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67「하얀 독법」외
석야 신웅순
사나흘 쏟아 붓던 늦장마 물러가고
애당초 곧게 뻗던 초막 아래 죽비소리
백자에 숨어서 울던 어린 날이 숨어있다
- 김광순의 「하얀 독법」
사나흘 쏟아 붓던 늦장마가 물러갔다. 애초에 초막 아래 곧게 쏟아지던 소나기였다. 아픔이 저랬을까. 이제와 깨달은 죽비소리이다. 백자에 숨어서 울던 어린 날이 숨어있는 이 하얀 독법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
시인은 종장에서는 일단의 패라도 내놓아야한다. 무슨 사연 있어 백자 속에 어린 날의 울음이 숨어있을까. 시인에게 되물어야할 판이다. 시조가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이다.
창가에 마른 화분 가시에 털어놓았다
희고 맑던
오십살
아무래도
기도 같았다
선인장 꽃 핀 근육에 기대 서서 울었다
- 김광순의 「계약직」전문
오십살이 기도 같다니! 위대한 은유이다. 선인장 꽃 핀 근육에 기대서서 울었다니 계약직의 참담함이 이보다 더할 수는 없다. 마른 화분 선인장 가시에 사연을 털어 놓았다. 털어놓을 곳은 이 밖에 달리 없다.
근육으로 핀 사막의 선인장 꽃이다. 물 없이도 견딜 수 있는 선인장의 근육 그것이 계약직의 버팀목이요 힘이다.
중장에서 칼을 대고 종장에서 깔끔하게 도려냈다. 이 쾌도난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 시조이다.
-2025.2.5.(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