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는 타지 못했다.
열일곱에서 아홉의 아이들이 배를 장악했다. 배는 어느 때보다 높게 파도를 탈 것이다. 고깃배도 아닌데, 날 것을 너무 많이 담았다.
2. 영과 용
시를 쓰는 영은 나와 엇갈렸다. 소설을 쓰는 용은 선거용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동전을 뒤집는 대신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고, 용이 살고 있다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3. 식물원
나는 일본과 감성이, 아주 딱은 아니지만, 제법 맞는 것 같다. 일본영화가 그렇고 일본 정원이 그렇다. 살아 있는 식물은 하나도 놓지 않고. 모래로 바다와 섬을 구현한 명상의 공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길을 걷다 용이 담배를 물었다. 해가 다 저물고, 문득 용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담배 배웠니? 용은 무슨 소리냐 했다. 아까 피웠잖아. 용은 억울하고 어이없어 했다. 있지도 않는 담배를 어디서 꺼내 피운단 말이니? 나는 분명 노란색 닮은 베이지색 옷과 주머니와 하얀 담배와 담배를 잡은 손가락과 담배에서 뿜어 나오던 연기와 그 냄새를 기억한다. 길에는 오직 그와 나, 둘뿐이었다. 그 아닌 그와 나, 둘뿐.
4. 폭포와 폭포와 폭포
유채꽃은 모두 졌고, 전날 내린 거센 비 때문에 마른 폭포에서 모처럼 물이 넘쳐났다. 나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이상하게 자꾸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풍경 가운데 혼자 덩그러니 있는 사진이 우스울 게 뻔한데도 그러고만 싶었다.
5. 거기 산이 있었다,,,,,그렇다고 꼭 오를 필요는 없다
6. 미루나무 한 그루
육지에 살던 여자의 애인은 어느 날 갑자기 지도를 펼치더니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여자는 섬을 골랐다. 두 사람은 함께 떠났다. 여자는 바닷바람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도망갔다. 1년쯤 지나 여자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한 달 후 이번에는 여자의 애인이 떠났다. 남은 여자는 그곳에 작은 카페를 차렸다. 기다리는 중이다. 다른 연애를 하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글을 쓰면서, 간절히는 아니고, 오고 싶으면 와도 돼, 하는 정도의 심정으로 기다리는다는,,,,,,아, 적고 보니 신파 같은 이야기.
7. 낚시
세월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세월을 놓아주려는 것이다. 방생!
낚시는 처음 했다. 다시는 하지 않을 작정이다. 밑밥을 던져 온갖 어리고 무지한 것들을 모아, 주유소 습격사건도 아닌데 그야말로 딱 한놈만 잡아채는, 그 과정은 너무 잔인하다. 그러나 나는 대어를 낚았다. 처음 던진 미끼는 바위를 물었고, 두번째 던진 미끼는 내 옷에 걸렸다. 자업자득. 낚시를 끝내고 나니 베인적도 없는 손마디에 핏물이 두어방울 물들어 있었다.
8. 귀로
손톱에 바른 매니큐어가 벗겨졌다. 1미터쯤 자라기도 했을 것이다. 바닷바람에 젖은 머리는 해초처럼 엉켰다. 서울이 가까워오자 멀미를 했다. 서울역 광장,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행장,,,돌아와서 보면 너무 아득한 풍경 가운데 하나이다. 누구였더라, 돌아올 때의 느낌이 싫어 여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 사람이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