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행 5
지난 주말 서해상으로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간 팔월 초순이다. 가끔 연락이 닿는 지인과 산행을 약속했다. 화요일 오전 학교로 출근하여 정해진 보충수업을 세 시간 끝냈다. 집으로 곧장 돌아와 서둘러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지인은 우리 집 앞으로 차를 몰아와 동반석에 앉았다. 차 안에서 행선지를 어디로 할까 의논했다. 반나절 산행이라 동선을 어디 멀리 잡을 형편은 못 되었다.
북면 양미재로 올라 제피열매를 따오기엔 시간이 짧아 다음으로 미루었다. 불모산 기슭으로 들어 녹음이 우거진 숲길을 걸어도 좋겠으나 자동차로 이동하면 산 들머리까지 접근이 불편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달 전 영지버섯을 찾아 들렸던 장유계곡으로 가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때 자라나오던 영지버섯이 갓을 펼쳐 더 컸으리라 짐작되었다. 그새 누군가 먼저 채집해 가도 상관없었다.
지인은 차를 몰아 창원터널을 지나 곧바로 바깥 차선으로 빠져 상점마을로 들었다. 불모산과 용제봉에서 흘러내린 계곡은 엊그제 내린 비로 맑은 물이 철철 흘렀다. 여름철이면 장유계곡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계곡으로 드는 갓길에는 피서객들이 타고 온 차량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닭백숙이나 오리구이로 보양식을 즐기려는 사람도 더러 찾는 곳이기도 했다.
장유계곡을 찾아간 사람 가운데 우리처럼 산행을 위해 상점마을로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식당이 끝난 텃밭 어귀 차를 세우고 용제봉으로 오르는 산 들머리를 찾았다. 길섶에는 지난번 봐 두었던 아기 영지는 제법 자라 있었다. 산행객이 지나가지 않아서인지, 눈에 띄지 않아서인지 그 영지버섯을 우리가 차지할 수 있었다. 바깥은 뙤약볕으로 지열이 높았으나 숲에 드니 공기가 서늘했다.
장유계곡에서 용제봉으로 오르는 데는 몇 갈래 갈림길이 있었다. 한여름 낮이라 산행객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돌너덜을 지나자 참나무 군락지가 나왔다. 소나무가 군데군데 섞여 자라는 낙엽활엽수림도 보였다. 인적 드문 등산로를 벗어나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를 살폈다. 우리가 찾는 영지가 없지는 않았으나 산에 들면서 예상한 것보다 적은 양이었다. 다른 버섯 개체 수도 적었다.
우리는 용제봉으로 오르는 산등선을 시계방향으로 빙글 둘러갔다. 숲속에서 삼림욕하는 셈으로 느긋하게 걸었다. 그러면서 산세가 햇볕이 바로 쬐는 남동향이라 영지가 자라기엔 습기가 부족하리라 여겨졌다. 거기다가 나무 그루터기 주변이 부엽토가 깔린 흙바닥이 적고 돌너덜이 많아 영지가 자라기에 알맞지 않은 듯했다. 바깥에서 바라보면 참나무 군락지였는데 숲속 사정은 좀 달랐다.
둘이서 채집한 영지버섯 양은 적어도 숲속에서 두어 시간 음이온을 마음껏 들이켰다. 하얀 갓을 쓴 도깨비 방망이 같이 모양이 기이한 이름 모를 버섯도 보았다. 보라색 꽃을 피운 산 도라지를 만났다. 나는 꼬챙이를 마련해 도라지 주변 흙을 조심스레 헤쳤다. 산삼뿌리 같이 길쭉하게 뻗은 도라지뿌리를 캤다. 산에 절로 자란 도라지는 재배 도라지보다 약성이 좋은 ‘먹도라지’라고 한다.
우리는 용제봉과 겹치는 산자락을 타고 내려가다가 비스듬히 되돌아 올라갔다. 아까 차를 세워둔 텃밭 공터까지 가려면 다시 제법 거슬러 가야했다. 산기슭에는 조그마한 암자가 보이고 대나무 숲을 지났다. 텃밭에는 엊그제 내린 비로 산에서 흘러내린 퇴적물이 덮쳐 부추와 옥수수가 쓰러져 있었다. 숲을 빠져나간 텃밭 어귀에서 배낭의 얼음물을 꺼내 마시면서 산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반나절 산행으로 숲속에서 자연산 땀을 제법 흘렸다. 다음 영지 채집 때는 일단 용제봉 남동쪽은 제외시킬 요량이다. 그곳은 참나무 숲은 우거져도 영지버섯이 자라기엔 환경이 맞지 않은 듯했다. 지인도 나만큼 어른 손바닥 크기 영지를 네댓 개 주웠다. 내가 채집한 영지버섯 양은 많지 않았다만 지인한테 모두 건넸다. 나는 다른 산에서 찾아낸 얼마간 영지를 베란다에서 말리는 중이다. 14.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