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37]호주 애버리진aborgine, 그중에도 ‘참사랑 부족’
설연휴, 호주 골드코스트(골코)에 사는 아들집에서, 여러 날을 저녁마다 여러 이야기들을 모처럼 나눴습니다. 지난해 10월 ‘원주민 권익보호를 위한 헌법기구’ 보이스VOICE 설립문제가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데, 아들은 몹시 분개했습니다. 영주권자들도 투표를 한답니다. 투표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20달러 부과된다고 하더군요. ‘정치 무관심’한 나라의 국민들에겐 이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들이 흥분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아니, 수천 년 동안 자기 땅에서 살아있던 원주민들을 , 영국 죄수들이 들어와(1788년 759명) 동물사냥 하듯이 마구잡이로 죽인 후 오늘날의 부富를 이루며 살고 있는데, 그들이 미개하다하여 여전히 인종차별을 하는 게 말이 되냐?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자는데 부결이 하다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일단 아들의 말에 백퍼 공감한 것은, 아들은 어릴 적부터 어떤 차별이든 못참아 했기 때문입니다. 불합리, 비논리, 억지, 우격다짐, 갑질, 이상한 권위, 이런 것 말입니다.
얘기 도중에 불쑥 떠오른 책이 10년도 더 전에 읽었던 『무탄트 메시지Mutant Message』(말로 모건 지음, 류시화 옮김, 284쪽, 정신세계사 펴냄, 절판)였습니다. 엄청 감동을 받고 놀랐던 책이나 기억이 가물거려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해 책을 찾으니, 사라졌습니다. 알라딘중고서점 검색을 하니, 마침 내 고향 전주점에 한 권이 있다길레 곧장 달려가 단돈 4800원에 구입했습니다. 무탄트가 무슨 뜻인 줄 아는지요? 원주민 ‘참사랑 부족’들이 우리 문명인들을 부르는 말로, <돌연변이>라는 뜻이랍니다. 돌연변이突然變異는 기본구조에 어떤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존재이죠. 이를테면 괴물같은 것. 그들 눈에는 우리가 바로 호모 사피엔스(사람)의 돌연변이라는 것이죠. ‘어따 대고 감히?’라는 말이 절로 나오겠지요. 하지만, 요 며칠 다시 그 책을 읽은 소감은 그들의 말이 백퍼 맞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자연과 한 몸'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눈은 지구와 환경을 마구마구 파괴하는 우리 인간족속을 한없이 연민憐憫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제가 원래 놀라거나 감동을 쉽게 잘 하지만, 여러분도 도서관에서 빌려서라도 읽어보시면 곧 아시게 될 것입니다. 참사랑 부족 62명은 신발도 없이 기본적인 옷만 걸치고 넉 달간의 사막여행을 끝으로, 종족 번식을 하지 않기로 텔레파시(그들의 의사 수단)를 통해 결의를 했답니다. 그것이 그들의 미션mission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백인의사(말로 모건)를 그들의 모임에 초대, 긴 여행을 같이 하면서 그들의 메시지message를 우리 돌연변이들에게 '고맙게도' 전해준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의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그 의사는 그들과 넉 달 동안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끼고 알게 된 그들의 메시지를 그대로 글로 써 책을 펴냈습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특강을 해도, 알아 듣는 사람은 당연히 소수이었겠지요. 그이후 전개과정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들 결의대로 ‘참사랑 부족’은 이 땅에서 자체 절멸했는지, 저자는 지금도 생존해 그들의 메시지 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한데, 없는 것 빼고 다 있을 구글 검색에도 도무지 잡히지 않아 답답해 하고 있습니다.
일단, 원주민(애버리진aborigine)들의 생각(사상)의 일단을 들여다 봅시다. 원주민들은 무참히 살해되었습니다. 당시 영국국왕은 “그들은 ‘동물’이니까 죽여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200년이 다 된 1967년에야 처음으로 호주 시민이 되는 자격과 어디에서 살아도 좋다는 주거의 자유를 처음으로 부여받았습니다. 기가 막힌 횡포, 이런 갑질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1992년에는 원주민들이 토지소유권에 대해 소송을 냈다고 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도 원주민들을 엄청 핍박한 후 ‘보존지역Reservation’에서만 살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동물원의 원숭이꼴인 셈이지요. 배우지 못했고(가르쳐준다해도 안배우고) 글자를 모른다는 이유로 그들이 받았던, 말도 안되는 차별(차별보다 심한 단어는 핍박, 고문, 학대, 학살일까요?)을 수백 년 동안 받아왔습니다. <시애틀 추장>이네 뭐네 영화 몇 편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지요. 적반하장賊反荷杖에 다름 아니었겠지요.
그들은 입으로 굳이 평화平和를 말하지 않아도 ‘심신心身이 곧 평화’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욕심도 거짓말도 하지 않기에, 서로를 인간 그 자체로 존중하기에 이심전심以心傳心, 텔레파시가 가능한 것입니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그 백인의사가 뭣 때문에 거짓말을 하여 전세계인을 속이겠습니까? 이 책을 읽는데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원제: Ancient Futures,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종철 번역, 녹색평론사 1997년 펴냄)는 책이 생각나 다시 읽어봅니다. 이 책은 한 여성학자가 16간에 걸쳐 히말라야고원에 자리잡은 한 유서깊은 공동체(라다크)에서의 현지체험에 대한 생생한 현장보고입니다. 또한 근대화과정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오늘날 인류사회 전체가 직면한 사회적-생태적 위기의 본질을 명료하게 파헤친 책으로, 이미 이 분야의 고전적 필독서라 할 것입니다. “진정한 미래는 오랜 옛 지혜 속에 있다”는 진리를 인간의 교만심이 어떻게 받아드릴 수 있겠습니까?
참사랑 부족들은 입만 열면 우리가 받아적어야 할 어록語錄들 뿐입니다. 우리는 눈곱만큼도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믿지 못하여 더욱 의심할 뿐이지만요. 그들은 오랜 세월(몇 백, 몇 천년) 어떤 숲도 파괴하지 않았고, 어떤 강물도 더럽히지 않았고, 어떤 동식물도 멸종 위기에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어떤 오염물질도 자연 속에 내놓지 않으면서 풍부한 식량과 안식처를 얻고 살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문명인이 보기에 너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창조적이고 건강한 삶을 누리며,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이 세상을 살다 떠났다는 것입니다. 종족 번식을 자해 끊는다 하여 이단異端 종교宗敎를 떠올리는 것은 그들에 대한 불경不敬이자 최소한의 예의禮儀가 아님은, 책을 읽으면 알게 될 것입니다.
아니,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인 동물, 나무, 풀, 강, 심지어 바위와 공기조차도 그들은 한 형제자매라고 믿고 삽니다. 이게 믿어지나요? 그들의 후손이 문명인들의 교육을 거부하고 술과 마약에 빠지고 각종 범죄를 일으켜 사회를 혼란하게 만든다하여, 우리 돌연변이들이 그들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 보호를 끊어야 할까요? 아들은 그들을 위한 ‘보이스’ 설립을 부결시켜버리는 호주 국민들에 대해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원죄原罪라는 말 아시죠? 과연 원죄는 누구에게 있는 걸까요? 보십시오. 그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똑같이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너를 사랑하며, 이 여행길에서 너를 도와주겠다”라구요. 그들은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나 모임을 하지 않는 대신, 나이를 먹었으니 뭔가 더 나아진 것을 축하한다고 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축하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말이고 멋진 일이지 않습니까? 자신이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에게 “내가 작년보다 나아졌습니다. 축하해 주세요”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니요? 참 별나고 별난 족속, 이름도 하는 일 따라 부르는 선진先進인간人間입니다.
저는 그렇게 이 책을 읽었는데, 10년도 더 지난 다시 읽으니, 느낌이 더욱더 새롭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오래된 미래’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애버리진(호주 원주민)들은 ‘과거過去(past time)'를 ’나 와 오무아‘라고 말한답니다. 그 뜻이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이랍니다. 자, 그들이 ‘우리 앞에 있는 시간들(과거)’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읽어보고 싶지 않으신지요?
무탄트 메시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