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마라/수필가 정임표
-사이비에 대하여
나의 친구 사랑하는 최영식 장로님!
나이 든 벗의 영혼을 아끼고 사랑하시어 주님 앞으로 나오라고 하시는 마음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만, 저는 사람이 사람을 끌어 모으면 사이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중 앞에 나서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보다는 이렇게 글을 써서 주님의 뜻과 생각을 전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에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단아 기질이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인간 정신세계의 진보는 이단아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성찰한 후 토해 놓는 말 속에 있기에 요단강 저 편에 있는 기성의 인식에서 볼 때는 이단아로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 역시 당시에는 신성모독의 죄를 저지른 이단아였습니다.
저는 문학을 이해하고 오랜 세월 동안 갇혀 지냈던 "부활"이라는 화두 하나가 터지게 됩니다. 부활은 죽은 것에 다 생명을 불어 넣는 일입니다. "생명" "새 생명" " 하나 밖에 없는 생명” 참으로 거룩하고 고귀한 단어이자 감사한 단어 입니다.
이 글은 사이비 (사이비 종교, 사이비 언론, 사이비 정치인, 사이비 문학가 등등 성서적 표현으로 거짓목자)가 어떤 것인지 구별이 어렵다는 분들을 위해서 쓰는 글입니다. 그 구별은 아주 쉽습니다. [마태복음 6:5-8]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을 적용해 보면 바로 알 수가 있는 일입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기도(보도, 강연, 선동, 자기 자랑)를 좋아하는 자는 사이비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기도를 좋아하는 자도 사이비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사이비가 노리는 핵심 목표는 우리의 영혼을 낚아가서 자기 욕망의 도구로 삼으려는 데 있지 우리의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번창하려는데 있지 않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 처럼, 우리의 영혼을 숙주로 삼아 영혼 깊숙이 뿌리를 박아서, 스스로 자기 복제를 해나가서, 자기만의 천년왕국을 만들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걸 매실 농사를 지으며 “씨살이 좀벌”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짧은 수필로 남긴 바가 있음)
사이비에는 선으로 포장된 수 많은 변종들이 있으니,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은 그들의 숙주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합니다.
사이비를 깨는 방법도 아주 쉽습니다. 입을 다물고, 몰려다니지 말고, 조용히 자기 집 자기 골방에서 혼자기도(글쓰기, 자기 내면과의 대화, 자기 성찰)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려하며, 현재 어디에 서 있는 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내면에 있는 신(=또 다른 그대)에게 참 마음으로 물어보는 것입니다. 내면에서 응답이 들리거든( 이 말에 조심해야 합니다. 스피커처럼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 내면의 깨우침과 그 깨우침에서 오는 밝음입니다. 하늘에서 진짜로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자는 사기꾼입니다. 휴거가 있다고 몰려다니는 분들도 있던데 사기꾼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산 입에 거미줄을 칠 리가 없고, 거짓이 참을 이길 수가 없고, 죽은 것이 산 것을 이길 수가 없으니, 산 자는 자기 삶을 불안하게 여기지 말고 묵묵히 자기 살 길을 성실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렇게 걸어가다 보면 지금 내가 걷는 길이 남에게 내세울 것 없는 숲으로 난 오솔길이겠지만, 머지않은 날에 세상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정상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오면 나도 내 뒤를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이비에게 홀려 가버리면 코로나 바이러스 19에게 점령 당한 폐처럼 검은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직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썩은 고깃덩이를 탐 내는 독수리들만이 맴돌 뿐입니다.
내가 전하는 이 말의 의미를 모른다면, 아무리 화려한 비단 옷을 입고, 차량의 경문을 크게 하고(고급승용차를 타고), 높은 단상에 올라 세상을 호령한다 할지라도, 또 세상 모든 사람이 그대를 떠 받들고 찬양한다 할지라도, 그대는 한갓 썩은 고깃덩이에 불과합니다. 썩은 고깃덩어리(=헛된 명성)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이 없으면 아무리 방부제를 친다 한들 결국에는 썩을 뿐입니다. 썩은 영혼은 빨리 썩어서 사라져야 진짜 생명이 살아 날 수가 있습니다.
밭에 엎드려 농사를 지어보면 이름 없는 수 도 없는 작은 벌레들이 기어 다닙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고,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지능을 가지더라도, 저 작은 벌레 한 마리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서 경이롭습니다. 내가 생명으로 이 땅에 왔다는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벌레를 미물이라 부르는 것은, 나의 오만이자 어마무시한 인간의 무지 입니다. 복음서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삶을 대함에 있어 "너희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가 사이비"라는 것이며, 그 나팔소리를 좋아라하며 따라다니는 그대 역시 사이비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은 "내 가르침이 길이고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친구여!
내 영혼을 아껴주고 깊이 사랑해주는 나의 친구여!
진짜로 중요한 것은, 육신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보인답니다.
육신은 영혼을 담는 그릇에 불과합니다. 교회가 거룩한 것은, 질그릇에 보배를 담듯 거룩한 정신을 담아 있기에, 교회가 거룩하고 육신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나는 내 질그릇에 담긴, 내 거룩한 영혼의 외침을, 이렇게 글로 토해내고 있습니다. 백석의 시를 사랑하고, 금아의 수필을 사랑하고, 시편을 사랑하고, 솔로몬의 "아가서" 읽는 것을 좋아 합니다. 이건 영적세계를 가진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그걸 좋아하면서 타인의 거룩한 영역을 파괴하면 아니 됩니다. 그래서 문학예술을 사랑하고, 서툴지만 꽃을 심고 가꾸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육신의 눈으로만 보는 고로, 일상에서 타인의 영적 세계를 이해하기는 나남 없이 모두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이비를 조심하고, 독수리 같은 눈으로 감찰하고, 오직 기도로서 우리의 영성을 거룩한 곳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싫어하는 정치 경제 종교적인 글(인간의 욕망과 모순에 관한 글)을 많이 쓰는 것입니다.
이런 나의 신앙관을 이해해줄 교회는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행복합니다.
친구께도 신의 은총이 늘 함께하길 (=돈이나 권세나 뛰어난 설교가 아니라, 예수 그분의 가르침을 두고 주고받는 그대 자신만의 대화가 풍성하시길), 그래서 생명이 번성하되 더욱 번창하길, 기원드립니다.
# 이 글은 성서를 인용한 것이지만 종교와는 무관한 글임을 밝힌다. 중심을 잃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찾아 유리방황하는 영혼들을 위해 필자의 문학적 영감으로 적은 글일 뿐이다. 종교 뿐만 아니라 언론, 출판, 방송, 정치, 교육 등등 형이상학 세계에 사이비가 엄청 많이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이해 한다면 글쓴 보람으로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