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코르톰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방에 관세음보살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앙코르지역에서 가장 이상적인 장엄한 사원이다.
이 사원의 특징은 사원이 200여 개의 얼굴로 구성되어 54개의 탑들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탑과 얼굴이 손상되어 있지만, 아직도 많은 감동을 주는 사원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3번째 회랑과 2번째 회랑의 외벽의 총길이 1,200m의 부조물이 있는데, 당시 생활상과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해주고 있어,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앙코르 주민들의 생활상과 군대출동모습, 종교행사 및 의복의 형태 등을 엿볼 수 있다.
바푸온 사원은 앙코르톰안에 있지만, 11세기 중엽 앙코르 톰 건설 이전에 만들어진 힌두교 사원이다.
바이욘사원의 건립되기 전까지는 도시의 정 중앙에 자리잡고 있던 중요한 사원이였으며, 황금의 링가가 모셔져 있었고, 노예들의 반란을 진압한 장군이 이곳에 와서 왕에게 충성 서약을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동탑문에서 중앙 사당으로 이어지는 참배도로는 높이가 2m 에 달하는 원주가 지탱하고 있다 .
신화에 나오는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무지개 다리를 재현한 것이며, 그 후로 하늘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법으로 앙코르왓트의 참배도로나 앙코르 톰의 해자에 걸쳐있는 다리 등에 계승되어 발전 되었다.
지상으로부터 43m높이에 있는 이 신성한 사원은 사암으로 된 회랑이 집중화 하는 첫 번째 모델이 되었으며, 현재 프랑스에서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거대한 퍼즐놀이 라는 표현대로 오랜 시간을 거쳐 작업 중에 있다
4. 코끼리 테라스,레퍼왕 테라스
12세기 후반 ,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조성된 왕궁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방어벽을 세웠으며, 이와 같은 시기에 광장과 접한 동쪽 정면에는 열병식할 때 쓰이는 대규모 테라스도 신설 하였다.
벽면에 코끼리를 새긴 부조가 연달아 만들어 졌으며, 곳곳에는 머리가 3개 달린 코끼리 신인 에라완이 코로 연꽃을 들어올리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어 "코끼리테라스"라고 불린다.
이 코끼리 연단의 용도는 각종 축제나 군사 행렬의 사열 장으로 이용되었으며, 테라스의 뒷면으로는 왕궁이 있었고, 정면으로는 12개의 탑이 도열해 있는 광장이 펼쳐진다. 왕이 등장하여 위치하는 곳은 코끼리들의 조각이 아닌 가루다와 사자상들이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고, 승리의 문과 왕의 출입문이 일직선상으로 형성되어 있다.
코끼리 테라스의 북쪽 옆에는 레퍼왕 테라스가 있으며, 위에 사원을 세웠는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서 벽을 한겹 더 쌓았다고 한다.
레퍼왕 테라스는 다른 이름으로 문둥왕 테라스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테라스 위에서 문둥병으로 죽은 야소바르만 1세의 동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5. 타프놈 사원
영화 "툼레이더" 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는 이 사원은 조상 브라만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사원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프레아칸을 지었던 자야바르만7세가 ,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1186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내부는 폐허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일부러 복구를 하지 않았으나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어, 조금씩 보수공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타프놈 사원은 다른 사원과는 달리 수도원의 기능이 강화되었던 사원으로 많은 수도승과 압살라가 살았다고 한다. 현재 그들이 살았던 가옥은 목조 건물로 지었기 때문에 남아 있지는 않다
앙코르 왓트
12세기 초에 수리아바르만 2세가 건립한 앙코르 왓트는 "도시의 사원 "이란 뜻이다.
앙코르 왓트는 여러 앙코르 유적중에 하나에 불과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로 꼽히고 있다. 그 명성에 맞는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내부에 조각되어 있는 부조물들은 앙코르 예술품 중 최고의 예술성을 인정 받고 있다.
종교적인 건축물로는 가장 큰 규모인 81㏊ 의 넓이로, 수리아 바르만 2세가 건립한 비슈누신과 일체화한 자신의 묘로서 건립하였다.
중앙에 솟아 있는 탑은 수미산을 나타내며, 주위의 5개의 탑은 메루의 다섯 봉우리를 나타낸다. 앙코르 유적지의 사원들은 대부분 동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앙코르왓트 만큼은 유일하게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초기 학자들은 그래서 앙코르왓트 사원을 죽음의 사원 이라고 했다고 한다 .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며 과학적으로 하나 둘씩 앙코르왓트의 비밀이 밝혀졌고, 이 사원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반영한 사원임을 알게 되었다.
천문대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내었고, 우주의 변화를 표현한 사원임을 알게 되었다. 힌두교 사원인 앙코르왓트 에는 신화나 민화를 모티브로 한 부조가 새겨져 있으며, 인도의 고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힌두교의 창세 신화인 유해교반 등으로 비슈누의 얼굴이 수리아바르만 2세와 비슷하게 조각 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50m 의 벽전체를 사용하여 그린 유해교반 이며, 벽면의 중앙에 커다란 거북이가 만다라 상을 등에지고 비슈누가 그 위에 올라서 있는 조각이다.
이 조각의 양옆 머리쪽으로는 88명의 신이 꼬리 쪽으로는 92명의 아수라가 뱀을 안고, 1,000 년 동안 줄다리기를 했다고 하는 전설을 표현해 놓았다. 이 교반에 의해 바다는 뭍이되고, 선녀 압살라는 신의 아내 락슈미가 생겨 났으며, 불사의 명약 암리타도 얻게 되었다고 한다. 1860년 프랑스의 동식물학자 앙리 무어(HENRI MOUHOT)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앙코르 왓트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서, 또한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적인 유산의 하나로 인류의 값진 문화재이다.
1999년 트레블러지가 선정한 여행자들이 살아 생전 가봐야 할 50군데 중 유적부분에도 앙코르왓트는 기재되었다. 그 만큼 뛰어난 유적지인 것이다.
1Km면적 위에 사암으로 건설된 앙코르 왓트는 그 주변을 길이 1.3-1.5Km의 해자로 둘러쳐져 있다. 또한 중앙입구에서 사원 내부까지 355m의 긴 보도가 중앙 탑까지 세 겹으로 둘러쌓인 회랑은 해자와 더불어 앙코르왓트는 사원이라기보다는 동양의 왕궁을 연상케 한다. 긴 보도와 세 개의 회랑을 통과하면 4개의 탑으로 둘러싸여 있는 높이 65m의 중앙탑에 도착한다
세계적인 석조 건물인 앙코르 왓트는 그 웅대함이나 건축물 자체에서 풍기는 신비함 못지 않게 세부적 조각의 아름다움이 전체를 엮어 나갔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특히 세 번째 회랑은 이 사원의 주신인 비슈누 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각종 신화와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교훈적인 사항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는 데 그 가치가 있다 할 것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말과 역동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전사들, 드넓은 앙코르제국을 이끄는 코끼리 위의 수리야 바르만 2세, 전체적 균형을 가지면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필사의 노동을 하는 신과 악마들, 이러한 부조물의 정교함과 현란함 그리고 조화된 균형이 당시 화려했던 앙코르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엄청난 위용과 섬세함, 그리고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많은 신비함이 앙코르왓트를 더욱더 매료시키고 있다.
제위기간 |
이름 |
제위기간 |
이름 |
802 ∼ 850 |
자야바르만 2세 |
1002 ∼ 1049 |
수르야바르만 1세 |
850 ∼ 877 |
자야바르만 3세 |
1049 ∼ 1065 |
우다야딧야바르만 2세 |
877 ∼ 889 |
인드라바르만 1세 |
1065 ∼ 1090 |
하르샤바르만 3세 |
889 ~ 900 |
야소바르만 1세 |
1090 ∼ 1108 |
자야바르만 6세 |
900 ∼ |
하르샤바르만1세 |
1108 ∼ 1112 |
다란인드라바르만 1세 |
∼ 928 |
이사나바르만 2세 |
1112 ∼ 1152 |
수르야바르만 2세 |
928 ∼ 942 |
자야바르만 4세 |
1152 ∼ 1181 |
다란인드라바르만 2세 |
942 ∼ 944 |
하르샤브라만 2세 |
1181 ∼ 1201 |
자야바르만 7세 |
944 ∼ 968 |
라젠드라바르만 |
1201 ∼ 1243 |
인드라바르만 2세 |
968 ∼ 1001 |
자야바르만 5세 |
1243 ∼ 1295 |
자야바르만 8세 |
1001 ∼ 1002 |
우다야딧야바르만 1세 |
|
|
캄보디아에서 반드시 보아야할 공연이 있다면 바로 압사라 민속춤일 것이다. 압사라(Apsara)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님프에 해당하며, 탄생은 비너스의 그것과 유사하다.
천상의 선녀이자 무희였으며,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사이렌(Siren)이 되기도 한다.
압사라쇼는 전통 악기와 춤과 율동으로만 공연이 되며, 여기에 노래와 같은 요소는 첨가되지 않는다. 성격상 오폐라보다는 무극에 가깝다.
공연장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4~5장의 공연으로 나눠진다.
첫번째 압사라들의 서장에서는 압사라들이 나와서 관객에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둘째 장부터는 각 지방의 민속 댄스를 선보인다. 댄스의 내용은 주로 주변 환경과 청춘남녀의 사랑이다.
각 장마다 지방 특유의 민속춤을 선보이며, 각 지방의 전통 의상과 악기를 선보이며, 의상과 악기가 지방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
중간장에서는 인어공주와 원숭이신 하누만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압사라의 춤을 비롯하여, 공작춤 등으로 마무리가 된다. 주로 호텔 디너쇼로 공연이 되며, 캄보디아 전통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씨엠립에서 남쪽으로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동양 최대 크기의 호수이며, 우기시에는 캄보디아 전체 국토 면적의 15%를 차지한다.
호수에는 수상족들이 생계를 꾸려가고 있으며, 강위에서의 그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볼 수 있다.
톤레삽 호수에서는 60여종의 풍부한 어종들이 있으며, 캄보디아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고 있는 품목중에 하나가 이곳에서 포획한 어류로 만든 액젓이다.
호수의 면적은 동서로는 40 Km, 남북으로는 360 Km 이다. 톤레삽 호수는 캄보디아어로 "어머니의 젖줄" 이라는 뜻이며, 캄보디아 인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호수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동쪽 메본 사원은 야소다라 타타카라고 불리었던 저수지 한가운데 있던 섬 위에 지어진 사원이다.
사원의 기초와 각층은 홍토로, 조각이 필요한 창들과 문틀은 사암으로, 그리고 우뚝 솟은 다섯 개의 탑은 초기 자재이던 구운 벽돌로 되어 있다.
거칠게 다루어지고, 구멍이 나있는 벽돌 탑의 벽면을 통해 스투코의 사용도 알 수 있다. 앙코르 건축물에 쓰인 각종 재료들을 볼 수있는 사원이면서도, 앙코르 초기 건축물의 웅장함도 볼 수 있는 사원이다.
앙코르시대에 만들어졌던 저수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저수지이다. 2km x 8km의 이 대형 저수지는 당시 강력했던 왕권의 상징으로도 표현되며, 오늘날까지 이 저수지는 관계 수로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매주 휴일이 되면 많은 캄보디아인들이 수영을 즐기며 휴식을 갖는 장소로도 이용되며, 물을 좋아하는 현지인들의 유원지 역할도 하고 있다.
오늘날 프놈펜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4개의 팔을 가진 비슈누의 와상이 발견된 사원 이기도 하다.
< 관광지 정보 Ⅱ : 베트남 북부>
1009년 리왕조의 수도가 된 이후로부터 하노이는 발전 하기 시작했으며, 그 세월은 천년을 이어갔다. 19세기 프랑스 통치 시대동안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수도로, 제2차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때에는 북베트남의 수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고 난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평균기온이 하계, 동계 각각 28°와 16°로 기온차가 크다.
하노이시의 번화가는 호안키엠호수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데 그 남쪽 일대는 호텔과 레스토랑, 여행사, 항공사, 대사관 등이 모여 있고 프랑스 통치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콜로니얼 양식의 서양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호수 북쪽은 하노이의 구 시가지로 이 도시가 세워진 이래 산업의 중심지로서 발전했던 곳이며, 베트남 문학작품에 수없이 등장하는 [하노이 36거리]이기도 하다.
호안키엠 호수
하노이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이 조그만 호수는 신비로운 칼의 호수 로 유명한 곳이다.
호수 주위에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늘어져 있어 하노이의 낭만을 더해주는곳 이기도 하다.
북쪽으로는 시장이 형성 돼 있으며 남쪽으로는 프랑스 식민 시절에 지어졌던 아름다운 건물들이 들어 찬 외교 공관들의 거리를 이룬다.
이 호수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전설을 지니고 있어 더욱 유명하다.
레로이(LE LOI)라는 어부가 명나라 침략 시 명나라군을 물리쳐주기를 간절히 빌면서 고기를
잡던 중 신비로운 칼이 올라왔다 한다.
이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지지를 얻어 명나라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이에 레로이는 왕이 되었고 그 호수에서 제례를 올리던 중 호수 속에서 황금거북이 올라와
그 신비로운 칼을 다시 가지고 사라져 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호치민묘 앞에 있는 광장으로 3만5천 ha 의 넓이이다.
호치민이 처음으로 대중앞에 모습을 드러낸 곳이며 ,1945년 9월2일에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후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독립 선언문을 낭독한 곳이다.
1070년 리왕조때 공자를 모시기 위해 지은 역사적인 건물로 우리나라 성균관과 같은 베트남 최초의 국립대학이다. 봉건왕조시대 때 3년마다 실시되는 시험을 통해 재능있는 인재들을 선발해 교육시키는 장소로 이 곳에는 82개의 비석이 보관 되어 있는데 이 비석들에는 1484년부터 1780년까지 82회 실시된 국자감시에 합격한 박사1.306명의 성명과 나이 출생지가 기록되어 있다.
서남아시아지역에서 이런 형태의 문화유적은 이곳이 유일하다.
하롱배이
베트남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하롱베이의 면적은 약 1,600㎢ 이다.
비취색의 고요한 수면에 크고 작은 3천여개 이상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환상적인 이곳은 1994년 베트남의 두 번째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하롱베이의 명칭은 한자 "하룡" 으로 "용이 내려온 자리" 라는 뜻이다.
들리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외적의 침입으로 고통 받을 때 용 부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적에게 여의주를 쏴서 침략을 막았으며, 그 여의주가 크고 작은 기암괴석으로 변해 그 뒤에도 적의 침입을 막아 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전통적인 목선과 해변이 아름다운 곳이며 세계 8대 절경 중에 하나인 이곳은 영화" 007시리즈" 및 "인도차이나" 등의 영화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수상인형극
수상인형극은 11세기에 베트남 농어촌에서 발생한 민속놀이다. 예전에 이 지역의 농부들은 주변자연 환경에서 찾을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인형들을 만들었으나, 요즘은 현대식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수상인형극은 물이 고인 무대가 있는 곳에서 극이 행하여지지만 옛날에는 수확을 끝낸 후의 연못과 논둑을 주무대로 사용했었다고 한다.
인형을 조정하는 배우들은 무대 뒤에서 긴대나무 막대와 수면 아래 숨겨진 끈으로 인형을 조종한다.
인형의 무개는 가벼운것에서부터 15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거운 것 까지 있지만 인형이 마치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묘사해 베트남 사람들의 손재주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무대 옆에서는 베트남 전통창과 악기를 물위의 인형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연주한다. 이러한 소극의 주제는 시골생활이며, 베트남 민요가 짙게 묻어난다. 소극에서는 시골의 일상생활과 조부모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베트남의 민화들을 그려낸다. 작물을 수확하는 얘기들, 고기를 잡는 얘기들, 온갖 축제에 대한 얘기들이 소극의 하이라이트라고 할수 있다.
첫댓글 비록 우리 대한민국보다는 후진국이지만 세계문화유산만큼은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을 나라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