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2월 논산훈련소 수용연대에서 9일간 있다가 3월1일 원주 1하사관학교로 차출되어 팔려나갔다. 너무나 바짝 긴장하고 겁을 먹은채 원주하사관학교에 도착하니 내가 속한 11중대는 연병장 구석 쓰레기장 옆에 있었다. 그뒤로는 녹슨 철조망이 있었고 양철지붕인 민가 몇채가 있었다. 도착하여 사병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언덕에 있는 화장실을 다니다가 묘한 광경을 목도했다.
선배깃수들 몇몇이 쓰레기장에 버려진 식당에서 버린 짬밥을 주워 먹는 것이였다.. 나역시 저녁을 먹고 난후 배부름 느낌도 잠시였고 허기짐이 빨리 오긴했다. 밤 10시 점호를 취하고 소등을 한후 얼마안가 내옆자리 훈련병을 비롯. 여러명이 마치 화장실가는 척하고 철조망건너 민가 양철지붕으로 작은 돌을 던진다. 그러면 주인아줌마가 큰광주리로 삼립크림빵을 들고 나왔다. 50원하는 크림빵 서너개씩을 사서 런닝샤츠에 감추고 막사로 들어와 모포를 뒤집어 쓰고 자는 척하며 크림빵을 먹고는 잤다.
나도 크림빵을 먹고 싶었으나 돈이 없었다. 어머니가 어렵게 만든돈 8천원을 입대하는날 받았지만 수용연대 신체검사장에서 고등학교 동기인 기간병을 만나 무겁게 옷들고 다니지 말고 자기한테 맡기라고 해서 고마워서 맡긴후 신체검사 다마치고 옷을 찾으러 가니 동기는 부대로 들어갔고 옷속의 8천원은 온데간데 없었다. 하사관학교 입소 6주가 지난후 일요일에는 처음으로 가족면회를 있었는데 나는 편지에 삼립크림빵만 갖고 오라고 했다. 매형이 사온 삼립크림빵 20개. 나는 그자리에서 10개를 먹어 치웠고 갑자기 기름기가 들어간후 뱃속이 놀라 밤에 여러번 설사를 했다.
이번주 EBS 수요일프로인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에는 광명시에 살면서 50년차 약선요리 전문가로 사는 74세인 이경애씨가 나왔다. 그녀는 평생을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퍼주는 일이 가장 행복하고 보람된 일이라는 신념하에 일년에 평균 3천명의 불우이웃과 독고노인들을 초대하여 밥을 먹인다. 쓴돈으로 따지면 200억원이 족히 넘는데도 전혀 아깝지 않고 음식도 인공감미료를 전혀 안쓰고 천연효소와 약재를 써서 맛과 건강을 살리는 음식을 개발해서 대접을 한다. 전국에 식당을 개업하려는 이들을 초청하여 음식강좌를 열어 손맛을 전수한 식당이 350곳이 되고 수십명의 유명식당 사장을 배출하였다 .
그녀는 충남서천에 잘사는 집안 8남매 중에 자랐지만 부친의 노름으로 망하고 친척집으로 전전하며 식모살이로 하느라 학교도 제대로 못다녔다. 모친은 8남매를 먹이기 위해 머리를 길러 짤라 팔아 보릿쌀과 밀가루를 사와 가족들이 연명하기도 했다. 부인을 끔직히 사랑하는 지금 남편을 어려서 만나 처음 중국집을 해서 돈을 벌었으나 6개월만에 집주인한테 쫒겨났다. 남편은 기능공으로 사우디를 가서 돈을 벌러갔고 4년만에 귀국하여 목돈을 쥐고와 커피숍을 차려 잘되다가 3년만에 건물주가 나가라고 해서 빈손으로 다시 나왔다.
그후 1990년대초 광명의 논밭이 있는 곳에 본인돈 5억.은행대출 5억으로 단독건물을 짓고 한방 돼지갈빗집을 차려 대박이 났고 한적한 시골동네가 교통이 마비되고 장사를 마치면 하루 매상 2천만원을 푸대자루로 서너개씩 담아와 밤이면 이불삼아 껴안고 잤다. 돈이 엄청 불어나자 소갈빗집. 돼지갈빗집. 횟집. 오리구이집. 한정식집을 연달아 냈고 주변땅 500평을 광명시에 기증하여 동네가 자연스럽게 음식문화거리로 조성하게 되었다.
지금사는 약선요리전문연구소겸 생활집은 5층으로 번듯한데 집안에 에어컨도 없이 아주 소박하게 산다. 주변 2천평 밭을 일구면서 각종야채와 공작새를 키운다. 대통령한테 표창을 받으러 갈때도 백화점 옷이 너무비싸 만져만 보고 시장통 양장옷을 사서 입고간게 처음으로 누린 호사였다.
인생을 살다보니 굴곡이 챗바퀴돌듯 어려움이 밀려 왔지만 뭘하든 노력하면 먹고 살길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지금은 여기저기 부동산이 있어 돈벌 욕심은 추호도 없고 베풀며 살고 싶을 뿐이다. 그동안 음식전수를 통해 배우고 간 제자가 1000여명인걸 보면 이경애씨는 잘 살아온 인생같다. 배고픈자의 설움은 당한자만 안다고 오늘도 열심히 주변사람들에게 베풀며 산다. 52년전 군에 입대해 배고팠던 시절이 불현듯 생각나는것은 내게는 인생의 좋은 교훈이였다.
첫댓글
우리는 가끔, '먹기 위해서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먹는' 건지를 농담으로 하지만...^^
먹지 않고는 생명을 부지 할 수 없지요.
한창 먹을 나이에 군 입대 후,
배고픈 사연은 많이 들은 것 같습니다.^^
74세의 약선요리 전문가, 이경애씨의 사업 이야기와
배고픈 이에게 음식 봉사하는 마음은
사회에서 귀감이 될 이야기 입니다.
참 고맙고 보람 된 삶을 사시는 여러분을 소개하는
EBS 방송을 열심히 시청하시고 수필방에 올려주시는
언덕저편님의 글, 항상 감사합니다.
부자들이 불우한 이웃에게 베푸는 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는 살맛나는 세상이 되겠지요.
한창 시절인 그때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요?
크림빵은 또 얼마나 맛있었을까요?
모두가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삼립크림빵은 꿀맛이었지요. 오늘의 SPC그룹을 만든 모체였지요. 빠리바겟트. 베스킨라빈스.연매출이 8조.
나는 군대에 가기 전에는 소식을 하는 편 이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 가더니만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이 배가 고픕디다
그리고 제대후 에도 그먹성은 줄어들지 않읍디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우량아가 되었습니당
그런데 10 여년전에 너무 우량아가 되어서 건강이 문제가 되니
그때부터 적게 먹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위의 글을 읽으니 나도 배고프던 군대 시절이 생각 납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한창때니 당연히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죠. 절대 잊지 못하는 군시절 사연입니다.
1979년 10월 3일...
해병대 하사로 자원입대했던 19살 청년
적토마도 6개월이 조금 못미치는 훈련기간을
정말로 힘들고 배고프게 지냈습니다.
그때 그 추억을 생각하며 정신력이
나태해지면 다시금 저 자신을 추스리곤
합니다. 그런 시절을 견디어낸 경험으로...
해병대훈련도 아주 빡세죠. 잘 견뎌냈기에 오늘 잘사는겁니다. 늘 화이팅입니다.
@언덕저편 1
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한 날들 되세요.
하사관 교육받을땐 특히나 야외교육장에서
배가 고팠습니다.
일단은 수통에 물을 가득히 담고서 10분간
휴식시간에 소보루빵 10개를 게눈 감추듯
치우고요.
20개도 먹었습니다.
지금도 소보루빵 엄청 좋아하지요 .
갓구워낸 곰보빵. 그리고 구수한 냄새.저도 좋아합니다.
새하얀 크림이 들어간 삼립크림빵 달콤하니
맛 있어요.
얼마나 면회 오시기를 기다리셨어요.
크림빵 받고 기뻐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이 있다고하는데요.
이경애 씨는 마음 씀씀이가 천사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