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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땅 걷기를 사랑하는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꽃마리
어머니의 책이 발간되었다.
1995년 여름, 친정집에 갔다가 옷장에서 어머니의 일기장 8권을 발견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어머니는 평생 무학으로 살아오신 데다 벌써
10년 가까이 병환에 시달리고 계셨기 때문이다. 어머니 모르게 일기장들을
집으로 싸 가지고 와 며칠을 읽었다. 비록 서툰 글씨에 맞춤법도 엉망이었지만,
글이 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냥 묵혀둘 수 없어서 형제들과 상의한
끝에 마침 팔순을 맞으신 어머니의 생신을 기념해 책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 해 겨울 그렇게 어머니의 책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책이 출간되자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져주었고, 출간된 주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이 오르는가 싶더니 신문과 방송에서도 여러 번 소개되었다. 어느덧 10년이 흘러
책도 절판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차츰 잊힐 무렵, KBS <인간극장>에서
<그 가을의 뜨락>이란 제목으로 그 당시 아흔이 되신 어머니 이야기를 5부작으로
방송하면서 다시 어머니에 대한 관심이 일었다
어머니의 글은 노년의 외로움과 병환의 괴로움, 자연에 대한 감사, 먼저 떠나보낸 자식과
남편을 향한 그리움, 육남매를 그리는 애틋한 모정 등을 가슴 저미도록 진솔하게,
때로는 한 편의 시처럼 간결하게 담겨져 있어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그 가을의 뜨락>은 인간극장 스페셜로 해마다 가을이면 6년째 재방영이 되고 있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로 많은 분들이 어머니의 책을 찾았다.
어떻게 알음알음으로 내 블로그에 찾아와 어머니의 책을 구할 수 없느냐고 문의하는
분들이 많았다.그러나 책은 이제 절판이 되어 구할 수가 없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 <어머니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더구나 떠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와의 추억들을 오래 오래 추억할 수 있도록 기록해 두고 싶었기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내 블로그를 찾아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어 주셨다.
그러던중에 지난 2월, <위즈덤 하우스>출판사에서 어머니의 책을 개정판으로 내겠다고 했다.
나도 너무 반갑고 기뻤다. 어머니 돌아 가시기 전에 어머니께 책을 안겨 드리고 싶어 조바심을
내며 준비한 이 책을 어머니께선 보시지 못하고 2년 8개월간의 와병 끝에 올 봄(2011년 3월 31일)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친정을 다녀오며 엄마에게 늘 하던 “엄마, 나 또 올게.”라는 말은
이제 어머니 산소를 다녀오며 하는 말이 되었다.
“한국인의 내면에 깃든 향수와 정서를 가장 잘 상징한다.”고 평가받는 이 그림들은 책을 읽다보면
문득문득 마음속에 그려지는 엄마 모습과 겹쳐지면서 아련한 그리움의 여운을 한층 더해준다.
김정수 화백은 한 인터뷰에서 “진달래는 유난히 햇빛을 좋아하는 데다 큰 나무가 없거나 헐벗은
산에서도 군락을 이루는 게 어머니 같은 생명력을 지녔다.”며, “진달래꽃이야말로 복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축복의 메시지로 치환할 수 있는 소재”라고 밝혔다.
■■■ 추천의 글_ 이해인(수녀, 시인)
엄마가 한없이 그리워지는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저도 하늘나라에 전화를 걸고 싶어집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어머니가 뒤늦게 한글을 배워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그의 풍부한 감수성과 시적인 표현을 누구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일기를 발견해 빛을 보게 해준 따님에게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 고마운 마음 가득합니다.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감사, 자연과 삶을 사랑하고 즐기는 여유, 만남의 환희와 이별의 슬픔, 인간의 존재론적 고독,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예리한 지혜와 깊은 성찰, 이 모든 것이 진솔한 필치로 압축되어 있는 홍영녀 님의 글은 읽는 이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줍니다.
책 제목처럼 ‘엄마, 나 또 올게.’ 하고 인사하지만 엄마가 세상에 안 계셔서 다시는 찾아갈 수 없는 이들은 울게 되고, 엄마가 아직 살아계신 이들은 한 번 더 찾아뵙고, 좀 더 자주 전화를 드리게 만드는 이 책을, 정든 고향집 음식처럼 천천히 맛있게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 본문 내용
▶어머니의 글 중에서
우리 무남이 죽은 지 50년이 넘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절로 난다. (중략) 우리 시아버님 상 당했을 때는 무남이 난 지 일곱 달 되어서였다. 그때 돈암동 살던 동생 순일이가 장사 치르는 데 무남이 데리고 가면 병 난다고 두고 가랬다. 우유 끓여 먹인다고, 그 비싼 우유까지 사 와서 데리고 가지 말라고 말렸다. 그러나 어린것을 차마 두고 갈 수 없어 데리고 갔다. 동생이 젖 먹일 시간 있겠냐며 우유를 가방에 넣어주었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상제 노릇하랴 일하랴 정신이 없었다. 무남이는 동네 애들이 하루 종일 업고 다녔다. (중략) 젖이 퉁퉁 부었어도 먹일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애들이 무남이가 우니까 우유를 찬물에 타 먹였다. 그게 탈이 났다. 똥질을 계속했다.
시아버님 돌아가시자 시어머님이 앓아누우시게 되었다. 그 경황에 자식을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그땐 애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도 흉이었다. 약만 사다 먹였는데, 이번엔 시어머님이 또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초상을 두 번 치르는 동안에 무남이의 설사는 이질로 변했다. 애가 배짝 마르고 눈만 퀭했다. 두 달을 앓았으니 왜 안 그렇겠나. 그제야 병원에 데리고 가니까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늦었다고 했다. 그땐 남의 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주인집 여자가 자기 집에서 애 죽는 것이 싫다고 해서 날만 밝으면 애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
옥수수밭 그늘에 애를 뉘여놓고 죽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날이 저물면 다시 업고 들어갔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서…….
애를 업고 밭두렁을 걸어가면 등에서 가르릉가르릉 가느다란 소리가 났다. 그러다 소리가 멈추면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라 애를 돌려 안고 “무남아!” 하고 부르면 힘겹게 눈을 뜨곤 했다. 사흘째 되는 날인가, 풀밭에 애를 뉘여놓고 들여다보며 가여워서 “무남아!” 하고 부르니까, 글쎄 그 어린것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날 저녁을 못 넘길 것 같아서 시집올 때 해온 깨끼 치마를 뜯어서 무남이 입힐 수의를 짓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바늘귀를 꿸 수 없어서 서투른 솜씨로 눈이 붓도록 울면서 옷을 다 지었다. 겨우 숨만 걸린 무남이에게 수의를 갈아입히니 옷이 너무 커서 어깨가 드러났다. 얇은 천이라서 하얗고 조그만 몸이 다 비쳐 보였다.
그렇게 안고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첫닭 울 때 숨이 넘어갔다. 죽은 무남이를 들여다보니 속눈썹은 기다랗고, 보드라운 머리칼은 나슬나슬하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이 어미 가슴을 저며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울지 않고는 못 배긴다.
<우리 무남이> 중에서············ 20페이지
내 인생은 참 허망하다.
책을 써도 몇 권이 될 시집살이를 살았는데,
나는 자식살이를 한다.
이 나이에도 병든 몸으로 꾸무럭대야 밥을 먹는다.
내가 해 먹는 밥이 서러운 게 아니라,
아무도 마주하는 이 없는 밥상이 슬프다.··········· 36페이지
나는 늙은 거미다.
내 몸에서는 이제 실을 뽑을 수 없다.
이제는 용기도 없고 힘이 없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아무런 희망이 없고 마음만 서글프다.
죽는 것은 서럽지 않으나 앓는 것이 서럽다.
어서어서 잠든 듯이 가야 할 텐데.············ 71페이지
창밖에 부는 바람,
죽음의 신음 소리도 들었을 것이고
갓 태어난 아기의 숨소리도 거쳐 왔을 것이다.
잠 못 이루는 이 밤,
바람에게 많은 사연을 듣는다.············ 134페이지
남을 탓하지 마오.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오.
세상살이 근심걱정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아프고 괴로운 일도 사람 사는 일이라오.············ 138페이지
외롭고 고독할 때는
누구라도 아무라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땅을 기어 다니는 개미도 반갑고
나뭇가지에 앉은 새도 반갑다.
구름도 바람도 꽃도 나무도 모두 내 친구다.············ 139페이지
아름다운 꽃은
인간들의 오욕을 모두 버렸기에 아름답다.
외롭게 홀로 앉은 수행자,
외롭다는 생각마저 버렸기에 자유로웠다.············ 178페이지
행복이란
조금은 모자라고, 조금은 불안하고, 조금은 아쉽지만
아직은 덜 익어서 내일을 기다리는 것.
▶내 글 중에서
1983년 겨울, 남편이 하던 사업이 망해서 빚만 남게 되었다.
채권자들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까지 찾아왔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복도로 불려 나가 별별 수모를 다 겼었다.
다달이 내 월급을 몽땅 다 내놓아도 빚을 갚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주변 어디서도 돈 한 푼 마련할 곳이 없어 막막한 상황이었다.
(중략) 나도 모르게 발길이 친정으로 향했다.
친정이라야 아버지도 안 계시고 어머니 혼자 동생들과 어렵게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넋이 다 나가다시피 한 딸을 보신 어머니는 “아이구, 이것아, 정신 차려라. 너 이러다 죽겠다!”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날 밤 어머니와 나는 밤새 뒤척이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안양에서 비교적 풍족하게 살고 있는 왕고모님을 찾아가 보자며 길을 나섰다.
(중략) 그나마 돈이 마련되었다면 무안함이 덜했을 텐데 고모님 말씀이
“돈에 관한한 고모부가 주관하시기 때문에 고모님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찾아갔는데 부끄럽기 짝이 없고 왜 찾아갔나 싶었다.
잠시 더 앉았다가 그 집 대문을 나섰다. 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어찌 그리 멀던지. 어머니도 나도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그 먼 들길을 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걷던 중에 어머니가 목도리를 풀어서
내 목에 둘러 주시며 말씀하셨다.
"설마 죽기야 하겠냐! 마음 단단히 먹고 정신 잃지 마라! 넌 이제 괜찮다.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졌으니 더 이상 나빠질 게 뭐 있겠니.”
(중략) 그 후, 살아가면서 너무 힘들고 막막해서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그날 눈 속에서 나를 배웅하며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그래, 해보는 거야, 설마 죽기야 하겠어?’
두 주먹을 쥐고 이 말을 자신에게 들려주다 보면 새로운 용기가 생겨서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설마 죽기야 하겠냐!> 중에서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내놓았다.
어딜 가보게 되지 않으니
신어보지도 않고
또 닦게 된다.
오래전 어머니가 쓰신 일기다.
이 일기를 처음 봤을 때 얼마 나 가슴이 아프고 후회스러웠는지 모른다.
여행은커녕 생전 어딜 모시고 간 일이 없다.
고무신을 닦으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가늠해보니, 고생만 하신 어머니가
너무 가여웠다. <봄 날의 가족여행> 중에서
새벽녘에 어머니 울음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졸린 눈을 비비고 침대로 가서 어머니를 들여다봤다.
“엄마, 왜 울어요?”
“나 어떡해!”
“뭐가요?”
“나 올해도 안 죽나 봐. 느들 힘들어서 어쩌면 좋아. 이게 뭐야!”
나는 어머니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엄마! 우리들 모두 엄마가 계셔서 너무 좋아요!”
어머니가 도리질을 치셨다.
“엄마, 우리 모두 엄마 사랑해요.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자꾸 우셔서 마당에서 농익은 감을 따다가 숟가락으로 떠 먹여드렸다.
감을 드시느라고 울음을 멈추신 어머니가 느닷없이 말씀하셨다.
“아버지도 갖다 드려라!”
“엄마, 아버진 돌아가셨잖아요.”
잠시 가만히 계시더니 역정을 내시며 대답하셨다.
“돌아가시긴 뭐가 돌아가셔! 그 인간이 혼자서 얄밉게 빨리 죽었지!
그렇게 빨리 가는 인간이 어딨어?”
원망하는 듯 말씀하셨지만 그 말에서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가득 묻어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일기장에 이렇게 쓰셨다.
겨울밤에 내리는 눈은 그대 안부.
혼자 누운 들창 밑에
건강하냐 잘 지내냐 묻는 소리.
그대 안부. <엄마, 또 올게요> 중에서
“난 네가 오기 전날부터 시계를 보며, 모레 이 시간이면 네가 갈 시간이구나,
하고 생각한단다.”
자식이 오기도 전에 갈 시간을 섭섭해하던 어머니.
아, 나는 왜 그렇게 딸 노릇에 서툴렀을까!
생각해보면 아주 쉽고 작은 일들을 하지 못했다.
전화라도 자주 해드렸더라면,
엄마 곁에서 하룻밤만 더 묵었더라면,
엄마와 자주 시장을 보러 갔더라면,
연세는 드셨어도 곱게 꾸미시라고 분첩하나 사드렸더라면……
그랬다면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닫는 글> 중에서
첫댓글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시절 그때....옥수수밭 그늘에 아기를 놓아두고사 내려보는 엄마의 그 눈빛은......
차마 시렵습니다.
이제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님의 모습을 그리며
다순 햇살을 느끼실테지요
정말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글도 풍경도 모두 손으로 쓰신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쓰신것이 느껴집니다.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기가 송구스럽고, 아쉽습니다.
조금만 더 사셨으면,, 이 책을 보시고 가셨을텐데.
다 내려다보고 계실텐데요 뭘...
어머니와 딸의 서럽고 아름다운 소야곡인가요? 뜨겁게 가슴을 오르내리는 그 무엇이 오래갑니다.
아천년의 빚을 갚으려 어머니로 태어난다고 하던 스님 말이 생각납니다 나도 부모가 되 어 그 받은 사랑 갚고 가야할텐데 가슴이 아프네요 감사합니다 그 사랑 돌아보게 해 주셔서...
그전 꿀쩍 거릴 수 밖에요........
...........................세월에 빼앗긴 할머니가 아쉽습니다 .............
안나님~~ 좋은 책을 내 주셔서 저도 한꺼번에 일곱권신청하여 주변분들과 나누어 읽어보았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편이어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만..
그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참으로 용감하고 씩씩하다고... 맑고 밝고 환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가족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