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TV 교양드라마 <신세대 보고서>에 같이 출연했던 인물 중그나마 유명한(?) 배우는 양동근이었다. 지금이야 양동근이 모두 알 만한 가수 겸 연기자이지만 그때는 꽤 많은 작품에 출연했던 아역출신 배우였을뿐이었다.
당시 연기가 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나는 그저 감독님이 무섭기만 했다. 연기자는 카메라가 무서워야 하는데, 카메라는 안중에도 없었다. 감독님이 연기 지도를 하러 내 앞에 왔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만 해도 난 안도의 한숨을내쉴 정도로 PD는 내게 무서운 존재였다. 한 장면 한 장면 끝날 때 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당시 박찬홍 PD가 내게 붙여진 별명이 ‘삼순이’였으니알 만하지 않은가.
난 매니저가 없었다. 내가 출연했던 작가와 PD가 다른 사람에게 연결해 줘 끊임없이연기를 할 수 있었다. 신세대 보고서> 이후 작가가 소개해 줘 곧바로 MBC TV <나>를 찍었고, 이는 영화 <여고괴담>으로 이어졌다. 영화 <여고괴담>에서 내가 그렇게 무서워했던 콩콩 할머니 같은 귀신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재미있나.
영화 <여고괴담>을 개봉했을 당시 극장에 온 관객들에게 장난을 좀쳤다. 영화가 끝날 때쯤 화장실에서 머리를 늘어뜨리고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관객들이 ‘정말 무섭다 애’하고화장실에 들어오는 순간 문을 확 열고 내가 나가는 것이다. 가뜩이나 겁에 질려있던 여자 관객들은 날 보고 소리를질렀다. 좀 심한 장난이었나.
KBS 2TV 미니시리즈 <학교>를 하면서 난 양동근을 다시 만났고,안재모라는 후배를 만나게 됐다. 그 당시 우리 셋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가난한 청춘의 한 때를 보냈다.
[사진설명] MBC TV <나>로MBC 연기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나>에서 아역으로 나왔는데, 그때 난 20살이어서 아역상을 받을 수 없어 MBC측이 특별상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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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셋 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우리 집도 98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무래도 전과 같지 않았다. 안재모는 당시 친구 집에 얹혀 살았다. 우린 녹화가 끝나고 나면 편의점에서 라면을 함께 사먹고, 돈이 생기면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영화도 보러 갔다.
셋 중 누가 돈이 생기면 악수를 하면서 슬쩍 1만원짜리 한 장을 건네기도 했으니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너무나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우리가 이제는 ‘생선회 사겠다'는 전화를 하니 많이 성공한 셈이다.
언젠가 재모가 일간스포츠에 스타스토리를 연재하면서 내 이야기를 많이 해 고마웠다는 말을 했는데, 나도 이 자리를 빌어 재모와 동근이에게 감사한다. 후에 말할 송은이 언니와 정성화 오빠와 함께 이들은 내가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소중한 사람들로 평생 같이 갈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참, 이 자리를 빌어서 이제니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MBC TV <아이싱>을 촬영할 때 이제니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차가 없는 나를 자신의 차에 태워주고, 코디네이터가 없어 의상을 고민하는걸 알고 자기 코디에게 부탁해 내 옷까지 준비하게 해주는 등 많은 신경을 써줬다.
어쨌든 난 <학교>를 하면서 다시 동근이와 재모를 만났고, 배두나 장혁 박시은을 알게 됐다. 나이가 비슷했던 우리들은 매니저와 함께 차를 타지 않고 촬영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으며,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때 서로가 서로를 챙겨줬다.
<학교>에서 난 이민재 역을 맡았는데 보이쉬한 매력에 리더십이 있어 애들을 휘어잡는 성격이었다. <신세대 보고서> <나> <학교>와 <광끼> 등 계속되는 역할이 모두 비슷한 성격이었다. 역에 따라 성격도 변한다고, 이런 역을 계속 맡게 되자 난 실생활에서도 애들 앞에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성격으로 바뀌어갔다.
[10] '형광등 미녀' 최강희
99년 <광끼>를 하면서 다시 동근이와 두나를 만났고, 때 맞춰 이동건과 원빈도 알게 됐다. 양동근과 원빈이 한 소속사 사무실로 가까워, 난 원빈 양동근과 또다시 몰려다니게 됐다. 맨날 영화 보러 같이 다니고, 거의 깨어있는 시간은 늘 같이 살다시피 했다. 원빈과 캠퍼스 커플을 연기했는데, <광끼>는 내게 색다른 즐거움을 줬다.
대학생활을 즐기기는 커녕 입학하자 마자 자퇴한 난 <광끼>를 찍으면서정말 캠퍼스 생활을 하는 기쁨을 맛봤다. 원빈과 배두나, 나는 <광끼>로 99년 KBS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원빈 장혁 안재모 배두나 양동근 등 모두 잘 돼 기분이 좋다. 나 혼자 그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도 난 진심으로 애들이 잘되는 걸 축하했다. 이제는내 차례가 됐다고 생각한다. 요즘 들어 많은 사랑을 받는 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어쨌든 <광끼>까지 모범생 이미지를 이어갔던 내가 <행진>을 하면서 ‘바보’ 가 됐다. ‘바보’ 라는 말이 절대 나쁜 뜻이 아니다. 그냥 시트콤 연기를 하면서 그 전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게 됐다. <행진>을 재모랑 같이 하게 돼 든든했고, 송은이와 정성화라는 든든한 후원자도 만나게 됐다.
은이 언니와 성화 오빠와는 운동을 하면서 친해졌다. 지금도 아무리 바빠도 은이언니와는 1주일에 2~3번은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고 있다. 사실 은이 언니는 처음에 날 이상한 아이로 생각했단다. 그 사건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