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너무도 깨끗한 이 나라는
주님과 상관없이 너무도 잘 사는 나라입니다.
국민을 만족시키기에 대체로 불만이 없는 나라라는 말을 가이드에게 듣습니다.
이런 곳에서 전도는 더 어렵겠다는 생각,
하지만 어딘가에 있을 진실한 주님의 백성들, 그 남은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잠시 머무는 현재의 삶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소망하는 자들이 많아지길 기도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어디를 가나 책상과 밝은 불을 주셔서 묵상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저도 모르게 오염된 영혼을 덮어 주옵소서.
정결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본문 주해)
1~4절 : 인간은 본성상 위의 것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묶여 버린 성도가 거듭난 자요, 이렇게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만이 위의 것을 찾을 수 있다.
위의 것이란 우리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의하여 주어진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의 약속의 결정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위의 것을 찾으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찾는다는 것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며 찾는다는 것은 생각하라는 것이다.
땅의 것을 찾는다는 것은 인간의 강력한 본능이다.
모든 인간은 본성상 땅의 것을 추구하고 살기에 그것은 강조하지 않아도 너무나도 다들 잘 알아서 찾고 사는데, 바로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찾아서 사는 삶이다.
위의 것을 찾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새 생명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만이 생명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땅을 사는 동안에는 이 생명이 감추어져 있기에 누구나 똑같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위의 것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면서 사는 것이 위의 것을 찾는 것이다.
비록 지금 생명이 감추어져 있어서 세상에서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지만 주님 다시 오실 그날에 예수님의 영광을 함께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5~10절 :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전에는’과 ‘이제는’이 생긴 자이다.
‘전에는’ 어떤 자였는가를 말씀한다.(5~7절)
전에는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에 찌들어 그와 같은 일을 행했던 자였다.
‘이제는’ 어떤 자인가를 말한다.(8~10절)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 등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나 스스로가 나를 새롭게 만드는 자가 아니라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수동태로 말씀한다.(10절) 즉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새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인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도록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누가 꺾을 수가 있겠는가?
세상 사람은 탐욕을 위하여 살다가 그 탐욕의 무덤에 들어가겠지만 성도는 그런 것들이 깨어지고 부수어지고 잘라내어지는 것이다. 그런 것이 죄인 줄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도록 하는 것이 다 새롭게 하심을 입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하여 ‘지식에까지 새롭게 됨’은 우리가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받는 것이다.
11절 : “거기에는 그리스인과 유대인도, 할례 받은 자와 할례받지 않은 자도, 야만인도 스구디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새번역)
‘거기에는’은 새 사람을 입은 자들이 모인 곳이다.
헬라인(그리스인)과 유대인이 차별이 없다는 것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선민이라고 여겼고, 헬라인과 같은 이방인은 짐승 중에도 부정하게 취급되는 개나 돼지와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야만인이나 문명인의 차별도 없고, 종과 자유인의 구별도 있을 수가 없는 곳이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
그렇게 차별이 없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만유가 되시기 때문이다.
만유(萬有)라는 말은 모든 것(all)이라는 뜻이다.
“but Christ is all, and is in all.”(NIV, 11b절)
그리스도가 전부인 사람에게 더 이상 분별은 없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 되도록 만들어지는 사람이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이다.
(나의 묵상)
‘위의 것을 찾으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라’라는 말씀이다.
그것은 곧 땅의 것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옛사람의 몸과 마음의 행위를 벗어버리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나는 이미 주님께로부터 새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땅의 것에 전혀 마음이 없는 자가 된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탐심을 내고 있고, 휘황찬란한 땅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어제 싱가폴에 도착해서 하루를 보냈다.
교회 사역과 상관없이 전적 관광의 여행이 참으로 오랜만이어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빠진 듯 어색한 느낌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번엔 실물 교육을 시키시는 것 같다.
호화롭고 풍요가 넘치는 현장을 보여주시면서 오늘 이 아침에 ‘위의 것을 찾으라, 땅의 것을 찾는 마음을 버리라’라는 말씀을 주시니 말이다.
어제만 해도 눈앞의 아름답고 멋진 경관에 감탄을 하며, 우리 국민 소득의 3배 이상이나 되는 이 작은 나라의 힘에 놀랐던 것이다.
좋은 지도자를 통해 국민들이 잘 살게 되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그렇구나’ 하며 부러움의 고개를 끄덕였는데, 오늘 아침에 정신줄을 잡게 하신다.
이 땅에서 잘 살려고 아등바등 하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다 탐심으로 행하는 일이다.
잘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할 수도 있지만, 그 마음에는 ‘예수님이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
“but Christ is all, and is in all.”(NIV, 11b절)
휘황찬란한 땅의 것을 가득 이루어낸 싱가폴에 와서 오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은혜이다. 이것이 은혜임을 알게 된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만지심 때문이다.
주님께서 나를 새 생명을 얻은 자가 되게 하시고, 언제 어디서든 말씀을 찾고 말씀 안에 있기를 원하는 마음이 되게 하신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참 좋은 곳에 와서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모든 것 되시는 주님을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위의 것을 찾는 것이 습관이 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아멘!
지상천국과 비교할수 없는
위의 세계를, 실제로 누리는 묵상이
천금보다 귀하네요.
남은 일정도 시간마다 은혜의 통찰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