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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태 울산문인협회 부회장 | |||
문학과 공학 넘나드는 열정의 시인 | |||
2층 교사실을 노크, 이 부회장은 오랫동안 품어온 자신의 문학관을 하나씩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무엇보다 문학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써야한다고 고집했다. "아마 석학들에게 글을 쓰라고 하면 잘 써낼 수 있을 거예요. 머리로 쓰게 되니까요. 하지만 누가 뭐래도 문인들은 가슴으로 글을 써야합니다." 이 부회장의 문학세계는 고교 때부터 펼쳐졌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부산 동아고 3학년 때 문과에서 이과로 전환해야 했다. 당시 교사로 재직중이던 부친의 영향 때문. "아버님께서 문학을 하면 밥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셨기에 전과를 해야 했지요. 그래도 문학회 활동은 계속했었죠." 그는 고교 때 전원문학회 활동을 하며 시화전, 시낭송회를 통해 문학적 소양을 잘 다져 나갔다. "생각해보면 전원문학회에서 활동하던 시절이 가장 문학적 열정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부산 대청동 미문화원의 전용방에서 스스로 학습도 하고 선생님들로부터 지도를 받았을 정도니까요." 이때 시인 박철석 교수와 신라대 총장을 역임한 김용태 선생으로부터 지도를 받았던 것. 또한 대학시절에는 진주에서 활동하던 이경순 선생과 황산 고두동 선생으로부터 시조 등을 사사 받았다. "시대 조류에 편승하지 않고 독자적인 시세계를 펼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이끌리는 부분입니다." 시와 비평문학회의 한 회원은 거침없이 이 부회장의 문학관에 대해 의견을 내놓았다. 이 회원은 영리 목적이 아닌 순수문학 단체로 이끌고 있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덧붙었다. 시와 비평문학회는 이 부회장이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순수문학단체다. 이 부회장은 부산에서 문단활동을 하다가 기계ㆍ금속 교사자격증을 획득한 이후인 1980년 울산에 터를 잡았다. 84년도에 개인 시화전을 열어 성황을 이루었으며, 문예반을 지도해 좋은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의 열정은 어디에든지 통용됐다. 울산교원문학회를 조직, 120명이 훨씬 넘는 회원을 모을 정도. 탄탄한 문학 기반과 열정이 있음에도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고 말했다. "`등단 절차`를 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학 활동에 제약을 받는 느낌이 들더군요. 수 십년간 문학 활동을 했는데도 말이지요." 그는 `현대시조` 제50회와 `시와 비평` 제49회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또 문예진흥기금사업 전국충의백일장을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문예지「두레문학」도 매년 발간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05년과 2006년 시집「갈무리」, 「바다가 그리운 날」을 각각 출간했으며, 1984년 전국백일장 수상과 `탈춤`으로 장원 등 수상했다. 또 야음초등학교와 현대정보과학고 교가를 작사하는 등 시인과 시조시인, 작사가 등 다방면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그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통도사합창단 총무로 활동중인 부인과의 사이에 2녀 1남을 두고 있다. 특히 큰 딸이 교사로 재직, 3대째 교직을 이어가고 있어 주목된다. 이 부회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봄바람에 흩날리는 가벼운 꽃잎과 발그레 피어나는 영산홍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가슴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시인의 말을 마음에 담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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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8 [09:10] ⓒ 울산여성신문 |
첫댓글 이만한 문학 단체를 별 탈 없이 이리 오래도록 이끌고 올 수 있는 것은 리더의 역량이라고.....누군가 그러더군요. 시간이 누적될수록 그 말에 공감합니다. 건강하시고, 후대에 남을 명시 한 편, 올해에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