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시대
方 旻
나는 남자다. 사람들은 네가 남자인건 다 아는데, 그걸 굳이 밝히려는 것은 또 무엇이냐? 남자이면서 남자라는 걸 새삼스레 밝히는 건 또 뭐냐? 남자라는 것에 대해 말하려다 보니 당연한 것을 반복하며 얘기를 시작하게 되었으나 특히 여성분들의 양해를 바란다. 혹시 남자들이 이런 내 태도에 못마땅해할 수도 있겠다. 분명 이건 남자들을 대표해서 나서는 것이 아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니 그냥 모른체 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못이기는 체 귀를 기울여보거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으니, 여자 아니면 남자인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데도 굳이 이를 글의 서두에 들어내는 것은 왜일까? 뭔가 세상을 놀랠 얘기를 하려는 것인가. 아니다. 약간 다른 생각을 피력하는 데, 그에 관해서 한 자락을 깔면서 시작하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일로 혹시 사회적 지탄을 받을까 염려해서다. 나는 특별히 마초적이지도 않고, 초식남은 더욱 아니기에 그렇다. 그러면 게이인가, 그건 떠올리기조차 남새스러운 일이니 결단코 아니다.
남자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얼 뜻하는가? 세상의 반쪽이니 그에 해당하는 남자이든 그 상대인 여자이든 이에 대한 시원하고 확실한 답을 갖고 있는가라고 그대에게 묻는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 수 있는가? 아마도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또는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 뭐 그런 시시한 것을 가지고 귀찮게 하느냐고 핀잔을 할 수도 있으리라. 하여간 나에겐 궁금한 사실이어 한번 말을 꺼내본 것이니 그리 과민 반응은 안 하셔도 좋겠다.
갈수록 남자로 살기는 어렵습니다. 어렵기에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이렇게 여러 포즈를 취해봅니다. 그 심정을 이해해주기 바랄 뿐입니다. 특히 여자 여러분! 이 어려운 시대에 남자로 살면서 하소연을 한 번 해보려는 것이니 따스한 가슴으로 품어주시길 바랍니다. 이러면 아니 이 남자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라고 되물을 수 있겠지요. 너그러운 모성의 심정으로 제 얘기에 한 번만 시간을 허여해주시길 앙망하면서 더 진행해보겠습니다.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 명칭처럼, 지금은 여성 시대이다. 이처럼 공인된 여성 시대에 살기에 남성은 괴롭다. 괴롭기보다 힘이 든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직한 표현이다. 아주 더 진솔하게 말하자면 힘들어 죽을 지경에까지 몰렸다면 엄살이 좀 심한가. 몰라 그렇지 여성들의 시대라고 말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정말 그건 엄살이네요,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 여성 시대는 가정과 사회를 넘어섰고, 급기야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가 여성 시대가 되었거나 그 방향으로 진행 중임은 세상 모두 함께 인정하는 추세가 아닌가.
집안에서 남자는 더 이상 대접받는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구박데기 머슴 취급 받기 일쑤다. 힘들고 궂은일을 전담하거나 그리하도록 유무언의 강요를 받는다. 이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집안이 평온할 수 없다. 집안의 근력이 필요한 일에서부터 외부의 일까지 일거리가 많다. 직장일로 피곤한 몸을 제대로 쉴 수 없다. 조상 남자들보다 일은 많아졌지만 그 대우는 반비례하여 급행열차로 내달리는 중이다. 그 변화의 폭은 남녀 공동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가 더 심한데 반해 그 보응은 축소지향의 길로 매진하는 형국이다.
국가 사회적으로도 남자의 일은 더욱 늘어나고 고달프다. 세상의 이글대는 정글에서 여전히 최고의 사냥감을 잡아와야 한다. 이게 부족하면 가정도 이룰 수 없이 외면 받는다. 사냥터에 여성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공정하고 평등한 규칙의 헌장으로 더욱 힘들다. 국가의 안보를 위한 의무는 여전하고 그에 대한 보상도 예전만 못하다. 투여 시간과 생명을 담보한 노력의 수고에 대해 합당한 프리미엄을 요구했다간 거센 반발로 저항의 물살을 피하기 어렵다. 후세 출산의 개인적 문제까지 끌어오며 압박하니 견뎌낼 재간이 없다.
일부 못된 남자들 때문에 거리에 서면 잠재적 성범죄자로 여자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도처에서 받는다. 다중의 자리가 아니라 인적이 뜸한 골목길에서도 걷다가 둘만 마주치는 상황에서 그러하고, 무심코 눈을 마주치는 여자들을 볼 때마다 그런 낌새를 느낀다. 나는 후줄근한 복식에 추레한데다 수염도 길렀지, 이건 영락없다. 늘 신사복을 단정하게 입고 말끔하게 면도하고 다녀야하나? 이리 상시적으로 범죄인 취급을 받는 심정을 여성분들은 얼마나 공감할까? 그러한 위험에 자주 노출되어 있는 불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럴까,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남성시대는 아니라도 남자의 수고가 정당하게 인정받는 사회가 그립다. 아니 온통 여성시대인 세상에서 남자로 살기 싫다. 남자 파업을 하거나 시위라도 해볼까? 앞으로 살면서 혹 견뎌내지 못하면 현대의 첨단 의료 기술을 빌려 성전환을 해야 하나? 혹 젊은 나이라면 모르지만 환갑이 다 된 이제 와서 성전환을 할 수도 없고,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참으로 답답하고 모진 세상이다. 조상 남자들은 이런 고민을 안 하고 잘도 살다 갔는데, 남성 우대의 혜택은 조상들이 보시곤, 세상 변화로 부채만 무능한 후손들에게 떠넘기시고도 저승에서 안녕들 하신지 외쳐보고 싶다.
집안에서도 사회에서도 남녀의 고유한 성역할이 많이 혼재 되어 간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남자의 병역 의무와 여성의 출산을 제외하고는 직업이나 능력에서 남녀의 구별이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출생할 때 남녀로 구별되어 존재하니 그걸 신에게 따지거나 반기(反旗)를 휘두를 수는 없는 일이다. 할 수 없다고 푸념만 늘어놓다가는 꼴만 우스워지겠으니 나는 남자임을 사랑하면서 그냥 살기로 했다. 그냥 내 의사에 상관없이 남자로 태어났으니, 선택의 기회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 불만이 없는 바는 아니나, 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이걸 패배주의적인 태도나 비관적 자세로 남자인 처지를 불우하게 여기기보다 적극적인 심경의 변화를 꾀하려 한다. 나의 이 숙명적 삶의 태도에 관해 사람들이여 돌을 던지거나 용서해주길 바란다. 오! 남자여, 너의 그 처절한 운명을 사랑할지어다.
첫댓글 남성으로 태어났거나 여성으로 태어났거나, 그 "처절한 운명을 사랑할지어다."
여자로 사는것도 쉽지 않네요. ㅋㅋ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