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전조 - 윌리엄 브레이크
정영희역 / 미주현대불교 8월호 07년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 - -
Man was made for Joy & Woe
And when this we rightly know
Thro the World we safely go
Under every grief & pine
Runs a joy with silken twine
- - -
He who replies to words of Doubt
Doth put the Light of Knowledge out
- - -
If the Sun & Moon should doubt
They'd immediately Go out
- - -
God Appears & God is Light
To those poor Souls who dwell in Night
But does a Human Form Display
To those who Dwell in Realms of day
순수의 전조(前兆) Auguries of Innocence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하늘을 보려면
네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에 영원을 담아라.
- - -
인간은 기쁨과 슬픔을 위해 창조되었으니
이를 제대로 깨달을 때
우린 세상을 무사히 살아내네
모든 비애와 시름 아래엔 언제나
기쁨의 두 겹 비단실이 깔려있네.
- - -
의심의 말에 답하는 이는
지식의 불을 꺼버리는 것
- - -
해와 달이 의심을 품으면
즉시 그 빛을 잃으리
- - -
밤의 영역에 사는 가련한 영혼들에게
신은 빛으로 나타나시나
빛의 영역에 사는 사람들에겐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윌리엄 블레이크가 예언시로써 구축한 자신의 신화의 출발점은 초월적 신이 아닌 보편적 인간(universal man)으로서 스스로 신이며 동시에 우주를 포함하는 존재이다.
그는 기독교의 원죄관을 부정하고 자신의 신비적 사상체계를 신화로 표현했다. 블레이크는 신과 인간을 서로 다른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신이 축소, 분열된 것이 인간이고, 인간이 확대완성된 것이 신이라고 보았다. 그가 보는 인간의 타락은 기독교에서 말하듯 신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최초의 인간으로부터의 이탈이다. 즉 모든 것을 아우르던 보편적 인간이 여러 부분으로 나눠지는 것이 타락이고, 원래의 통합 상태로 돌아가면 신으로 완성된다.
사물과 사물의 진수를 볼 수 있는 능력 (fourfold vision)이 분열․축소되기 전의, 원초의 통합된 인간에게 있었다. 인간이 타락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부정(否定)적인 마음 (negation)때문이다. 부정적인 마음은 사랑 대신 미움, 포용 대신 배제, 능동성 대신 수동성을 가져오고 사물을 양극화시킨다. 부정하는 마음을 극복하고 활동력과 역동성을 끌어내면 대립되는 것들이 서로 힘차게 활동할 수 있다. 이는 불광의 마하반야바라밀 사상과 너무나 닮아있다.
블레이크는 인간의 구원이 가장 잘 “보는” 능력인 상상력의 회복에 있다고 보았다. 불교에서도 관觀이 중시된다. 우리안의 불성을 보면 바로 우리가 부처가 되듯이 모든 인간은 사물의 진수를 보는 통합된 인간이 될 수 있다. 불성佛性은 모래알에도 들꽃에도 어디에나 있다. 그는 기쁨과 슬픔, 관념과 물질 같은 상반되는 두 특질이 대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선상에 연결되어있으며, 하나의 성질은 다른 성질의 이어짐이라 본다.
그에 의하면 상상력이 충만하여 사물을 똑바로 “보는” 사람에게는 자연(물질)은 관념(신)의 그림자가 아니라 자연이 곧 상상력이다. 블레이크처럼 불교는 세상을 신의 표현이 아니라 실체 자체로 본다. 대승 불교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텅 비었고 텅 빔이 곧 세상만물임을 말하는 것과 같다.(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결국 그의 시는 기독교의 신이 아닌 자유스러운 창조력과 하나가 되는 정신수양이라 할 수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 영국낭만주의 시인의 선구자로서 대표적 작품으로는 『순수의 노래』(Songs of Innocence)(1789), 『경험의 노래』(Songs of Experience)(1794) 가 있다. 잃어버린 인간성의 회복을 생애의 목표로 삼고 자신을 신비와 상상의 시계에 맡긴 신비주의적 예언가로서 불안과 공포의 비극 속에 방황하는 인간정신에 새로운 방향을 예시했다.
소외되고 교육받지 못한 그는 생애를 대부분 난해하나 섬광이 번득이는 예언적 작품을 썼다. 그의 직업은 조판공이었으며 그가 쓴 작품은 생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의 시작품들과 예언서들을 손수 동판에 새겨 넣고 장식용 도안까지 붙여 넣어 판화시집으로 출판했다. 그는 신비사상과 난해한 상징성으로써 당대의 제도화된 기독교회를 비판했으나 타고난 종교가로서 교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신을 체험했고, 어렸을 때부터 환상을 보았으며, 예언시로써 자신의 신화를 창조했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