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숭배와 영원한 생명
탈출 32,7-14; 요한 5,31-47 / 사순 제4주간 목요일; 2025.4.3.
드디어 헌법재판소가 내란 수괴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지 여부를 심판하는 날을 하루 앞두고, 오늘 우리는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78주년을 맞이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제주와 오사카를 오가는 연락선 덕분에 제주 사람들은 유학생으로나 노동자로 오사카에 많이 갔었고, 해방 직후 이들이 귀향하여 일본 오사카에서 보고 들은 선진적 민권의식을 많이 전파했기 때문에 해방된 제주는 전국에서 건국준비위원회 산하 조직인 인민위원회가 가장 먼저 결성되고 가장 튼튼할 정도로 민권의식이 앞서 있던 곳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 팽창정책을 추구하고 있어서 조선을 침략했고 식민지로 만들었지만, 대내적으로는 아시아를 떠나 유럽을 본받겠다는 소위 ‘탈아입구’(脫亞入歐) 노선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권운동이 발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정 때문에 앞선 민권의식을 갖춘 민중과 다짜고짜로 밀고 들어온 미군정의 제주 지부와 이들이 고용한 일제 밀정들과 경찰들과는 긴장이 높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터에 1947년 3·1절에 3만 명이나 되는 도민들이 남북분단을 우려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재현하자 놀란 기마경찰이 군중의 기세를 누르려고 하다가 어린아이를 치어 다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경찰이 사과를 하기는커녕 항의하는 군중에게 발포하여 무고한 희생자들이 발생하자 도민들이 항쟁에 나섬으로써 시작된 사건입니다.
도민들이 항의하는 평화 시위를 육지로부터 응원경찰과 서북청년단까지 불러들여 진압하려 하자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명분으로 제주도 남로당원 350 여명이 무장봉기를 했고 이를 토벌하려던 군경이 이후 1954년 9월까지 당시 제주도민 인구 30만 명 중 3만 여명을 학살함으로써 일단락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이 사건이 제대로 된 이름을 갖지 못하고 그저 ‘제주 4·3 사건’이라고만 부르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사건의 성격과 진상이 완전히 규명되었거나 밝혀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해방 직후 제주도민들은 미군정과 리승만에 의한 단독정부가 수립됨으로써 민족이 갈라지는 사태를 지극히 우려했고, 통일된 나라를 간절히 원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 바람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이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해서보면 그 바람이 실현되기에 가장 희망적인 국제정세 속에 놓여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 단순한 바람을 제주도 민중이 표현한 것만으로 이들은 지난 70년 간 빨갱이로 몰려 수모를 당해야 했고 죽어가야 했으며 지금까지도 명예가 회복되지 못한 채로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된 정세 덕분에 제주 4 3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있고 특별법이 제정되어 도민의 명예도 회복되는 길이 열렸으며 무엇보다 그들의 역사적 진실이 민족 구성원 전체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역사는 제주도민들의 외침과 희생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역사가 기억하는 제주 4 3 사건의 본질은 부당한 국가폭력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것과 도민들인 하나된 민족과 온전히 해방된 조국을 염원했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느님 말씀은 우상 숭배를 멀리하고 영원한 생명을 구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우주와 세상을 조성하시고 인류를 창조하신 하느님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인류로 하여금 당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숭배하는 짓을 제일 경계하셨습니다. 더구나 하느님을 알지 못하던 바빌론 사람들이나 이집트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야 몰라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당신의 존재와 뜻까지 알려주신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만큼은 엄격하게 금하셨습니다.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섬기는 작태에 대해서 하느님께서는 진노를 터뜨리셨습니다.
우상숭배를 엄하게 금하신 하느님께서 그 다음으로 정성을 기울이신 일이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심으로써 그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유다인들이 그 길을 믿지 않았고 오직 소수의 유다인들과 그 길을 믿었습니다. 그 소수의 유다인들로부터 기원한 그리스도교가 전체 인류에 대해서 반드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노력을 기울여 해야 하는 사명은 인류가 인간의 지성과 의지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배우고 실현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현대의 성령강림 사건이라고 칭송받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모인 교부들은 성경의 메시지를 이렇게 현대인의 언어로 풀어서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물었습니다.
- 인간이 어떻게 하면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참 하느님을 섬길 수 있을까?
· 현 시기에 인류에게 우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들을 무엇이 있는가?
·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며 인간의 자율성을 올바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종교와 학문, 사상과 언론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할까?
· 문학이나 음악, 미술 등 예술을 통해서 인간의 올바른 감수성을 키울 수는 없을까?
공정한 경쟁을 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체육이 주는 기쁨과 보람이 인간의 윤리감각을 건강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예수님께서는 온 생을 바쳐서 인류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에 대해여 가르치셨고 몸소 그 길을 앞장서 가셨습니다. 무지렁이 백성 한가운데서 사시면서 머리 둘 곳 조차 없이 떠돌아 다니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힘 없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오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몸소 찾아가시느라 그러신 것이었습니다.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못난이들을 하느님을 섬기듯이 귀하게 대하시고 부러진 갈대 같고 꺼져가는 심지 같은 그들의 자존심까지 세심하게 배려하시면서 할 수 있는 도움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들에게도 당신처럼 하라는 뜻으로 성찬례를 제정하시고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이 하신 것을 그대로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당신이 도움을 베푸셨던 그들이 당신이 억울하게 모함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셨을 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데 대해서도 한 마디 원망을 표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도와준 것은 그들이 불쌍해서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대신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어 준 것뿐이었을 겁니다.
공의회 교부들이 가르친 바와 같이, 우리 믿는 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길도 그래야 합니다. 사람들 한가운데서 평범하게 남의 신세를 지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한 도울 수 있는 이웃을 돕고 그리고 도와주되 그네들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지 않으며, 그들이 감사하든 배신하든 연연해 하지 않고 하느님 앞에 당당하게 나아가는 것.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며 목숨이 붙어있는 이 세상에서나 죽을 때나 저 세상에 가서나 떳떳하게 그분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살아가는 것, 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