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탐방기2
연길에서 첫밤을 보내고 드뎌 백두산을 향하였다.
연길은 연변조선족 자치구의 중심지고 조선족 자치구는
길림성(吉林省)에 속한다.
조선족 자치구는 50여개의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독창적인 문자인 한글을 사용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으며, 길거리 표시판 조차도 한글 밑에 한자를 쓴다.
이것은 아마도 중국이 남의 땅을 점령한 것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세종대왕님의 큰 업적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기는 했으나 이제는 철자도 틀린 곳이 많아서 간판이나 메뉴판에는 요상한 모습의 한글도 가끔 눈에 띄었다. 이를테면 관전(官田)이란 곳을 지나쳤는데, ‘관’자가 ‘그’에 ‘ᅟᅡᆫ’을 쓴자, 즉 ‘고’자에 점이 없어서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서 웃음이 나왔다.
연길에서 백두산 아랫동네의 이도백하(二道白河) 까지는 버스로 4시간 이상이 걸렸다.
백두산을 한라산 크기 정도로 생각하면 참으로 난감하다.
그 주변 크기는 아마도 한 개의 군(郡)만한 넓이는 될 것이다.
백두산은 크게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북한쪽 부분을 동파(東坡), 그리고 중국쪽에 서파와 남파 그리고 북파가 있으나, 남파는 개발되어있지 않고 실제로는 서파와 북파로만 오를 수 있다.
나는 서파부터 올랐으나, 개발은 북파가 먼저다.
천지를 에워싸고 있는 16개의 봉우리 중에서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여성스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서파요, 장군봉을 비롯한 봉우리가 우뚝 솟아서 남성미를 보이는 것이 북파다. 백두산 꼭대기엔 천지가 있다는 것 외에는 백두산에 대한 아무런 상식이 없었던 나로서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백두산은 생태보호특구로서,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 보호되어있었다. 인공 조림도 할 수 없고 쓰러진 나무 등걸 조차 치우지 않고 그냥 방치되어 그것이 썩어서 스스로 그 숲의 영양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가문비나무, 전나무 등이 밀림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나를 아주 감격하게 만든 것은 하늘 모르고 높이 자란 자작나무
(White birch)들의 군락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대관령 횡계 지방에 자작나무 군락지가 있고, 강원도 인제에도 있다. 그리고 횡성에는 자작나무 미술관이 있어서 봄이면 그 반들거리는 녹색잎을 보고자 반드시 한번은 찾곤 했다.
그러나, 내가 시베리아의 타이거 포리스트(Tiger forest)를 보지않은 이상, 내가 본 최고의 자작나무 숲이 거기에 있었다!
보통의 자작나무는 곧고 길게 뻗어있었지만, 고산으로 가면 자작나무도 버드나무처럼 구부러지며 자라고 이었다.
참으로 무성한 원시림은, 사람은 커녕 토끼조차 어떻게 다닐까 싶게 빽빽이 밀생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 모든 구역 내에서는 엄격히 금연이 실시되고 있었다.
그 점이 나에게는 참으로 불편했지만 나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치가 빠르면 절깐에서도 새우젓 먹는다고 적절한 장소를 찾아 피우는 담배맛도 참으로 좋았다.
더구나 천지에 가서는 따로 방가로 같은 조용한 곳에서 식사를 하고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조선에서 젤로 높고 맑고 시원한 곳에서 맛있게 한 대를 피웠다.
이도백하에서 서파(西坡) 까지는 버스를 타고 거의 산 정상까지 갔으나, 나에게는 거기서 부터가 문제였다.
그리 가파르지는 않으나, 1,445개나 되는 계단을 올라서 천지를 구경하고는 다시 그 계단을 내려와야 하는 것이었다. 미카(증기 기관차의 한 종류)소리를 내뿜으며 개미떼처럼 사람들이 올라가고 그 틈에 끼어 드뎌 천지(天池)를 만났다!!
얼마나 안타까이 그리던 그 모습이던가!
나는 내가 평생토록 그곳에 설 줄은 몰랐다!
백두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소산(所産)이리라.
백두산의 높이만 강조되었지 그 정상이 큰 언덕에 불과하다는 것을 몰라서 지례 겁만 먹은 탓이다.
해발 2천 미터를 넘어서면 그 무성하던 숲은 간곳이 없고 오직 작은 풀과 야생화의 천지였다!
우리 보다 2~3주전에 다녀간 팀들은 화려한 야생화의 군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하나, 내가 갔을 때(8월 12~12일)는
이미 대부분의 야생화가 지고 개양귀비꽃들은 씨가 맺혀 퇴색해 버린 뒤라 아쉬웠다.
계절이 빨리도 바뀌는 정상의 기후를 실감했다.
천지의 물은 잉크빛으로 푸르고 거기서 발원(發源)한 물이 동쪽으로 흘러 두만강이 되고, 서쪽으로 흘러 압록강이 되고, 북으로 흘러서는 송화강이 되니, 가히 그 수량을 짐작하기 어렵다. 백두산 정상을 향해 오르고 또 내려올 때면 수많은 습지(濕地)와 웅덩이를 볼 수가 있는데, 아마도 수 천개는 되어보였다. 이 습지의 물은 야생동물에게는 먹을 물과 목욕물을 제공하고, 백두삼림의 초목들에게는 사철 마르지 않는 수분을 제공한다. 겨울이 길긴 하지만, 뚜렸한 사계절에 충분한 수분을 제공하니 자연히 백두산의 초목은 밀생할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들 늪지 수분의 궁극적인 출발지도 바로 천지인 것이니, 그 천지의 위대함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천지 용천수(湧泉水)의 비밀은 수수께끼다.
도대체 그 많은 물이 어디에서 공급되는지, 또한 낮은 곳도 아닌 그 높은 곳으로 솟아오르는 이유는 수수께끼다.
나의 지식을 동원하자면, 습곡 단층이 화산 폭발로 휘어져 치솟았고, 원래 지하단층에 흐르던 지하수의 수로는 살아있고 끊어진 단층틈은 지하수의 분출구가 되고, 비록 높은 곳이긴 하지만 상부 지층의 압력을 받아서 용천(湧泉)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몇 컷의 사진을 찍고 하산하는 길은 힘들었다.
경포 호수변을 한 두 시간씩 걸어보긴 했지만, 오르내림이 있는 그 길은 그 보다 열배는 힘들었다.
하산 후 간 곳은 전적으로 내가 제안하여 이루어진 레프팅이었다.
천지 흘러내린 물에서 래프팅(rafting)이라니!
영월 동강에서도 해보았고, 인제 내린천에서도 해보았지만
이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처음 동강에서 래프팅 할 때는 그 물이 맑았으나 지금은 올림픽 활강장 만든다고 산림을 벌채해서 흙물이다.
내린천은 제법 흐름이 좋으나 주변에 볼게 없다.
래프팅하는 곳은 수심이 얕아서 누구에게나 안전하였고 물은 그야말로 1급수! 수온은 영상 4도! 송어 같은 산천어가 살기에 가장 좋은 수온이다.
이 복더위에 발이 시려온다.
그 낮은 수온과 더운 외기가 만나 수면에는 물안개가 골골이 피어오르고 야생 오리들도 사람을 피하지 않고 함께 헤엄을 쳤다. 좌우로는 빽빽한 원시자연림, 드높은 자작나무 숲!
그 사이를 3명이 고무 보트를 타고 가다가 보트가 천변(川邊)에 부딪힐라치면 막대기로 밀어내기만 하고 보트는 그냥 표류하도록 놔두면 되었다.
보트 끼리 부딪히면 서로 밀고 당기고 산새는 지저귀고 웃음 소리는 끝이 없고. 손으로 물을 떠서 얼굴과 목을 닦아
시원하고. 손바닥에 떠서 한번 먹어보기도 하고. 일렁이는 보트 위에서 사진 찍느라 웃고 또 웃고.
조발백제 채운간(早發白帝彩雲間)
천리강릉일일환(千里江陵一日還)
양안원성제부주(兩岸猿聲啼不住)
경주이과만중산(輕舟已過萬重山)
아침 일찍 오색 구름사이로 백제성을 떠나
천리 강릉을 하룻만에 돌아오니
강변에는 원숭이 울음소리 그치지 않고
가벼운 내 배는 만겹의 산을 다 지나왔구나!
백제성을 백두산으로 바꾸고 원숭이를 새소리로 바꾸면
이백(李白)의 이 시가 딱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물은 흘러 세 군데의 스릴 있는 구간을 다 거치면 래프팅은 한시간 정도에 끝난다.
삼복 더위는 간곳이 없고, 일행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그날은 백두산 자락의 큰 호텔에서 잤다.
술은 빠이주(白酒)에 베이징 까오야(北京烤鴨)
백두의 밤은 그렇게 또 하루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