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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여우봉(710m)
산정호수~나연폭포~거북바위~흔들바위~정상~등룡폭포 코스
해가 뉘엿한 늦가을 경기도 포천군 명성산 이웃에 있는 여우봉(710m)을 다녀오는 귀로는 차로 꽉 막혔다. 35년 전 강원도 철원에서 3년 반 동안 군생활을 하면서 외박을 나오거나 휴가를 나왔다가 느지막하게 창가에 스치는 오두막촌들의 불빛을 보면서 쓸쓸히 돌아가던 길이다. 당시 포천이나 양문, 운천은 지금처럼 공장이나 아파트들이 들어선 도시가 아니라 한국군, 미군, 터키군들이 득실거리는 군인도시였다.
먼지를 일며 달리는 군차량들이 주로 오갔던 길에 무인 속도위반 단속카메라가 설치되고, 주밀이면 행락객들의 차량으로 오가기가 힘들 정도가 됐다. 회색빛 마을들은 울긋불긋해지고, 벌거숭이 산들은 푸른 숲으로 덮였다. 한탄강과 철원평야, 남서쪽으로 뻗어내린 한북정맥의 높은 산들, 이 지역이 오염되거나 훼손 되지 않은 철원과 포천군 일대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포천군 영북면 산정호수와 명성산(932.6m)이다.
발맞춰 음식문화도 발달하여 막걸리 하면 이동막걸리, 갈비하면 이동갈비가 되었고, 손두부도 유명해져 경인지방의 등산, 야유회 장소로 철원과 포천의 명소는 언제나 번잡하다.
여우봉은 서울서 의정부를 거쳐 철원으로 가다가 영북면 운천 조금 못 미처 문암리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 산정호수를 찾아가면 된다. 여우봉은 산정호수의 배경이 되는 명성산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이곳이서 왕건과 한판 승부를 벌였으나 대패하고 울면서 철원으로 도망갔다고 하여 울으산이라 불리는 명성산과 계곡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 있다.
명성산 통제하는 주중에도 등룡폭포계곡 개방
여우봉은 빙하호수처럼 산속에 자리잡고 있는 산정호수(실은 인공호수다)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망무봉(望武峰)이나 명성산의 여러 암봉들과 함께 산정호수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산정호수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여우봉은 지금까지 명성산에 가려서 명성산의 한 지맥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명성산의 등산로를 정비하여 개발에 앞장서온, 운천의 산악동호인들이 주축인 각흘산악회(회장 이성일) 회원들이 최근 여우봉 등산로를 새로 냈다. 주중이면 명성산 동쪽 기슭에 있는 군 사격장에서 사격훈련을 하는 바람에 명성산 산행이 통제된다.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등산인들에게는 희소식이다. 각흘산악회와 지역주민들의 발의로 포천군과 군부대가 계곡 위쪽 등룡폭포까지 출입할 수 있도록 통제구역을 조정하면서 여우봉의 산행시발점이나 하산지점을 확보, 여우봉 원점회귀산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군관민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이뤄낸 성과다.
여우봉은 명성산을 비롯해 철원과 포천군 일대의 모든 산들을 둘러보는 전망대 산이다. 이웃 명성산의 삼각봉(903m)이 바로 건너다보이고, 북쪽으로는 금학산(947.3m), 동쪽으로 광덕산(1,046.3m), 백운산(904.3m), 국망봉(1,168.1m)을 비롯해 강씨봉, 청계산 등 한북정맥의 연봉들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사향산(604.5m)과 이어진 관음산(733m), 금주산 등이, 서쪽으로는 고대산(832.1m), 지장봉(877.2m)에서부터 종자산(642.8m), 불무산, 보장산, 종현산 등 경기 북부의 명산이 펼쳐지다.
여우봉의 깊은 골짜기와 산등성이에는 기암괴석들이 숨어 있다. 각흘산악회는 등산로를 개발하면서 능선 바위길에서 거북바위와 흔들바위를 찾아냈다. 모두 그럴듯하게 생겨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능선길에 늘어선 기암절벽 위에 올라 먼 산을 둘러보는 통쾌함이 여우봉 산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능선길에는 두어 군데 위험한 바윗길이 나타나지만, 큰 힘 들이지 않고 오르내릴 수 있다. 등산로 곳곳에 커다란 천으로 만든 리본을 매달아 놓았고, 산꼭대기와 안부에는 이정표들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표기가 서로 조금씩 틀려서 혼잡스럽다는 점이다. 포천군이 세운 이정표에는 정상을 '여우봉' 이라고 제대로 썼으나, 각흘산악회가 세운 이정표에는 엉뚱하게도 '연인봉' 이라고 썼다. 각흘산악회의 주장에 의하면, 봄이면 능선은 진달래꽃과 철쭉꽃 터널을 이루고 능선 바윗길은 연인들이 손을 잡아주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멋진 코스여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가평군도 2년 전에 엄연히 불리어온 산이름(우목봉)을 두고 연인산이라 새로 이름을 붙인 사례가 있다.
산이름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산을 생활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주민들이 오래 전부터 불러온 산이름을 군수 마음대로, 산악회 마음대로 고쳐서는 안된다. 명성산이나 여우봉은 개인이나 특정단체의 산이 아니다. 여우들이 고개를 지나는 행인들을 홀린다 해서 여우고개, 여우봉이라 부르고, 사향노루가 많아서 사향산, 이리떼가 자주 출몰했다 해서 낭유고개라 부르듯, 이 지역의 특성과 사연이 담긴 산이르을 하루 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향토사학자들과 지역 주민들 모두가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등산로를 개발한다고 필요 이상으로 설치한 이정표나 쓸데없이 잔뜩 걸어 놓은 표지기는 자연파괴 행위다. 2년 전에 설치했다는 여우봉 등룡폭포 계곡의 철다리와 계단도 그 자리에 꼭 설치해야만 했었는가 되돌아보게 한다. 산행에 필요한 인공시설물은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꼭 필요한 곳에만 설치해야 한다. 등산객을 위한 시설물이라도 관리를 소홀히 하면 흉물로 전락하고 오히려 위험물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연보호의 최선책은 손을 대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놓아 두는 것이다. 아름다운 여우봉의 산천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손을 대서는 안된다. 명성산과 여우봉 동쪽 기슭을 군사격장으로 써오면서 이곳에서 흘러내려오는 등룡계곡의 흙탕물 또한 생각하면 이곳을 지나는 등산인 모두를 안타깝게 하거늘, 이곳에 철다리와 철계단이 자꾸 들어선다면 등룡계곡은 자연파괴 현장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군, 관, 민 모두 등룡폭포 계곡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등룡폭포 계곡의 탁류 방지 대책의 하나로 침전조 공사 등을 계획하고 있다. 군부대도 계곡의 퇴적물 제거와 주변 청소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각흘산악회가 애써 개발한 여우봉 코스는 능선기에서 만나는 두어 군데의 암벽지대에 로프설치 등 안전시설만 보완한다면 연인 뿐 아니라 친한 친구들과 은발을 휘날리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멋진 실버산행 코스로 자리잡을 것이다.
*산행 길잡이
현재 포천군과 각흘산악회가 개발한 여우봉 등산로는 산정호수 주차장에서 시작해서 정상을 거쳐 내려오는 원점회귀산행 코스다. 비선폭포와 등룡폭포가 흐르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가 계곡을 건너 산기슭으로 난 가파른 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선 다음, 정상을 지나 능선길을 따라 흔들바위, 거북바위, 누운 송곳바위를 거쳐 다시 비선폭포로 내려온다.
아니면 나연폭포 위를 지나 능선에 오른 다음 거북바위, 흔들바위를 지나 정상을 거쳐 등룡폭포 계곡으로 내려온다. 어디서 시작하든 능선에 오르기까지는 40~50분쯤 걸린다. 양쪽 다 가팔라서 중간에 몇 번 쉬어야 한다. 능선에 올라서기만 하면 크고 작은 봉우리를 3개쯤 오르게 되는데, 중간에 평탄한 능선길도 있다.
정상 오름길에는 아슬아슬한 암릉 구간이 두어 군데 나타나 바위를 안고 돌거나 타고 넘어야 한다. 눈이 내리는 겨울철에는 아이젠을 꼭 챙겨야 한다. 여우봉 건너편 명성산에 비하면 얼핏 봐서 작은 산처럼 보이나, 산을 돌아내려오는 데 빠르면 3시간, 쉬엄쉬엄 걸어도 4시간은 걸린다. 사향산과 이어지는 여우고개에서 능선을 타고 여우봉을 올라 등룡폭포 계곡으로 내려서기도 한다. 여우고개에서 여우봉 정상까지 40분쯤 걸린다.
*교통
서울 상봉동에서 철원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포천이나 운천에서 내린다. 운천을 거치는 산정호수행 버스나 171번 좌석, 71번 시내버스를 탄다. 의정부역에서는 산정호수까지 138-6번이 다닌다.
상봉동에서 출발하여 포천을 경유하는 철원, 이동, 김화행 버스는 서울 수유리 4호선 전철역 4번 출구쪽에 있는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탈 수도 있다. 포천행 138번 좌석과 일반버스가 수유역이나 의정부역에서 수시로 출발한다.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43번 국도를 따라 의정부~포천~만세교~양문리 삼거리~문암리 사거리에 이르러 316번 도로를 따라 오른쪽 산정호수 길로 접어든다. 산정호수 입장료는 1,000원, 주차료는 1,500원이다.
참조:여우봉
*필자: 李五峰=월간조선 사진팀장, 홍익대 조형대학 겸임교수.
참고: 월간<산> 200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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