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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에도 없는 <오직>이 들어간 경우는..크게 다음 두가지 경우로 나누어볼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원어성경을 확인해서 확실히 정리한 것이니, 100% 그대로 믿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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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헬라어 <데>의 사용법 문제.
1) 헬라어의 접속사인 <데> 혹은 <알라>(= 그러나but, 그리고and, 이제Now)가 <오직>으로 오역된 경우 2) 헬라어의 <~메, 알라~>구문(영어의 <~not, but~>구문)에서 <but~>부분이 <오직>으로 오역된 경우
자, 이제 보라주님이 인용해 오신 [야고보서1:6]을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여기서 헬라어 접속사 <데> (혹은 <알라>) 에 대해 분명히 짚어 보겠습니다. 이 단어는 보통.. <그러나 But>, <그리고, 혹은 그래서 And>, <지금, 혹은 이제는 Now> ...정도로 번역되는 말인데 그저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접속사(앞, 뒤 문장을 대등하게 연결시키므로 <등위접속사>라고 합니다)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오직>을 의미하는 부사인 <Only, Alone>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데>는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접속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서는 아예 번역하지 않고 넘어가도 무방하고, 또 이런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
헬라어 <데>는 사용법이 무궁무진 합니다. 아래는 헬라어 사전을 캡쳐한 사진입니다.
붉은 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but, and, now, then, also, yet, so, nevertheles> 많이 보이시죠?
옆에 있는 숫자가 신약에서 사용된 횟수입니다. 다양한 뜻으로 아주 많이 사용되었지요?
또한 but은 여러분이 사전을 찾아보면 아시겠지만 <only>의 뜻으로도 사용이 됩니다.
3. 헬라어 <데>가 한글 성경에서 <오직>으로 번역되어 오역이 되었는가?
(앞으로의 제 글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니, 이 <데>의 설명을 꼭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개역한글, 개역개정 공통)
자, 본구절에서 <오직>으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데>입니다. 그런데 [개역한글]에서는 분명히 <오직>이란 부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의 <오직>은..제가 서두에서 말씀드린..첫번째 경우에 해당되겠습니다.
1) 헬라어의 접속사인 <데> 혹은 <알라>(= 그러나but, 그리고and, 이제Now)가 <오직>으로 오역된 경우
그러면 이제 대표적인 영어성경을 보겠습니다.
But let him ask in faith, nothing wavering. For he that wavereth is like a wave of the sea driven with the wind and tossed (KJV)
And let him ask in faith, nothing doubting, for he who is doubting hath been like a wave of the sea, driven by wind and tossed,(YLT)
보다시피 <KJV : But>으로도, 또 혹은 <YLT : And>으로도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보라주님 주장처럼..[KJV]에서 <But>가 <오직>을 의미한다면, [YLT]에서의 <And>도 <오직>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시겠습니까? 아니면 [YLT]의 번역이 틀렸다고 주장하시겠습니까? |
저는 지금까지 <데>를 <오직>으로만 번역해야 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문맥상 <오직>이 맞다면 그렇게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든님은 <오직>으로 해석하면 무조건 오역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문맥에 따라서 <그리고>라고 해석을 해서 그것이 앞뒤 구절과 번역을 비교하여 옳다면 그것이 옳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가든님처럼 단정적으로 100% 이것만 옳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건 교만이지요.
4. 헬라어 <데>를 <그러나>로 해석을 했을 때 자연스러운가?
이제..앞의 5절까지 붙여서 인용해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헬라어 <데> :KJV->그러나But / YLT->그리고And)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약1:5-6)
자, 이렇게 두 구절을 연결시켜 놓고 보면, 헬라어 <데>를 "그러나" 혹은 "그리고" 로 번역하든, 이 경우에는 모두 문맥이 통하므로.. [KJV],[YLT]모두 맞는 번역이 되는 것입니다.
[KJV] :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나 구할때는 믿음으로 구하고.. [YLT] :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고 구할때는 믿음으로 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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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그러나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약1:5-6)
<그러나>가 자연스러울려면 앞에 구절에 대하여 역전시키는 반대의 뜻이 와야 합니다.
앞에 구절과 뒤에 바로 연결되는 구절이 어떠한 역전되는 뜻이 아닙니다. 어색하지 않은가요?
차라리 <오직>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약1:5-6)
5. 한글 킹제임스의 교수가 나에게 자문했는가?
그럼 이제 다시 보라주님이 <명백한 증거>로 가져오신 [한글 킹제임스]를 보겠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으니 (한글 킹제임스)
일반적으로 대단히 잘된 번역으로 알려져 있는 [한글 킹제임스]에선 분명히 <오직>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보라주님이 이를 신뢰하고 자신있게 가져오신 것도 사실 무리는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이 [한글 킹제임스]의 번역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KJV]의 <But>을..<오직>이라고 번역한 번역자가..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보라주님이 잘 알고 계시다는, 헬라어와 [KJV]성경에 정통했다는 그 교수님이 틀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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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친척중에 KJV계열에 교수가 있다고 했지, 그분에게 자문 받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헛소리하면 그 교수를 내가 알기 때문에 자기 주관대로 원문해석 마음대로 하지 말라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지금 가든님의 실력으로 봐서는 그 교수에게 자문 안해도 될 거 같습니다.
6. 한글 성경에서는 <그러나>로 번역하는가?
그런데 과연..영어에 정통했을 이 [한글 킹제임스]번역자가 정말로 실수로 틀린 것일까요? 어디 잠깐 딴 생각을 하다가..깜빡 한 것일까요? 지극히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번에는 또다른 [KJV]한글번역판인 [킹제임스 흠정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흔들리지 말지니라. 흔들리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나니 [킹제임스 흠정역]
<But = 그러나> 이것이 맞는 번역인 것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이 정확히 번역한 것입니다. 이 글 서두에서 제가 설명드린 부분을 다시 가져와 보겠습니다..
<<< 이 단어는 보통.. <그러나 But>, <그리고, 혹은 그래서 And>, <지금, 혹은 이제는 Now> ...정도로 번역되는 말로.. 그저 문장과 문장을 대등하게 이어주는 등위접속사로서.. <오직>을 의미하는 부사인 <Only, Alone>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말입니다>>>
그럼 이제 다른 한글성경을 볼까요?
그러나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거리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역시 <그러나>로 정확히 번역되어 있지요? 따라서 이것도 맞는 것입니다.
( )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마라.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다[바른성경]
( ) 하나님께 구할 때는 믿고 구해야 합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하는 자는 바다 물결같이 바람에 밀려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쉬운성경).
[바른성경], [쉬운성경]에서는 아예 번역에서 빠져 있지요? <오직>도, <그러나>도 없지요? 이것이 어찌된 일일까요?
이제 다시 제가 서두에서 말씀드린 부분을 다시 가져와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데>는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접속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서는 아예 번역하지 않고 넘어가도 무방하고, 또 이런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
글씨 토씨 하나에 목숨거시는 분이 빼먹은 해석에 대해 아주 관대하시군요.
빼먹어도 된다는 뜻은 <부사>일 경우가 우세하다고 생각지는 않으신가요?
<오직>으로 해석한 다른 한글성경을 볼까요? <공동번역>도 그렇게 번역을 했군요.
Korean 공동번역 | 야고보서1:6 | 조금도 의심을 품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의심을 품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
Korean 한글킹제임스 | 야고보서1:6 |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으니 |
Korean 한글개역 | 야고보서1:6 |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
Korean 한글개역개정 | 야고보서1:6 |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
7. 다른 나라 성경에서는 <오직>으로는 번역을 안할까요?
이제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한국의 모든 한글번역성경 중에서.. 번역자 스스로가 그토록 지구상 최고의 정확무오한 성경이라고 자랑하던.. 또 나름 정확한 번역성경으로 평가받던 [한글 킹제임스]성경만 틀린 것이고 보라주님이 하필이면 유일하게 틀린, 이 [한글킹제임스]를 집어 오신 것입니다.
(물론 원어성경을 비롯, 세계의 모든 번역성경에는 역시 <오직>이란 말이 아예 없음은 물론입니다) |
1) 문제제기 1.
한글 킹제임스만 틀렸다고요? <공동번역>, <개역성경>도 있지요.
2) 다른 나라 성경에서는? 일본, 중국 성경도 <오직>=<다만>으로 번역을 했네요.
세계 모든 나라에 가서 번역 수정을 해줘야겠군요.
영어권과 유럽권에서는 모두 but으로 사용을 했는데, 그 의미에 대해서는 <only>의 뜻도 있음을 아시겠지요?
Japanese 新改訳 | ヤコブの手紙1:6 | ただし、少しも疑わずに、信じて願いなさい。疑う人は、風に吹かれて揺れ動く、海の大波のようです。 |
Japanese 口語訳 | ヤコブの手紙1:6 | ただ、疑わないで、信仰をもって願い求めなさい。疑う人は、風の吹くままに揺れ動く海の波に似ている。 |
Chinese Union 繁體 | 雅各書1:6 | 只 要 憑 著 信 心 求 , 一 點 不 疑 惑 ; 因 為 那 疑 惑 的 人 , 就 像 海 中 的 波 浪 , 被 風 吹 動 翻 騰 。 |
Chinese Union 简体 | 雅各书1:6 | 只 要 凭 着 信 心 求 , 一 点 不 疑 惑 ; 因 为 那 疑 惑 的 人 , 就 像 海 中 的 波 浪 , 被 风 吹 动 翻 腾 。 |
첫댓글 가든님, 논쟁을 할 때 반박은 저처럼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할 말만 쏙하고 빠져 나가면 토론이 안되지요. 안티와 논쟁하면서 배운 "논리야 놀자"식 토론 방식입니다.
가든님이 '자기 할 말만 쏙하고 빠져 나가' 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번 일과 관련된 모든 글을 일고 나서 제겐 보라주님의 논리가 근거가 많이 부족해 뵙니다. '데'를 '오직'으로 고집해서 집어넣어야할 근거가 아주 부족해 뵙니다. 왠지 모르겠으나 꼭 믿음 앞에는 '오직'이 붙어야만 한다는 편견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가든님께서 원문을 들어 그 편견을 깨어버리셨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신선하고 '바른' 접근법이라 생각합니다.
가든님과 보라주님의 논쟁과 답글들을 잘 읽고 있습니다. 보라주님, 그러나 교만의 극치를 보입니다 와 같은 말을 좀 삼가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좀더 부드럽고 어휘나 단어선택을 좀 더 부드럽게 하셔서 님의 주장을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상대의 감정을 거스리는 단어나 어휘들은 자제하시는 것이 상대에게나 님에게도 좋을 것입니다.
핼라어 <데>의 사용이 무궁무진하고 했는데 ...제가 볼때도 < <but, and, now, then, also, yet, so, nevertheles >는
다 접속사들입니다. 님이 주장한 only 의 뜻은 없네요.물론 but 이 only 의 뜻이라 주장하시지만~
<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그러나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약1:5-6) > .....
이부분에서 <데>는 역접의 의미인 but 으로 쓰이기에는 양쪽의 문장이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니 <그러나>보다는 < 오직> 의 의미가 자연스럽다고 하셨는데 .....
< 오직 >보다는 < 그리고 >가 더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왜냐면 < 데 >의 and 의 의미가 있음으로~
헬라어 접속사 <데> -> but, and, now, then, also, yet, so, nevertheles....
여기 어디에 <only>가 있는지요? 아직도 But=only라고 주장하시겠는지요?
그럼 영어성경에서 수백회의 But가 나오는데..어떤게 <그러나>이고..어떤게 <오직>인지요?
말이 되질 않습니다.
(제가 이번엔....<but>과 <only>의 용법에 대해 정확히 설명드릴까요?)
제가 장담하지요..
헬라어 접속사 <데>는..절대로 부사인 <오직>으로 쓰이는 접속사가 아닙니다..
그런 용법은..헬라어성경 전체에서 단 한차례도 없습니다.
다음에 올리는 제 글을 보시면..이것이 아주 완벽하게 증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헬라어 사전 보시는 법을 일러 드리겠습니다.
<오직(KJV, But)> <또(KJV, But)>이라고 되어있는 것은요..
[KJV]에서 "But" 이 <오직>의 의미로 쓰였다는 뜻이 아니라->
헬라어의 <데>가 [KJV]에서 "But"으로 번역되었는데, 개역한글에서는 <오직>으로 번역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헬라어사전은요..영어번역성경이 한글 어떤 단어로 번역되었는지까지를 설명해 줄 수가 있겠는지요?
다만, 어떤 헬라어가..영어로는 무슨 단어로, 또 한글로는 무슨 단어로 번역되었다는 정보만 줄 뿐인 것입니다..
이해하시겠는지요?
(그리고 이제 그만 하시지요?)
가든님은 국어를 참 못하세요.
[ <오직(KJV, But)> <또(KJV, But)>이라고 되어있는 것은요..
[KJV]에서 "But" 이 <오직>의 의미로 쓰였다는 뜻이 아니라->
헬라어의 <데>가 [KJV]에서 "But"으로 번역되었는데, 개역한글에서는 <오직>으로 번역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게 지금 무슨 말인가요? 횡설수설 앞뒤 논리도 안맞는 말을 하고 계시네요.
한가지 추가하자면 de는 but, and 외에 now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but 으로 보자면 앞의 문장의 절이나 구를 부정해야 하는 기능인데 5절의 내용상 but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하고 and로 해석하자면 앞 문장과의 연계성이 있어보이니 and로 보이는 것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now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가깝다고 봅니다. 야고보서 1장 6절의 내용에 맨 앞에 서두로 등장하면서 지금이라는 그 시간은 믿음으로 구할 때 그 시점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앞 문장의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대해서 강조하는 바와 일치되고 1장6절을 한글로 번역하자면 "믿음으로 구할 때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이런 문장이 되는 군요. de앞에 ei가 붙어 de라는 접속사가 ei(영어 if 만일 ~한다면)에 자연스럽게 종속되면서 더 정확한 번역은
만일 믿음으로 구한다면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이런 결과가 됩니다. 학자들이 왜 ei라는 단어를 빼 버리고 번역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헬라어 원문의 야고보서 1장5절은 ei de로 시작합니다. 제 짧은 시각으로 볼 때는 de보다 ei라는 단어를 없는 단어 취급한 결과가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고 봅니다. 5절과 6절을 분리할 수 없는 문장으로 본다면 "만일 믿음으로 구한다면 이렇게 보는 것이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합니다.조건문의 특성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옳다고 보아지는 문장입니다.
"또는 만일 믿음으로 구할 때는 " 이 옳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5절의 번역이 "만일 너희중에 누구라도 지혜가 부족하거든 "으로 번역이 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실 5절에서 만일 ~~한다면 으로 시작해야 옳거든요.그러면 6절에서 중복번역을 피하여 빼버려도 의미가 연계되니까 상관이 없어지는데, 5절의ei를 무시하는 이유는 저의 언어학지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자기 입맛대로 자기 할 말만 쏙~하고 빠져나가는 토론에서 얻는게 뭣일까요?
2천년이 지난 언어를 번역함에 있어 [내가 이 분야 최고야~]라고 하는 것은 교만이지요.
논리도 없이 근거도 없이 [내 말만 믿으시면 됩니다] 라고 하면 끝인가요?.. 이런 말을 믿는 자체가 [맹신]이지요.
현재 사용되는 언어도 어려운데 말이지요. 심지어 날마다 눈 뜨면 사용하는 국어도 얼마나 어려운가요?
특히나 단어 하나에 여러 의미를 지닌 다의어인 유럽 및 영어권 언어는 우리나라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언어라는 것이지요.
가든님의 설명은 보라주님의 설명보다 논리성에 있어 흠이 없고, 철두철미하며
비교적 다양한 용례를 소개, 설명하심으로 자기 입맛대로 자기 할 말만 쏙하고 빠가는 토론을 진행하고
계시진 않습니다. 또한 허망할 만큼 내용이 부실하거나 허술하지도 않고,
보라주님혼자만 그런 주장을 하시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론을 하면서 각자 자신의 주장하는 바를 펼치되 되도록이면 감정적으로 대하는 모습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서로에게 읽은 모든이를 위해서 유익이고~
이번 토론에 많은 분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기 때문이죠.
님의 주장처럼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써가 불변의 가치요, 진리라 할지라도 그것만이 강조됨으로
구원의 조건을 영접(믿음)만으로 국한시키는 현상이 가져온 일그러진 병폐는 실로 커서 값싼 은혜가
남발되는 현실속에 오늘날의 한국개신교가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이면에는 어떤 현상이 존재하는 걸까 하는 의문속에서 성경의 실제의미에 관심이 집중되어지고,
얼핏 로마서와 야고보서는 서로 상반되는 진리인듯 보여도 동전의 양면성과 같은 유기적관계속에서
같은 내용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며, 오로지 믿음만을 강조할 경우 상대적으로 다른 가치는 무시할
가능성이
있기에, 그것을 경계하기위해서는 성경의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것에서 출발한겁니다.~
많이 알고 있다는 이유로 안하무인한것은 교만이지만, 더 민망한 경우는 빈약하고 적은 형편속에서
끝까지 < 나 잘났다,내가 옳다> 하는 경우입니다. 둘다 교만의 극치지만 정도로 말하면 후자의 경우가
보기에는 더 가관입니다. 타인이 어느 방면에서 나보다 전문가다운 면이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나 굴욕이 아니라 겸손인것이고,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또 다른 교만이요,
아집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펼치며 반격을 가하되,
상대가 일정부분 옳을 경우 인정하면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토론자의 자세이고
이런식으로 가다가 끝도 없습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속에 혈안이 된다면 어떤 진리를 갖다 눈앞에 보여주어도,
틀린것이라 하기 때문에 이런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토론은 무익합니다.
제글이 길었지만, 가든님은 나름 성실히 임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라주님도 역시 마찬가지구요.
그러니 자기 입맛대로 떠들다가 쑥 하고 빠져 나갔다는 식으로 가든님을 비난하지 말고~
어차피 토론을 하실거면 증거로써 논박하고, 양단간에 누구의 주장이 옳은 것으로 판명될지
정확하고 공정하게 판결받기 바랍니다.
이해가 안될땐 나중에 알고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쉬운것도 이해가 안되죠 ㅋ 원어민 선생님 한마디면 정말 한방인데... <데>에 너무 깊게 빠져 진도가 안나가니... 좀 아쉽네요...덕분에 뭐... 깊이가 더해저서 나쁠거야 없죠...
이 엄청난 겁박을 주고도 돌아온 글은 너무 허망하니 이 마음을 누가 알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