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현(臨河縣) 본디 고구려의 굴화군(屈火郡)이다.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곡성군(曲城郡)으로 고쳤는데 고려 초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현종(顯宗)때에 본부(本府)에 예속되었다.
길안현(吉安縣) 본디 길안부곡(吉安部曲)인데 고려 충혜왕(忠惠王)때에 승격시켜 현(縣)으로 하였다.
일직현(一直縣) 본디 신라의 일직현이다. 경덕왕(景德王)이 일령(一寧)으로 고치고 고창군(古昌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초에 옛 이름을 회복하였으며 현종(顯宗)때에 본부(本府)에 예속되었다.
풍산현(豊山縣) 본디 신라의 하지현(下枝縣)이다. 경덕왕(景德王)이 영안(永安)으로 고치고 예천군(醴泉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 태조(太祖)때에 고을사람 원봉(元逢)이 귀순(歸順)한 공이 있어 승격시켜 순주(順州)로 하였으나 뒤에 견훤(甄萱)에게 함락되었으므로 낮추어 하지현(下枝縣)에 예속되었다. 명종(明宗)때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뒤에 다시 본부(本府)에 예속되었다.
감천현(甘泉縣) 고려 현종조(顯宗朝)에 본부(本府)에 예속되었다.
내성현(柰城縣) 본디 퇴관부곡(退串部曲)이다. 고려 충혜왕(忠惠王)때에 고을 사람인 환자(宦者) 강금강(姜金剛)이 원(元)나라에 들어가 시위(侍衛)한 공로가 있었으므로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승격시켜 현(縣)으로 하였다.
춘양현(春陽縣) 본디 가야향(加也鄕)이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10년(1284)에 이 고장의 사람 호군(護軍) 김인궤(金仁軌)가 공이 있었으므로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승격시켜 현(縣)으로 하였다.
재산현(才山縣) 본디 덕산부곡(德山部曲)이다. 고려 충선왕(忠宣王)이 경화옹주(敬和翁主)의 고을이라고 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승격시켜 현(縣)으로 하였다.
삼국시(三國時) 소속(所屬) 두 현(縣)
일계현(日谿縣) 김부식(金富軾)이 말하기를 열혜현(熱兮縣)이라 하고 또 말하기를 니혜현(泥兮縣)이라 하였다.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일계(一界)라고 고치고 고창(古昌)에 예속시켰으나 지금은 미상(未詳)이다.
고구현(高丘縣) 본디 신라의 구화현(仇火縣)이다. 경덕왕(景德王)이 고구(高丘)라고 고쳤는데 혹은 고근(高近)이라고도 한다. 뒤에 의성(義城)에 합하여 예속되었다.
고려시(高麗時) 소속(所屬) 열한 현(縣)
흥주(興州) 지금의 순흥(順興)이다. 현종(顯宗)이 안동(安東)에 예속시켰다. 뒤에 옮겨 순안(順安)에 예속되었다. 명종(明宗)이 감무(監務)를 두었다.
의흥현(義興縣) 현종(顯宗) 9년에 안동에 예속되었다. 공양왕(恭讓王) 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기천현(基川縣) 지금의 풍기(豊基)이다. 현종(顯宗)때에 길주(吉州)에 예속되었다. 명종(明宗)이 감무(監務)를 두었다. 뒤에 다시 안동에 예속되었다. 공양왕(恭讓王)이 다시 감무(監務)를 두었다.
은풍현(殷豊縣) 현종(顯宗)이 안동에 예속시켰다. 공양왕(恭讓王)때에 기천(基川)으로 옮겨 예속되었다.
봉화현(奉化縣) 현종(顯宗)이 안동에 예속시켰는데 공양왕(恭讓王)때 감무(監務)를 두었다.
의성현(義城縣) 현종(顯宗)이 안동에 예속시켰는데 인종(仁宗)이 감무(監務)를 두었다.
강주(剛州) 지금의 영천(榮川)이다. 현종(顯宗)이 길주(吉州)에 예속시켰는데 인종(仁宗)이 순안현령(順安縣令)으로 고치었다. 보주(寶珠) 지금의 예천(醴泉)이다. 현종(顯宗)이 안동에 예속시켰는데 명종(明宗)이 기양(箕陽)으로 고치고 승격시켜 현령(縣令)으로 하였다.
예안현(禮安縣) 현종(顯宗)이 길주(吉州) 예속시켰는데 신우(辛禑)가 다시 군(郡)으로 하였다.
의인현(宜仁縣) 본디 안덕현(安德縣) 지도보부곡(知道保部曲)이다. 공민왕(恭愍王)이 승격키셔 현(縣)으로 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안동에 예속시켰다. 공양왕(恭讓王)때에 예안(禮安)에 예속되었다.
안덕현(安德縣) 현종(顯宗)이 안동에 예속시켰는데 공양왕(恭讓王)이 감무(監務)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