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52「탁류」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뉘엔들 살아 한 때
그리운 이 없었겠느냐?
살아 한 때 누군들
미워한 이 없었겠느냐?
뉘엔들
갖은 상채기
지운다고 없어지겠느냐?
- 홍준경 외 「탁류」
그리움, 미움, 상처 그리고는 이별이다. 사랑의 일생이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 빵은 물질적 양식이지만 사랑은 정신적 양식이다. 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가 없다.
살아 한 때 그리운 이, 미워한 이 없었겠느냐, 상채기 지운다고 없어지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
사랑을 이렇게라도 고백해야 하다니 탁류, 안쓰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시인의 독백이 외려 외경스럽다.
창 너머 불구덩이 당신을 보내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목구멍에 밥을 넣네
죽음과 삶의 경계가
고작 밥 한술이었네
- 윤경희의 「밥」
불구덩이로 당신을 보내놓고 목구멍에 밥을 넣다니 죽음과 삶의 경계가 고작 밥 한 술이라니. 곡기를 끊으면 바로 죽음이다. 밥 한 술만도 못한 것이 부귀와 명예이다.
‘아차’하면 저승이다. 삶과 죽음이 어찌 둘이라 하는가. 그 경계가 몇 그램도 되지 않는 밥 한 술이라 하지 않았는가. 참으로 허무한 게 인생이다.
화장도 말이 없고 밥도 말이 없다. 화장과 밥은 둘이 아닌 하나, 불이(不二), 유마경의 침묵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시인의 침묵은 이리도 아름답다.
-주간 한국문학신문,2024.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