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고종 19년(1232년)에, 두 번째, 고려의 강화로 쳐들어왔던 撒禮塔 (사레타이)는
대구 符仁寺에 있던 대장경 판을 불태우러 갔다가 승병 김윤후에게 목이 달아나는 바람에
우리나라는 그나마 혹독한 전란을 덜 수 있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撒禮塔 (사레타이)’이다.
‘撒禮塔’의 뜻은 ‘(고려를) 살래따.’ 다시 말하면 ‘(고려를) 살렸다’ 또는 ‘(대장경을) 살렸다’는 뜻이다.
‘사레타이’도 말 그대로 고려를 『살랬다, 이~』라는 우리말이다.
元나라에서 우리나라 말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앞
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자의 발음이, 한국인이 말하는 발음과 달러지게 되는 과정이 보이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중국과 우리나라의 한자의 발음이 달라지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이 자료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史料가 될 것이다.
고려 충선왕은 충열왕 3년(1277년), 세자로 책봉되고 다음 해 원나라에 가서 몽고 이름을
받았다. 이름하여 ‘이지리부카 (益知禮普花)’
‘이지리부 카’는『잊어버리, (라고) 캐』의 사투리로서 원나라 황제가 고려 세자에게 국가
적 수치와 괴로움을 잊으라면서 이런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益知禮普花도 ‘익’자의 종성을 없애고 읽으면 ‘이지례보 화’ 쉽게 말하면 ‘잊어버리라 해’
라는 의미가 된다.
이런 사실들은 중국이 원나라 시대에도 옛 한국말을 사용한 족적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그런 만큼 원나라 이전의 나라에서도 한국말을 사용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