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벌목 트럭 운전수는 선승보다 일찍 일어나는가" - 게리 스나이더(Garry Snider) why log truck drivers rise earlier than students of zen
정영희 역 / 미주현대불교 5월호,07년
저 높은 곳에, 동트기 직전의 어스름 속에 앉아있는, In the high seat, before-dawn dark,
잘 닦여진 바퀴통들이 번득인다 Polished hubs gleam
빛나는 디젤 배기통은 And the shiny diesel stack
따뜻해져 퍼덕거리며 Warms and flutters
타일러 비탈길 위를 지나 Up the Tyler Road grade
푸어맨 샛강 위 벌목터로 간다. To the logging on Poorman creek.
백리 먼지 길 Thirty miles of dust.
다른 삶은 없다. There is no other life.
벌목트럭 운전수들은 생계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난다. 그들의 부지런하고 절절한 삶은 참선으로 도를 깨치려는 스님들의 구도의 삶만큼이나, 아니 보다 더 치열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벌목은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행위로서 스나이더가 반대하는 대표적인 생태파괴 행위이지만 달리 살아갈 방도가 없으므로 벌목 운전 일을 하는 그들의 삶을 시인은 평상심으로 도에 이르는 삶이라 인정하고 있다. 시인은 그들이 선승만큼이나 시퍼렇게 살아있는 정신으로 삶의 도를 닦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본 것이다.
*게리 스나이더(Garry Snider)는 1930년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북미 원주민의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서 인류학과 동양학을 두루 연구했다. 그는 동양적 전통을 미국에 있어 중요한 것으로 내세운 시인이다. 자연 속에서 노동과 명상을 실천하며, 일본에서 10년간 참선수행을 체험하기도 했다.
현재 데이비스 대학 영문과 교수로 있으면서 소수민족문화 보존운동과 생태주의 운동을 펼치고 있는 스나이더는 ‘불교 생태주의’가 인간도 살리고 자연도 살린다고 주장한다. 그는 나무젓가락 하나도 열대 우림의 파괴와 직결된다고 비판하며 “아귀를 닮아가는 미국은 생태 파괴의 주범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지난 2000년 우리나라에 들러 운문사와 지리산을 찾았으며, 올해 5월에 있었던 서울 국제문학 포럼에도 참석했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생계라는 것 또한 선승의 절절한 구도만큼이나 같은 맥락이 아닐까요 , 이 아침 좋은 한 편의 시가 한 사람의 몸을 영글게 합니다 부처님의 가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