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둥근 물집
우정인
골목 어귀 잊을만하면 문을 여는 과일가게가 있다 잊히기 전에 나타나는 젊은 사내 하나와 모퉁이의 걸음 수를 재는 사과가 있다 사과는 욕심이 많은 아이처럼 붉은 얼굴을 하고 있다 사내는 맛 좀 보라고 사과 한 조각을 잘라 내 입에 들이민다 나는 깜짝 놀라 속살 속에 스미는 쓸쓸한 음각을 혀 밑에 감추었다 아직 바람도 다 익지 않은 가을인데
햇살이 잘 밴 사내의 어깨에 기대는 상상을 한다 오래 전에 놓친 이슬 냄새가 날지 모른다 풋잠이 들었을 때 그의 손이 닿으면 나는 동그랗게 몸을 말겠지 상상은 순식간에 과일가게에 퍼진다 상자들이 들썩인다 하룻밤 미쳐서 그의 싱싱한 심장을 베어 먹을 수 있을까 그의 여자로 과연 그러다가 사내에게 물었다 얼마예요?
주춤, 사내가 고개를 흔들며 시선을 돌린다 여섯 개 만원이요 붉음이 노랗게 벗겨져 후회로 바뀌는 순간은 아주 크고 둥근 것이라서 나는 하루에 한 알이면 일주일은 먹겠네, 재빨리 지갑을 열었다 사내가 검은 비닐봉지에 사과를 담는다 아랫배가 축 처진 봉지에 담긴 사과가 둥근 물집 같다 나도 터뜨리지 못한 물집 같은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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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둥근 물집-우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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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한라일보 신춘문예/시-심사평] 안정적 시 세계 구축… 변용·확장 돋보여
2024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180명의 914편의 시가 응모하여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이 중 본심에 오른 16명의 작품들은 경기 침체와 청년 세대의 비관적 현실과 소통의 부재를 다룬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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