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작입니다.
글 쓰는 내내 그 아이, 수한이를 떠올렸습니다.
내게 이 글을 쓸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해 준 아이.
이 글의 80% 정도는 자폐증을 앓고 있던 수한이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1학년 담임을 할 때,
우리 교실 바로 옆반이 특수반이었고
오며가며 수한이와 자주 만났었지요.
꼬맹이들에게 놀림을 당했던 수한이는
그 누구보다 맑고 따듯한 아이였습니다.
은색종이에 담긴 노래
잘못 빚은 메주처럼 비뚤한 동그라미 하나,축 처진 강아지의 예쁜 귀 닮은 세모가 둘. 금세 사탕 하나가 그려집니다. 영우는 땅바닥에 그린 사탕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킵니다.
'하아,사탕!'
영우의 감탄에 마치 사탕이 뿌스럭뿌스럭 몸을 뒤척이는 것 같습니다.
“영우야, 사탕 먹고 싶으면 우리 교실로 와. 선생님이 사탕 많이 줄게. 다른 교실에 가 서 사탕 그냥 가져가면 안 돼. 혼난단 말이야. 알았지?”
안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사탕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 목소리입니다. 선생님 앞에서는 헤죽이 웃었을 뿐,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영우는 이제야 신이 나서 '에 ~ !'하고 대답을 합니다.
영우의 손에는 그림을 그리느라 마당가에서 주워온 나무꼬챙이가 들려 있습니다. 영우는 꼬챙이 끝에 뭉쳐진 진흙을 떼어 손가락으로 비벼봅니다. 뭉개진 초콜릿 색깔입니다.
'아유~ 우리 영우,노래도 잘 부르는구나! 자,손 내밀어 봐!'
영우가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면,안 선생님은 조그만 초콜릿을 준비해 놓았다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곤 하셨습니다.
“아빠하고 나하고 닮은 곳이 있어요. 아빠하고 나하고 닮은 곳이 있어요. 눈~땡,코~땡, 입~딩동댕!”
영우가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노래입니다. 언젠가 1학년 복도를 지나다가 안 선생님의 고운 목소리에 이끌려 창틀에 매달린 적이 있습니다. 그 때,안 선생님은 반 아이들과 이 노래를 부르고 계셨습니다. 영우는 그림 속 공주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선 새앵 님!”
쪼그려 앉은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영우가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접어 보입니다. 엄지만큼 좋은 사람은 지금 마루에 앉아 파를 다듬으시는 할머니,검지손가락에 드는 사람은 안 선생님입니다. 안 선생님은 1학년 진달래반 담임이십니다. 영우가 공부하는 특수반의 바로 옆 교실이지요. 안 선생님은 교실로 불쑥 들어간 영우가 학급문고 위에 올려놓은 사탕바구니에서 사탕을 한 움큼씩 들고 나와도 화내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학용품을 만지작거려도 쫓아내지 않습니다. 영우를 보면 이야기를 걸어주고 따뜻한 웃음을 나누어 주시는 분. 그런 안 선생님을 영우는 참 좋아합니다. 어렴풋이 영우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돌아가신 엄마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영우 그림놀이 하는가베. 그래야지. 전날처럼 혼자 돌아댕기면 큰일 나지. 저 웃동 네 나쁜 형아들이 또 때릴라꼬 달라들면 우짤꺼고.”
할머니는 다듬은 파를 수돗가로 들고 가시며 연신 진흙 묻힌 손가락을 비벼대는 영우를 바라봅니다. 영우는 뭔가를 손에 쥐었다하면 손가락으로 돌리거나 비벼대는 버릇이 있습니다. 첫째, 둘째손가락의 지문이 다 문드러질 정도이지요.
'불쌍한 내 새끼! 지 애미 일찍 가고 얼매나 외로바시몬 저런 병이 왔으까? 칭구하고 어 울리지도 안하고, 말 몬한다고 나이 애린 동생들한테 바보라꼬 놀림이나 당하고. 저래 손 가락을 비벼쌓는 것도 다 하고싶은 말을 몬해 그럴끼다.'
파를 흔들어 씻던 할머니는 문득, 어제 시장 통에서 만난 울산댁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성한 아도 아인데 일반학교에는 와 보내능교? 우리 손주도 우울징인가 자폐징인가 그런 끼가 보인다캐가 특수학교에 입학시켰다아임니꺼. 마 놀리는 아도 엄꼬,선생들이 마침 맞 게 공부를 시킹까네 지 애미가 맘이 좀 놓이는 갑던데. 성님도 빨리 마음 바꾸이소! 아아 고상시키지 말고요.”
'우짜몬 조을꼬!'
할머니의 입에서 메마른 한숨이 새어나옵니다.
'배 타러 나간 지 애비가 들어와야 의논이나 해 볼낀데…아아들만 손 안대면 학교를 만다 꼬 옴길끼고, 으휴~. '
한숨 끝에 한 달 전의 그 일이 또 생각이 난 할머니는 마음이 언짢아집니다.
점심 무렵, 따사한 햇살이 아까워 이불 빨래를 내 말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할머니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이불 털던 손길을 잠시 멈추셨지요. '애앵~.' 낯설지 않은 저 소리, 할머니가 소리의 주인공이 영우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노랑 은행잎이 팔랑 떨어지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영우가 5학년 형들한테 두들겨 맞았어요.”
황급히 밀어 젖힌 대문 밖에는 눈물콧물이 범벅이 된 영우가 잉잉거리며 서 있었습니다. 옷자락은 늘어지고 얼굴은 발갛게 달아오른 데다,입술은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꼴이 이게 뭐꼬? 어찌된 기고,으이?”
조용히 영우의 가방을 들고 있던 옆집 동수가 마른침을 삼키더니 입을 엽니다. 동수가 오전 수업을 마치고 귀퉁이 계단을 막 내려오는데, 운동장 한가운데서 뭔가를 줍고 있는 영우를 보았답니다. 모처럼 영우랑 같이 집에 가려고 운동장으로 달려가던 동수가 '빨리 내 놔 이 자식아!'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공을 차던 형들이 우르르 모여 영우를 때리더라는 겁니다. 영우는 손 안에 든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고요.
“영우가 주운 것이 그 형의 물건이었나봐요.”
“그기 머신데? 영우가 주신 게 뭐드노?”
“할머니 이거요. 월드컵 축구공 열쇠고리요.”
동수는 제 가방에 달린 열쇠고리를 꺼내 보입니다. 움직일 때마다 달랑달랑 앙증맞은 소리를 내는 방울도 달려 있습니다. 할머니는 그 길로 영우를 학교 문구점에 데리고 가 요즘 유행한다는 열쇠고리를 사 주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영우는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리며 학교로 향했습니다. 학교 가는 길,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길바닥에 엎드려 겨울이 오는 소리도 들어보고, 쪼그리고 앉아 꿈틀대는 벌레를 들여다보며 뭐라고뭐라고 얘기도 나눴습니다. 파란 대문 집 앞에서는 복술이도 만났습니다. 영우 앞에 꿇어앉아 마냥 꼬리를 살랑이며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복술이. 영우는 복술이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얼굴도 비비며 놀다가 학교로 갔습니다. 영우가 떠난 골목길에는 온종일 귀여운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복술이가 선물로 받은 축구공 열쇠고리로 멋진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거 생각하믄,학교를 바꾸는기 나을 것도 같고.'
할머니는 아들이 돌아오면 꼭 전학 문제를 상의해 보리라 마음먹습니다. 그림놀이도 싫증이 난 영우가 진흙 묻은 손가락을 옷자락에 쓱쓱 문지르며 일어섭니다.
“영우야, 저녁밥 묵구로 어서 손 씨꺼래이.”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꼬챙이를 저만치 내던진 영우가 급히 대문을 나섭니다. 숨을 헐떡이며 부리나케 달려간 곳은 학교 뒤란.
주홍 전구를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가 두 그루, 갈색 열매를 빼곡히 달고 우쭐거리는 대추나무가 한 그루,여름이면 고추,상추,오이며 가지가 올망졸망 열린 모습을 볼 수 있는 텃밭도 있습니다. 평소 영우는 감나무 둥지에 기대고 앉아 파란 하늘과 눈 맞추기를 즐겨합니다. 잠자리가 날아다니며 부지런히 색칠해 놓은 하늘 한 곳을 가만히 응시하노라면, 둥둥 떠가던 구름 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영우를 내려다봅니다. 그렇게 영우와 눈인사를 한 구름이 쫘라라라 구름 커튼을 걷어 내면 영우의 이름을 부르며 엄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영우를 보며 한껏 웃음 짓는 엄마. '아하,엄마아!' 영우는 하늘을 향해 뻗은 두 팔을 힘차게 흔들어 보입니다. 언제고 제 마음을 알아주는 텃밭 식구들이 있고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곳. 지금껏 뒤란은 영우의 작은 안식처였습니다.
이윽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뒤란에 들어선 영우는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입니다. 그러다 감나무 옆에 얌전히 앉아 있는 호박 앞으로 걸어갑니다. 누렇게 익은 호박에게서 금방이라도 '영우, 왔니?'하는 인사가 들려올 것만 같습니다.
“깜 깜 하 면 불 켜 라!”
“깜 깜 하 면 불 켜 라 아!”
영우는 호박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한 자 한 자에 힘을 주며 말합니다. '깜 깜 하 면'이라 말할 때는 호박을 쳐다보고,'불 켜 라'하면서는 뒷문에 달린 가로등을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저녁시간 할머니께서 잠시 외출하실 때면 영우에게 꼭 일러주는 말입니다. 영우가 어둠 속에서 무서움을 탈까 염려스러운 할머니께서 여러 번 당부하는 말씀이지요. 영우는 뒤란에 올 때마다 텃밭 식구들에게 깜깜하면 불 켜라고 부탁하곤 합니다. 영우는 이런 얘기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마음씨 착한 안 선생님이나, 파란 대문 집 복술이, 교문 옆에 핀 이름 모를 빨강 꽃, 그리고 텃밭 식구들 외에는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는 비밀 이야기이니까요.
지난 여름이었나요. 비가 엄청 퍼붓고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내뺀 어느 날,며칠 동안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한 영우는 텃밭 식구들이 궁금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간 뒤란은 무참한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고추,상추 할 것 없이 뿌리를 땅 위로 드러낸 채 뒤집어 누운 모습은 차마 애처로워 바라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영우는 그 자리에 엎드려 그만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비 온 뒤끝의 진흙들이 온 얼굴이며 옷에 묻어 난리를 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지요. 그런 뒤로 영우는 부쩍 '깜깜하면 불 켜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불빛이 어둠 속에서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지켜줄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뒤란을 빠져나오던 영우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주홍빛 감알들을 바라보며 기어코 마지막 당부를 또 하고야 맙니다.
“깜 깜 하 면 불 켜 라 이!”
이튿날입니다. 마루에 걸레질을 하던 할머니가 줄을 타고 내려온 거미를 막 거두려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그때가 12시경이었나 봅니다.
“여기 학굡니다. 3학년 공영우 학생 집이지요? 특수반…네에 할머니시군요. 빨리 학교에 좀 와 주셔야겠습니다.”
일이 난 게 틀림없습니다. 다급해진 할머니는 파란색 고무 슬리퍼에 몸뻬 바지를 입은 채로 학교로 달려가십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고 들어선 교무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울고 있던 영우가 할머니를 보자 와락 달려와 안깁니다. 잔뜩 겁먹은 얼굴입니다.
“오셨군요 할머니. 그러니까 영우가 옆 반 선생님 지갑을 훔친 것 같습니다. 돈만 빼 간 지갑이 특수반 교실에서 나왔는데도 그 돈을 어디 뒀는지 아무리 물어도 대답을 않습니다. 할머니께서 한번 물어봐 주셨으면 해서요.”
체육을 하느라 교실을 비운 사이 안 선생님의 지갑이 없어졌다는 얘기였습니다.
“선생님, 그럴 리가 엄서요. 우리 영우가 안 선생님을 얼매나 좋아하는데…사탕이나 까자 부스러기 같은 거사, 먹고 싶어 들고 나온다카지마는. 야는 돈이 뭔지도 모르는 아아라요.”
“예 그렇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액수가 만만찮아서….”
할머니는 잘 타일러 보겠노라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발걸음이 자꾸 휘청거려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릅니다. 방으로 들어선 영우는 할머니가 깔아준 자리에 누워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기운이 다 빠진 얼굴입니다. 한번도 영우가 저런 낯빛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말도 제대로 몬하는 아를 얼매나 잡앗시몬….'
할머니는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을 와르르 쏟으셨습니다.
'우리 영우는 그런 짓을 할 아가 아이라. 아이고 말고.'
연신 흐르는 눈물을 소매 끝으로 닦아내시며 혼잣말을 하십니다.
그 일 이후, 영우는 이틀 동안 결석을 했습니다. 영우 집으로 전화를 해봤지만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영우의 결석이 지갑사건 때문인 것만 같아 안 선생님은 마음이 편칠 않습니다.
‘특수반 선생님이 출장만 가지 않으셨더라도 이런 일로 영우가 의심받는 일은 없었을 텐 데….’
올해 이 학교로 전근 온 안 선생님이 복도에서 처음으로 영우를 마주쳤을 때, 가슴에서 두망방이질 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태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을 다시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이빨이 다 드러나게 벌어진 입, 쉴새없이 움직이는 손가락, 두리번거리며 휘적휘적 걸어오는 걸음걸이까지.
상인이는 아무 물건이나 눈에 보이는 대로 가지려 하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면 고함을 지르며 떼를 썼습니다. 아무리 말을 시켜도 좀체 입을 열지 않는 데다 비라도 내릴라치면 동물원 우리 안의 호랑이처럼 창가를 서성이며 어쩔 줄 모르던 아이였지요. 5살 나이로 '발달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던 상인이가 비오는 날 골목길에서 그렇게 사고를 당한 뒤,안 선생님은 한동안 학교를 쉬어야만 했습니다. 그런 안 선생님이기에 누구보다도 영우를 좋아하고 가엾게 여겼습니다.
어느 날인가, 안 선생님은 화단 가에 퍼질고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중얼거리는 영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조심조심 다가간 선생님이 살며시 영우의 등뒤에 앉았을 때,영우의 가랑이 사이로 꼬리가 잘린 잠자리 한 마리가 맴을 돌고 있는 게 보였지요. 들릴 듯 말 듯한 영우의 중얼거림. 안 선생님은 바짝 귀를 갖다대었습니다.
'할머니 기다린다, 집에 가야지이. 할머니 기다린다, 집에 가야지이.'
영우는 날지 못하는 잠자리가 안타까워 자꾸만 말을 걸고 있었던 겁니다. 이제 잠자리는 날지 못한다고 설명을 하고 또 해도 영우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영우가, 잠자리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는 안 선생님의 말에 선생님의 손바닥에 잠자리를 조심스레 올려놓으며 집으로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토록 맑은 아이가 어떻게….'
생각에 잠겨 있던 안 선생님은 요란한 인터폰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듭니다. 인터폰 속에서 교무선생님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방금 안 선생 지갑을 가져갔던 아이 집에서 전화가 왔어. 며칠째 장난감이며 게임기를 잔뜩 사 들고 오는 아이가 수상하다싶어 엄마가 붙들고 앉아 꼬치꼬치 캐물었던가 봐. 자 기가 선생님 지갑에 손댔다고 그러더래. 죄송하다고 입이 닳도록 인사를 하면서 내일 와서 변상해 주겠다고 그러네. 괜히 애꿎은 영우를 의심했으니 말이야, 영우 할머니께 미안해서 어째?”
퇴근 무렵, 가벼운 마음으로 서류를 정리하던 안 선생님은 창밖에서 교실을 기웃거리는 까만 머리를 보았습니다.
“밖에 누구니?”
아무 소리가 없습니다.
“볼 일이 있으면 들어와야지~”
주춤주춤 문을 밀치고 들어선 것은 바로 영우였습니다. '하아' 소리가 나올 만큼 환하게 웃던 영우의 얼굴이 핼쑥해져 있습니다.
“우리 영우 많이 아팠구나. 선생님 때문에 속상했지? 미안해,영우야! 지갑,영우가 그런 게 아니란 거 알아. 어, 영우가 선생님을 보고도 웃지 않는 걸 보니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네. 그거 아니? 영우는 웃을 때가 제일 멋지단 걸!”
그래도 영우는 웃을 생각을 않습니다.
“선 생 니임!”
어렵게 입을 뗀 영우가 가슴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책상 위에 가만히 올려놓습니다. 언뜻 보니 색종이 같기도 하고, 포장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선 생 니임'하며 안 선생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영우는 미처 말릴 틈도 없이 교실을 뛰쳐나갑니다.
안 선생님은 잠시 멍해집니다. 보통 때와 다른 영우의 행동이 의아스럽습니다.
“영우 왔다갔구만. 안 선생,이제 영우 얼굴 못 보게 돼서 어떡해. 내일부터 영우가 특수학교로 가게 됐어. 좀 전에 영우 할머니를 교무실에서 만났거든. 지갑사건 때문에 할머니 마음이 불편하셨나 봐. 내 힘이 못 미처 늘 안타까웠는데 잘 됐지 뭐야. 혹 알아? 특수학교 에 열심히 다니다보면 자폐증세도 누그러들지. 아, 그나저나 이젠 학교가 조용하겠는 걸. 말썽꾸러기가 가 버린다니 말이야.”
복도를 꺾어 걸어오시던 특수반 선생님이 저쪽 복도 끝을 돌아나가는 영우를 보신 모양입니다.
“어, 이 은색 종이 안 선생이 가져갔었어? 3일 전에 자료 만들고 자료대 위에 올려둔 건 데, 다시 쓰려니 있어야 말이지. 영우 녀석 제 눈에도 반짝이는 게 좋아 보였는지 바짝 붙 어 서서 예쁘다, 예쁘다 하기에 난 또 영우 짓인 줄 알았네.”
먼저 퇴근한다는 특수반 선생님을 보내고 안 선생님은 책상 위로 시선을 돌립니다. 손바닥만한 은색 종이가 자잘하게 구겨진 채로 반짝이고 있습니다.
'영우가 저걸 내게… 예쁘다고… 전학을 간다고….'
눈물이 핑 돕니다. 순간, 안 선생님은 그렁그렁 고여오는 눈물 사이로 은색 종이에 씌어진 희미한 글씨가 떠올랐다 가라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게 뭘까?
“서새엔님, 사라아헤요. 영우.”
썼다가 지우고 또 쓰고 지운 흔적이 또렷한 글씨.
“영우야….”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립니다.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안 선생님의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은색 종이 위로 똑,똑 떨어집니다. 떨어진 눈물 방울은 어느 샌가 도레미 음표가 되어 책상 위를 내달립니다. 뒤를 이어 영우의 씩씩한 노랫소리가 함께 미끄러지듯 달려갑니다. 안 선생님은 대롱대롱 눈물방울을 턱에 매단 채, 웃는 듯 우는 듯 영우의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엄마하고 나하고 닮은 곳이 있어요~.”
연한 어둠 속에서 은색 종이가 영우의 눈망울처럼 반짝입니다. 끝.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침을 삼키는데 목안쪽이 시큰거리네요..영우가 세상에서 두번째로 좋아하는 안선생님과 오래 함께 있지 못하게 된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세상의 많은 영우들이 사랑하는 사람곁에 그대로 머물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더욱 노력해서 세상을 바꾸어야겠습니다. 감동적인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첫댓글 눈물나서 다~ 못읽었어요~~자식을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내아이다..생각해보면..서새엔님, 사라아헤요....목이 메임니다..제오님....맘이따뜻하셔서 참..조으네요~~^^*
맘 고운 현숙님, 누구보다 영우를 사랑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글에 머물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하하, 저도 감사드립니다.
아침에 보니 현국님이 슬프다니 , 아침부터 그럴순 없고 저녁에 정독 해야 겠네요 ㅎㅎㅎ
눈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의심을 받고도 말못하고 속으로 아파했을 영우도, 옆에서 지켜보시는 할머니도, 그 맑고 깨끗한 마음이 은색종이위의 글씨처럼 반짝입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제오님~! 좋은글에 머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드립니다. 글에 느낌을 담아주시니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
글읽는 내내 미소와 아픔을 같이 햇어요..눈가에 맺힘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 마음에서 ... 영우의 꾸밉없는따뜻한 마음에서 미소를 보았고요....이세상 의 그늘진 곳에 그늘진 아이들이 더는 서럽지 않고 아프지 않은 5ㅝㄹ이 되길바래요...... 제오님 감사해요...
기특한 아들 두신 처음처럼님이 참 부럽습니다^^
숨죽여 읽어며 나도 모르게 흐려진 동속 사이로...자페증 아이를 둔 가정은 평생 한이 되겠지요... 시간 내어 다시 읽어 볼께요^^*
자폐증 아이를 둔 가정에서 이민을 많이 간답니다. 어쩌면 우리의 시선들이 그들을 내모는 것은 아닌지....
너무 슬프네요. 안선생님도, 영우도, 할머니도...... 없다해서 부족하다해서 괜히 의심받는 기분... 너무나도 서럽지요. 그나마 영우가 할머니이외의 사람에게 사랑을 느꼈다는 것과 안선생님이 영우라는 아이를 알게 된 것이 참 다행이다 싶네요.
라이카님의 생각처럼 없는 아이들이 더 서럽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침을 삼키는데 목안쪽이 시큰거리네요..영우가 세상에서 두번째로 좋아하는 안선생님과 오래 함께 있지 못하게 된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세상의 많은 영우들이 사랑하는 사람곁에 그대로 머물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더욱 노력해서 세상을 바꾸어야겠습니다. 감동적인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또따른 안선생님이 그 어디에선가 사랑으로 영우를 보듬어주시리라 믿는 마음입니다 저두요.
안선생님과 영우가 부르는 '엄마하고 나하고 닮은 곳이 있어요.'가 그 어떤 노래보다 슬프고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자꾸만 다시 되새기게 됩니다. 제오님의 글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가슴으로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동화네요. 잘보고갑니다.
가끔 동화 올리겠습니다. 미워하지는 마시구요^^
ㅎㅎ 제오님은 정말 미오 지넹(맘을 흔드니원)........ㅎㅎㅎ 존글 잘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