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신고 있는 슬리퍼는 재작년에 남편이 "이거 닳도록 열심히 해라." 하며 월평동 "10000냥 하우스"에서 사준 거지요.
다른 색은 하나도 없이 오직 새까만 통굽 아줌마표 슬리퍼입니다.
얼마나 좋은데요.
우선 발이 편합니다. 평발인 제가 하루 5시간씩 서있거나 돌아댕겨도, 발이 뻐근하지도 않구요,
싸구려라 가끔 아무데다 벗어놓고, 외출 다녀와도 아무도 집어가지를 않습니다.
까만 색이라 3년간 한번도 안 닦아도 표도 안 나구요,
무엇보다도 6.5 cm 의 굽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도록 해 주는" 아주 교육적인(?) 신발이지요.
그런데 며칠 전 이 슬리퍼 한 짝이 튿어져서 발등 가죽이 덜렁덜렁하는데, 웬만하면 방학 때까지 버티다가 개학과 함께 새 슬리퍼를 사야지 했는데,
계단 오르내리기가 위험할 정도로 발 조심을 해야겠드라구요.
하는 수 없이 비는 시간에 시원한 교무실에서 노닥거리길 포기하고, 학교 앞 "구두종합병원"에 갔지요.
늘 보는 거지만, 담벼락 밑에 0.5 평 짜리 조그만 가판을 세워놓고, 이 무더위에도 선풍기 하나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계신 나이든 아저씨가 참 성실해 보이셨거든요.
제가 "아저씨, 이거...." 하자마자, 물어볼 것도 없이 끌, 바늘, 실을 잡고 5분만에 덜렁거리는 것을 감쪽같이 단단히 꿰매주셨습니다.
한 마디 하셨지요. "이거, 돌아가면서 쭉 다 꼬매야 또 안 튿어져유."
저 감동받았습니다. 이분이야 말로 진정한 "프로"라고 느꼈습니다.
그 분의 손을 거쳐간 신발이 수백 ,수천 켤레 이겠지만, 똑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었겠지요.
그래도 신발만 보면, '아픈 곳'을 금방 알아채고 '치료' 해 주시거든요.
얼마나 많은 이들의 발을 위로해 주셨겠습니까.
2000원을 드리고 오면서, 새 슬리퍼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접었습니다.
이렇게 튼튼하고 닳지도 않았는 걸요.
저만 가만히 있으면 꿰맸다는 것도 아무도 모를 테지요. 며느리도....
첫댓글 조집사님 모습속에 평소 말씀하시던 시어머님 모습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조선미집사님의 모습도 아저씨의 모습도 향기롭습니다. 통굽이 편한거 신어본 사람은 압니다...
참으로 알뜰하십니다.그려!!! ^^
그렇게 사는 게 즐거우신 모습, 좋습니다.