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이 몰려왔다.
방문을 여니 살짝 열어제킨 유리창 틈새로 서늘하고 냉냉한 기온이 밀려왔다.
가을비 청승맞게 내리는 날이기에 모든 것이 우중충하며, 창틀에 흰 물방울이 무척이나 많이 매달려 있다. '야들이 지금 턱걸이 시합하는 거여?'
송파구 잠실3단지아파트 앞 동(棟) 벽 틈새로 서울 강남구 대모산 산자락이 조금만 보였다. 정말로 작은 틈새로도 기울어진 산세가 엿보였다. 먹빛 산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비 내리는 날은 나도 울울하다.
아무래도 엽녹식물인가 보다. 따뜻한 햇볕을 쐬여야만 광합성 작용을 일으켜서 생기가 나는 그런 식물성 동물인가 보다. 이렇게 햇볕 한 점 없는 날에는 기분과 기운이 차악 가라앉으며, 끝 모를 심연의 밑바닥으로 앙금된 느낌이다.
문득 길 떠나고 싶다.
떠난다는 길이야 뻔하다. 텅 빈 고향집. 지난해 2월 초순부터 비웠다. 내가 대상포진을 앓는 바람에 갑자기 서울로 올라왔다. 기력이 쇠진하여 걸음조차 떼지 못하는 엄니와 함께 올라 온 뒤로 몇 달간 살았다. 6월 중순경 아흔여섯 살 엄니는 저녁 미음을 채 드시지 못한 채 종합병원 응급실로 급송했고, 중환자실로 일반병실로 전전긍긍하였다. 장기간 입원시킨 뒤로는 나는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고향 집은 그렇게 해서 비워졌다.
올 2월 말, 봄이 오는 길목에서 엄니는 먼 여행 떠났다.
엄니 떠난 보낸 뒤 나도 고향 집으로 되돌아 가야 하는데도 지친다는 구실로 그참 서울로 올라와서는 지금껏 그냥저냥 머무른다.
늙은 아내가 있고, 출가한 자식들이 있고, 며느리와 사위가 있고, 이제 14개월이 막 지난 손녀가 있는 서울인데도 나는 자꾸만 시골로 내려가려는 미련을 삭히지 못했다. 서울은 내가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늘 똬리를 틀었다.
비 내린다는데도 오늘 남녁으로 여행 떠난 아내.
'추어탕 먹어러 가요, 멍멍탕 먹어러 가요. 헛것이 보이네요' 뇌면서 유난히 남의 살을 탐하던 아내는 전북 고창에서 장어를 먹을 예정이라면서 문자를 보냈다. 장어고기를 먹고는 기운 차리면 선운산도립공원의 선운사에 들러서 늦가을 단풍의 정취를 맛보려나.
비린내 나는 생선과 육류를 싫어하는 나는 북밬이 장농처럼 아파트 안에서 또 하나의 나를 가둬놓았다.
마냥 지친다. 대도시에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없다. 시골에 있다고 해도 비 내리는 날에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없을 게다. 우산 받쳐들고는 그냥 동구밖에 나가서 억새들이 스억스억거리는 내 텃밭을 내려다 볼 것이다. 가꾸지 못해서 감나무 묘목 180여 그루를 다 죽이고는 억새(으악새)밭으로 변해버린 채 방치해 둔 담부리 텃밭이다. 갈대도 슬슬 번지고.
몇 년 전. 퇴직한 뒤에 시골로 내려가 담부리밭에는 감나무를, 윗밭에는 모과 석류 대추묘목을, 아래밭에는 매실나무 묘목을 집중으로 심었다. 묘목 사백 여 주를 심어놨으되 이런저런 이유로 핑계로 많이도 죽였다. 특히 감나무는 200그루 쯤 심었다가는 95% 고사했다. 냉해를 입었을 것 같다. 또 추가로 감나무 묘목을 시골 장터에서 소량씩이나마 구해서 심었건만 토질이 안 맞는지 대부분 죽었다.
매실, 모과, 석류, 대추나무, 왕보리수, 헛개나무, 밤나무들은 반쯤이나 살렸다. 또 야생화도 심었다. 심어놓고는 한눈파는 사이에 많이도 죽였다. 더욱이 지난해와 올해 이태 동안이나 노모 간호한다는 구실로 방치했으니 키 작고 나약한 야생화는 태반이 잡초때문에 멸실되었다. 실패한 본질의 윈인은 게으른 농사꾼이었고, 영농지식도 부족해서 일 게다.
이렇게 날이 우중중할 때면 지금도 고향 집으로 내려가고 싶다.
11월 초순인 지금 ? 밭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나 남아 있을까?
가을날에 밭에 나가 보라. 엄청나게 많은 풀들이 새로 움터서 싹을 내밀고 있다.
가을풀이 억세게 돋아날 게다. 내년 봄에 꽃을 피우려고 이 가을서부터 무성하게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게다. 그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풀은 실뿌리가 무척이나 실하다.
이런 가을잡풀 속에서 몇 해 전부터 가꾸던 작물들이 용케도 살아 있을까?
창포, 석창포, 붓꽃, 초롱꽃, 섬초롱꽃, 두메부추, 산부추, 달래, 산달래, 도라지, 더덕, 인삼 몇 뿌리, 석잠풀 등.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야생화들. 시골 5일장에서 사 온 키 작은 화초들은 주인없는 사이에 잡초한테 눌려서 많이도 사라졌고, 왜소해져서 터를 빼았을 게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식물들도 나약한 것은 늘 강자한테 치이기 마련이다.
짙어가는 가을에는 할 일은 없을까?
일거리는 있겠다.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 묘목과 성목을 옮겨 심어야 할 게다. 밤나무, 왕보리수, 명자꽃나무, 수수꽃다리, 삼색버들, 회양목, 헛개나무, 탱자나무, 생강나무, 배롱나무,화살나무, 장미, 라일락 등을 포기도 나누고, 분식이식도 해야 할 게다. 묘목은 이삼 년만 방치하면 순식간에 너무나 커버린다. 굵은 뿌리가 땅 속으로 곤장 박히기 전에 옮겨야 한다. 덜 컸을 때, 조금이라도 더 가벼울 때 옮겨야 한다. 삽으로 뿌리를 캐내고, 톱으로 잔 뿌리를 둥글게 잘라낸 뒤에 구덩이를 넓게 깊게 파고서는 옮겨 심어야 할 터다. 시기를 놓치면? 모종을 이식 못하여 밀식한 채로 방치하면? 그 결과는 참담할 게다. 나 혼자서 처단하려면 힘이 무척이나 든다. 별수없이 톱으로 밑둥아리를 베어서 죽여야 할 터, 더러더러는 솎아내고 간벌해야 할 게다.
사실 말이지, 시골에는 늦가을이라도 할 일이 참으로 많을 게다.
농사꾼이 언제 쉬는 거를 봤냐?
서울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화분농사를 짓는 나.
단 한 종류다. 명월초. 삼붕나와라고 부르는 외국식물은 다년생 풀이다. 일년내내 싱싱한 잎이 매달리는 상록성 식물이다. 번식이 참으로 쉽다. 젓가락 굵기의 줄기를 손가락 마디만큼씩 잘라서 흙 속에 묻고는 물을 촉촉히 부어주면 얼마쯤이 지나면 새뿌리가 나서 새로운 개체가 되었다. 그만큼 키우기가 쉬운 작물이다. 잎은 잘라서 생채로 먹을 수 있기에.
일전에 삽주한 모종을 오늘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0.1mm도 안 될 만한 하얀 흔적이 날마다 조금씩 크기 시작해서 지금은 참깨알만큼 컸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의 작은 흔적이 점차로 커서 이제는 잎(잎새, 이파리, 잎사귀) 형태를 지니기 시작했다. 아마도 잎이 더욱 크면 또 새로운 곁순도 낼 게다.
작은 화분 몇 개에 명월초(당뇨초)를 심어놓고는 농사짓는 체하는 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화분농사, 컵농사를 짓는다고 말하는 나. 아무래도 시골생활을 잊지 못하는 건달농사꾼의 마음일 게다.
일주일 뒤인 11월 14일 토요일에는 시골집에 잠깐이나마 다녀와야겠다.
다음날 일요일에는 시사(시향)를 지내야 할 터. 종가집의 종손인 나는 못난 자손이다. 제주(祭主)인 나는 어느새 고향을 떠나고 있었다. 아쉽기만 한 세태다.
시향 지낸 뒤 잠깐이나마 밭에서 일해야겠다.
올봄 성남시 모란시장에서 자주색 돼지감자 씨알을 조금 사다가 밭에 묻어두었는데 그게 얼마쯤 번식되었는지 확인해야겠다. 흰색 돼지감자도 조금은 캐서 차의 뒷 트렁크에 실어야겠다. 생김새가 뚱딴지 같다고 해서 돼지감자로 부른다. 맛대가리가 없다고 해도 심었다. 당뇨병에는 영양가가 적으면서 포만감을 준다기에 내가 먹어야 할 뚱딴지다.
늦가을비 내리는 날. 도심의 아파트에서 뿌이연한 하늘 너머로 남녁 땅 고향 집을 떠올렸다.
그곳에는 또 하나의 늙은이가 큰대문 앞에 내다놓은 의자에 걸터앉아서 가을을 보내고 있을 것만 같은 형상을 떠올렸다.
마당을 온통 덮어버린 은행나무 잎이며, 배롱나무 잎사귀가 작은 자갈 위를 이불처럼 덮고 있을 게다.
예전에는 그곳에는 꼬부랑할머니가 있었다. 느릿느릿 어둔하게 걸었던 노쇠한 할머니가 있었다.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집. 하나뿐인 늙은 아들도 서울로 떠난 그 옛집에는 새와 다람쥐가 들락거리겠지. 두더지도 텃밭을 들쑥이겠지. 하늘을 덮은 억새밭, 과일밭에는 산짐승 고라니가 숨어 사는 곳이 되었겠지.
계절의 시작은 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나한테는 계절의 시작은 가을이다.
계절은 사계절 순환되어 1년 뒤에는 제자리에 온다. 인생의 사계절을 사는 나로서는 젊은날의 봄은 벌써 지났고, 무성한 여름도 지났고 이제는 늦가을이다. 결코 되돌아 오는 법이 없는 인생이기에 나는 지금의 가을을 사계의 시작이라고 우긴다. 한번 떠나면 결코 돌아오지 않는 날이기에. 나날이 기력이 사그라지고 졸라들고, 줄어들고 주눅들어서 천대받는 나. 늙은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사계의 시작은 가을부터라고 억지 피우고, 우기고 있다.
그래도 생각이 난다.
자꾸만 생각이 난다.
문득 문득.
21015. 11. 7. 토요일.
이 글 쓰는데 생후 14개월이 막 지난 손녀를 데리고 와서는 할아버지인 나한테 맡겨놓고는 바깥으로 나간 아들내외.
글 쓰다 중단한 채 어린 것과 함께 웃으며 몇 시간을 보냈다. 지지배가 순해서 다행이다. 아무 거나 수탈하게 잘 먹고...
그들이 돌아간 지금, 글을 이어서 쓰려니 생각이 단절된 탓으로 더 이상 쓰기가 싫어졌다.
오탈자나 수정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07 14:1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07 16:30
첫댓글 제가부실해서그렇겠지요
최형은 타고난 수필가로서의 자질이 풍부하다고 생각하오
그저 생각나는 대로 써도 그게 향기나는 좋은 글이 되니 말이오
별로 다듬거나 고칠 게 없어 보이네, 초안작성이니 뭐 그런 필요는 없을 듯 싶소, ㅎ
지금 고향에 가도 11월에는 할일이 별로 없지, 그저 봄까지 서울에서 푹 쉬시게나.
지난해 노모님 모시느라 얼마나 심신이 지치셨는가?
할일이 없노라고 탓하지도 마시고, 나도 맨날 노는데 뭘 그러나.
그리고 뭐 감나무 180주를 다 죽였다고라고?? ㅎㅎ 최형은 농사 안짓는 게 낫겟소 ㅎ
물빠짐만 좋다면 적당한 간격으로 심기만하면 잘 사는게 감나무일텐데...ㅎ
그러니 서울에서 손주나 보시는 게 낫다는겨 ㅎㅎ
알갔지 내말...?
감나무 180 주 이상 실패. 95% 실패. 장에서도 추가로 몇 주 사다가 심었는데도... 감나무는 물빠짐이 좋아야 하는데도. 내 시골 땅은 황토성질이 있어. 더군다나 담부리밭에는 동네사람들이 황토을 트럭으로 부려서 못자리했지. 그게 몇 년... 포클레인으로 그 황토를 넓게 폈으니 아마 50센티 이상..밭이 버렸지. 감나무는 물빠짐이 좋아야 하는데..요즘 밤나무 묘목을 심기는 하나... 아무래도 모두 택지로 조성해서 집이나 지어야 할 공간. 마을 한가운데,마을회관이 있는 자리이니..
옥천의 토질하고 다른 모양이겠지... 올 겨울까지는 서울에서 지내야 할 게고... 내년에는 또 내년에 걱정하지 뭐..
댓글 고맙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