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네이버 카페를 검색하다 우연히 경남 양산시에서 마련한 ‘2026 양산시의 해 디카시 공모전’ 소식을 접했다.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담고, 짧은 시어로 그 순간의 감동을 붙잡는 디카시. 아직은 정식으로 배운 적도, 검증받은 작품을 써본 경험도 없는 초보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소식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지난 6월에는 경주에서 국제예술문학협회 주최로 회원전을 서른 여점 작품을 만들어 시화전 열었다. 정통 디카시 작가들의 작품과는 결이 다를지 모르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진에 마음을 얹어 만든 작품들이었다. 한 달 동안 전시를 무사히 마치면서 회원들의 따뜻한 격려를 받았고, 그때부터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이번에는 나도 공모전에 한번 참여해볼까.’
입상이야 나중의 일이고, 아직은 배우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한 걸음 내디뎌 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7월에는 문경에서 열린 제2회 전국 디카시 공모전이 끝날 무렵
아내와 함께 문경문학관을 찾았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바라보며 디카시가 무엇인지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혼자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양산12경 가운데 하나인 홍룡폭포였다.
경주에서 남양산IC를 지나 천성산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어느새 홍룡사 주차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평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한산했다.
일주문을 지나 사찰 안으로 들어서자 번잡함 대신 고요하고 단아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홍룡사는 신라 문무왕 13년인 673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원효대사는 천성산에 여러 암자를 세우고 천 명의 대중에게 화엄경을 설법했다고 한다. 그래서 천성산 곳곳에는 집북재와 화엄벌 같은 이름들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그러나 오늘 내가 만나고 싶었던 것은 역사책 속의 홍룡사가 아니었다.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빼앗길 만한 그 무엇.
몇 계단을 올라 산신각을 지나자 마침내 눈앞에 홍룡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가뭄이 길었던 탓인지 폭포수는 예전처럼 힘차게 쏟아지지 않았다.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는 오히려 가늘고 조용했다.
나는 잠시 실망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래 바라볼수록 그 가느다란 물줄기가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힘차게 흐르지 못한다고 해서 폭포가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삶도 그러하지 않은가. 젊은 날에는 폭포처럼 거침없이 흘러가지만, 세월이 깊어질수록 흐름은 느려지고 가늘어진다. 그렇다고 삶의 의미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홍룡폭포 옆 바위에는 마애여래불이 고요히 좌정해 있었고, 맞은편 바위틈에는 관음전이 절묘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바위와 사람이 지은 작은 전각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었다.
‘어떻게 이 바위틈에 이런 전각을 세웠을까.’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돌아 나오는 길에 종각에 이르렀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건축미가 눈길을 붙잡았다. 협곡 속에 자리한 사찰은 크고 웅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고 아담해서 자연의 품에 조용히 기대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오늘의 디카시 한 편을 이곳에서 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셔터를 누른다고 모두 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진은 찍었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한 장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양산시청 관광과를 찾아갔다. 담당자에게 양산의 관광 안내와 추천 명소를 안내받은 뒤 다시 길을 나섰다.
다음 목적지는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임경대였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이곳에서 시를 읊었다는 임경대. 데크길을 따라 몇 걸음 내려가니 최치원과 임경대에 관한 글을 새긴 비가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서자 시야가 탁 트이며 넓은 낙동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강물은 말없이 흘렀다.
마침 한 젊은이가 여행 블로그를 만든다며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나도 몇 컷 사진을 담았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사람마다 마음속에 담아가는 장면은 다르리라.
누군가에게는 여행지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한 편의 글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한 줄의 시가 되는 것.
그것이 풍경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통도사 인근의 국장생 석표였다.
고려시대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고 땅의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세운 장생표 가운데 하나로, 현재 남아 있는 국장생 석표는 고려 선종 2년인 1085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 줄의 글자가 새겨진 이 석표는 단순한 경계표가 아니라 당시 국가와 사찰의 관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 자료이기도 하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돌.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사람은 세월을 따라 흘러가지만 돌은 그 자리에서 세월을 견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돌 앞에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홍룡폭포에서 시작해 임경대를 거쳐 국장생 석표까지. 하루 동안 양산의 풍경과 역사 속을 부지런히 걸었지만, 정작 공모전에 내놓을 만한 사진 한 장을 얻었는지는 자신이 없었다.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돌아오는 경주행 차 안에서 생각이 달라졌다.
오늘 내가 찾으러 떠난 것은 어쩌면 수상작 한 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폭포의 가느다란 물줄기에서 세월을 보았고,
임경대의 낙동강에서 삶의 흐름을 보았으며,
천 년을 견딘 석표 앞에서는 시간의 무게를 보았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어느덧 나 자신의 지난 세월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한 장을 찍으러 떠난 길이
결국 내 마음 한 장을 들여다보고 돌아오는 길이 되었다.
아직 나는 디카시를 잘 모른다.
그래서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걸어야 할 것 같다.
좋은 사진을 얻는 것보다 먼저
좋은 마음으로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늘 찍은 사진 가운데
공모전에 낼 만한 사진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홍룡폭포의 가느다란 물줄기와
천성산의 고요한 바람,
낙동강의 저녁빛,
천 년의 세월을 견딘 돌 하나는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사진은 카메라에 남지만,
풍경은 결국 사람의 마음에 남는 것이니까.
첫댓글
디카시 매력이 있습니다.
취미만 있으면 재미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단석님에게는 지나간 역사도
그 역사가 남긴 흔적도
자신이 흘려보낸 세월의 흔적도
지방 곳곳을 탐사하며, 탐구하는 마음이
세월을 함부로 보내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디카시를 마음에 담고 연마하고자
양산 홍룡폭포를 찾았군요.
휴일이면, 자주 등산도 가고
천성산 계곡과 내원사는 자주 들른 곳입니다.
한 줄 디카시를 위해 써신, 양산 홍룡사 이야기에
옛날의 기억이 출렁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양산 홍룡폭포 답사도 그저 한 곳을 다녀온 것이 아니라, 오래된 풍경 속에서 한 줄의 시심을 건져 올리고 싶었던 마음이었습니다.
천성산과 홍룡사에 깃든 콩꽃님의 옛 기억까지 함께 출렁였다니, 저 또한 참 반갑고 고맙습니다.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담고, 한 줄의 언어에 세월을 담는 디카시의 길을 아직 서툴게 걷고 있습니다.
좋은 말씀을 길잡이 삼아 천천히 연마해 보겠습니다.
옛 추억을 함께 불러내 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디지탈 영상의 시대에 발맞춰서 요즘 디카 전시회도 많이 하더군요.
단석님은 어디를 가나 공부하는 자세이군요.
사모님과 함께 뜻깊은 나들이 응원합니다.
여름 건강 잘 챙기세요.
고맙습니다.
디지털 영상의 시대에 사진 한 장에 시를 담아내는 디카시의 매력에 저도 조금씩 빠져들고 있습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전시장을 거닐며 새로운 세상을 하나 더 만났습니다.
사진 속 한 장면이 마음에 머물고, 그 마음이 다시 한 줄의 시가 되는 순간이 참 아름답더군요.
좋은 말씀 가슴에 담고, 무더운 여름 건강 잘 챙기시며 늘 행복한 나날 보내십시오.
요즈음은 핸드폰으로 사진잘찍는 분들이 워낙 많으니 디카시도 아주 즐거운 취미가 될듯합니다. 3년전 집사람과 3박4일로 경산. 경주. 포항을 보고 왔습니다. 경산을 간 이유는 통도사앞에서 대형커피숍을 하는 집사람후배 여선생과 남편인 해군대령출신인분을 만나려고 갔습니다. 통도사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설명잘듣고 저녁과 담날 아침을 같이했습니다. 나랑 10년연하인 남편분은 성격이 아주 좋아서 절 마치 큰형처럼 대접해주었지요.. 6월말에는 용산역서 그분들 작은아들 결혼식장서 다시 만났구요... 조만간 경산구경을 제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참 좋은 인연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계시니 보기 좋습니다.
양산 통도사에서의 추억도 참 정겹고, 형님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다는 말씀에서 두 분의 각별한 인연이 느껴집니다.
조만간 양산을 제대로 둘러보실 계획이라니 저도 기대가 됩니다. 양산에서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이나,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으신가요?
저도 요즘 디카시에 푹 빠져 공모전에 출품할 사진과 시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좋은 풍경을 만나면 사진 한 장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까 생각하게 되니, 여행의 즐거움도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사진을 잘 볼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다 멋진 풍경이네요.
디카시란 말이 낯설어서 가만히 생각해 보며 글을
읽고 사진을 보았습니다 .
내 마음의 사진한장을 들여다 보았다는 글귀가
제 마음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
따뜻한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제가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사진을 잘 보고 못 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진 속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 한편에 어떤 느낌이 머무느냐가 더 소중한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의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았다”는 말씀처럼, 디카시는 사진 한 장을 통해 잠시 잊고 지냈던 마음과 추억을 꺼내보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귀한 공감과 따뜻한 말씀 덕분에 저 역시 한 장의 사진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풍경은 눈에 담지만, 좋은 마음은 오래 가슴에 남는다지요.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양산 하면 통도사만 알고 있었는데
관심을 가지면 양산에도 돌아볼
아주 좋은 곳들이 많이 있군요.
저도 길 다니며 사진을 자주 찍다보니
사진에 글 붙이는 것이 재미가 있습니다.
사진에 시가 어울어지면 디카시라고
하는군요.
전 사진에 단상이나 수상 붙이는 것이
재미있어 요즘 이 카페의
'포토에세이'방에도 자주 머물곤 합니다.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이번 양산 답사를 통해 통도사만 알고 있던 양산의 새로운 매력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그 순간의 느낌을 글로 남기다 보니, 풍경 하나에도 이야기가 생기는 것 같아 요즘은 더욱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곳 많이 찾아다니며 사진과 글로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좋은 인연으로 함께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큰건 큰것대로
작은건 작은것대로
발길을 멈추고 의미를 찾아보는 걸음이 참 아름답기도 합니다.
천천히 걸으며 바라보고, 잠시 멈추어 마음에 담는 그 시간이 저에게도 참 소중합니다.
좋은 말씀 덕분에 오늘의 걸음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길 위에서 아름다운 인연으로 함께하겠습니다.
몇 해 전, 해파랑길 걷기를 하다가 눈에 들어왔던 '해파랑길 사진 공모전.'
사진이 빗어내는 예술의 뜻도 잘 모르면서 응모 했던 적 있습니다.
걸었던 길이 너무 아름답게 마음속에 남아있어서, 그 풍경 혼자 간직하기 아름다워서... 입선 될거란 기대는 없었지만 막상 뽑히지 않았을 땐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았더랬습니다.
단석님의 글을 읽으니 그 마음을 가졌던 제가 얼마나 부끄러워 지는지
어제 읽고도 댓글 달기 조차 낯간지러웠습니다.
오늘 다시 읽어봅니다.
풍경에서 지나 온 삶도 되짚어 보시고,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시고,
여행의 참 의미까지 알려주십니다.
몇 달에 한번씩 사찰 순례하는 모임에 양산 홍룡사. 꼭 한 번 가 보겠습니다.
더운날에도 아랑곳 않으시고 의미 있는 하루를 채워가시는 모습에 감동 하며 오랜만에 댓글 드림도 송구한 마음 전합니다.
귀한 마음으로 다시 읽어주시고, 이토록 따뜻한 말씀까지 남겨주시니 제가 오히려 송구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사진 한 장에 담긴 풍경이 때로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하고, 한 걸음의 길이 역사와 사람을 생각하게 하듯, 우리가 걷는 길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해파랑길에서 마음에 담아 두셨던 그 아름다운 풍경도 이미 충분히 귀한 작품이 아니었을까요.
공모전의 결과보다 그 길을 걸으며 느꼈던 마음과 추억이 오래 남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산 홍룡사도 기회가 되시면 꼭 한번 다녀오십시오.
홍룡폭포의 물소리와 천년의 세월을 품은 바위들이 조용히 반겨줄 것입니다.
더운 날씨에도 함께 마음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의 댓글이라니요. 이렇게 깊은 마음으로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참 반갑고 고맙습니다.
우리의 걸음이 조금 느릴지라도, 남은 길에서 아름다운 풍경 하나, 따뜻한 인연 하나씩 마음에 담으며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한 걸음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폭포 물줄기에서 세월을, 임경대 낙동강에서 삶의 흐름을, 천년을 견딘 석표 앞에서 시간의 무게를, 풍경 속에서 지난 세월까지 바라보시는 단석님의 혜안이 매우 놀랍습니다. ^^*
저도 처음에는 그저 풍경을 담으려 떠난 길이었는데, 돌아보니 물줄기에도 세월이 흐르고 강물에도 삶의 시간이 흐르고 있더군요.
천년을 견딘 석표 앞에서는 지나온 세월을 잠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풍경이 깊어지는 만큼 제 마음도 조금씩 깊어지는 모양입니다.
따뜻한 공감의 말씀, 오래 마음에 담겠습니다.
사진 한 장을 찾아 떠난 길이
결국 마음 한 장을 들여다보는 길이 되었다는 말씀이
참 좋게 다가옵니다.
홍룡폭포의 가느다란 물줄기에서 세월을 보고,
임경대의 낙동강에서 삶의 흐름을 보고,
천 년을 견딘 석표 앞에서 시간의 무게를 느끼신 대목이
글의 깊이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좋은 사진보다 먼저
좋은 마음으로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씀도
오래 남습니다.
좋은 기행 수필 잘 읽었습니다.
좋은 말씀으로 글을 깊이 있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진 한 장을 찾아 떠난 길이 어느새 제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듯, 제 글 속 풍경까지 따뜻하게 헤아려 주시니 더욱 뜻깊습니다.
홍룡폭포의 물줄기와 임경대의 강물, 천년의 석표를 바라보며 느꼈던 마음을 이렇게 곱게 짚어주시니 글쓴 보람이 큽니다.
앞으로도 좋은 풍경을 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깃든 시간과 마음까지 바라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