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해제 유럽, ‘롱코비드’ 몸살… 기업들 “일할 사람 못 찾겠다”
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지하철 8호선의 한 객차 내부 모습. 앞줄에 앉은 승객 4명 중 3명은 마스크를 썼지만 한 명은 쓰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 3월 14일부터 대중교통을 제외한 모든 실내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했지만 일부 시민은 대중교통에서조차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 유럽 각국이 속속 방역 규제를 철폐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재유행과 후유증을 우려하고 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중심가 콩코르드 광장에서 레퓌블리크 광장을 관통하는 지하철 8호선을 탔다. 객차 안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승객과 쓰지 않은 승객이 각각 절반 정도 있었다.》
맨얼굴인 대학생 루이즈 씨에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유를 묻자 “식당, 카페 등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지지 않았냐. 대중교통에서만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반면 회사원 르베르 씨는 “여전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많이 나온다. 주변에는 감염 후 심각한 후유증, 즉 ‘롱코비드(Long Covid)’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며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는 마스크를 벗지 않겠다고 했다.
프랑스는 올해 3월 14일부터 대중교통을 제외한 식당, 카페 등 모든 실내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했다. 의료 시설과 요양원을 제외하면 실내에서 코로나19 접종 증명서(백신 패스) 또한 지참할 필요가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6, 7월경에는 대중교통 내 마스크 의무화 해제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방역 완화 봇물
프랑스뿐 아니라 이탈리아도 이달 1일부터 백신 패스 제도를 폐지했다. 스페인 역시 의료 시설을 제외한 모든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을 할 필요가 없도록 했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스웨덴, 폴란드, 헝가리 등도 비슷한 조치를 속속 단행했다.
특히 덴마크는 지난달 26일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접종 또한 전면 중단했다. 81%에 달하는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률, 신규 감염 감소, 입원율 안정화 등을 그 이유로 꼽으며 “코로나19가 통제 가능하다”고 선언했다. 덴마크는 올해 2월 1일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처음으로 모든 방역 조치를 폐지하며 “코로나19를 더 이상 중대한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최근 유럽의 여행 수요 또한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프랑스 에어프랑스, 독일 루프트한자는 각각 5일 “항공권 판매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브리티시에어를 소유한 IAG는 6일 “올해 2분기(4∼6월) 항공 수요가 2019년 수준의 약 80%를 회복할 것이며 올해 4분기(10∼12월)에는 이 수치가 90%에 육박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면역력이 약한 고령층은 방역 해제가 지나치게 섣부른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파리15구 카페에서 만난 60대 시민 카트린 씨는 “오미크론을 넘어선 코로나19 신종 변이도 속속 나오고 있다. 고령층 입장에서는 완전한 방역 해제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프랑스 보건당국 또한 지난달 말 자국 내에서 신종 변이인 ‘BA.4’ 1건, ‘BA.5’ 2건이 새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6월 중순∼7월 초에 이들 새로운 변이의 유행이 시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도 했다.
‘롱코비드’ 우려 고조
급격한 방역 완화를 우려하는 쪽은 특히 롱코비드를 문제 삼는다. 코로나19에서 완치된 후에도 피로, 호흡곤란, 가슴 통증, 인지장애 등 200여 개에 달하는 후유증을 겪는 현상을 뜻한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으나 소량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완치 후에도 인체 내 폐, 기도 등에 남아 면역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BBC는 “롱코비드는 원인을 찾아 치료하기 어려운 뇌척수염, 만성피로증후군(CFS) 등 유사한 점이 많다”고 평했다.
최근 파리국립병원연합이 968명의 코로나19 감염자를 분석한 결과, 이 중 10∼15%가 후유증을 겪었다고 밝혔다. 특히 입원 환자의 25%는 감염된 지 1년 후에야 회복됐다. 60%는 “코로나19 후유증이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룩셈부르크 정부 역시 코로나19 감염자 289명을 1년간 장기 추적한 결과, 59.5%가 최소 1년간 후유증을 겪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특히 이들의 평균 연령은 불과 40.2세로 나타났다. 고령층 감염자만 더 위험한 것이 아니라 전 세대 확진자가 후유증을 고르게 겪는다는 뜻이다.
2200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온 영국 정부 또한 3월 기준으로 롱코비드 증세를 겪는 국민이 최소 170만 명인 것으로 추산했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또한 전체 확진자 중 10∼30%가 롱코비드에 시달리고 있다고 봤다.
코로나 후유증에 구인난 심화
롱코비드는 한 개인의 건강 상태를 넘어 사회 전체에도 상당한 비용을 야기한다. 특히 각국 경제가 코로나19 여파에서 벗어나 정상화로 가는 과정에서 더 심각해진 구인난, 임금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최근 영국 런던 공공정책연구소(IPPR)에 따르면 약 150만 명의 영국인이 롱코비드 영향으로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았다. 영국 저비용항공사 이지젯은 최근 항공 수요가 급증했음에도 상당수 직원이 코로나19 후유증을 겪는 바람에 지난달에만 수십 편의 항공편을 취소해야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에 따라 적지 않은 기업들이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이전보다 많은 급여를 지급하거나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해 11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스크를 쓴 한 노인 남성이 코로나19 백신 추가 접종(부스터샷)을 맞고 있다. 최근 유럽 각국이 속속 방역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가운데 면역력이 약한 일부 고령층에서는 방역 완화가 코로나19 재유행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AP 뉴시스
이에 따라 각국은 속속 롱코비드 대책 또한 마련하고 있다. 프랑스 보건당국은 치료 인력은 물론 심리 전문가, 영양사, 물리치료사 등을 동원해 롱코비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영국 또한 2400만 파운드(약 390억 원)를 투입해 전국에 90여 곳의 롱코비드 클리닉을 설립했다. 증상 진단, 치료, 재활, 정신건강 상담 등의 서비스를 모두 제공한다.
이탈리아 또한 호흡기 관련 코로나19 후유증을 겪는 환자 치료를 위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총 5600만 유로(약 756억 원)를 투입했다. 롱코비드 진료병원과 일반 병원의 연계도 확대했다. 스페인도 올해 3월 롱코비드 전문 병원을 최초로 개설했다. 노르웨이는 지역별로 최소 1개 이상의 롱코비드 진료소를 설립하기로 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롱코비드 증세를 겪은 1500여 명의 환자가 소셜미디어에 ‘롱코비드 유럽’이란 네트워크를 설립해 치료법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의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강화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월 영국 보건당국은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사람은 1차 접종자보다 롱코비드를 겪을 확률이 50% 낮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영국의 일부 노조는 롱코비드 환자에게 일시 휴직 등을 가능케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자 중 4분의 1이 해고 등을 의식해 고용주에게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며 롱코비드 환자 20명 중 1명 또한 퇴직 및 권고사직 등을 강요받았다는 이유에서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