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7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볼 때 풍성한 헌금을 한 자보다 겨우 두 렙돈 곧 동전 두 닢을 넣은 과부를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헌금을 하였다고 평가하셨습니다.
나는 주님께 어떤 판단을 받을런지요?
마지막 때에 인자 앞에 능히 서도록 깨어 기도하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온전한 성전 된 내 안에 계시는 우리 하나님 앞에서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 진리 앞에서 나는 없어지고 오직 주님만 드러나게 하소서.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의 모든 것 되신 우리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어 오늘 하루의 삶의 모든 것을 이끌어 주소서.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이끄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골 3:12-17
제목 : 명품 중에 명품인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라.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 나의 묵상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면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비록 헬라인이나 유대인인 민족적 차이가 있을지라도,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처럼 지식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종이나 자유인처럼 얽매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런 것은 하등의 차별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다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그분의 사랑을 받는 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친절함과 겸손함 그리고 온유함과 인내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해야 한다.
혹여 누구에게 불평이 있다 할지라도 서로 용납하며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하되 무엇보다도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모두를 완전하게 묶어주는 띠와 같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 받은 평강으로 너희의 마음을 다스리라.
너희는 이 평강을 위하여 부름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이 때문이다.
그러니 또한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 것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너희의 삶을 풍성히 채우라.
주님이 주신 지혜로 서로를 가르치고 세워주라.
시와 찬양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라.
너희는 모든 말과 행동을 우리 주님을 위하여 하는 것처럼 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기 바란다.
어제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벗어버려야 할 것들을 열거하였다.
그것은 분노와 악의, 비방과 부끄러운 말 그리고 거짓을 말하는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으라고 하였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반대로 반드시 입어야 할 옷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12-14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우리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두 입는 옷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대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경 야고보서 2장에 나오는 것처럼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회당에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 회당 사람들이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좋은 자리를 안내하고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에게난 아무데나 앉으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서로를 차별하며 판단하는 악한 생각이 아니냐고 꼬집지 않는가?
어쩌면 이것이 우리네 인생의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일은 현재 우리의 교회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옛날 김해에서 목회할 때의 일이다.
교회가 한참 성장하고 있을 때, 잘 차려입은 중년의 부부가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김해의 어느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교회를 옮기고 싶어서 한 번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대하여 좋은 점을 주욱 이야기 하고 꼭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자고 하였다.
그들의 연락처를 받았기에 그 후로도 계속 카톡과 전화를 통하여 연락을 하였다.
우리 교회는 아직 규모 면에서 적은 교회이기에 우리 교회에 정착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제격이라고 판단되어 어떻게 해서든지 그 부부를 붙잡으려 했다.
그렇게 몇 주 나오더니 안 보이는 것이다.
무슨 일인가 궁금했는데 후에 들어보니 그가 나온 교회 성도들이 그 집에 찾아와 얼르고 달래서 다시 그 교회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이 못내 아쉬움이 남아 있었던 것은 그 부부가 입었던 옷이 범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돈이 있어 보였고 그래서 가난한 우리 교회에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붙잡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편력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가이다.
금이나 은으로 치장한 명품보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의 옷을 입어야 한다.
물론 옷을 입는 것은 비단 외적인 치장이나 보호의 수단만 갖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태도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오죽 하면 우리의 격언에 옷이 날개다, 라는 말이 있겠는가?
우리 민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가난한 사람이 낡은 옷을 입고 잔치집에 갔다가 음식은커녕 문전박대만 당하고 쫓겨났다.
이에 그 사람은 분한 마음에 값비싼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그 잔치집으로 갔더니 그제야 주인이 정중히 맞이하며 큰 상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상에 앉자마자 입은 옷을 벗어 잘 개킨 다음에 상 앞에 정중히 모셔놓고 자기는 옆자리로 비켜 앉았다고 한다.
이를 의아하게 지켜보던 주인이 이유를 묻자, 내가 이렇게 환대를 받는 것은 다 이 옷 때문이니 이 대접도 이 옷이 받아야 마땅한 것 아니겠소? 하더란다.
웃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사람들은 세상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하여 좋은 옷, 좋은 신발, 좋은 가방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온 세상이 명품 하나라도 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명품을 걸치면 상대가 나를 하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명품일지라도 언젠가는 다 쇠락의 법칙에 의하여 사라지고 없어지며 썩어질 것들이다.
(벧전 1: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오직 하늘에 간직하신 것인데 그것을 우리가 입어야 할 진짜 명품 옷이다.
이 옷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이다.
세상에 아무리 부자라도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라도 함부로 가질 수 없는 옷은 바로 그리스도의 옷이다.
그래서 성경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강하게 권한다.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이런 그리스도의 옷을 입을 자는 돈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만 입을 수 있는 옷이다.
(갈 3:26-27)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나는 명품 옷, 명품 신발, 명품 가방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명품 중에 진짜 명품인 그리스도의 옷에는 관심 만땅이다.
적어도 이 명품만큼은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다.
그런데 이 명품인 그리스도의 옷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누구라도 입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옷을 가지고 뺏고 빼앗길 염려가 전혀 없다.
그저 기쁜 마음으로 서로 입혀주고 나누는 것이 진짜 명품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마음이 바로 긍휼과 자비요 겸손과 온유이며 오래참음의 옷이리라.
어쩜 이리도 우리 예수님이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날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예비하신 우리 주님이 최고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모든 것 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날 위하여 그 높고 귀한 영광의 자리를 내어 놓으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하찮은 육신을 입고 오셔서 그것도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우리를 위한 아니 나를 위한 희생이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한 것도 없는데, 그저 주님의 이름에 먹칠만 했을 뿐인데 그런 나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버리시고 귀하디귀한 생명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그 은혜 앞에 그저 내가 할 것은 머리를 조아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 눈에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리며 오열합니다.
죽기에만 합당한 자, 지옥에서도 가장 뜨거운 아랫목이 가장 잘 어울릴 자인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런 은혜를 받는단 말입니까?
내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지옥에 던져져도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자인데 말입니다.
그저 주님께 감사로 나아갈 뿐입니다.
나의 작은 입술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영광을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