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는 넘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잠이 모자란 듯합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증거를 몸이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주일을 맞는 듯 반갑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오후에 있을 헌신 예배 특순도 주님께 올려드리는 신앙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골로새서를 마무리합니다.
말씀의 진도는 잘 나가는데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보혈만을 더욱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진리의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에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본문 주해)
‘두기고와 오네시모’(7~9절)에 이어 바울 사도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소식을 보낸다.
10~11절 : ‘아리스다고’는 바울이 고난 받을 때 항상 옆에 있었던 사람이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폭도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고 목숨을 잃어버릴 뻔했던 고통의 현장에서(행19:29), 유라굴로 광풍에 배가 부딪쳐 죽을 고생을 할 때(행27:2)도 아리스다고는 바울 옆에 있었다. 그 이후로도 바울과 함께 사역한 사람이기에 지금 함께 갇힌 자라고 한다. 감옥에 갇혔다는 것이 아니라, 감옥에 갇힌 바울과 함께 동역하고 있다는 것, 즉 복음에 매였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정 기간 동안 바울 대신 감옥에 갇혔다는 사람들(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이 있었고, 아리스다고가 그 중의 한 명이라는 설도 있다.)
‘마가’는 한때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여행을 중도에 포기한 자로 바나바와 바울을 갈라서게 만든 장본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두 팀이 되어 전도를 하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 마가도 신실한 사역자가 되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마가가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하였다(딤후4:11).
이 마가를, 미리 당부했듯이 그가 그 곳으로 가게 되면, 따뜻하게 맞아 달라고 하는 것이다.
‘유스도’는 가장 정보가 없는 사람이지만 바울 대신 감옥에 갇혔던 자 중의 한 명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 세 사람이 다 할례당이었다.
할례당들은 바울이 복음 전하는 것을 굉장히 핍박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한 자들이 되었으니 바울에게 엄청난 위로가 된 사람들이었다.
12~13절 : ‘에바브로’는 골로새 지역에 복음을 전한 사람으로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바울에게 전한 사람이다. 이 에바브로도 지금 바울과 함께 사역하는 중이기에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였다. 또한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였다.
에바브로의 기도의 내용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는 것 즉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꼭 붙잡게 되기를 기도하였던 것이다.
14절 : ‘누가’는 바울 사도와 함께 가장 오랫동안 동역한 사람이다. 의사이기에 바울의 건강도 돌보면서 사역하였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게 됨으로 그 귀한 헌신의 시간들이 귀한 열매가 되어 교회 역사에 빛나게 된 것이다.
‘데마’는 바울 사도가 이 골로새서를 기록할 때는 문안한 자로 표현되었지만 후에 디모데후서를 쓸 때는 세상을 사랑하여 갔던 사람(딤후4:10)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5~16절 : 눔바는 라오디게아에 있는 여인으로 자기 집을 교회로 내어놓은 사람이다.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는 가까운 곳에 있기에 골로새 교회가 바울의 편지를 받아 읽은 후에 그곳으로 편지를 보내도록 하고 또 바울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를 골로새 교회가 받아 읽게 하는 것이었다.
이 편지들은 사소한 개인의 편지가 아니라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보낸 편지이기에 그리스도의 뜻인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 지역의 교회만이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교회에 다 적용되는 것이 바울의 서신인 것이다.
17절 : ‘아킵보’는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로 추정되며 빌레몬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그에게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충실히 잘 하라고 전해 달라고 한다.
18절 : “나 바울은 여러분에게 나의 친필로 이렇게 문안합니다. 내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기도드립니다.”(쉬운 성경)
(나의 묵상)
바울 사도는 자신과 함께 있는 10명의 사람들의 소식을 전한다.
두기고, 오네시모,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 에바브로, 누가, 데마, 눔바, 아킵보가 그들이다.
한결같이 신실했던 바울의 동역자요 주님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 떠났다가 돌아오는 자와 떠나버린 사람도 있다.
마가와 데마가 그 인물들이다.
마가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했던 전도 여행을 중도에 포기해 버렸었다.
15~6년 전쯤인가.....성지순례 여행을 갔을 때 바울 사도가 걸어서 갔던 그 높은 산맥의 줄기를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았다. 그 어마어마한 광경에 압도되었으니, 마가가 질려서 돌아갔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후에 바나바는 마가가 꼭 조카라서보다는 그 온유한 성품으로 그를 품었지만, 성질이 칼같은 바울은 그를 단박에 거절했다.
그때 잘려진(?) 마가를 바울이 다시 받아들여 동역자가 된 것은 마가가 변했기 때문이다.
겁 많고 실수를 거듭하던 마가는 주 안에서 그 믿음이 장성해지자, 병약한 몸으로 감옥에서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바울의 곁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가복음>을 기록하여 로마인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기도 했다.
그는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딤후4:11).
이와는 반대로 데마는 바울을 떠났다.
골로새서를 썼을 당시는 바울 곁에 있었는데, 디모데후서를 쓸 무렵에는 마음이 변하여 바울을 떠난 것이다. 그 이유로 세상을 사랑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딤후4:10).
데마에 대한 성경 기록은 이후에는 없지만, 그가 진정 주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마가처럼 그도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생각해 보면 어찌 마가와 데마뿐이랴.
주님의 모든 백성들이 신실한 종이 되기까지 엎어지고 자빠지는 것을 반복한다.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여 지체들과 공유하고, 남들보기에는 한결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속으로 한없이 밑바닥을 칠 때가 있다. 마가처럼 겁이 많아 우물쭈물하다가 실패할 때도 있고, 데마처럼 세상을 사랑할 때도 많다.
나 자신과 주님만이 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 손목을 놓지 않고 계심을 믿는다.
그 증거가 한결같이 말씀의 자리에 앉혀 놓으시는 것이다.
그래서 공이로 찧어도 벗겨지지 않는 나의 어리석음을 먼저 보게 하신다.
그리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하시고, 십자가에 연합되게 하신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
그러면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나도 모르게 변화되게 하시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 속에 있는 자이다.
이 일을 신실하신 주님께서 이루어 내실 것을 믿으니, 나도 회복된 마가처럼 복음 전파에 유익한 종으로 쓰여질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이다.
한결같이 신실하신 주님을 닮아가는 주님의 종들처럼 주님 손에 들려진 아름다운 도구가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못나고 변덕이 죽 끓는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일하심에 저를 맡깁니다.
순간마다 주님을 떠나지만
결국 주님께로 돌이키게 하시고 변화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지체들 역시 이 과정을 겪고 있음을 알게 하셔서
판단하기보다는 용납하고 포용하게 하옵소서.
신실하신 주님의 일하심의 결과를
함께 기뻐하며 주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