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무렵 기차는 특급 보급 완행열차 3종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나와 고등 동창이면서 사회에선 내가 미국으로
이사 올 때까지 기술오퍼상 동업을 이십 년간
같이했던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시골 출신이고
마음이 착해서 본의 아니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에피소드들을 많이 만들었었다.
그중의 하나, 하루는 그 친구에게 서울을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다. 노자돈 넉넉히 받았겠다,
친구는 호기롭게 특급을 탔다.
구미를 지나면서부터 배가 출출해진 그 친구
또 한 번 호기를 부리면서 식당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 기차의 식당칸은
유명한 호텔에서 그 칸을 임대받아 운영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들이야 보통은 분식집 라면이 주 외식이었고,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용돈을 타는 날이거나
친구의 시골집에서 향토장학금이라도 보내오면
중국집의 탕수육이 특식이 되던 시절,
이 친구 호기롭게 식당칸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그곳의 테이블과 의자의 호화로움에 일단 기가
조금 꺾였다.
잠시 후 웨이터가 와서 메뉴판을 주고 갔다.
그 메뉴판을 보던 이 친구, 비명을 속으로 꿀꺽
삼켜야만 했다.
왜냐?
값은 둘째고, 첫째는 메뉴판의 음식 이름 중 아는
음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그 친구 웨이터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얼른 음식 하나를 정하려고 눈을 부릅뜨고 찾다 보니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나는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비프스테이크'
잠시 후 웨이터가 다가왔을 때 친구는 침착하고
점잖은 목소리로,
"비프스테이크 하나." 주문을 했다.
"스프는 뭘로 하실까요?"
"네???"
"야채와 크림 두 종류가 있는데요"
"아~ 예. 야채요."
"스테이크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네???"
"웰던, 미디엄 어쩌고 저쩌고..."
"... 웰던으로..."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 당황한 상태라
웨이터가 권하는 첫 번째로 무조건 주문을 마쳤다.
한 오분쯤 지나 웨이터가 스프를 가져왔다.
배고픈 이 친구 얼른 별로 맛도 없는 그 스프를
열심히 싹싹 닦아 먹었다.
다시 한 십 분쯤 지나 웨이터가 왔다.
그 친구 말을 빌리자면,
'사발에 배추와 상추 비슷한 채소를 가득 담아주는
거야...'
소스에 대한 상식이 없었던 그 친구 그 채소를 날것
그대로 하나씩 포크로 찍어 먹으면서
'와.. 맛도 별로 없는데 비싸긴 되게 비싸네...'
이렇게 생각했단다.
그 채소들을 소스도 없이 꾸역꾸역 먹은 이 친구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음식이 이제 끝난 건가?
그러기엔 너무 비싼 거 같은데...?
좀 더 기다려 보지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던 그 친구
10분이 지나고 15분이 지나자 점점 더 초조해졌고,
'이게 끝인가 봐. 이 나뿐 놈들... 죽 하나와 채소
한 접시 내고 오천 원이나 받아먹다니...
이 사기꾼 같은 놈들...'
입을 쑥 내밀고 속으로는 거친 욕을 해댔단다.
식사 다하고도 계속 자리에서 밍기적대면
촌놈이라고 흉볼 텐데... 이 친구 그만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쪽을 힐끔 대면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아! 이럴 수는 없는데... 어찌 이럴 수가!!!'
분함을 달래며 밖으로 나가던 이 친구가 문고리를
잡는 찰나, 주방 쪽에서 웨이터가 큰 접시 하나를
들고 자기가 앉아있던 테이블로 와서 두리번대는
것이 보이더라네.
'앗! 저건가 보다. 어쩐지...'
잽싸게 자리로 돌아온 그 친구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아~ 화장실 좀 다녀올랬더니 음식이 나오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듣는 우리나 들려주던 그 친구
서로 얼마나 배를 잡고 웃었던지...
그 이야기 들으며 그때 난 이런 생각들을
뇌리에 박아 넣었다.
- 절대 기차 식당칸에 가지 않는다.
- 부득불 가게 되면 무조건 비프스테이크를 주문한다.
- 웨이터가 물으면 무조건 첫 번째로.
- 채소는 꼭 소스를 끼얹어 먹는다.
- 고기가 나올 때까진 자리를 뜨지 않는다.
살다 보니 어떻게 스테이크가 흔한 세상에 와서
살고 있다.
길에서 시골냄새가 나는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가끔 먹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 친구의 일화가
생각나 웃는다.
미국에서 먹는 스테이크는, 나에게 우리들의
세련되지 못했던 젊은 날을 되살려주는
추억의 음식이 된다.
첫댓글 미국 출장을 열명이 함깨 갔어요, 그중 영어가 좀 된다는 직원 한명을 아홉 사람이 졸졸 따라다닙니다,
영어가 좀 되는 직원이 식당에서 스테이크 주문을 받습니다, 미디엄에 가니쉬는 베이크드포테이토 라고 주문을 헤요,
나머지 9명이 모두 미투 미투 미투 ~ 차례로 주문을 합니다,
웨이터가 10인용 구운 감자를 한소쿠리 가득 담아왔어요, 40여년전의 실화입니다.
저도 인도 첸나이로 출장 갔을 때
호텔 석식하며 그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ㅎㅎ
저는 미국 살면서도
정식 레스토랑레 가면
여전히 주문이 서툽니다.
대신 이제 부끄러워하지 않고
꼼꼼히 물어보며 합니다. ㅎ
나 고등학교 다닐때 충무로 3 가 초등극장 근처에 돈가스 집이 있었다
그때 쌍칼질 하는 게 멋있었는지?
그집 돈가스는 유일하게 다른 음식점의 흔한 설렁탕과 가격이 비슷했었다
그리고 그집 돈가스는 내 입맛에 맞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끔 외식하라고 식대를 주면 거기까지 가서 돈가스를 먹은 적이 종종 있었다
나 고등학교 졸업식 할때 가족들과 양식집에 들어갔구 당연히 돈가스를 시키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내가 감기기운이 있어서 돼지고기는 안된다네?
( 몸에 염증이 있을때 돼지고기나 닭고기 먹으면 안된다는거는 새빨간 거짓말 인걸루 판명이났다 )
그래서 돈가스 보다 더 비싼 소고기로 만든 비후가스를 시켰다
그당시 그 비후가스라는게 지금의 비프스테이크 일거다
좌우간 그당시 에는 돈가스 이건 비프 스테이크 이건 쌍칼질 하면서 음식을 먹는게 신이 났었다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중 에는 돈가스도 포함된다
이상 나와 돈가스 , 비프스테이크 이야기 입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돈가스는 우리 아이들이 지금도
좋아해서 돈가스 도시락 주문해서
먹곤 합니다.
전 돈가스란 음식이 있다는 걸
대학 들어가서 알았어요. ㅎ
그 시절 떡라면이 우리들의
최고 음식이었어요.
재미난 이야기를 쓰셨네요.
제 어린시절은 외식을 몰랐답니다.
제일 먼저 외식이라고는 중국집이었지요.
우리 어머니는 소고기 요리로는
소고기 육게장 정도지요.
소고기 값 비싸서 많은 식구가 먹을려면,
소고기 국밖에는 없었습니다.
대학을 가서, 광복동 왕자극장 바로 옆에
돈가스집이 있었지요.
친구들과 가기에는 값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밥에는 좁쌀을 조금 넣은 밥
밥공기 국그릇이 아닌 접시 하나에 밥
다른 접시 하나엔 돈가스, 돈가스 옆에는 양배추채 사라다,
그정도면 충분히 칼질하고 밥 먹을 수 있었지요.^^
양식을 먹는 것?
남자와 데이트할 때...^^
마음자리님과 나이 계산하면,
시차적인 차이는 있을꺼예요.^^
제 어머닌 정육점에서 쇠고기 살 때,
허연 비계를 많이 넣어달라 했지요.
쇠고기국에 동동 뜬 기름이
꼬소하고 맛있어 즐겨 먹었는데
훗날 어머니의 회한이 되었지요.
'그땐 뭐든지 기름기 있는 음식 먹이면
좋은 줄 알고...'
양식은 서클후배였던 아내가
저에게 처음 사준 음식이었어요.
전 칼국수로 갚고.. ㅎㅎ
지금은 일부러 양식집을 가지 않지만 그때는 돈가스나 비프스테이크가 최고의 외식이였습니다. 맛도 좋았구요... 오랜만에 내일오전 오디세이를 집사람과 보고 돈까스나 비프스테이크를 먹어보겠습니다.
엄두도 못냈지만 그때의 최고 음식이
비프스테이크 맞습니다. ㅎ
오딧세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즐감하시고
아내분과 오붓하게 맛있게 드세요~
와!!특급열차도 타고 거기에 기차 식당칸에서
비프스테이크도 먹고 대단한 친구분 이십니다.
전 중학교 부터 서울 유학을 갔었지만 단한차례
완행열차 놓치고 학교 결석할수 있어서 단한차례 보급을 탔었지요..
다 떠나서... 향토 장학금 진짜로 오랜만에 들어본
옛추억 입니다.
집에 서 한달에 한번씩 부쳐 주었던 자취 생활비
를 향토 장학금 이라 하였습니다.
그 친구 시골집이 사과과수원을
크게 해서 그 친구 향토장학금이
제일 컸어요.
그날 우린 생맥주도 마시고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으며
탕수육도 추가로 시키곤 했어요. ㅎ
기차의 식당이 특급호텔 수준이었군요.
마음자리님. 학창시절 향토 장학금까지 받은 재원이었군요.
소소한 기억력이 그냥 나온게 아닙니다.ㅎㅎ
아, 제가 받은 장학금이 아니고
친구 시골집이 큰 과수원을 했는데,
매달 올려보내주는 용돈을
우리는 향토장학금이라 불렀습니다. ㅎ
가정시간에 양식먹는법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
샐러드 , 스프 , 후식 ㅎㅎㅎ
저는 배운대로 하지 않고 고기도 내 맘대로 해요.
젊었을때 친구의 에피소드가 재미있네요.
미국에서도 서민식당에서는
스테이크 자기를 각자 방식대로
먹더군요. ㅎ
전 다 잘라놓고 잘 생긴 녀석부터
순서대로 먹습니다. ㅎ
저도 가정시간에
음식 먹는
예절을 배웠던거 같으네요.
그 옛날 어린시절
웃음나는 일들이 많았지요.
어제는 구급차 타고
응급실에 갔는데
검사를 다 해놓고
이상 없다고 가라고 하니
황당했답니다.
약도 없다 하고
저는 괴롭고
집근처 한의원에서 치료받고
와서 오늘 조금 수월해
댓글을 달아봅니다.
갑자기 안 좋아지신 건가요, 아님
전부터 좀 편찮아하시던 연장인가요?
원인이 밝혀져서 잘 치료 받으시면
좋겠는데요...
그 친구 재밌네요.ㅋㅋㅋ
모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세련되지 못했던 우리들의 젊은시절~
정말 그립습니다.
여러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훗날 또 소개하지요. ㅎ
그땐 뭐든 도전해보고
서툴어했던 일들이
그렇게나 재미있었습니다.
“비프스테이크 한 접시에 청춘 한 시절이 통째로 담겨 있네요.
웃으며 읽다가 마지막 문장에서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무엇을 먹었느냐보다 누구와 함께했던 시간이었는지가 더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스테이크가 흔한 음식이 되었지만, 그 시절의 서툴고 순박했던 친구와의 우정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늙지 않겠지요.
한바탕 웃음 끝에 가슴 따뜻한 추억 하나를 선물받았습니다.
참 좋은 글, 참 아름다운 우정입니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안부만 가끔
물으며 지내지만, 삼십 년을 거의 매일
같이 붙어 다녔으니 피붙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입니다.
그 인연과 추억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기차 식당칸에서 처음 비프스테이크를 주문하던 친구분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저도 웃으며 읽었습니다.
스프와 채소만 먹고 끝난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비로소 진짜 스테이크가 나오는 장면이
참 재미있고 정겹습니다.
그 시절의 서툴고 순박했던 모습들이
지금은 오히려 오래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되었네요.
비프스테이크 한 접시에
젊은 날의 우정과 세월이 함께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서툴어서 투박하고 어설펐던
그 시절이 우리들에겐 보석같이
빛나는 시절이었습니다. ㅎ
저는 서양 사람들은 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먹으니까 반드시 웰던으로 주문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