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54「이암산」외
석야 신웅순
날 새면 마주하는 눈 앞의 이암산은
항용 그 자리에 그 풍모 그 미소로
지그시
목례를 하며
눈 인사를 건넨다
- 장지성의 「이암산」
아침마다 시인은 산과 목례를 하며 눈인사를 나눈다. 항상 그 풍모 그 미소이다.
그림 한 장이다. 시조는 단순한 그림 한 장이면 된다.‘잘 잤느냐, 무슨 꿈 꾸었느냐’이런 말들이 필요 없다. 목례와 눈인사면 된다. 군더더기기가 없다.
문장이 하나이다. 주어, 목적어, 서술어로 되어 있는 문장이다. 문장 하나가 시인의 만년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시조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아침을 맞습니다
품안에 지닌 밀지(密旨)
여직도 못 전하고
포위망
일월에 갇혀
또 석양을 봅니다
- 장지성의 「뉘엿뉘엿」
기막힐 노릇이다. 일생을 품안에 지녔을 텐데. 여직도 밀지 하나 전하지 못하고 있으니. 밀지는 그 사람 아니면 전할 수 없다. 들키면 순간 체포이다. 시인은, 우리는 포위망 일월에 갇혀 또 석양을 보고 있다. 세월은 자꾸만 흘러간다. 인생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누구한테도 보여줄 수 없는, 죽을 때까지 가슴에 품고 가는 것이 밀지이다. 우리들은 다 밀지 하나쯤 품고 산다. 독립 운동가로 살고 있다.
‘밀지’라는 단어 하나로 인생의 급소를 찔렀다. 단시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 주간 한국문학신문,2024.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