈길이 마주쳤다. 그리고 누구 편에서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시선을 돌려버렸다. 덕구는 말없이 용칠이 곁으로 가 술잔부터 들었다. 거기에 삼돌이 어머니가 달려 들어왔다.
“역시 예 와 있었군. 어서 집으루 가보게. 자네 안사람이 부르네.”
삼돌이 아버지가 무뚝뚝하고 투박스러운 데 비겨 삼돌이 어머니는 무던히 상냥하고 인정이 많았다. 일전에 덕구가 삼돌이 아버지한테 보리쌀을 꾸러 갔다 빈손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뒤로 몰래 삼돌이 어머니가 보리쌀 얼마를 가져다준 것이었다. 이 삼돌이 어머니는 또 남의 궂은일 돌봐주기를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애 받는 솜씨가 아주 용해서 누구네 집에서고 산고만 있으면 불러가는 것이다. 소문에, 거꾸로 나오던 애도 삼돌이 어머니의 손만 가닿으면 바로잡혀 나온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아마 지금도 덕구 아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는 어젯밤 자기네의 불소동 뒤치다꺼리도 제쳐놓고 와서 구완을 해주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점박이아주머니가 술청 안에서 ,
“아주머니, 무슨 일이라두 생겼수?”
큰 소리로 물었다.
“글쎄, 이 사람네 안사람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지 않어?”
“아니 인제 여덟 달밖에 안 됐을 텐데요?”
“그러기 말이지 .”
점박이아주머니도 그제야 무엇을 눈치 챈 듯 덕구 쪽을 흘깃 바라보며,
“조서방이 또 못할 짓을 한 게로군요.”
“글쎄, 어쩌자구 발길질을 함부로 헌담. 꽤 하혈을 했어. 애는 어찌 됐든 어른이나 무사해야 할 텐데. 이 사람, 어서 일어나게. 자네 안사람이 헐 말이 있다네.”
잠자코 술만 마시고 있던 덕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모두 다 뒈지래요. 일선에서 죽는 사람에 대면 약과예요, 약과.”
삼돌이 어머니가 끌끌 혀를 차고 나서 할 수 없다는 듯이,
“그럼 내가 먼저 가보겠네. 뒤루 곧 오게.”
덕구는 그냥 술잔만 기울였다. 왜 그런지 술에 취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점박이아주머니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반되 푼수나 혼자 마시고 나서야 덕구는 말없이 자리를 떠 밖으로 나왔다. 한쪽만 남은 눈에 이상한 광채가 서려 있었다.
덕구는 자기도 아내에게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년, 네년이 더 나한테 할 말이란 뭐냐. 실은 내가 네년에게 할 말이 있다. 네년이 뒈지기 전에 꼭 할 말이 있다.
그러나 그는 집 가까이 이르러 방 안에서 새어나오는 아내의 신음 소리와 삼돌이 어머니의 무어라 달래는 말소리를 듣자 그만 발걸음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딴사람이 있는 데서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뒷산 기슭으로 올라가 거기 양지바른 곳에 앉았다. 따뜻이 내리 쬐는 볕에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드러누웠다. 그리고 그대로 노그라져 잠이 들어버렸던 것이다.
산그늘이 지고 저녁 바람이 일었다.
덕구는 자기 목을 한 번 어루만지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추위 때문만이 아니었다. 금방 꾼 흉악한 꿈이 몸에 배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 밧줄 끝에 붙어 굴러 내려가던 붉은 핏덩어리가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이렇게 꿈자리가 사나운 걸 보면 필경 아내는 하혈을 한 채 일을 당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구는 지금 꿈 아닌 생시에 자기 몸이 어떤 깊은 구렁텅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함을 느꼈다.
그대로 거기 앉아 있을 수만도 없었다. 일어나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는데 몇 발 걷지 않아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좀 전에 잠이 깨자마자 이 비슷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꼴꼴거리는 소리. 그것이 사람의 소리가 아닌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소리 나는 데로 더듬어 갔다. 이번에는 까아꺄아하고 야무진 소리를 지른다. 닭이었다. 암탉 한 마리가 지난해 마른 풀숲 속에 알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웬 닭이 이런 데서 알을 품고 있을까. 다음 순간, 요 망할 것이 여기 와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대추나뭇집 할머니네 집을 노려보았다.
어쩌다가 알 자리를 잘못 잡는 암탉이 있는 것이다. 감쪽같이 사람 모를 곳에다 알을 낳아놓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안는 것이다. 주인집에서는 닭 한 마리를 잃은 것으로 알밖에 없다. 그래서 아주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을 즈음에 뜻밖에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암탉이 스무남은 마리나 되는 병아리를 소담스러이 거느리고 나타나는 수가 있는 것이다.
흥, 빌어먹을 놈의 할미 같으니라구, 이런 걸 가지구 공연히 남을! 덕구는 대추나뭇집 할머니네 집을 쏘아보며 뇌까렸다. 그 달음으로 달려가 야단을 쳐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덕구의 마음은 딴 데 있었다.
손을 내밀어 닭의 모가지를 잡아 비틀었다. 그다지 푸드덕거리지도 못하고 잠잠해졌다. 이래서 모가지란 편리하거든. 닭 몸집도 사뭇 가벼웠다. 그래도 몇 잔 술안주야 되겠지. 달걀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내 생각이 났다. 이년아, 봐라, 네년은 날 닭 도둑놈으로 몰고 게다가……그래 네년이 뒈지기 전에 나도 할 말이 있다.
술막으로 갔다. 점박이아주머니가 덕구를 보자,
“그새 어디 갔었수?”
그리고 손에 들린 닭을 내려다보며,
“건 또 웬 닭이구?”:
“웬 닭은 웬 닭예요, 벌써 전에 값을 치러뒀든 걸 지금 가져오는 거지. 그런데 용칠이는 어디 갔나요?”
“조서방 나간 뒤루 곧 나가든데.”
“그 친구가 있었음 좋겠는데. 좌우간 이걸 튀⁷해 삶아주시우. 통닭으루. 술 한잔 먹어야겠수.”
닭을 받아든 점박이아주머니가 털 빠진 닭의 배를 들여다보며,
“아니 이거 안는 닭⁸ 아니우?”
“왜 안는 닭 먹으면 죽나? 훔쳐온 건 아니니 염려 말구 어서 튀겨나 줘요. 값은 다 치르구두 남은 거예요. 아, 참, 우선 이걸 먼저 그 솥에 넣어 삶아주시우.”
호주며니에서 달걀 몇 개를 꺼내어 내주는데 점박이 아주머니가,
“안직 집엔 안 들어갔수?”
덕구가 그 말에는 언뜻 대꾸를 못했다. 다음에 나올 말이 겁나는 것이다.
“조서방이 요즘 허구 댕기는 행실 봐선 과분하지. 글쎄 몸을 풀었는데 팔삭둥이의 울음소리가 큰애 울음소리 같드래지 않아. 참 복두 많지.”
덕구는 목구멍 속으로 뜨거운 숨결을 삼켜 넘겼다. 그리고, 그게 참말이에요? 한다는 것이 그만 생각과는 달리,
“낳아놓기만 하면 뭘 해요.”
“그러나 조서방두 이젠 애비 구실을 톡톡히 해야 할걸.”
“어서 그 달걀이나 솥에 넣우. 그리구 술이나 따르슈.”
좀 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얼른 술을 한잔 마시고 싶은 것이다.
“오늘만은 특별히 외상을 주지만 다음부턴 안 돼요.”
정말 오늘은 특별한 날인 것이다. 아침에 뜻하지 않은 실수를 하고 나서는 내심 떨고 있던 차에, 아내가 팔삭둥이나마 무사히 낳았다니 마음이 확 풀리는 것이다. 이제 용칠이만 곁에 있어서 이 대추나뭇집 할머니네 암탉을 좀 보여줄 수 있었으면 참 재미있겠는데.
“용칠이 그 친구가 어델 갔을까. 또 장거리 쪽으루 갔나.”
점박이아주머니가 생각난 듯이,
“참 아까 나가면서 혼잣소리루, 덕구가 무서워 못 견디겠다구 그러든데.”
“내가 무섭다구요?”
덕구는 저도 모르게 히힝하는 웃음을 웃고 나서, 그러고 보면 그렇기도 하겠군, 내가 무섭기도 하겠군, 필경 제 녀석이 삼돌이네 집에 불을 놓았다면 내 입이 무섭기도 하겠지, 그렇다면 제 녀석이 좀처럼 마을에는 못 돌아올걸. 그러나 안심해라 난 아무 말도 안 할 테니. 술을 들이켰다.
“아주머니, 어서 그 달걀 좀 주슈.”
그러자 삶은 달걀 껍데기를 벗기고 있던 점박이아주머니가 별안간,
“아이 깜짝야!”
하고 들고 있던 달걀을 떨어뜨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보니 껍데기를 헤친 달걀 속에 병아리가 다 된 것이 들어 있는 것이다. 노란 덜 밑에 발그레한 발목이 오그라들어 있었다. 달걀이 저렇게까지 돼 있었던가. 하기는 닭 사건이 있은 지도 벌써 한 스무 날 잘 되는 것이었다.
점박이아주머니가 다른 달걀 하나를 더 집어 깨어보고 도로 놓으며,
“쯧쯧, 어디서 다 까게 된 달걀을……”
“거 다 값을 치른 거예요. 그리구 그런 걸 먹어야 약이 되거든요.”
덕구는 다시 한번 히힝하는 웃음을 웃고 나서,
“아주머니는 몰라서 그렇지, 전쟁터에선 급해지면 못 먹는 게 없답니다.”
점박이아주머니가,
“어디 그 생달걀을 이리 좀 줘봐요.”
그러고 덕구가 내주는 달걀을 받아들고는,
“이것 보지, 이렇게 속에서 병아리가 오무작거리는 거.”
새삼스러울 것 없다. 한 스무 날 잘 된 달걀이니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이것 봐, 이건 병아리 소리까지 들리네.”
이것도 하등 신기할 게 없다. 그러면서도 덕구는 저도 모르게 호주머니 속에서 달걀을 하나하나 꺼내놓고 있었다.
“어마, 이건 또 껍데기까지 쪼구·…‥ 금방 까게 된걸…….”
왜 이렇게 점 박이아주머니가 수다를 떨까 싶어,
“여기 술이나 더 따르슈.”
“글쎄 아무리 닭새끼라도 원…… 누구네 집에 안는 닭이 없나, 이걸 품겨줄 만한……”
여자란 역시 할 수 없다 싶었다. 어디까지나 곰살스러운 것이다.
여기서 덕구는 다시금 히힝하는 웃음을 웃으려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게 제대로 돼 나오지가 않았다. 아무 신기할 것이 없다고 여겼던 점박이아주머니의 말이 불현듯 마음에 와 걸린 것이다.
다음 순간, 덕구는 자기 가슴 속에서도 무엇이 오무작거리고, 가슴을 쪼고, 울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 한낱 속삭임같이 가냘픈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 자기네 팔삭둥이의 울음소리로 변해갔다. 그러자 그는 여태까지 느껴본 어떤 무서움보다도 색다른, 난생처음 맛보는 야릇한 두려움을, 이 값을 다 치렀다고 생각했던 눈앞의 조그만 달걀에게서 느껴야만 했다.
-끝-
2016년 5월 11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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