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逆轉-1st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시간이 오고 있다.
필자 이명찬은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이다. 고려대 학사와 일본 게이오대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던 1990년대에 필자는 일본의 유학생이었다. 일본은 선진 경제 대국다운 면모가 있어 한국과 많은 차이가 있어 놀라거나 충격받는 일이 자주 있었다. 도코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에는 삼성이나 엘지 등 한국 전자제품은 소니, 파나소닉, 산요 등 전자제품에 밀려 한쪽에 초라한 모습으로 진열되어 있을 때다. 그런데 20년 뒤인 2019년에는 잡지, 미디어, TV 등에 한국에 관한 기사,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일본인을 특정한 표현으로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다”란 말이 있다. 이 특성은 힘센 칼이 정의였던 사무라이 사회의 유산일 것이다. 우익 역사학자 ‘구라 야마 이쓰루’는 “다른 누구에게 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인에게는 지지 않겠다.”라는 우익들의 정념이 혐한 책 붐의 원동력이라고 한다. 패전 이래 일본의 보수는 미국, 소련, 중국에 대한 콤플렉스로 괴로워했다.
“일본은 언제나 옳고 우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다른 나라를 깎아내리고, 역사를 부정하는 ‘극우 민족주의자와 역사 수정주의자’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대립이다. 작금은 일본은 역사문제에 쓰레기가 넘치고 있다. 아베 정치는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일본 정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가라앉으려고 하는 배(일본 사회)’ 안에서의 자리다툼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일본 민도가 저열화됐다. 그런데도 서점에서는 ‘일본이 최고다.’라는 책뿐이다. 이런 흐름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극우 민족주의자와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일본은 언제나 옳고 우월하다는 믿음“이나 ”숭고한 일본인의 사관”을 깨트리지 않는 한, 한일 관계는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일본은 우리가 ‘갑’이 되는 순간 공손해지고 갑의 의사를 받아들일 것이다. 패전 이후 미일, 중·일 관계가 이를 증명한다.
코로나에서 드러난 섬나라의 기질, 일본인의 기질은 일반적으로 동조적이고 상호 감시적이며, ‘윗사람’ 의향에 약해 순종적이기 십상인 일본인의 민족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은 다른 나라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은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감염자 집에 돌을 던지거나 낙서하고, 경제 사정이 부득이 영업할 수밖에 없는 소매점이나 가게를 ‘위쪽’에 고발하는 사태가 잇따랐다.
”우리는 전쟁해, 진 것이 아니다, 전쟁은 다만 끝난 것이다. “패전 사실을 숨기기 위해 국민을 속이는 군국주의자들은 패전 사실을 속여왔기에 패전을 가져온 체제가 지속됐다. 2010년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의 붕괴는 오키나와현의 미 해병대 항공기지인 ‘후텐마’ 기지를 국외로 옮기려다 ‘하토야마’ 정권이 무너졌다. 당시 일본 국민은 ”우리나라 수상이 미국 압력으로 해임당했다.”라는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어느 정권이라도 미국의 의향에서 벗어나는 ‘정권 교체’는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현실이 드러난 실상이었으나, 객관적 사실은 인정하는 대신, 정치가의 인격 운운하며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이다. 또 하나는 일본 동일본지진으로 인한 후쿠야마 원전 사고다. 이 중대한 사고에 도쿄전력의 대응은 한심했다. 국가는 SPEEDI (긴급 시 신속 방사능 영향 측정 시스템) 데이터를 국민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미군에 흘리는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것에 기본적 관심이 없음이 드러났다.
패전이 아니라 종전이라는 역사의식이 고착되었다. 패전이 아니면 아무도 책임을 추궁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국민 310만 포함, 아시아인 2,000만 명이 넘게 죽었다. 미국과 거래를 하며, 천황제를 남기며 전쟁 최고 책임자였던 천황에 대한 책임 추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민주 정부’가 아니다. 국민주권은 명분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후 민주주의와 평화를 소중히 해온 시대“의 허구성이 폭로되고 사회는 ‘본심 모드’로 들어갔다. ‘평화와 번영’에 가려져 온 일본 사회의 실체가 표면으로 드러났다.
전쟁 전 한반도를 포함, 식민지 출신자들은 차별해 왔다. 이제는 동등한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데, 그들은 이를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일본 패전의 결과로 여긴다. 그러므로 혐한을 외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극단적 방식으로 패전을 부인한다. 재일교포가 자신들과 동등하게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일본 패전의 ‘산 증거’이므로 힘을 다해 부정하려고 한다. “우리는 패한 적 없다. 그러니까 그놈들을 차별한다. 우리는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 이것이 혐오 발언의 핵심 메시지와 다름없다.
아베 정권의 본질은 사유화이다. 모리. 카케. 벚꽃 사건은 시시한 사건이지만 사유화란 본질이 드러났기에 중요한 의미다. 아베의 기저에 깔린 것은, 세습으로 양도받은 권력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지한다는 원칙이다. 아베의 집권 7년 8개월의 평가는 일본인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아베 정권을 떠받쳐 온 것은 미화된 허위의식이다. 세수 확대를 위해 소비세를 두 번이나 올리면서 유지한 정권은 ‘아베’ 뿐이다. 여론조사는 ‘대안이 없어서’이다.
민주주의 ABC도 모르는 수준 낮은 일본국민 민도 예는 칼럼니스트 ‘오다지마 다카시’가 재무대신 ‘아소 다로’를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러자 국민의 댓글이 ”그런 일은 자신이 재무대신이 되고 나서 말하라. “라는 것이 주였다. 이런 논리가 10년 정도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다. 유튜버가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비판하면 ”팔로워 수가 같은 정도 되고 나서 말해“라고, 비판하거나 부호의 언동을 비판하면 ”그 만큼 부자가 되고 나서 말해“라고, 반박한다. 이 이상한 논법이 상식처럼 굳어지고 있다. 자기보다 ‘상위’ 인간을 비판하는 동기는 질투이며 선망이라고, 그렇게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인간의 삐뚤어진 마음이라고, 보기 흉하니까 멈추라고 질타하는 것이다.
인간은 파이가 커지고 있을 때는 분배 비율을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 파이가 전보다 늘어나면 만족한다. 하지만 일단 파이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태도가 변한다. 옆 사람 몫이 신경 쓰인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분배되는지 기준을 공개하라, 등급 설정의 근거를 대라는 등, 주장하기 시작한다. 시끄러워지는 것은 모두‘빈티’, ‘인색함’의 징후다. ‘내리막길에 들어선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본인이 ‘열등감’을 느낄 만큼 세진 한국의 혐한과 한일 갈등의 근본 원인을 이러한 열등감이다.
최근 수년간 재일 한국인에 대한 배외주의(외국 사람이나 외국 문화 물건 사상 따위를 배척하는 주의) 공격이 늘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대일본제국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너희는 예전 식민지 출신이며, 대일본제국에서 보면 2등 시민“이라는 것이다. 인권 개념 자체가 명확하지 않던 시절이어서 그러했지만, ”명백히 열등한 사람들로 간주하였으며, 그렇게 취급당했다. “라는 것이다. 대부분 일본인은 혐한 시위 당사자들은 국민을 대표해서 하는 국민 운동이라고 역설한다. 세대교체도 우경화의 다른 이유이다. 젊은 세대는 과거 식민지 지배나 침략전쟁에 당사자 의식이 없어, 한국·중국의 비난이 거듭되면 반발심이 생기기 쉽다. 역사에 무관심하고 문제의 본질을 잘 모르는 젊은이들은 정부의 말에 영향을 받아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예전의 한국은 일본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은 주장하고 싶은 말은 강하게 주장한다. 반면 일본의 처지에서는 한국의 반공 방파제 역할이 중요하기에 한국에 관대하게 대응했다. 지금은 한일 격차가 줄어들고, 남북 격차가 워낙 커서 더는 반공의 방파제로 여기지 않는다. 일본 내에서도 ”한국에 언제나 양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일본도 한국에 정정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 “라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데, 일본도 정정당당하게 교과서에, 다케시마에 관한 내용을 넣어서 가르쳐야 한다.” 라는 견해가 대표적인 예라 필자는 주장한다.
2024.01.31
한일 역전-1st
이명찬 지음
서울셀랙션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