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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서 만난 '초대형 자연산 홍합'추운 겨울,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홍합탕처럼 속을 따뜻하게 풀어주는 국물도 드물다. 그 홍합을 자연산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 속초이다. 속초는 자연산 홍합 산지로 전국에 이름났다. 자연산 홍합을 맛보겠다는 기대를 품고 속초에 갔다. 설을 앞두고 찾아간 속초 중앙시장 지하 수산시장은 썰렁했다. 해산물 물량이며 가짓수도 적었지만 가격도 비싼 편이었다. 수산시장 상인들은 "폭설 때문에 조업을 못해 그렇다"고 했다. 눈이 내린다고 바다에 나가지 못한다니? 파도도 아닌데? 상인들이 한심하단 듯 대답해줬다. "눈이 내리면 파도도 거세지는 거 몰라요? 특히 조개배는 파도가 잔잔해야 작업을 할 수가 있다고. 그런데 이렇게 폭설이 쏟아져 파도가 거친데다 물까지 차가우니 해녀들이 물에 들어가질 못하는 거요."
속초 중앙시장 수산시장에서 조개를 전문으로 다루는 가게는 '현대조개'와 '형제조개' 두 곳이다. 17일 현재 자연산 홍합 시세는 1㎏ 4000~6000원쯤이다. 바다에서 해녀들이 캐 오는 홍합이다. 보통 3년쯤 된 조개들이다. 자연산 조개와 양식산 조개의 차이는 모양과 두께이다. 속초를 포함 강원도 동해안 지역 사람들은 홍합을 '섭'이라 부른다. 이들은 "자연산 섭은 부채꼴"이라고 했다. 2개 변이 길고 1개 변이 좁은 갸름한 이등변삼각형 모양이다. 바다 속 바위에 붙어산다. 껍데기에는 해초며 작은 조개 등 이것저것 덕지덕지 붙어서 지저분해 보일 정도이다. 홍합을 바닥에 눕혀놓고 옆에서 보면 도톰하다. 현대조개 여주인은 "살이 통통하게 꽉 차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홍합을 벌려보니 과연 조갯살이 통통하다. 현대조개 주인은 "특히 요즘 겨울에는 이렇게 옆구리까지 살이 쪄 있다"고 했다. 붉은색에 가까운 주황색이다. 씹으면 쫄깃하다.
양식산 홍합은 큰 놈이 드물다. 오래 양식하지 않고 빨리 출하할수록 소득이 크기 때문이다. 이등변삼각형의 한쪽 옆구리가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껍데기는 매끈하고 깨끗하다. 단면이 자연산과 비교하면 훨씬 납작하다. 껍데기를 벌려보니 조갯살이 확실히 자연산보다 작다. 색깔도 크림색에 가까운 노란색이다. 맛은… 다들 아는 그렇고 그런 맛이다. 상인들은 "국물을 내 보면 자연산과 양식산 차이가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속초 출신으로 홍합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는 "홍합의 궁극을 맛보려면 큰 놈을 맛봐야 한다"고 했다. '큰 놈'이란 나이가 많은 홍합을 말한다. 그런데 조개는 물론이고 생선도 씨가 말라가는 판에 오랜 세월 인간의 손길에서 안전하게 생명을 유지한 홍합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 커다란 홍합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최근 속초에 문을 열었다. 속초시 교동 '외옹치섭마을'이다. 외옹치는 속초에 있는 항구이다. 식당 앞 수조에 홍합처럼 보이나 크기는 홍합이라고 볼 수 없는 거대한 조개가 가득 담겼다. 거짓말 조금도 안 보태고 남자 어른 손바닥, 그러니까 길이가 거의 20㎝나 된다. 조갯살은 숟가락 크기이다. 외옹치가 고향이자 이 식당 주인인 홍우길(45)씨는 "15년 된 홍합"이라고 알려줬다. 짧지 않은 세월을 어떻게 인간의 '마수'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자랄 수 있었을까? "외옹치 한쪽 구석이 군사지역이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일반인 출입금지였죠. 사람이 출입하지 못하다 보니 이곳 바위에 홍합이 붙어서 안전하게 살았던 거지요." 출입금지가 풀린 건 3년 전. '섭' 채취는 지난해 8월 시작됐다. 외옹치에서 평화롭게 번성하던 홍합들에게는 재앙이지만, 홍합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축복이 내린 셈이다. 외옹치에서 채취한 홍합은 이 식당에만 독점적으로 공급된다.
속초에는 이 식당을 비롯해 홍합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내는 '섭식당'이 몇 곳 된다. '섭죽'은 강원도 동해안 사람들이 옛날부터 즐겨 먹던 음식이다. 홍합국물과 닭육수를 섞은 국물에 쌀과 각종 채소를 넣고 고추장을 풀어 얼큰하게 끓인 죽이다. 홍우길씨는 "섭죽은 전통적으로 여름에 먹는 음식"이라고 했다. 내륙 사람들이 여름에 보신탕이나 어죽으로 영양을 보충하듯, 홍합이 흔한 이 지역 사람들은 홍합을 이용해 보양식을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섭장칼국수는 홍합을 넣은 국물에 칼국수를 삶고 고추장이나 된장을 풀어 걸쭉하고 얼큰하게 끓인다. 이 정도가 홍합을 이용한 전통적인 음식이고, '섭전복죽' '섭불고기' '섭무침' '섭찜' 따위는 최근 개발된 음식이다. 보통 홍합을 그대로 넣지만, 이곳에선 홍합이 너무 커서 잘게 다져서 넣는다. 쫄깃한 탄력이 전복 못잖다. 감칠맛도 짙다. 홍우길씨는 "이렇게 큰 홍합은 전복도 쫓아오지 못한다"면서 "특히 해장에는 섭죽만한 것이 없다"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식당 들어올 때 술이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손님도 섭죽만 먹으면 속이 다 풀려. 다른 해장국은 속만 따뜻하게 하지만, 섭은 해독이 되는 거요." 홍우길씨는 아이들 앞에선 차마 말 못할 홍합의 '효능'에 관한 자신의 체험담을 한참 들려줬다. 홍합 등 수산물 사려면_ 속초 중앙시장 지하 수산시장에 조개 전문점 두 곳이 있다. 홍합이 1㎏에 4000~6000원 한다. 날이 풀리면 가격이 다소 떨어질 전망이다. 홍합 말고도 자연산 조개를 두루 구입할 수 있다. 자연산 석굴은 1㎏에 3000~4000원. 알이 통통하다. 양식굴보다 알이 훨씬 크다. 굴과 조개를 섞은 듯한 맛. 현대조개 여주인은 "서울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조개는 가리비"라고 했다. 가장 많이 찾는 만큼 가격도 비싸다. 자연산 가리비의 경우 1㎏당 1만원. 명주조개도 맛나다. 1㎏당 6000~7000원. 택배도 된다. 현대조개 (033)632-9935, 형제조개 (033)631-9729. 수산시장 건어물가게에서 질 좋은 황태도 살 수 있다. 10마리씩 포장돼 있고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가장 큰 '왕왕특' 4만원, '특왕' 3만5000원, '특대' 2만5000~3만원. 상인들은 "특왕을 가장 많이들 사간다"고 했다. 홍합 맛보려면_ '섭전문점'이 속초 시내에 몇 집 된다. 외옹치섭마을(033-636-5454·seopfood.com)은 외옹치에서 나는 자연산 홍합을 독점 공급받아 음식에 쓴다. '옛날섭죽' 1만원, 맵지 않게 끓이는 '흰섭죽' 8000원, '섭장칼국수' 7000원, '섭국' 1만원. 커다란 홍합을 그대로 맛보고 싶다면 '섭찜'(3만원)과 '섭무침'(3만원)을 권한다. 홍합을 자르지 않고 통째로 넣는다. 섭죽마을(033-635-4279·hurhurbada.com), 섭마루(033-635-5589) 등도 섭죽을 낸다. 홍합 국물은 '공짜 서비스 술안주'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만큼 홍합이 값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하찮은 재료라도 정성이란 양념을 더하면 별미로 변신한다. 홍합을 요리로 승화시킨 서울의 맛집을 모았다.
홍합에 정성만 넣었을 뿐인데… 서울 홍합 맛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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