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이스라엘 왕이 대언자 사백 명가량을 함께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라못길르앗을 대적하여 싸우러 가랴, 아니면 삼가랴? 하니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곳을 왕의 손에 넘겨주시리이다, 하니라. 여호사밧이 이르되, 우리가 주께 여쭈려 하는데 이들 말고 여기에 그분의 대언자가 있지 아니하니이까?(왕상 22:6,7)"
남왕국 유다 왕 여호사밧은 북왕국 이스라엘 왕 아합과 연합하여 라못 길르앗으로 싸우러 가려고 했습니다. 그는 먼저 이번에 출정하는 것에 대하여 주(LORD)께 여쭈어 보고자 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400명 가량의 대언자들을 불러 모았는데 그들은 왕들 앞에서 대언하기를 "주께서 그곳을 왕의 손에 넘겨주시리이다.(왕상 22:6)"라고 했습니다. 아합은 그들의 말을 흡족하게 여겼지만, 여호사밧은 한사코 "주께 여쭈어 보아야 한다"면서 "여기에 주의 대언자가 있는가?" 물어 보았습니다.
얼핏 읽으면 이것은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대언자들이 "주께서 그곳을 왕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라고 했는데, 여호사밧은 왜 또 다시 "주의 말씀"을 듣고자 했을까요? 그것은 아합 왕 앞에 서 있는 대언자들이 말한 것은 주(LORD)가 아니라, 주(Lord)였기 때문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6절에서 대언자들이 말하는 주는 Lord라고 표기했고, 7절에서 여호사밧이 찾는 주는 LORD라고 기록했습니다. 한글 알파벳에는 대소문자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흠정역 성경에서는 7절의 주를 진한 글씨로 표기했습니다. 킹제임스 영어성경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이 6절의 Lord와 7절의 LORD를 구분하여 표기합니다.
6절의 주(Lord)는 히브리어로 Adonai 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을 구성하는 네 글자 JHVH (ineffable tetragrammaton)를 대할 때 "아도나이"로 대신 읽었습니다. 아도나이는 사람들이 여호와라는 그분의 이름 대신에 사용한 이름이고, JEHOVAH 라는 주의 이름은 그분의 신성과 성품과 영광을 담고 있는 권능있고 위엄있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대언자들은 주(LORD)께로부터 말씀을 받았으면 반드시 주(LORD)의 이름을 걸고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Thus saith the LORD,)"라고 선포해야 했습니다. 만약 주께서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 대언자가 자기 마음대로 지어내서 주의 이름을 사칭하면 그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어떤 대언자가 주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그 일이 잇따라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생기지도 아니하면 그 일은 주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신 것이니라. 오히려 그 대언자가 자기 뜻대로 그것을 말하였나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신 18:22)"
그래서 여호사밧은 "주(Lord, Adonai)께서 그곳을 왕에게 넘겨주신다"라는 대언자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고, "주(LORD, Jehovah)께로부터 나온 주의 말씀"을 듣고자 한 것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비록 아합과 연합하는 잘못을 범하긴 했지만, 그는 간절히 주(LORD)의 말씀을 찾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시리아와의 전쟁에서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구출되었습니다(왕상 22:30-33).
"주의 천사가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 그들을 구출하는도다.(시 34:7)"
우리 각자 자기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주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는가?"
"나는 다른 어느 누구의 말보다도 주의 말씀을 신뢰하는가?"
"나는 주의 말씀을 듣기 원하며, 주의 말씀을 꾸준히 읽고 있는가?"
* 흠정역성경 말씀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