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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영향력 커지는 ‘反세계화’]
여파는 9·11 테러보다 더 클 수 있다. 9·11 테러가 세계화의 변방에서 세계화의 중심 미국에 타격을 가하려 했다면, 미국과 영국에서 실시된 두 번의 선거는 세계화의 중심에서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 반(反)세계화를 두 나라의 국민들이 바라고 있다고 증명했기 때문이다.
2016년 연말에 세계화는 몰락과 회생이라는 미래를 모두 봤다. 12월 4일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에서 같은 날 치러진 두 개의 선거가 그것이다. 이탈리아에선 개헌안 국민투표가 부결돼 마테오 렌치 총리가 사임하고 EU 탈퇴파인 좌파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이 집권할 가능성이 커졌다. 반면 오스트리아에서는 대선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를 꺾고 무소속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전 녹색당 대표가 승리했다. 판데어벨렌 당선인은 EU 체제를 견고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세계경제는 세계화가 이끌어 왔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은 국제 무역으로 성장해 지금의 경제력을 갖췄고, 이후에도 많은 신흥국이 국제 무역으로 선진 시장에 생산품을 수출해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세계의 공장으로 탈바꿈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 견줄 수 있는 세계적 초강대국이 됐다.
그러나 세계화가 앞으로 더 확대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하고 멕시코산 제품에 35%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중국에 대해선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아 와야 한다면서 수입품에 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그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 일자리를 죽이는 정말 나쁜 협정”이라고 비판하고 ‘재앙’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영국인들이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배경 중 하나도 세계화와 자유 무역에 대한 반감이다.
게다가 올해도 세계화에 반대하는 극우적·포퓰리즘 정당이 유럽에서 세력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4~5월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에선 극우파 국민전선(NF)의 마린 르펜 대표가 결선 투표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11월 “지금 세계 곳곳에서 통제되지 않는 세계화와 파괴적인 자유주의, 주권국가·국경의 소멸 움직임에 반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 흐름을 타고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상반기에는 네덜란드에서 극우 자유당(PVV)이 세력을 얻을 것으로 보이고, 하반기에는 독일에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약진할 가능성이 있다. 이탈리아에선 제1야당 오성운동이 집권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서 정치적 리스크가 커져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 안토누치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7월 유럽의 정치적 리스크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정치적 분열은 정치 위험을 높이고 통화와 위험 자산에 부담을 준다”며 “정치적 스펙트럼이 더 분열되면 구조개혁을 어렵게 하고 불안정성을 높이며 기업 경영과 투자에 악영향을 준다”고 했다.
영국 투자자문사 앱솔루트리턴파트너스 니엘스 젠슨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성장하는 민족주의는 영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라며 “몇해 전부터 일본에서 진행됐고, 지금은 미국에서 나타났고, 전 유럽에 걸쳐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선거에서 앞으로 몇 개월 내에 ‘브렉시트와 같은 순간’을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보호무역을 주장한 경제뿐만 아니라 대외 정책 분야에서도 미국의 대외문제 개입을 꺼리는 고립주의를 공언했다. 그의 선거 구호인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처럼, 외교 정책은 ‘미국 우선주의’로 요약된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이 동맹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담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 비율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올리겠다고 했다. 한국에 대해선 ‘주한미군 주둔비용 100% 분담’을 주장했다. 그는 동맹국들이 적정한 방위비를 분담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방어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사우디아라비아·독일 등에 주둔하는 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해서도 무용론을 폈다.
해외 군사적 개입은 되도록 자제하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지난 4월 유세에서 “나는 필요하지 않으면 전투에 우리 병력의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보내지 않을 것이다”라며 “군대를 보낸다고 할지라도 승리의 계획이 섰을 때에만 할 것이다”라고 했다.
트럼프의 이 같은 발언은 미국의 오랜 전통인 고립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1796년 두 번째 임기를 마친 뒤 고별 연설에서 “무엇 때문에 우리의 운명을 유럽 어느 지역의 운명과 얽히게 함으로써 우리의 평화와 번영이 유럽의 야심, 경쟁, 이해관계, 일시적 기분 혹은 변덕에 말려들게 할 것인가”라며 “우리가 현재처럼 자유로이 회피할 수 있는 한, 외부세계의 어느 지역과도 항구적인 동맹을 피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정책”이라고 했다.
고립주의는 제임스 먼로 대통령의 1823년 의회 연설에서 ‘먼로 독트린’으로 발전한다. 먼로는 “유럽 자체에 관련된 문제로 유럽 강국 간에 벌어진 전쟁에서 우리는 어느 쪽도 편들지 않았고 편든다는 것이 우리의 정책에 맞지도 않는다”라며 “(유럽 열강이) 그들의 체제를 이 반구의 어떤 부분으로든 확장하려는 여하한 시도도 우리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고립주의 전통은 이때부터 한 세기가 지나서까지 이어졌지만, 세계 최강대국으로 떠오른 20세기 초에는 맞지 않았다. 1918년 당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자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연맹을 제안했으나, 정작 미국은 상원에서 먼로 독트린을 이유로 국제연맹 가입이 부결됐다. 국제연맹이 무력했다는 점은 제2차세계대전의 발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에도 오랜 고립주의 전통과 여론 반발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이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을 공습한 후 미국은 적극적인 개입주의로 돌아섰다. 트럼프의 주장은 미국이 건국 후 이어온 오랜 전통적 외교 정책으로 되돌아가는 측면이 있다.
미국이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 질서에 개입하지 않아 정치적 불안정을 일으켰다면, 경제 분야에서도 보호무역 정책을 펼쳐 세계 무역이 침체를 맞았다. 역시 트럼프 당선인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화는 두 번의 물결이 있었다. 1820년부터 1914년까지 지속된 첫 번째 세계화는 영국이 주도했다. 영국은 공산품 관세율을 1820년 50%에서 1875년에 0%로 인하해 자유 무역을 선도했다. 보호무역의 두 핵심축인 곡물법과 항해법을 각각 1846년, 1849년 폐지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관세 인하와 경제 협력을 다루고 최혜국 조항을 최초로 채택한 ‘콥든-슈발리에 조약(영·불 통상조약)’을 체결했다. 다른 국가들도 최혜국 조항이 포함된 통상조약을 체결하기 시작해 관세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유럽은 1860~70년대 완전한 자유무역에 근접했다.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인 두 번째 세계화 주도 세력은 미국이다.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1980년대 말 4.6%에 불과했다. 세계경제 질서를 유지하는 세계무역기구(WTO)도 세워졌다.
전 세계 수출액과 수입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유럽 주도의 세계화가 확산된 19세기 말에는 수출·수입이 완만한 속도로 늘어난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 비율은 급락했다가 대공황이 시작된 후에는 10%선까지 떨어진다. 제2차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마무리된 뒤 점점 올랐지만, 20세기 초의 수준은 1970년대가 되어서야 회복된다. 그러다가 동서 냉전이 해체된 뒤 빠르게 무역이 증가해 지금처럼 수출·수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0%를 넘게 된다.
19세기 말 세계화는 점진적으로 확산되고 있었지만, 이때부터 유럽 대륙은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보호주의로 복귀했다. 1873년 발생한 불황은 혹독했고 세계 최초의 국제적 불황이라고 불린다. 1870년대부터 미국·러시아산 곡물이 유럽으로 대거 유입되자 1880년대 이후 영국·네덜란드·벨기에·덴마크를 제외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보호주의로 돌아섰다. 또 자유무역 대신 시장 확대를 위해 식민지 쟁탈전에 나서는 등 제국주의를 강화했다. 이것은 제1차세계대전의 원인이 됐다. 통일이 늦었고 산업 발달도 뒤처졌던 독일은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지만 ‘알짜’ 식민지는 이미 영국과 프랑스가 차지한 뒤였고, 영국·프랑스와 대립했다.
제1차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보호주의 정책을 썼고, 무역이 급감하는 원인이 됐다. 유럽 열강들은 보호관세와 수입 쿼터제, 수입 금지 조치로 전쟁 비용을 조달하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고 했다.
대표적 사례가 1930년 통과된 미국의 스무트-홀리법이다. 스무트 상원 재정위원장과 홀리 하원 세입위원장에 의해 제안됐고, 관세율을 미국 사상 최고로 인상했다. 1000명이 넘는 경제학자가 반대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당초 법안의 목적은 불황을 겪고 있던 농업을 구제하기 위해 농산물 관세를 인상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계가 강력하게 요구해 수입품 2만여개 품목의 관세 인상이 결정됐고, 평균 관세율이 52.8%까지 치솟았다. 결국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 속에서 무역 상대국의 보복 관세를 부르는 등 악순환을 낳았다. 세계적인 관세 인상 경쟁 속에서 1929년과 비교해 1932년 국제교역은 60% 줄었다. 미국이 대불황에 빠지는 원인이 됐다.
미국은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 최대 자본 수출국이 됐지만 보호무역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19세기 영국이 주도했던 세계경제 순환 체계가 재가동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민족주의 색채를 가진 극우 정권이 유럽에 수립되자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유럽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포퓰리즘 정당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 운동을 주도한 극우 성향의 나이절 패라지 전 영국독립당(UKIP) 대표는 지난 7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연설에 대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반EU, 반이민정책을 주장한다. 패라지 전 대표는 트럼프 당선인이 주미 영국대사로 희망할 정도로 트럼프와 친하다.
르펜 대표가 이끄는 극우 성향 프랑스 국민전선도 자유무역에 반대한다. 좌파 성향 포퓰리즘 정당 중 자국 내에서 세력을 얻고 있는 이탈리아 오성운동이나 스페인 포데모스(Podemos)도 자유무역에 부정적이다. 반세계화, 반자유무역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유럽에서 유권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나타났어야 할 일이 다소 늦게 불거진 것일 수도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2008년 위기 당시 보호무역주의 조치가 일부 도입됐지만, WTO와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와 주요 20개국(G20) 국제 공조 등을 통해 우려했던 것만큼의 보호무역은 확산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대공황 전후 보호무역이 낳은 폐해에서 배운 교훈 덕분이다. 그러다가 남유럽 재정위기가 시작된 2010년 말부터 G20 국가들의 보호무역 조치가 증가세로 반전됐다.
그렇다면 반세계화 움직임은 성공할 것인가. 세계화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이 집권하는 트렌드가 지속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극단적이고 포퓰리즘적인 공약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온건한 세력을 지지하기 위해 집결하면 반세계화 움직임이 승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4일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선이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 바람을 타고 극우파 자유당 호퍼 후보가 우세를 보였지만, 선거가 실시된 후 뚜껑을 열어보니 고립주의에 반대하는 판데어벨렌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판데어벨렌 후보는 지난 5월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0.6%포인트 차이로 호퍼 후보를 간신히 이겼지만, 이번엔 6.6%의 득표율 차이로 여유 있게 이겼다.
반EU 성향의 좌파 포퓰리즘 정당 스페인 포데모스는 지난 6월 총선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냈다. 포데모스는 여론조사에서 중도우파 사회노동당(PSOE)을 뛰어넘어 제1야당에 오를 것으로 조사됐지만, 막상 선거 결과가 나오자 중도우파 집권 국민당(PP), 사회노동당에 이어 3당에 그쳤다. 브렉시트 투표 후 영국이 겪은 혼란을 보고 유권자들이 경각심을 갖게 된 게 원인이다. 모건스탠리는 급진적인 정당들이 유럽 전역에서 대중의 지지를 잃고 있어, 프랑스와 독일에선 중도적인 정당이 정권을 쥘 가능성이 더 크다고 내다봤다. 엘가 바치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는 “극우 국민전선의 지도자 마린 르펜이 대선 2차 투표에서 패배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국민전선이 의석수를 늘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주류 정당보다는 적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호무역의 폐해
보호무역은 경제 발전이 늦은 국가를 중심으로 실시됐다. 무역 규제를 철폐하면 국내 산업, 특히 유치 산업이 경쟁에서 밀려날 것을 우려해 실시된다. 농업 등 특정 분야에서 자급자족할 필요가 있거나, 국내 생활 수준을 보호해야 한다는 등의 논리도 추가된다. 경제 불황이나 공황으로 실업률이 증가하고 생활 수준이 낮아지거나, 외국과 대치 상황에서 경제적 이익을 보호해야 할 때 각광받는다. 그러나 보호주의로 무역이 둔화되고 경제력이 집중돼 독점의 폐해가 커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18세기 이전 절대왕정하에서는 중상주의의 형태로 보호무역이 나타났다. 유럽 강대국은 자유 무역으로 이득을 취하면서 국내 산업은 다양한 보호무역 정책을 택했다. 동시에 식민지 확보 경쟁에 나섰다. 19세기에 미국에선 남북전쟁 결과 면화 수출에 의존하는 남부가 패배하고 공업화에 적극적인 북부가 승리하자 보호무역 기조가 상당기간 유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