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53「봄」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문 앞에 놓여 있는 택배를 풀어본다
개나리 머리핀과 목련 브로치 들어있다
아마도 옆집 여자인 걸 잘 못 두고 갔나보다
- 박영식의 「봄」
문 앞에 놓여있는 택배를 풀었다. 개나리 머리핀과 목련 브로치가 들어있다. 잘 못 두고 갔나 보다. 분명 옆집 여자네 집이다.
봄이 오지 않았기에, 배달해준 머리핀과 브로치. 오지 않을 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분명 잘 못 왔다. 오긴 왔다. 그런데 머리핀과 브로치를 달아 줄 사람이 없다.
시인에게 봄은 불현 이렇게 찾아왔다.
이율배반, 이것이 시조이다.
바위에 걸터 앉은
고승의 푸른 장삼
바람의 끝자락이
손짓 따라 출렁이고
선승은
이슬 한 방울로
아침 공양 물리신다
-박헌오의 「면벽」
바위에 걸터앉은 고승의 푸른 장삼. 모든 걸 다 바람에 맡기고 선승은 이슬 한 방울로 아침 공양을 물리신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면벽일지 모른다.
이슬은 생명의 끝자락, 한 모금, 감로수이다. 아침의 면벽 순간을 텐션 있게 잡아냈다. 선의 생략, 선명한 충격, 이것이 크로키이다.
깔끔하게 선을 잡아내면 윤곽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꿰맸어도 꿰멘 자리가 보이지 않는 바느질, 천의 무봉. 이것이 사실상 시조이다.
-주간한국문학신문.2024,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