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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20일(화) 오후에 설악동을 출발하여 마등령 방향으로 등반에 나섰던 진주에 사는
박모씨(44세)가 엿새만인 12.26(월) 오전 10시경 곰골계곡에서 구조되었다는 뉴스다.
이 양반 비록 한쪽 손이 불편한 장애인이지만 등산 꽤나 좋아하는 매니아인 모양이다.
한겨울이고 적설량도 1m를 넘는 설악산을 단독으로 야영등반에 나선 걸 보니 말이다.
모르긴 해도 진주가 집이라니 지리산은 구석구석 안방 드나들듯 뒤지고 다녔지 싶다.
근데 설악산의 지리는 잘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20일 오후 설악동을 출발하여 다음날 가족들에게 백담사로 하산하겠다는
연락을 한 후 소식이 끊어졌다가 며칠 뒤인 26일 곰골에서 탈진상태로 발견되었다니
대충 이렇게 짐작해 볼 수 있겠다.
당일인 20일 오후 늦게 마등령에 도착하여 그날 밤은 거기서 야영을 했을 것이다.
다음날 백담사로 가자면 마등령에서 왼쪽으로 가로질러 능선상의 오세암 하산길로 들어 서야 하는데
이분은 뚜렸하게 보이는 직진 내림길인 마등령 샘터로 내려 갔고 계속해서 계곡으로 들어 섰다.
그러니 협곡인 곰골 상단을 통과 할 수 밖에 도리가 없다.
많은 눈에 덮히고 경사도 가파른 협곡인 곰골 상류지만 다행히 눈사태가 없었고,내림길 러셀은 오름길이나
평지보다는 힘이 덜들었으며 깊은 눈이 가파른 코스에서 추락을 막아 주는 역할도 하였을 것이다.
혼자서 큰 배낭을 메고 허리까지 차는 눈속을 헤쳐나가기란 여간 힘든 노릇이 아니다.
한번씩 넘어 지면 일어 나기도 힘들고 발은 번번히 허공을 헤메다 대책없이 빠지기 일쑤였으리라.
하루 종일 걸어야 1km나 갔을까?
21일 마등령을 출발하여 꼬박 이틀을 걸어 아마 곰골 본류와 저항봉에서 내려 오는 지계곡이 만나는
합수점쯤 왔을 것이다. 구조 당시 사진에 보이는 텐트의 위치가 거기쯤으로 판단된다.
합수점보다 상류는 급경사라 텐트칠 자리가 없고 눈사태의 우려도 높다.
중간중간 휴식과 식사, 취침도 하였지만 23일경에는 거의 탈진상태에 이르게 된다.
계곡에 빠져 신발은 젖었고 장갑낀 손도 젖어 있어 밤이 되면 텐트속에서 침낭을 뒤집어 써도 극도의
추위로 밤새 떨어야 했을 것이고.
23일 이후 부터는 더 이상 진행을 멈추고 텐트에 머물며 구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무리하게 눈속을 헤메다 탈진하여 잠들면 바로 사망일테니, 체력을 아끼며 침착하게
기다린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아쉬운 점은 텐트 주위에서 마른 나무를 주워 모닥불을
피웠더라면 손발에 동상도 걸리지 않고 극심한 추위로 인한 고생도 한결 줄일 수 있었겠는데.
아무튼 한겨울 설악의 눈속에 고립된채 5일을 버티고 살아온 그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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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살아서 나온게 다행이네요 ^^
권태진님의 설명대로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야영장비가 있어 동사는 면했네요... 마등령에서 이정표도 확인 안하고 무심코 곰골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설악사진보니 눈 많이 오긴 왔더군요...아마도 이정목도 사라지고...장애도 있으신 분이 동상으로 발가락 또 잘라야한다고...그래도 살았으니...눈오믄 계곡으로 가믄 주금이죠...
이분은 천운입니다.. 그 악한 기후에서도 끝까지 생존했다는 자체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아마도 정상인보다 장애를 극복하고 산행하는 강인한 정신력에서 오는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서울 올라가면서 신문에서 보았는데 정말 천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지 말란 곳에 불법인 줄 알고 가서 헬기와 수백명에 가까운 인원을 동원하여 구조되었다고 비난하는 듯한 글도 보았습니다...저에겐 이곳의 글이 더 맘에 드네요 ^^:
보는 시각이겠죠..앗따리 희야님 요즘 뭐하는겨?...... 가끔 소식도 올려주고 하소마...ㅋㅋㅋ
설악에 박학다식한 권선배님의 추리가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늘 그런 것처럼 매사 잘 아는 사람들이 화를 입는 것 같군요.
산에선 늘 겸손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역시나 태진이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지도를 펴놓고서 보니,정말 그대로 진행이 된 것이 보입니다.대산에 한 번 안내려 오세요?팀들 모두 다 모시고 오세요.
와우!!! 대단한 추리력이십니다.. 박영석대장 사고에대한 고견 한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