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진주가을문예 마지막회 당선작>
양초라는 사건
정월향
오로라로 부릅니다 양파 속에 앉아있는 당신과 당신 속에 앉아 있는 양파의 조합, 껍질 사이로 터지는 흰빛의
회오리, 이글루라고 부릅니다, 천년 전에 내린 비가 기다리고 있는 집, 오래된 시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집, 얼음
과 얼음으로 마주 앉았습니다 거대하고 동그란 악수, 반갑습니다! 평화로운 저녁을 만들었습니다 얼음이 얼음
일 때의 공포와 얼음이 얼음을 버릴 때의 쓸쓸함을 쌓아올렸습니다 이누이트라는 말은 선뜩한 날고기, 길고
느린 석양의 조합, 결론을 알면서 오늘의 손가락을 구부리는 이유, 비명을 지르면서 냄비를 놓지 못하던 엄마
와 손바닥을 빨갛게 태우던 아빠의 시간, 양파의 흰 피는 화끈거리고 양파 속에서 찬바람 부는데 손 안의 오로
라가 자꾸 미끄러집니다 흰빛의 현란함이 위대, 라거나 장엄으로 불릴 때 한 방울의 내가 흘러내리던 사건, 걸
쭉하게 웅크린 이글루 위로 위대와 장엄이 쏟아집니다
정월향
2019년 경북일보 문학대전 소설 부문 대상.
2021년 진주가을문예 시 부문 당선.
2022년 제24회 수주문학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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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500만원 고료 진주가을문예는 그동안 기금을 지원해온 남성문화재단의 해산으로 문학상이 종료되었다
당선작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오래 매만진 손길이 느껴지는 정걸한 구성과 읽는 이를 사로잡는 이미지 사용이 돋
보였다' '언어의 활용 폭이 넓어 하나의 문장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던진 단어를 딛고 날아오르는 시원한 날갯짓
에 가슴이 탁 트이는 듯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부려놓은 의미의 그물을 잊지 않고 거두어 가는 노련한 면까
지 갖춰다. 특히 양초라는 하나의 사물에서 출발하며 양파, 이글루, 이누이트, 석양, 상처 등을 경유하며 일상 속에
서 위대와 장엄을 발견해내는 탁월한 작품이었다'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