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배고픈 자 설움은 당한자만 안다
언덕저편 1 님은
<배고픈 자 설움은 당한 자만 안다>고 썼다.
군생활에서 터득한 진리라는 거다.
공식 급식으론 부족해 철조망을 넘어서
사식(私食)을 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지나치면 설사하고 말더라고 했다.
음식은 제때에 적당량을 건너뛰지 않고 취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게 저마다 그럴 수도 없는 게 비극이다.
베푸는 삶이 보람 있는 삶이라고도 썼다.
그러면서 약선요리전문가 이경애 씨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1 년에 삼천여 명의 불우이웃들을 초대해
음식을 제공한다는 거다.
배고픔의 설움을 딛고 일어선
입지전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언덕저편 1 님도 52년 전 군에 입대해 배고픔을 경험했던 건
인생의 좋은 교훈이었다고 썼다.
아마도 그래서 그네가 나들이할 땐
배낭에 먹거리를 잔뜩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리라.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넘지 않는 이가 없다 한다.
그지경은 아니더라도 기갈이 감식이라 했으니
배고파봐야 음식의 단맛을 안다.
나는 일곱 살에 한국전쟁을 만나 남쪽으로 피란길에 나섰었다.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아버지는 전투경찰에 투신하고
어머니는 동생 둘과 함께 피란길에,
나는 중학생인 숙부님과 함께 피란길에 나섰다.
총성과 포연을 무릅쓰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다가
북한 인민군을 만나게 되었다.
잡히면 인민군에 투입될 게 뻔하니
숙부님은 혼자 산속으로 줄행랑쳤다.
이때부터 나 홀로였다.
누가 해코지는 하지 않았지만
배고픔이 문제였다.
남으로 남으로 대책 없는 피란길을 강행할 뿐이었으니
결국 영양실조로 피골이 상접하고
야맹증이 왔다.
해만 떨어지면 캄캄한 밤이었던 거다.
이런 기억으로 나는
전쟁의 비극과 배고픔의 설움을 함께 겪었다.
살아가면서 배고픔의 설움만 있는 게 아니다.
피란 내려가 정착한 시골엔 읽을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에겐 그게 정신적 양식의 허기였다.
아버지는 신문을 구독해 읽으셨지만
그건 국한문 혼용이었거니와
나와 같은 어린이에겐 읽을거리가 못되었다.
이런 허기증이 몸에 배어
나는 글을 쓰면 곧잘 나눔을 한다.
나의 입장에 비추어 상대방이 좋아하리라고 생각하는 거다.
이번에 졸저 에세이집을 내봤다.
상업적 선전이 되기에 책명은 밝히지 않지만
모임이 있는 곳에 찾아다니며 나눔을 하고 있다.
받는 사람이 그걸 읽는지는 나로선 알바 아니다.
그저 나눔으로 흐뭇함을 즐기며 산다.
아마도 약선요리전문가 이경애 씨도
언덕저편 1 님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배고픈 자 설움은 당한 자만 안다.
그건 음식만이 아니다.
첫댓글
'배 고픈자의 설움은 당한자만 안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에 가깝습니다.
고픔과 허기짐은
그것을 뛰어넘기 위하여
노력과 수고가 따릅니다.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는
고픔이 있어야 더 나은 풍요를 기대합니다.
배고픔 말고는...^^
석촌님의 글을 읽고
고픔에 대하여 허기짐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네에 고맙습니다.
이제 우리는 배고픔을 면하고 비교적 풍족하게 사는 편이나 아직도 돌봄의 취약지대인 독거노인. 노숙자들이 인근히 많습니다. 그들을 돕는 이경애씨는 날개없는 천사지요...
공을 들여 비싸게 책을 만들어 선물하시는 석촌선배님을 뵐때마다 고개가 숙여집니다. 마음의 양식을 나눠주는 고운 마음씨를 우리도 배워야 겠습니다.
기부문화라면 미국인데
우리도 배워야지요.
저는 범우문고판중 박문하님의 잃어버린 동화와 변영로님의 명정40년을 좋아하여 책상에 놓아두고 나눔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