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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를 다시 줄이기로 한 건 ‘나 홀로 역주행’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미국과 독일, 일본 등은 물론 원전 확대 계획을 밝힌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최근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수천억 달러를 재생에너지에 쏟아붓기로 하는 등 그린에너지 경쟁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천 서구 경서동의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의 전기 생산 비중을 기존 목표보다 크게 줄이는 대신 원전 비중을 대폭 상향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30일 공개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공: 세계일보
산업통상자원부는 30일 원전 발전 비중을 32.8%로 확대하는 내용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발표하고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서 제시한 전환(에너지)부문 온실가스 배출 목표 달성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2018년 전환부문 배출량인 2억6960만t에서 44.4% 줄어든 1억4990만t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대통령 업무보고 전 언론 브리핑에서 “원전의 역할을 늘려 발전부문의 온실가스를 최대한 줄이겠다. 여기서 확보된 여유분을 산업과 민생부문으로 안배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정부가 표방하는 ‘친기업 기조’와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전기본 실무안은 온실가스를 추가로 줄이지 못했다.
강감찬 산업부 전력산업정책과장은 “(한 장관 발언은) 우리(산업부)와 협의한 바는 없다. 일부 그런 기대가 있기는 했지만 기존 NDC가 이미 과도한 목표였기 때문에 추가 감축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재생에너지를 덜 줄이고 화석연료를 더 줄이는 방법에 대해선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추가 비용이 든다”며 “기존 2030 재생에너지 목표는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기업 ‘RE100’ 가입 느는데… 한국만 재생에너지 ‘나홀로 감축’ [뉴스 투데이]© 제공: 세계일보
기업 ‘RE100’ 가입 느는데… 한국만 재생에너지 ‘나홀로 감축’ [뉴스 투데이]© 제공: 세계일보
문제는 이런 결정이 세계적 추세와 동떨어졌다는 점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자립이 당장의 중요한 문제가 됐다”며 “원전은 건설까지 10년 이상이 걸리고, 석탄과 가스 발전은 더 늘릴 수 없고 그러니 결국 풍력, 태양광으로 가는 것인데 원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재생에너지 목표를 훼손하는 건 어디에도 없는 정책”이라고 했다.
실제 지난 5월 유럽연합(EU)은 ‘리파워EU’ 계획을 통해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1차 에너지 기준)을 기존 32%에서 45%로 올렸다. 프랑스는 2050년까지 신규 원전 용량을 25GW(기가와트)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해상 풍력 40GW, 육상 풍력 37GW 등 원전 이상으로 재생에너지를 늘릴 계획이다.
미국도 최근 IRA에서 총 4370억달러의 투자액 가운데 3690억달러(84.4%)를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에 쓰기로 했다. 태양광과 풍력, ESS에 투입되는 돈만 1280억달러에 이른다.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늘리지 못하면 기업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전략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RE100을 선언하며, 공급망까지 압박하자 국내 기업도 속속 RE100에 동참하고 있다. 국내 전력소비량 1위 기업인 삼성전자도 조만간 RE100에 가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본 작성에 참여한 주성관 고려대 교수는 “RE100 인정 가능한 에너지는 태양광과 수력, 풍력, 바이오인데 2030년 RE100 에너지 보급량은 116.9TWh(테라와트시)가 될 전망”이라며 “올 초 에너지융합협회 조사에 따르면 2030년 기준 약 95.2TWh가 RE100에 활용될 것으로 보여 수요보다 1.23배 이상 공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건 기업만이 아니다. 500㎿(메가와트) 이상의 시설을 보유한 발전사업자는 총 발전량의 일정 비율(RPS의무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채워야 한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2026년부터 RPS의무비율이 25%로 늘어나고, 삼성전자 같은 다소비 기업이 RE100에 합류하면 재생에너지 부족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