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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월 한 달, 집에서 쉰 날이 별로 없이 몸을 혹사 시켰다.
오래간만에 오늘은 열일 젖혀 두고 내 몸에게 휴가를 줬다.
할 일은 태산 같고, 차일피일 미뤄둔 약속들도 있건만 다 덮어 두기로 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는 CD를 꺼내서 음악을 들었다.
컴퓨터에서 듣던 것과는 달리 음질이 좋다. 볼륨을 크게 올리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그리고는 온종일 음악을 들었다. 클래식에서부터 팝송, 가곡, 가요등을
연속으로 감상했다.
1, 알람브라궁의 추억
내가 참 즐겨 듣는 음악이다. 몇 해 전, 아들 며느리와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 여행을
마친 후, 스페인 전역을 여행중에 그라나다 아람브라궁을 갔었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발길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알람브라궁의 추억>
연주와 딱 어울렸다. 며칠 후, 바로셀로나의 한 성당에서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키타리스트의
음악 연주회가 있었는데 며느리가 공연 티켓을 구해왔다.
그런데 그날 연주회 프로그램에 적힌 곡중에 <알람브라궁의 추억>이 들어 있었다.
아랑후에즈도 좋았지만 내가 기대를 했던 건 알람부라궁의 추억이었다.
드디어 그 곡의 연주가 시작되자, 눈을 감고 음악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내가 절대 빈곤으로 끼니가 어렵던 시절, 냉방에서 석유곤로에 주전자를 얹어
끓인 물로 스텐공기에 커피를 타서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마시면서 금간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FM 음악을 즐겨 들었는데 그땐 알람브라궁의 추억이 거의 매일 흘러 나왔다.
그 시절 나의 유일한 행복이 커피 마시며 듣던 음악이었다.
그 옛날 삶이 너무나 버겁던 시절과, 내가 걸었던 숱한 길들이 떠 오르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양옆에 앉았던 아들 며느리가 내 손을 잡아 줬다.
내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아들 며느리는 내가 감성이 풍부해서인줄 알았다.
2. 딜라일라
내가 병아리 교사였을 때, 시골학교 근무를했는데 그 무렵, 가수 조영남씨가 부르는
딜라일라가 거의 매일 방송을 탔다. 혼자 시골에서 자취를 할 때였는데 시골에 라리오가 없어서
(강원도 홍천) 저녁이면 마을 노인네들이 내 자취방으로 매일 모여들었다.
연속 방송극을 듣기 위해서였다. 나는 음악을 듣고 싶은데 노인네들이 오면 팝송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연속 방송극만 들어야했다. 개인 생활이고 뭐고 없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처녀 선생 혼자
산다고 옥수수도 쪄다 주고 김치도 갖다줬다.지금도 딜라일라를 들으면 그 시절 내 자취방이 생각난다.
3. 투영 Too Young
냇킹콜이 부르던 <투영>도 딜라일라를 듣던 무렵 많이 듣던 노래인데 그 시골학교에
남자 동기 동창생이 함께 근무했었다. 동기생이라고 우리 학급 일을 많이 도와줬다.
어느날, 서울을 다녀 오더니 내게 레코드판을 선물로 줬다. 그 레코드판에 투영이 수록되어 있어서 자주 들었다.
그런데 눈치코치 없던 나는 그냥 동창이어서 내게 잘 해 주나보다 했는데 내가 다른 학교로 전근이 되던 날,
내게 프로포즈를 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결혼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실은 못생긴 내게 그 동창은 과남한 사람이었다.
그런데...그 사실을 한동네에 살던 지금 남편이 알게 되었다. 동창이 우리반 일을 많이 도와 주었는데 갓 제대를
해서 시골에 와 있던 남편 눈에 거슬렸었나보다.ㅎㅎㅎ
그런데 결혼 후, 그 동창이 선물한 레코드판을 여전히 가지고 음악을 들었는데 그 레코드판 표지에 그 동창이
자기 이름을 사인해서 준걸 보고는 가끔 나를 놀렸다. 분명 농담이긴한데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런데 바로 얼마전
그 노래가 방송에서 흘러 나오니까 나를 째려 보더니 빙긋 웃었다. "왜요?"했더니 내 볼을 잡고 꼬집었다.
피~ 그때가 언제라고 지금까지!! ㅎㅎ
4. 아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게된다.
사범학교 (나중에 교대가 되었다) 다닐적 2학년 때 우리들에게 음악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계셨는데 (우리 반 담임이
시기도 했다.) 한 번은 우리들에게 합창 지도를 하셨다. 그런데 합창곡이 가당치 않게도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였다.
와~! 높은 음을 낼때는 우리들은 거의 끼룩끼룩하며 괴성이 나왔다.
3부 합창을 하는데 화음이 맞을리 없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 여~엉~과앙~영광~♬~ 이 부분을 앨토로 불러야하는데
늘 한 박자 나중에 여엉광~ 하는 소리를 내는 친구가 있었다. 다혈질의 선생님은 너무 화가 나셔서 칠판의 백묵을
우리들에게 던지셨다. "이런 돌대가리들..!" 그래도 한창 웃음이 많던 우리들은 분해 하지도 않고 웃었었다.
삼년인가 LG 아트센터에서 아이다 공연이 있었다.비싼 티켓을 끊어 보러 갔는데 우리가 백묵을 맞아가며 연습하던
노래를 옥주현이 부르는데 갑자기 내가 작은 소릴 내긴했지만 웃음소릴 냈더니 앞사람이 뒤돌아 봐서 미안했었다.
5. 아웃오브 아프리카
이 영화는 로버트 레드포드(데니스)와 메릴스트립(카렌) 주연한 영화였는데, 사랑하는데니스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자
장례식에서 카렌이 데니스의 관위에 흙을 뿌리는데 손의 떨림이 울음보다 더 슬펐다. 손으로도 슬픔을 저리 기막히게 표현할
수 있구나 하면서 감탄 감탄하며 눈물을 글썽이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얘, 흙을 왜 손으로 끼얹냐! 삽으로 하지!"하는 거였다.
그 순간 그 친구한테 오만정이 다 떨어져서 한동안 그 친구를 보면 뜨악했었다. 영화때문에 친구 하나 잃을뻔 했다.ㅎㅎ
6. 홍시(울엄마) / 나훈아
(허리가 고무줄이라 허리가 맞았다.) 쉐타를 입혔다. 사위들이 모두 여자로 분장을
했으니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이모님과 어머니께서 배를 잡고 웃으셨다.
그날 남편이 부른 노래가 <달밤>이었다.
그런데 오현명처럼 우람한 목소리는 내는데 곡이 틀려서 웃겼다.
게다가 장난꾸러기 여동생들이 노래 가사에 맞춰서 연극배우처럼 연기를 했는데
이를테면 등불을 끄고 ☜ 이부분에선 정말 전깃불을 껐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부분
에서는 정말 창문을 열었다. 모두 배를 싸잡고 뒹굴며들 웃었다.
그 후에 어머니께선 그렇게 웃어 보긴 첨이라고 하셨다.
아~ 너무 너무 그리운 추억이다.
온종일 음악을 듣다보니 음악에따라 옛추억에 잠겼다.
음악들을 들으니 젊은 날의 내가 보이는듯 했다.
음악이 끝나고 나서 거울을보니 거울 속에 쪼그라든 할머니가 보인다.
아, 덧없어라 덧없어!
♬세월은 잘 간다. Ay Ay Ay~~~♬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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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쭈욱 읽어내려가니 안나님의 살아오신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듯해요. 좀 서럽기도 하구요.
맞아요..
지나고 나니 음악마다 추억이 있드라구요....
또 앞으로 어떤 음악이 우리의 짧은 추억이 만들어 질지...
때론..눈물이...
때론..웃음이....
추억을 추억할수있음에 감사를...
안나님~~~건강하세요~~~~~
그옛날엔 왜그리들 못살았는지 ...안나님도 온라인상엔 젊어보이시던데 사범학교에서 교대로 바뀔대면 꽤 연배이신거같아요 ?
나이는숫자에 불과하다고 옛날을 회상하며 울고 웃는 지금 음악속에 추억을 간직할수있다는 자체가 행복이 아닌지요 ^^~~~
나도 내일은 음악만 들어봐야겠다.
그런데,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서 들을 방법이 없다..
그냥 잠이나 잘까.
노래따라 세월따라.....
마치 가요 반세기 같은 노래따라 사연따라 내려옵니다.
노래속에 스며진 이야기들과 그리움....
홍시이야기에서
품어 가 반기리 업슬새 글노 설워 하는 조홍시가의 한귀절이 연상되네요
그래도 언제나 오뚜기 같이 씩씩하시고 활짝 수줍게 웃으시는 모습
좋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